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극중 영화감독지망생 영재, 그의 말대로 다소 "산만하고 수다스럽고 정신없이" 진행되는지도 모른다.

영화 제작을 위한 자금 걱정을 하다가 뜬금없이 '아~ 스크린쿼터', '아~ FTA' 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나,

네그리의 '제국'을 읽으며 사회의식을 가진 문화활동을 하라던 고참이 눈앞의 부조리에 침묵하는 모습,

노동해방 조끼를 입은 노조원을 개잡듯 두드려잡는 꼰대의 광적인 소란까지. 아, 정신병력이 있는 친척이

있냐는 의사 질문에 대한 대답에 빵 터졌다. "사촌 형 중에 조선일보 기자가 있어요." 정신없이 사방팔방을

손가락질하고 시니컬하게 뒤틀어놓는다. 온갖 사회문제에, 꼰대들의 고루함과, 기존 영화판에까지.


그런 감성과 지적질들이 맞고 틀렸는지는 나중에 따지기로 한다. 워낙 정신없이 사방으로 벌려진 이야기에다가

그의 이야기는 대개 맥락도 없고 지긋한 깊이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그의 수다스런 이야기는 외마디다.

외마디의 집합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그가 문득 실어증에 걸리면서 비로소 핵심으로 가닿는다. 입닥치는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여태 제대로 '말을 들었던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영화를 만들려면 우선 그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고 남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되짚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는 그와

함께 했던 그녀와의 관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는 결국 은하, 그녀를 해방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은하 3호, 4호로 바뀌어 나가고 동시에 자신도 영재 4호,

5호로 바뀌어 나가며 함께 해나가기에는 이미 그녀는 지쳐있었다. 이젠 자신이 없어, 이젠 마음이 없어.

그렇게 그는 홀로 영재 5호, 6호로 변전해 나간다. 그건 그가 여태 남의 말을 듣거나 감정을 헤아리기보다는

혼자 쉼없이 떠들어댄 대가이자, 그 '양질전환'의 임계점에 이른 필연적 결과이기도 했을지 모른다.


이제 그는 잘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 거야, 잘 하니까." 해방된 은하, 그리고 새로 함께 하는 은성 역시

똑같이 말해준다. 그가 애초 번다하고 수다스럽게, 마치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부유하는 온갖 말풍선들을

잘라붙인 듯한 화면과 메시지를 모자이크하듯 던져준 건 일종의 힌트 아닐까. 이제 그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줄곧 머릿속에 쌓이기만 한 채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외마디 수다'로 소모되었던 그런 에너지를 조금 더 잘

가다듬어서, 그런 산만하고 정신없는 실타래로부터 하나하나 잘 정련된 '이야기', '대화'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그마하고 조심스런 희망.


새로 함께 하는 은성이 듣지 못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채플린의 영화처럼, 혹은 '톰과 제리'같은 만화처럼,

말이 없어도 그 의미와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영화를 감독은 만들고 싶은 게 아닐까. 그러고 나면 그의 정치적

지향과 감수성, 비판의식같은 것들도 좀더 효과적이고 설득력있게 다가올 수 있을 거 같다. 이 영화에서

다뤄진 것만큼 유쾌하고 발랄한 방식은 고스란히 살리면 좋겠고. 그게 영화속 감독지망생에게 바라는 바이자,

(아마도) 윤성호 감독 본인이 바라는 바인지도 모르겠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가 인정할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G20 정상회의 유치는 한 마디로 이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제 세계사적으로나 민족사적으로 진정한 21세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주요 방송 생중계로 전달된 특별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말들을 했다고 한다.

