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이동하려는 참,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노 머니, 노 허니'의 격한 티셔츠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이 티셔츠가 작년 여름에 캄보디아에서 대유행이었던 게 틀림없다.

시엠립의 재래시장통을 옆으로 스쳐보내고, 이 조그마한 마을이 옆에 품고 있는 거대하고 웅장한 고대 유적들을

돌아본 기억을 차곡차곡 갈무리.

시엠립 시외버스터미널, 어딘가에서 모여 작은 미니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옮겨가는 식이었다. 처음엔

이런 미니버스를 태워서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지 살짝 불안하기도 했지만 얼마 달리지 않아 대형 버스들이

잔뜩 주차해 있는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공터에 도착했다.

버스에 짐을 싣고, 아직 출발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간단하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6시간이나 시골길을

달려야 시엠립에서 프놈펜에 도착한다니 미리 좀 먹어두는 게 낫겠다 싶어서.

다행히 우리네 버스터미널이 그렇듯 슈퍼가 있어서 다양한 간식거리나 음료도 많이 팔고 있었고, 요기거리가

될 만한 것들도 노점에서 많이 팔고 있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저 소세지들은 딱 보기에도 위생상 뭔가 문제가

있어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기름에 다시 지글지글 튀길 테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은근 맛있어 보이기도.

노점 말고도 건물로 된 음식점에서도 전부 이런 류의 소세지를 파는 게 왠지 안 먹으면 후회하겠다 싶어 주문.

칼로 잘라놓고 보니 꽤나 먹음직스러운 조리 예 시현, 무슨 고기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맛도 꽤 좋았다.

숙주랑 함께 볶아진 닭고기-아마도..?-요리도 간단히 맛보고,

닭요리처럼 보여서 시켰는데 왠지 뼈도 자잘하고 맛도 살짝 다른 것이, 주인 아저씨한테 몇번을 물어봤지만

영어도 손짓발짓도 (심지어) 한국어도 안 통한다. 결국 이게 무슨 고기인지 밝혀내는데 실패, 왠지 찝찝해서

다른 것들은 싹 먹어치웠지만 이 녀석은 조금 남기고 말았다는.

가게 한 켠에 놓인 평상에서 오수를 즐기고 있는 아저씨, 그리고 선풍기 앞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대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아이 하나. 시선은 티비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벌거벗은 가슴 가득 선풍기 바람을

부딪기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슬금슬금 가게를 빠져나가던 고양이 한 마리, 잘 못 먹었는지 바싹 야윈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 닭인지 비둘기인지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한 점을 던져주려 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버스 껍데기는 그래도 제법 깨끗하다. 더구나 내부에는 이렇게 화장실도 있었던 것. 여섯 시간쯤 달리니 필요하겠다

싶어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아무리 그래도 중간에 휴게소도 설 테고 한국에서도 그정도 달려도 차에 화장실은

없는데 싶어 새삼스레 신기하게 바라봤댔다. 언제든 필요할 때, 급할 때 쓰라는 세심한 배려.ㅋ

그리고 뭔가 우스운 방석. 버스의 각 좌석마다 전부 이 알록달록한 핑크 톤의 방석이 매달려 있었다. 이건 뭐지.

버스 앞에는 그래도 티비도 달려 있고, 캄보디아의 대중 가요를 뮤직비디오랑 함께 쉼없이 틀어줬다. 뭐랄까,

80년대 한국 트로트 가요에 맞춰 성인 배우들이 80년대풍의 과장된 감정 연기를 하는 스토리다. 해변에서 함께

손잡고 하하호호 웃으며 뛰어다니다가, 어느 순간 그 해변에 홀로 앉아 눈물 글썽이며 옷을 쥐어뜯는.

바깥에서 휙휙 풍경이 지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왕복 2차선의 외길, 이대로 쭉 프놈펜까지 가는

길이라 했다. 엔간한 차 한대 보이지 않는 구간을 한동안 달렸고, 드문드문 스쿠터가 앞에서 알짱대기도 했고.

프놈펜에 거의 들어와간다 싶을 무렵, 똔레 쌉강인지 메콩강인지, 뜨겁던 태양이 한풀 꺽인 듯한 하늘 아래

강폭이 잔뜩 벌여진 수면 위로 배들이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강변으로는 수상가옥스러운 가건물들이 비탈지게 세워져 있기도 하고, 양철판을 이어붙인 선박들이 쭉 정박해

있기도 하고. 목욕탕의 쑥탕같은 이벤트탕 색깔이랑 비슷한 강물 색깔이 묘하다.

