1코스와 22코스가 만나면서 지리산 둘레길을 한바퀴 완성시켜주는 접점인 주천면에 닿기 전, 제법 지대가 높은


구룡치 어간에서 자욱한 운무를 만났다. 이슬비가 쉼없이 내리던 와중에 안개가 조금 짙어지나 싶더니, 이렇게


배배 꼬인 연리지 나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삽시간에 시야가 가려져 버렸다.



이렇게. 온통 희끄무레하고 먹먹한 커튼이 내려뜨려진 느낌인데다가 빛은 사방에서 번져버리니 분위기가 묘하다.


들이마시는 호흡조차 축축하고 새하얀 빛깔인 것만 같은 느낌. 



마법의 시간이 끝나고 숲을 빠져나왔더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멀찍이 내닫는 시계. 속이 후련하다.






그리고 1구간과 22구간이 양쪽으로 내달리는 시작점이자 종착점. 주천읍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녹색이 침공해 들어오는 계절도 아니건만 벌써부터 이 곳은 초록초록에 절반쯤 잡아먹힌 상태.





의식적으로 둘레길 코스에서 벗어나볼까 하면서 가닿은 곳에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저수지가 있었다. 비가 계속


내리다 보니 수위가 더 올라간 거 같기도 하고.







어느 곳에선가 마주친 사당이랄지, 아니면 사람이 살지 않게 된 흉가랄지. 집앞의 배롱나무가 활처럼 허리를 휘어서는


본채를 향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현관의 기와지붕에 온통 퍼렇게 돋아난 이끼들도.



비가 그쳤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빗발이 그칠 기미가 없어 카메라를 잘 꺼내들 수가 없었다. 



다소 지루하게 이어지던 숲길, 설마 저 나무도 오늘 하루종일 비를 맞아 저렇게 이끼가 잔뜩 생긴 건 아니겠지. 



지리산유스호스텔 부근, 좀더 걸어가다가 아무래도 산속 깊숙히 들어가는 길인 거 같아서 중도에 돌아나왔다. 


계속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깊은 숲에선 금방 해가 떨어져버릴 것 같다는 점들을 고려했는데, 현명한 판단이었던 듯.



콜택시를 기다리던 중에 귀여운 표지판 발견. 나무를 베지 말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도 굉장히


명료했지만, 특히나 맨 마지막 그림의 토끼가 짓고 있는 호소력짙은 표정이 맘에 들었다. 자살토끼같은 표정.




지리산 둘레길 코스걷기 이틀째, 예보대로 종일 비가 올 모양인지 아침부터 꽤나 꾸물꾸물. 


행정마을은 그러고 보니 다른 지리산 마을에 비해서 꽤나 잘 정돈되어 있는 거 같다. 이런 이쁜 솔숲도 있고.



멀찍이 병풍처럼 자리잡은 지리산은 온통 희뿌연 연무에 휘감겼다.



아무래도 이런 둘레길이 자기 동네에 생긴다고 하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을 거다.





가지런히 열지어서 심어진 모들이 부채꼴 모양의 논을 따라 부드럽게 휘었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 걸어가는 신작로. 시멘트로 반듯하게 만들어진 길은 걷는 재미는 확실히 흙길만 못하다.



물이 가득 채워진 무논들 너머로 군데군데 잘 정돈된 마을 정자랑 그럴 듯한 나무들.




제법 빽빽한 소나무숲길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온몸이 흠뻑 빗물에 젖었다. 





노치마을에서 만난 백두대간 비석. 지리산 인근 백두대간 정맥에 일제가 박아두었던 쇠말뚝을 제거하고는 이 마을에


일부 전시를 해두고 있기도 했다. 현대적인 의미의 산맥들이 한반도를 아우르며 어떻게 쉼없이 이어지는 건지


그림이 잘 안 그려졌었는데, 이 그림을 보니 백두산에서 설악산, 지리산이나 무등산까지 산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좀 알거 같기도 하다.


마을 어귀의 아름드리 나무 아래 시소. 시뻘겋게 녹이 슬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삐걱대는 소리 없이 잘 움직이더라.




모내기에 한창인 때인지라 곳곳에서 이앙기가 출동 준비 완료.


그리고 이미 모내기 작업을 완료한 논. 슬쩍 손으로 쓸어보면 굉장히 보드라울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1코스 끄트머리쯤에서 만난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간이식당. 라면을 시켰을 뿐인데 굉장히 맛난 김치가 


함께 나와서, 역시 전라도 음식은 최고라는 확신을 다시금 갖게 해주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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