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2코스, 운봉읍에서 금계까지 이어지는 10km여의 구간은 마을의 수호장승으로부터 시작.


 

함께 걸었던 군대친구들. 어느덧 십수년의 세월동안 참 잘도 지내는게, 이리저리 갈린 길에서도 용케 잘 뭉쳐다녔다.


  

 

 

모내기를 위한 모판을 무논 위에 둥둥 띄워놓고. 모판을 실제로 본 건 꽤나 오랜만인데, 이렇게나 빽빽했던가,


그리고 이렇게나 싱그럽도록 연둣빛이었던가 싶다.


뭔가 일을 하시다 잠시 쉬시는 농부아저씨. 논두렁에 멋진 포즈로 딱 버티고 서서는 대지와 산을 바라보는.


 

둘레길 옆으로는 염소젖 짜는 체험도 해볼 수 있다는 조그마한 염소농장도 있고.


이런 아름드리 나무들도 쉬이 눈에 띄는 시골길이다.


 

또다른 아름드리 나무 옆에는 나무의 자연스런 곡선을 그대로 살려서 지은 정자도 있고.

 

잠시 길을 잘못 든 통에 차들이 씽씽 다니는 도로변에서 걸어야 하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논두렁 태우는 연기와 냄새가 훈훈한 시골의 봄길을 걷는 건 꽤나 유쾌한 경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그리고 솟대들이 온통 삐죽거리며 솟은 곳은 어느 마을의 입구.

 

 

 봄의 빛깔은 누가 뭐래도 연두연두. 그리고 저렇게 한풀 꺾여 수그러든 낡은 벽돌빛의 배경이라면 더 좋다.


 

이제 슬슬 금계마을에 도착, 길이 민가로 접어들었고 이렇게 사람사는 풍경들이 나타난다.

 

골목길에 딱 버티고 선 나무도 싱싱하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의 발랄한 물소리와, 그쪽으로 귀기울인 나무들의 휘영청한 모습도 참 좋고.



 

 

 

어렸을 적 무주구천동에 놀러가서 텐트치고 엄마아빠랑 '곰발바닥 닭발바닥~'하면서 놀았던 기억으로만 남았던 곳.

 

꽃구경을 하겠다며 나섰던 4월 마지막주의 무주 봄 풍경.

 

출발하기 위해 모였던 양재역 옆의 새순들. 새싹들이 새살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훌쩍 무주. 점심을 먹었던 식당 옆의 한적한 시골풍경 역시 연둣빛이다.

 

풍성하게 피어나다못해 보도블럭 아래로까지 흘러넘치던 잘디잘은 꽃송이들.

 

올려다 본 하늘에는 내려꽂힌 벼락처럼 우왁스럽고 거침없는 나뭇가지에 여린 이파리가 돋았다.

 

 

 

땅 위에 살포시 놓인 노란 물음표 하나.

 

 

봄철을 맞아 온몸에 영양제 주사를 맞고 있는 나무 한 그루. 피가 되고 살이 되길 바랄 뿐.

 

 

 

 

 

버들강아지도 아니고 뭔지는 몰라도, 오동통하게 살이 불은 솜털보숭이들.

 

 

언제든 그대로 조심스레 파내어 쓰시라며, 땅에 동그랗게 화관을 만들어둔 노랑꽃들.

 

 

 

 

무주구천동로, 두갈래 갈랫길이 쪼개지는 어간에 서서 연둣빛 행진을 사열하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바람조차 숨을 죽였는지 꽃눈이 그쳐버렸다.

 

그래서 슬쩍 자리를 이동하면 그 사이로 놀리듯 지나버리는 바람 한 줄기.

 

 

바야흐로 벚꽃잎을 우수수 밀어내며 연둣빛봄이 남도에 피어나는 중이다.

 

 

 

그나마 비로소 담아낸 한 컷. 벚꽃비가 나풀대며 '초속 5센티미터'로 날아가는 순간.

 

 

 

최악의 황사라더니 햇살만 눈부시던 날. 아무래도 5월의 첫날 메이데이의 집회/시위를 막으려던

음모는 아닌가 싶도록 그럴 듯한 날씨였다. 붉은 목련이 햇살을 맞고 온통 하얗게 탈색된 그런 날.

