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힐전망대, 안나푸르나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해발 3,210미터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에서 만나게 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직전의 데우랄리쯤과 비슷한 고도를 점하고 있는 곳이다. 새벽 4시반부터 롯지를 나와 산행을 시작한 건,

 

이 전망대에서 해뜨는 걸 보며 동시에 안나푸르나 사우스, 안나푸르나 1, 마차푸챠레, 닐길리, 힌출리 등의 이름 높은 산들을

 

바라보고자 함이지만, 사실 밤새 구름이 많이 끼고 심지어 비도 조금 내렸어서 큰 기대는 없었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드랜턴으로 헤치며 근 1시간가까이 헉헉대며 산행을 했을까, 해발 2,874미터에 위치한 고레파니에서 수직으로

 

약 400미터 가까이 올라가야 하는 셈이니 생각보다 거친 산행이었던 셈이다. 슬몃 하늘이 밝아진다 싶을 때 전망대에 도착했다.

 

저멀리 닐기리 산의 눈덮인 정상부가 짙은 구름 사이에서 신비스러운 빛을 내뿜는 게 보였지만, 전반적으로는 구름에 숨은 상태.

 

 

우선 전망대에 위치한 찻집에서 밀크티, 찌야를 마시며 몸을 좀 녹였다. 보통 롯지에서는 50루피 내외(KRW 500원 정도)이던 찌야가

 

무려 240루피. 역시나 여기서도 네팔 본국 사람에 대한 우대는 여전해서, 같은 찌야가 고작 120루피. 대개 그렇듯 차 역시 반값이다.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 날카로운 삼각뿔 형태의 안나푸르나 사우스에 갈갈이 찢기면서도 하릴없이 몰려왔다. 볼 수 있을까.

 

그 와중에도 한쪽의 벤치에는 쌍쌍이 앉아 있는 커플들, 마치 알프스의 다정다감하고 온유한 산정에 오른 듯한 분위기를 연출 중이다.

 

구름이 없이 맑은 날이면 전망대 아랫춤에 붙어있는 그림처럼 쭈욱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을 텐데.

 

 

끈덕지게 시야를 가로막던 구름들이 조금씩 산개하며 밀려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푼힐 전망대의 전망탑. 하늘은 파래졌지만 사실 아직 태양이 지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은, 그야말로 일출 직전의 긴장감.

 

 

밤새 이슬이 내려앉은 어느 벤치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봉우리들.

 

 

삐쭉, 봉우리가 구름 위로 솟았지만 여전히 계속 감질나는 시츄에이션.

 

그 와중에 봉우리들 틈새로 햇살이 빗겨 번지기 시작했다.

 

무슨 수묵담채화도 아니고, 옅은 금빛의 햇살이 시꺼먼 산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헤집으며 서서히 채비를 갖췄다.

 

 

 

끝내 맑은 하늘을 못 보려는가 싶으면서도 뭐 딱히 서두를 거 있나,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이제나 저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는 중.

 

사실 딱히 안나푸르나 사우스니 마차푸챠레니 하는 봉우리들이 하나씩 툭툭 불거지지 않아도 좋았다. 어차피 난 푼힐 트레킹 코스

 

말고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로 넘어갈 거고, 그러면 계속해서 그 봉우리들을 바라보고 걷게 될 테니 급할 건 없다.

 

 

 

오호라, 그렇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안나푸르나 1과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를 대면할 수 있었다. 금빛 아침햇살을 머금고

 

반짝거리는 새하얗고 매끄러워 보이는 만년설의 질감이란. 게다가 저토록 섬세한 디테일들이 맨눈에도 쉽게 드러나다니 감탄 또 감탄.

 

 

실컷 감상을 하고서 슬슬 내려오면서도 계속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은 뒤를 지켜 주었다. 이제 모두 저멀리로 날아가버린 구름들,

 

가끔 깃털인양 한두조각씩 걸쳐지는 구름들을 불어내면서 그 거대하고 웅장한, 위엄돋는 봉우리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쉬웠다. 우선 날이 밝아 발밑이 안전했고, 줄곧 내리막이었으며, 배가 고팠으니깐. 금세 푼힐전망대의

 

티켓 오피스를 지났고 이내 고레파니의 숙소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고레파니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의 회전문. 대체 왜 저런 문을 설치했나 했더니, 닭이니 염소니 물소니 그런 것들이 함부로

 

마을 경계를 넘어 도망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버스로 한시간 반, '알프스의 눈동자'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에 도착했다.

 

날은 굉장히 흐리고 꿀꿀한 게 금세라도 비나 진눈깨비가 내릴 듯한 날씨였지만 호수의 수면은 거울처럼 매끈하다.

 

 

백조가 유유히 직선을 그어내는 호수 너머 조그마한 섬, 매직 아일랜드같은 느낌으로 버틴 섬을 꽉 채운 성모승천 교회.

 

 

그리고 100여미터의 절벽 위에 서 있는 블레드 성. 무려 천년 동안이나 저 위에서 호수를 굽어보았다고 한다.

