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벌써 십여년째-아마도 올해가 십년째라던가-이어지고 있는 세계불꽃축제.

 

오후 7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이탈리아, 중국, 미국, 그리고 한국의 순서로 진행된 쉼없는 불꽃들은 아홉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그야말로 아낌없는 불꽃들의 향연. 개인적으로는 처음 이십분을 책임진 이탈리아의 불꽃이 가장 이뻤던 듯.

 

늘 그렇듯 삼각대는 꼭 필요할 때면 들고 가지 않는 징크스가 이번에도 발동하여, 무적의 손각대를 출동시켰으나..

 

불꽃이 워낙 느닷없이 피어올라가 뻥뻥 터지는 바람에 타이밍이고 뭐고 되는 대로 눌러버렸단 게 맞겠다.

 

촬영장소는 한강대교 중간에 조그맣게 걸쳐있는 노들섬, 미리 두시간쯤 전부터 맥주와 저녁거리를 사들고 자리를 잡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정상적인 자리는 만석이었다는 거. 덕분에 풀밭으로 기어올라가 없는 자리를 만들어내야 했다.

 

천지가 진동하는 폭죽 소리, 그리고 하늘 가득 휘황하게 번쩍거리던 불꽃의 대향연. 정말이지 모처럼,

 

터지는 걸 보고 나서도 씁쓸하거나 허무하지 않은 불꽃들을 잔뜩 볼 수 있는 자리였지 싶다.

 

 

 

 

선유도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양쪽 기슭에서 시작된 둥근 아치형의 다리가 직선의 교각 위로 불쑥 튀어나온

부분이 재미있다. 날씨가 좀 풀렸더니 그 둥근 다리 위를 쌍쌍이 걷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다리를 건너는데 문득 눈에 띄었던 나무 두 그루. 꼭 짝지처럼 바싹 붙어서서 하나는 강가쪽으로, 다른 하나는

선유도쪽으로 촉수를 쭉쭉 뻗은 모습이 미묘하게 서로를 위하는 것 같다. 양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상대를 막아주려 발뒤꿈치 들고 앞으로 용을 쓰는 모습이랄까.

애초 정수시설이었던 이곳, 이전의 모습을 허물어버리지 않고 나름의 미감으로 활용한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삭아내린 시멘트벽 너머로 겨울철을 버텨낸 풀떼기들이 앙상하게 하늘거리고 그 머리 위엔 하얀 달이 조각구름처럼 떴다.

날씨가 좀 풀린 덕분인지 사방에서 카메라를 둘러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커플 모델인건가

아니면 무슨 웨딩사진이라도 찍는 걸까.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만난 토끼 한 마리, 요새 공원들에는 토끼를 일부러 풀어두는 건지 작년엔 올림픽공원에서

토끼 뒤를 쫓아달리며 기어코 두손으로 번쩍 잡아올리기도 했었는데. 이녀석도 좀만 발품 팔면 잡을 수도 있을 거

같이 토실토실 무겁게 보였지만, 뭐 잡는다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선유도 공원의 중심부랄까, 정수되길 기다리는 물들이 담겨있었을 정수조엔 이제 찰박찰박하게 빗물이 고였고

정수조 사잇길은 연인들의 산책로가 되었다.

문득 발견한 매미 허물. 지난 여름 매미가 오지게 울어대기도 전에 벗어던진 허물일 테니, 어느새 일년 가까이 된 거

아니려나 싶다. 그런 거 치고는 주둥이 앞섶의 솜털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는 게 신기하다. 이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나온 녀석은 이미 신나게 울어제끼다가 어딘가에서 생을 마쳤을 텐데, 매미도 죽어서 허물을 남기는구나.

가로세로 열맞춰 도열한 수십개의 기둥들이 온통 담쟁이 덩굴에 휘감겼다 했는데 유독 저 기둥 하나만 헐벗었다.

제법 두텁게 겨울옷을 입고 버티는 듯한 풍성한 기둥들 사이에서 더욱 선뜻하니 추워보이는 까실한 시멘트 기둥.

이런 식으로 기존 정수시설의 흔적이 폐허처럼 남아있는 게 맘에 든다. 잘 포장되고 덧씌워진, 확실한 마감이 아니라

이 곳의 기억과 용도가 어느 정도 추측가능한 수준으로 보전되어 있는 편안한 폐허 혹은 재활용품인 선유도공원.


중간중간 이렇게 위아래를 오르내릴 수 있는 구름다리나 계단이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땅바닥에서 걷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눈높이를 오르내리며 시각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점, 평면이 아니라 입체를 걷는 재미랄까.

이 곳의 놀이터 역시 재활용의 미감을 담뿍 흘려내고 있었다. 자연스레 녹슨 철제 튜브가 그대로 미끄럼틀이 되었고

마냥 신난 아이들은 미끄럼틀 출구에서 6중 추돌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다들 뒷목 잡고 일어나기 직전의 모습.

보통 저런 곳에는 꼬물꼬물 조그마한 글씨로 알아보기도 쉽지 않게 누구야 사랑해, 를 적어두기 마련인데 내가

여태 본 낙서 중에 가장 대범한 거 같다. 쪼잔한 수백명이 달라붙어 낙서를 할 수 있을 만한 공간에 저렇게

큼지막하고 자유롭게 글자 여섯개를 남기다니. 대범하고 자유로운 발상만큼 이쁜 사랑하시길.