G-20 정상회담을 서울에서 내년 10월에 개최하기로 결정된 것을 두고 만세삼창을 하니 어쩌니 어처구니없는 쌩쇼를

벌이는 게 한참 어이없던 와중이었다. 그게 뭐라고. '세계 유지'들의 모임이니, '지구 GDP의 85%'를 담당하는 부자나라

클럽이니 하는 천박한 표현들은 최소한 '선진일류국가'의 지도자란 사람이 앞장세울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세계가 인정했다'느니,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애아이마냥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는 그 사람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고.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 거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엔가 배웠던 '억양법'. 사전에서 찾아보면 "문장중에서

앞에서 누르고 뒤에서 추기거나 먼저 나무라고 나중에 칭찬하는 등의 형식으로 의도하는 바를 더욱 강조하는 수사법"

이라고 되어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사람은 착하다, 착한데 못생겼다."라거나 "예수천국 불신지옥(혹은 불신지옥

예수천국)"류의 뚜렷한 대비를 통해 드라마틱한 쏠림현상을 이끄는 거다.


G-20 정상회담하면 '선진일류국가'가 되고 갑자기 '지구마을 유지'로 회원증이라도 발급받는 건지, 실제로 의장국이

운신할 수 있고 산출해낼 수 있는 여지와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회의적이다. 거슬리는 건, 아직 어떻게

준비되고 어떤 효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그 정상회담-혹자는 1988 올림픽 유치에 비기기도 하지만-을 강조하기 위해

그 앞에서 후줄근하고 '변방적'이며 얼마나 보잘것 없었는지 부각되는 현재와 과거의 모습이다. 자신의 키가

크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마주선 사람 키를 사정없이 낮춰잡는 유치한 꼬맹이같은 놀음.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한국인의 위대성은, 여태까지는 세계에서 인정받지도 못하고 폄하되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젠 글로벌 차원의 아젠다 세팅능력을 갖춘 엄연한 선진국가라는 건, 이전까지는 이른바 '반미용공'

세력이 말하던 바 주권국가로서의 몇가지 결격사유를 갖춘 중진/후진국가였다는 말인가. 세계정상들의 축하를 받으며

손을 꼭 붙잡았다는 그의 새삼스런 감회와 비견되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담에서의 이준 열사 에피소드는 왜 이리

뜬금없다 싶을까. 세계의 중심에 서기까지 아시아의 변방에서 고생만 죽도록 했다던 스토리, 진부한 신데렐라 드라마도

아니고.


그 모든 '변방국', '주변국', '非주요국'의 에피소드, 이미지들은 오로지 'G-20 이후'의 세계 중심국가 한국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수사다. 미래에 우뚝 설 선진국가 한국의 국민으로 마음껏 자부심을 느껴라, 라는 주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미래의 불확실한 성취를 앞당겨 맛보라며 국민들에게 저런 상찬을 들이미는 순간, 지금까지의 현재가

가없이 남루해지고 변변찮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위대한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껴보라는데 되려, 지금까지

살았던 나라가 사실은 이토록 찌질한 나라였나, 별거아닌 나라였나 자괴감을 진하게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거다.
 

과거 10년을 오로지 부정하고 지워버리는데 골몰하는 사람들이니 의도적인 '과거사 단절'의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건국60년을 기념하고 이산가족 상봉 회차도 1회부터 다시 세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사실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영광을 찬양하고 열광하기 위해 '지금, 여기'를 자학하고 비하하는 패턴은 익숙하다. 앞서 말했던 '기독교적 교리',

혹은 대부분의 종교가 갖는 현세와 내세의 비교가 대표적일 거고, 소위 '민족주의사관'의 헛점 역시 마찬가지다.

종교에선 순결하고 완전한 내세를 부각시키기 위해 비참하고 부조리한 현세를 강조하고, 바이칼호까지 뻗는

대륙을 호령하던 과거의 감춰진 영광과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쪼그라든 반도정신을 들먹거리게 되는 식으로.


G-20 정상회담이 정말 뭔가 한국이란 나라에 '양질전환'의 계기를 갖고 올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한물이
 
아니라 두물 세물 빠져버린 '21세기'를 새롭게 구분하여 '진정한 21세기'와 그 이전 '거짓된 21세기'를 분류하는

판이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앞장서 달콤한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은 믿지 말라고 니체선생님이 그랬다.

더구나 그들처럼 프로페셔널한 거짓말쟁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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