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정확하게는 나파밸리를 진원으로 하는 강도6.0의 지진이 발생한지 일주일 후. 여진이 있지는 않을지, 피해가 크다던데

 

제대로 돌아볼 수는 있을지 걱정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아무런 특이점을 찾아볼 수 있었던 나파밸리.

 

작년말에 돌아본 곳이 주로 소규모의 작은 와이너리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나파밸리에서 세번째로 크다는 베린저Beringer 와이너리를

 

찾아보았다. 확실히 포도밭도 넓고, 와이너리 투어도 훨씬 더 체계적인 모습. 우선 이렇게 각지의 토질을 비교해놓은 장면부터.

 

운좋게도 9월초는 포도를 수확하는 타이밍이라 한다. 곳곳에서 검은 보랏빛으로 통통하게 익은 포도송이들이 보인다.

 

 

 

 

 

독일에서 넘어온 와인제조 장인의 후손들이 가업으로 잇고 있는 곳이라, 와이너리의 이름도 그렇지만 건물이나 정원도 독일 느낌.

 

 

 

열시부터 시작한다는 와이너리 투어 이전에 여유있게 도착했는지라, 마치 조그마한 공원처럼 이쁘게 꾸며져 있는

 

와이너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큼한 포도향과 허브 향기가 진동하는 아침공기를 흐트려놓았다.

 

 

 

그리고 와인 테이스팅 투어 시작.

 

 

베린저 와이너리의 가장 큰 와이너리는 독일식을 따서 만든, 야산에 서늘한 동굴을 파고 이를 꾸며놓은 와인저장고.

 

그 앞으로는 건물을 세워 와인 저장과 포도 착즙, 숙성 등의 과정을 같은 공간으로 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와인저장고에서의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밖에 없어 노이즈가 엉망.

 

 

그리고 테이스팅. 베린저의 대표 와인들 세 가지를 고루 맛보는 기회였는데, 단순히 일정 시간내에 부어라 마셔라

 

하는 테이스팅이 아니라, 기본적인 와인 마시는 방법에서부터 어울리는 안주를 고르는 방법까지 세심하게 교육해주었다.

 

와인과 안주와의 마리아주가 흔히 생각하듯 레드와인-고기, 화이트와인-생선 식으로 간단하지만은 않단 이야기.

 

 

 

 

테이스팅을 마치고 둘러본 샵. 고풍스런 느낌의 스테인드글라스하며, 어두침침한 가운데 농밀하게 깔린 와인 향기하며.

 

나파밸리나 소노마밸리나, 와이너리들의 기념품샵은 왠지 제각기 개성있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이다.

 

와인 관련 악세서리들이나, 비네거 소스, 와인향을 첨가한 비누 같은 것들.

 

 

 

 

 

그렇게 테이스팅과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샵에서 한보퉁이 지르고 나니까 어느덧 두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글쎄, 시간내 무제한 리필을 해주는 아기자기한 느낌의 소규모 와이너리 투어도 좋았지만, 소믈리에 급의 가이드가

 

와인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재미있게 풀어주는 체계잡힌 투어도 무척이나 좋은 경험이었던 듯.

 

 

* 와인과 음식과의 궁합에 대한 다이아그램 (by Beringer)

 

 

나파밸리와 쌍벽을 이룬다는 미국 서부의 와이너리 마을, 소노마밸리. 오늘 아침 갑작스런 강진 소식에 깜짝 놀라서

 

새삼 작년 11월경의 사진들을 되찾아보게 되었다. 소노마밸리를 상징한다는 일곱개의 깃발 의미부터 되새기기.

 

 

 

 

나파 밸리나 소노마 밸리의 여느 와이너리들이 그렇듯 이 곳 역시 초창기 시절의 허름하고 낡은 착즙기라거나 기타 와인 제조에

 

필요한 장비들을 한켠에 전시해 두고 있었다. 먼지 내려앉고 허름한 그 자체로 이 와이너리들의 전통이 숙성되는 모습이다.

 

 

오크통에 저렇게 새겨넣는 와이너리들만의 문양과 브랜드 네임들, 그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통들은 여전히 반질반질하다.