돌아나오려는 길, 다리 두어개 너머로 시선을 던지면 바로 여의도가 보인다. 국회의사당의 파스텔톤 둥근지붕이

살짝 드리운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때문에 더 칙칙해보였다.




회사 1-3년차 때 국제행사나 의전 업무를 맡아 호텔이나 럭셔리한 레스토랑 음식에 시큰둥해졌을 때만 해도

내가 이런 음식 사진을 찍을 줄 몰랐다. 그렇지만 남의 돈이나 행사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와 재원으로 간 건 처음.


폭설주의보와 한파주의보가 내린 1월의 마지막날. 모두가 집으로의 퇴근을 서두르며 철수하던 여의도로 거꾸로

바삐 거슬러 도착한 여의나루역에선 아무래도 나 혼자 내렸던 거 같다. 63빌딩 Walking on the Cloud에서.















올리비아 코스와 노르마 코스. 가격차가 좀 있어 6코스와 7코스, 나오는 메뉴도 조금 달라서 더욱 풍성했던 저녁.

다음번엔 여의도 63빌딩보다 뷰가 좋은, 강남 도심의 마르코폴로에서 된장질 한번 시도.(그래봐야 회사 3층 위지만)




프랑스 여행 갔을 때 빵을 참 맛있게 먹었었다. 바게트도, 크로와상도, 타르트류도. 동네의 빵집들도

굉장히 맛있었고 뽕드뺑이니 뽈(Paul)이니, 그런 베이커리 체인점도 엄청 맛있었던 거다. 늘 잊지 못하던

차에, 작년 상해 출장 중에 리츠칼튼 호텔 1층에서 '뽈'을 발견하고 완전 반가워서 잔뜩 빵을 사먹기도

했었고 남은 건 검정 봉다리에 뚤레뚤레 들고 다니며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었다. (그래도 맛만 좋더라는)

한국에서도 있다고 듣고만 있던 차, 여의도까지 갈 일이 쉽게 생기지 않아 항상 맘속에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만 있었는데 드디어, 드디어 한국에서 뽈 입성. 프랑스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매장의 인테리어는

똑같이 꾸며놓았구나, 클래식한 느낌의 어두운 색 철제 프레임 위의 하얀색 글자, PAUL. 주말 오전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적어두고 몇분 기다리는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브런치 메뉴를 시켰더니 우선 검은깨가 잔뜩 박혀있는 바게트와 버터가 나왔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일회용 버터용기가 아니라, 도자기로 만들어진 용기 속에 버터가 꽉 채워져서는 저런

종이로 뚜껑삼아 덮여있었던 것. 원래 빵에 버터 발라먹는 거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거칠딱딱한 바게트를 먹자니 속이 좀 부대끼겠다 싶어서 버터를 꼼꼼히 발라먹었다.


매장 안은 커다란 통유리창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고 천장도 높은 덕에 굉장히 개방된 느낌이었다.

은은한 파스텔톤의 색감이나 단정하고 우아한 느낌의 커튼, 그리고 따뜻해 보이는 백열등 샹들리에가

잘 어우러진 분위기. 파리에서도, 상해에서도 비슷한 분위기였던 거 같다. 아마 전통적인 인테리어 컨셉을

고수하는 거겠지, 어설픈 현지화라거나 분위기 쇄신을 거부하는 게 왠지 프랑스스럽다.

뭘 먹었냐면, 이런 거. (아놔, 음식 포스팅은 이래서 못해먹겠다는. 제목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 맛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말이다.) 분명한 건, 내가 여태 뽈에서 먹어봤던 빵들이나 브런치 메뉴, 커피까지도

별로 실패다 싶었던 적은 없었다는 점. 특히 강추하고 싶은 건 크로와상, 아몬드 크로와상하고 타르트류.

메뉴판의 한대목. 벌써 12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진 빵집이었구나. 메뉴판을 보면서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준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삼청동, 아니면 정자동

까페골목 같은 곳에서 브런치를 먹을 때보다 조금 싸거나 비슷한 정도랄까. 브런치가 아니라 빵을

먹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요새 베이커리집들 얼마나 빵값이 비싸졌는지, 그닥 차이가 없어 보인다.

브런치를 먹고 아쉬워서 빵 하나 더 골라서 맛나게 먹고 나서 한참 앉아서 창밖도 구경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샹들리에(전등)와 샹젤리제(거리이름)를 내내 헷갈리다가, 파리에 다녀오고서 그 도시의

거리 곳곳을 걸으며 몸에 새기고는 비로소 그 두 단어를 제대로 구별할 수 있게 되었던 것도 기억나고.

그 이래로 파리와 상해, 서울의 추억을 이어주며 이렇게 어디서든 변함없는 퀄리티와 맛으로 반겨주는

빵집 하나를 서울에 갖게 되었다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옆 테이블의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볍게

브런치를 먹고 오붓하니 이야기하는 걸 보며, 그네들의 추억은 어디에서부터 이어졌을까 괜한 상상도

해보게 되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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