프놈펜 시내에 들어섰다. 아줌마들이 열맞춰 서서는 쿵짝 리듬에 맞춰서 에어로빅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프랑스 식민지 시절 '인도차이나의 파리'라 불렸다는 이곳은 아무래도 시엠립 같은

시골의 조그마한 동네와는 분위기가 영 딴판이었다. 비교적 높은 스카이라인도 그렇고 북적대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리고 웃통도 제대로 챙겨입은 꼬맹이들이나 아저씨들도.

그리고 시내 곳곳에서 쉽게 보이던 원숭이들도. 좀처럼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얼굴 표정이 역력하면서도

막상 가까이 가거나 관심을 보이면 슬금슬금 도망가 버린다. 뭔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 떠나가는 듯.

어떤 면에서는 서울의 골목길에서 자주 보이는 길냥이들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프놈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에 잠깐 들러본 왓 프놈, '언덕 위에 세워진 사원'이란 의미의

왓 프놈은 프놈펜 시민들의 도심 공원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위치도 딱 프놈펜 시내 중심쯤에-약간 북쪽에

치우친 감이 없진 않지만-자리잡고 있다.

얼핏 보면 세느강변 옆의 파리 시내 분위기도 얼추 느껴진다. 가로등과 건물들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그렇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저녁의 어슴푸레한 풍경 속에서 촛불빛을 밝혀 바치는 걸로 보아 뭔가 종교적인

지도자 아닐까. 동상에 장식되어 있는 목걸이도 그렇고.

숙소, 호텔 캄보디아나에 도착해서 체크인하고 나니 객실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건 벽면에 찰싹 붙어있던

도마뱀 한 마리. 안뇽.

똔레 쌉강과 메콩강이 합류하는 지점쯤에 호텔 캄보디아나가 서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어디서부터가 똔레쌉강이고

어디까지가 메콩강인지 뚜렷하게 구분하는 거 자체가 좀 넌센스다. 두 줄기 모두 홍수로 잔뜩 탁해진 한국의

강들처럼 온통 흙탕물인걸 뭐. 그치만 조금 낡긴 했지만 꽤 괜찮았던 오성급 호텔에 걸맞는 뷰라고 해두기로.

저녁이나 아침에 해넘이, 해돋이 보기엔 딱 좋은 위치다.

메콩 익스프레스, 시엠립에서 프놈펜까지 여섯 시간 걸려 달리는데 요금은 USD 11$ 이었다.(09. 8월 기준)

버스 짐칸에 짐을 실어주면서 가방에 묶어 두고 식별하기 위한 표찰을 떼어주기까지 하니까 나름 체계는

갖추고 있는 셈이다. 짐표에 그려진 저 돌고래..는 메콩 익스프레스의 로고. 근데 메콩강에 돌고래가 사나.



앙코르 톰을 벗어나 소위 '그랜드 투어 코스'를 자전거로 돌아 보기로 했다. 네모반듯한 앙코르 톰의 동쪽에는

'승리의 문'과 '동문'이 있는데 그쪽으로 나가면 '스몰 투어 코스'로 작은 원을 그리며 앙코르왓으로 돌아오게

되고, 북쪽의 '북문'으로 나가면 '그랜드 투어 코스'로 좀더 많이 큰 원을 그리며 한나절 코스가 되는 거다.

사실 한나절 코스니, 반나절 코스니 미리 재단하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가서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몇시간이

지나가던 앉아서 쉬고,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그럴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여행을 떠나서 아침에 대략적인

스케줄만 스케치하듯 잡고서는 나머지 디테일은 그때그때 내키는대로 채우는 게 그래서 좋은 거 같다.

북문에도 여지없이 눈똑바로 뜨고 앙코르 톰을, 씨엠립을, 캄보디아를 지키는 '크메르의 미소'. 네모나게 각진

얼굴에 저런 은근한 미소를 물려주지 않았다면 꽤나 무섭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곳에도 역시 깊고 넓게 파인 해자를 건너기 위한 다리가 있고, 다리 위에는 거대한 뱀의 몸뚱아리를 줄 삼아

잡아당기고 있는 신들이 있다. 감사해요, 덕분에 다리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겠군요.

쁘레아칸(Preah Khan)으로 가는 길 중간, 느닷없이 마주친 한무리의 아이들. 축축 늘어져있는 가지에 매달려

그네처럼 좌우로 거침없이 흔들기도 하고, 해먹인 양 편히 기대어 쉬기도 하고, 쪼꼬마한 아이들도 나무를 꼭

쥐고서 놀고 있는 게 꼭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요즘에도 가끔 나타나 화제가 되고 하는 '정글 인간', 십수년씩 혼자 정글에서 동물들과 생활했다는 그들이나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같은 아이들이 저렇게 지내던 게 아닐까. 정글 깊숙이 우거진 나무들에 기대어 쉬고,

놀고, 잠들고. 저렇게 많은 아이들을 품어 주고 버텨주는 나무가 듬직하다.