 

 

 

 

제법 서늘한 냉기가 감돌던 와이너리의 와인 저장고이자 시음장, 맛을 음미하면서도 최대한 신속하게 최대한 많이 마실 수 있도록

 

몇 잔을 마시고 나니 오전에 들렀던 나파밸리에서 축적한 취기와 맞물려 더욱 기분이 업되는 느낌.

 

와이너리를 이끌게 될 젊은 피 중 한 방울의 와이너리 소개와 더불어 포도 품종에 대한 설명도 듣고.

 

 

마치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열주문을 연상케 하는 대리석 빠방한 공간들을 둘러보며 얼콰한 술기운을 즐기다 보니,

 

와인 익는 냄새만으로 어느결에 만취해 버린 듯한 단풍나무를 마주하기도 하고.

 

건물 안에서는 또다른 팀이 와인을 시음하며 느긋해진 매무새로 즐기는 중이다.

 

 

 

'세바스차니'였던가, 와이너리의 이름. 이름이 뭐였던간에, 내겐 나파와 소노마에 산재한 수많은 와이너리는 비슷한 이미지로 남았다.

 

 

붉은 단풍빛 와이너리, 바싹 마른 채 바람에 나뒹구는 포도잎들, 그리고 한층 더 짙고 무거워진 와인의 맛과 향.

 

꼭 같은 와인이었대도, 이런 날씨와 이런 햇살이 아니었다면 좀더 맛이 가볍고 연했을 거 같다. 아무래도 신세계 와인이다보니.

 

지진 피해에서 모두 무사하시기를. 더이상의 피해는 없길 바라며.

 

샌프란시스코의 11월초, 짙푸른 청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 아래 높다란 나무 전봇대들이 사이좋게 서로를 지켜선 나파 밸리.

 

보통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나파 밸리, 소노마 밸리는 당일치기 와이너리 투어로 많이들 간다는데, 그 편이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 면에서도 나쁘지 않으며, 게다가 운전 걱정없이 와인을 맘껏 '테이스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참가했던 투어는

 

아침 9시 출발해서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 두 곳, 소노마 밸리의 와이너리 한 곳을 돌아보고 오후 6시에 돌아오는 코스.

 

 10월말에 막 수확을 마쳤다는 야트막한 포도나무 줄기들이 홀가분해 보인다.

 

 

첫 와이너리는 가족들만으로 4대째 운영하고 있다는 소규모지만 착실한 와이너리였다. 4대째면 근 백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틴 셈이다.

 

 

 

 주로 피노누아와 샤도네이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와이너리의 향긋한 내음 가득한 창고 안에서 입맛을 다시며 설명을 듣고는.

 

 

 거침없는 시음. 가이드 아저씨는 적당히 세네 잔 마시도록 권유했으나 품종별로 네댓잔을 마셔버린 듯. 벌써부터 보람찬 투어다.

 

 

 와이너리 바깥을 둘러보다가, 조금만 더 일찍 와서 수확 전의 포도밭을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짙게 남기고.

 

 

 건물 외벽에 농담처럼 붙어있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웃어주기도 하고,

 

 시뻘겋게 익어가는 담쟁이 덩굴 잎사귀에 렌즈를 이렇게 들이댔던 걸 보니 벌써 취했던 거 같기도 하다.

 

잠시 차를 달려서 도착한 두번째 와이너리. 이번에는 좀더 대량생산을 하는 커다란 와이너리였다. 미국의 슈퍼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브랜드이기도 한, SUTTER Home 와이너리.

 

 

 

 아무래도 좀더 규모가 커서 그런지, 이전에 쓰였을 법한 장비들이 곳곳에 진열되어 있기도 하고 와인병들도 이쁘게 전시되어 있고.

 

좀더 전문적인 와이너리 혹은 시음장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가오잡고 일렬로 늘어놓은 와인잔의 그럴듯함과 테이스팅을 권하는 아저씨의 박식하고 전문적인 설명까지.

 

 시음했던 건 이렇게 세 가지. 레드와 화이트, 그리고 로제 와인이었는데 역시나 거침없는-무제한에 가까운-테이스팅의 향연.