서울 근교에 있어 지하철로도 갈 수 있는 경기도 모락산, 산 이름을 발음하니 재미있다 싶었는데

사모할 모, 낙양 낙, 해서 조선시대 왕이 낙양을 사모하며 올랐던 산이라나. 봄볕이 갸냘픈 신록을

뚫고 뚝뚝 뭉텅이로 떨어져 있는 그런 산길로 접어들었다.


몇 걸음 들어가니 좀더 짙어진 나뭇가지들의 차양, 덕분에 좀더 짙어진 녹색과 갈색의 향연.

자잘한 잎새들이 사방에 온통 튀어버린 페인트 물감처럼 점점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황사가 극심할 거라는 일기예보 탓인 듯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고즈넉한 산길.

겨울산이 잔뜩 품었던 잔설들이 투명하고 맑은 물이 되어 산의 옆구리에서 줄줄 새어나오기 시작,

사람들이 걸어서 오르내리던 계단이 한단한단 물그릇이 되어서 잔뜩 물을 움켜놓았다.

하늘이 조금 뿌옇긴 했지만, 그래도 갓난애 뺨같이 보들거리고 싱그러운 느낌의 둥근 산자락이다.

아스파라거스나 브로콜리처럼 봉긋봉긋, 그러면서도 울룩불룩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산등성에서 또다른 등성으로 넘어가는 길, 잘 정돈된 잔잔한 평지를 지나니 또다시 나무뿌리가

울퉁불퉁 핏줄처럼 돋아난 오르막길이다. 뭐하나 반듯하게 수평이 잡히지도 않고, 이리 뒤뚱

저리 뒤뚱 기울어진 천연 나무계단에 약간씩 뒤틀려 자라나는 나무들, 덩달아 지나는 사람들도

제각기의 각도로 기울어진 채 산을 타고 있었다.

잔뜩 말라붙은 채 두껍게 나무에 덧붙어있는 껍질들, 드문드문 떨어져나간 모습이 더 황량하지만

그 뒤로 보이는 반짝반짝 연두빛 꼬마전구들이 켜진 덕에 조금은 부드럽게 다독다독. 근데 저건

무슨 코르크나무도 아닌데 나무껍데기가 저렇게 두꺼운가.


아무래도 블랙 & 화이트의 그림에서는 뭔가 서늘하고 가라앉은 느낌이 나는 거 같다. 아무래도

봄의 신록을 잡아내기에는, 저렇게 하늘 향해 조막손을 펼친 새순들을 찍는다 해도 왠지 그냥

전부 겨울산, 겨울나무 같은 느낌. 뭔가 분위기도 무거워지고 사연있는 느낌이랄까.

여릿한 잎사귀의 유아틱하게 작고 귀여운 비율을 가진 모양새도 모양새지만, 채 제대로

염색되지 않은 옅고 여린 빛깔이 아무래도 어린 잎의 뽀인트 아닐까. 저런 연두빛 잎새로

쫙 한줄기 햇살이라도 들이치면.


문득 느낌이 이상해서 하늘을 보면, 문득 파란빛이 담겼다간 이내 뿌옇게 흐린 구름이나 먼지에

덮여버리곤 하는,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 날씨. 그런 침침한 하늘 아래 침침하게 뻗는 나무의

잔가지들, 그리고 물기 뺀 큰 붓을 비틀어 대충 꾹꾹 누른 듯한 연두빛뭉치들. 청소 오랫동안


안한 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 같기도 하다.

모락산 정상,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라 쉬엄쉬엄 오르멍 사진찍으멍 밥먹으멍 놀았지만 금세

올라버렸다. 아래로 펼쳐진 건, 자줏빛 진달래숲, 연둣빛 나무숲, 그리고 회색빛 아파트숲.

휘휘 둘러보다가 문득 시선이 콱 꽂혔던 풍경이다. 하늘은 여전히 뿌옇지만 저게 황사인지

안개인지 구름인지는 모르겠고, 그 아래 여전히 까슬한 채 잎사귀옷을 챙기지 못한 나무들이

부드럽게 뭉개져버린 풍경 속, 연둣빛이 저렇게 강렬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모락산에서 능선을 타고 가면 바로 이어지는 백운산,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뭐,

표지판이 말해주겠지 싶어서 설렁설렁 내딛던 발걸음. 양쪽으로 아직은 힘이 덜 붙고 나이가

덜 찬 나무들이 구불구불 길을 만들어주던 그 오솔길을 세심하게 헤아려주던 봄바람.

지루했던 겨울과 지겨워질 여름 사이에서 잠깐 주어지는 봄날, 한눈팔 시간도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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