앙코르 왓 내부에는 화장실이 드물다. 몇 킬로미터씩 가야 띄엄띄엄 있는 수준인데, 가끔은 입장객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는 유료 화장실도 있다. 자전거를 격하게 달린지라 장 활동이 활발해졌는지, 화장실의

위치 추적에 예민해졌던 그 때, 문득 눈앞에 나타났던 '한국-캄보디아 우호의 숲'이라고 읽히는 낯익은 글자.


의전 원칙에 따라 자국 국기를 왼쪽으로, 외국 국기-여기선 태극기-를 오른쪽으로. 자국어인 캄보디아어로

먼저 소개를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보질 못하겠고, 한글로는 한국이 먼저 나와 '한국-캄보디아', 그다음

병기된 영어로는 'Cambodia-Korea'로 자국이 먼저 나오고. 나무랄 데 없는 배치다.

우호의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화장실.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세워두고 급한 불부터 끈 후에, 건물을 따라 숲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뭐, 딱히 다를 건 없었고 그냥 여느 앙코르 왓 내부의 정글과 같이 치렁치렁하고 빽빽한

정글, 숲이었다.

화장실 안에서 재미있는 그림이 있어서 한 장. 왼쪽부터 보자면, 흡연 금지다. 아무래도 정글에 목재 건물이니

화재 예방이 중요한 거다. 그담 변기뚜껑에 올라앉아 일보지 말라는 표시, 워낙 많은 불특정다수가 쓰는 공용

변기이다 보니 더러워지기 쉬울 테고 그럼 또 저런 자세를 부득불 취해 더욱 더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렇지만 저 자세로는 물이 사방으로 튈 텐데.ㅡㅡ;; 세번째는, 옆에 있는 수도꼭지로 발 닦지 말라는 건지

신발을 닦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날이 워낙 더운데다 여기 오면 아무래도 많이 걷게 되니 발 한번 씻고

나면 피로도 좀 풀리고 좋지 않나? 좀 이해가 안 되는 표지다. 마지막 그림처럼 샤워하지 말라는 거야, 다른

사람에 민폐도 될 수 있고 '선녀'처럼 옷을 분실할 수 있는 위험도 있으니 그렇다지만. 


이 중 하나를 어기고 말았다. 너무 더운데다 이미 옷에 하얗게 소금꽃이 피어나 어쩔 수 없었다는.


잘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사이 이 곳을 너무나도 잘 지켜주신 이웃분들 완전완전 감사해요^^ 특히 리나님!ㅎㅎ


어제밤 11시 비행기를 타서는 오늘 새벽에 인천에 떨어졌더니, 생각보다 많이 삼엄한 분위기더라구요. 신종플루가

이 정도로 수선스러워야 하는 정도에 이른 건지 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어쨌든, 한잠도 안 자고 사진 정리하고

영화보고 해서 그런지 열도 오르는 느낌에 피로가 급 몰려와 여태 뻗어있다 잠시 살아났습니다.


어디 다녀왔는지는, 몇 장 두서없이 올리는 사진들 보시면 자연스레 아시게 될 거에요~*

본격적인 여행 이야기는 내일부터...(과연?ㅡㅡ;;)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을 근 천오백장이나 찍어왔어요^^
그곳의 해가 지는 모습이에요. 우기라 그런지 먹구름이 맹렬히 하늘을 달리더라구요.  

그곳의 뒷골목 풍경입니다. 빨래도 널려있고, 오리도 널려있는.

하늘엔 전선덩굴이 정글처럼 무성하게 뒤엉켜있고, 땅엔 트럭과 오토바이, 자전거 등 왼갖 탈것이 온통 뒤엉켜있고.

그곳의 올드마켓 풍경이에요. 대략 생김생김이 동남아의 필이 좀 오나요?

노을을 배경으로 한 제 실루엣이에요. 하늘 표정이 어찌나 드라마틱하고 변화무쌍하던지..그저 감탄했더라는.

사원입니다. 힌두교 사원으로 지어졌다가 후세에 불교사원으로 바뀌기도 하고, 불교사원으로 애초 지어지기도 한.

구름이 몽실몽실 담겨있는 네모난 해자. 흔히 중세 유럽의 성에서 떠올리게 되는 성 주변의 깊이 파인 해자가

실은 이곳에서 전래된 거라더군요. 놀랐습니다. 그리고, 앙코르왓의 아름다움과 거대함, 또 디테일함에 탄복했습니다.

앙코르왓에서 삼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반띠아이 쓰레이, 란 사원에 있던 연꽃밭에서 한 장.

옷이 온통 걸레가 되어가며 걷고, 자전거 타고, 뚝뚝(이라는 현지 삼륜차) 타고, 수영하고, 그랬네요.


잘, 다녀왔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