 

 

 

  이 곳 역시도 그리 만만한 역사를 가진 곳은 아니어서, 곳곳에서 오랜 세월의 향기가 배어나오는 듯 하다.

 

  

 그리고 이 곳의 장점은 시음장과 매장 밖으로 나가면 이렇게 이쁜 정원과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는 점.

 

급하게 마신 와인에 잠시 혼몽스러워질라 치면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 한모금 마시고 다시 들어가서 다시 시음을.

 

그 정도로 테이스팅을 위한 시간이나 배려가 여유로워서, 와인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만큼 편안했던 거 같다.

 

 

어느 와이너리나 자체의 기념품샵 혹은 매장을 갖추고 있는 것 같은데, 이날 돌아본 세 곳의 와이너리 중에서

 

가장 큰 매장을 갖추고 있었던 SUTTER 와이너리. 색색의 병들도 이뻤고, 와인과 함께 할 스낵류나 안주 시식도 넉넉했다.

 

 

그리고 기념품점에서 마주쳤던 와인에 대한 온갖 상찬의 문구들이나 그림들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끌었던 셔츠 한 장.

 

 

 

어느 날, 퇴근 후 송년회를 빡시게 가졌던 다음날 내 방 책상 위에서 발견된 중국산 와인. 때이른 산타클로스

놀이는 혈관 속에서 맥놀이하는 알콜 성분과 저질 체력 덕에 가능했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지만, 왠지

나는 이 와인병이 무슨 별똥별처럼 우주에서부터 내 방 책상위로 내려앉았다고 상상해 보고 싶은 거다.

중국에서도 와인을 만들었단 말인가, 새삼 중국 대륙의 힘을 느끼면서 거의 새 것과 다름없이 코르크만 한번

열렸다 닫힌 듯한 와인 맛을 음미해보기로 했다. 중국과 프랑스의 조인트 벤처 와이너리에서 만들었다는

무려 '다이너스티' 와인인 거다. 라벨지 색깔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 계열이고.

라벨 뒤, '다이너스티DYNASTY'의 중국어 표현, '왕조'. 중국 톈진지구에서 만들어졌다는데 거기가 포도 재배

그리고 와인 숙성에 적합한 지역이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왠지 자꾸 의심병이 도지는 이유는, 공항 면세점에서

파는 마오타이주조차 메틸알콜로 만들곤 한다는 그네들에 대한 불신과 일종의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와인은 포도로 만든 건 확실하겠지? 유통기한이 지났다거나 상한 포도로 만들었다거나 제조 과정이 지극히

비위생적이라거나 따위 온건하고 상상가능한 거 말고, 예컨대 포도가 아닌 붉은 색 돼지간으로 만들었다거나,

(그저 상상일 뿐) 알고 보니 헌혈의 집에서 폐기된 붉은 피를 재활용했다거나(워워워)...


중국에 대한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고량의 냄새를 좋아하고 고량주를 좋아하며 중국제품도 사실 굉장히

품질이 높고 좋은 제품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그냥 상상해 보면 그렇다는 거다. 중국에서 나온 와인,

한국에서 복분자니 뭐니 이러저러한 것들로 와인을 빚어놓은 것도 꽤나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더더욱

요모조모 생각해 보고 조심하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 맛만 좋으면 된다. 그치만 코르크 마개를 따고 확 풍기는 냄새는 살짝 매콤한 냄새, 어릴적 우뢰매를 보러

자주 갔던 어린이대공원 근처에서 곧잘 맡았던 최루탄을 백분지일 정도로 희석시킨 냄새랄까. 잔에 따라서

비춰본 와인의 색깔도 그닥...살짝 갈색이 도는 붉은 빛, 게다가 공기와 닿아 향이 좀더 숙성되면서 매캐한

냄새는 좀더 강해져 버렸다. 맛 역시, 라벨에 소개된 것처럼 light하고 fruity하다기보다는 그냥 가볍게 맵다.


좀 많이 실망해서, 담부터는 술에 취해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걸 챙겨오자고 대오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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