 

개구리 모양의 (아마도?) 쓰레기통, 그 넓적한 입매가 장난스럽게 비틀어졌다.

 

 

백조님의 클로즈업 샷. 어찌나 깃털이 발수기능이 좋으신지 머리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모습이다.

 

 

생각보다 호수는 엄청 커서, 둘레가 대략 6키로미터라고 했던가. 겨울철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여름엔 무지 북적거린다고 한다.

 

 

그리고 덩굴처럼 자라난 아름드리 나무의 잔가지들이 수면 위로 스물스물 그림자를 드린 가운데 새하얗게 우아한 백조가 그리는 궤적.

 

 

아직 날은 춥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지만 여지없이 봄이 내딛는 발자욱은 한걸음씩 진군 중이었다. 꽃망울을 여기저기 터뜨리며.

 

 

 

블레드 성에 오를 즈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그칠 기미없이 점점 세차진다 싶더니 급기야 호수 표면에 셀수없는 구멍을 내버렸다.

 

나무 아래에서 잠시 비를 그어갈까 했지만 아직 다들 잎사귀조차 제대로 틔우지 못한 앙상하고 헐벗은 나무들.

 

 

중간중간 블레드 호수로 모이는 개울들의 목소리는 한층 더 드높아졌다.

 

 

 

블레드 섬과 호수 둘레길과의 직선거리가 가장 가까워지던 즈음, 두마리 조그마한 오리들이 섬을 향하듯 호수면을 미끄러지고.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호숫가에는 차가운 빗물이지만 쉴새없이 내리며 조금씩 겨울의 흔적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블레드 호수의 둘레길, 블레드 성에서 산 와인 한병을 들고서 홀딱 비 맞고 흐느적흐느적 걸으며 병나발 부는 맛이란. 캬.

 

 

 

 

원래 블레드 섬까지 들어가는 유람선이 있다고 해서 그것도 타보고 싶었지만, 워낙 비수기에 와버린 데다가 이렇게 비가 내리니

 

들어가는 건 포기해버렸다. 그 안에는 '소원의 종'이 있는데 그 종을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내게 소녀시대가 있으니 괜찮아.

 

 

 

섬 주변에는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곳곳에 있고, 블레드 성같은 오랜 유적도 있는 데다가, 레스토랑이나 까페도

 

뭉탱이 뭉탱이 몰려 있다. 이 건물도 뭔가 까페인 거 같은데, 비수기라 역시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블레드 섬의 360도 뷰를 찍어볼 기세로 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와인병을 기울이며 사방에서 찍어댄 결과물들.

 

 

 

그리고 호수를 거의 다 돌았을 무렵,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더이상 촬영은 무리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집어넣기 직전 마지막으로

 

담은 블레드 성의 옆모습. 얼짱각도에 수렴하는 45도 비껴난 샷이다.

 

다시 블레드에서 류블랴나로 가는 버스 안. 옷이고 신발이고 가방이고 홀딱 젖어서 무척이나 묵직하고 정신없는 와중에 창밖을 보니

 

어느새 빗물이 진눈깨비나 눈발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날이 좀더 푸릇푸릇하고 맑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비를 쫄딱

 

맞으며 와인 한병을 병나발 불며 호수 한바퀴를 도는 경험이란 것 역시 나무랄 데 없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버스정류장, 시계탑이 고고한 건물 앞에는 비바람에 낡고 닳은 번호표가 하나씩 내걸려 있다.

 

'양지바른 알프스'라는 슬로베니아, 그중에서도 '알프스의 눈동자'라 불리는 블레드로 가는 버스를 타러 온 참이다.

 

 

블레드 호수로 가는 버스는 7번 플랫폼에서 출발, 나보다 앞서 머리하얀 할머니 한분이 그야말로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

 

슬로베니아의 다른 도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네 조각으로 기울어있는 신호등은 가시성을 높여주지 않을까. 더 안전할 듯.

 

오토부스나 포스타야, Autobusna Postaja. 슬로베니아어로 버스 정류장..이란 뜻이려니. 크로아티아에서는 '오토부스니 블라블라',

 

Autobusni~~ 가 버스 정류장이었더랬는데, 비스무레하다.

 

 

정류장 주변 풍경. 아무래도 이렇게 반듯반듯 특징없이 서 있는 슬로베니아 신시가의 모습은 과거 공산주의 블록에

 

속했을 때의 정형화되고 실용적이기만 한, 그리고 집체적이랄까, 그런 표현이 떠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블레드 호수로 달려가는 버스. 슬로베니아의 교외 풍경은 신시가의 반듯하고 인공적인 미감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그렇지만 블레드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안개가 짙어지고 꾸물꾸물해지는 게 날이 안 좋다. 그리고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 교통

 

버스로 왕복 3시간(편도 1시간반), 버스는 정류장에서 30분 간격으로 있음.

 

버스는 고속 직행버스가 아니어서, 중간중간 정류장마다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고 한다. 그 정류장 중 하나에서 발견한 아저씨.

 

아직 이른 오전시간인데 벌써 벌겋게 취하셨다. 와인병을 옆에 두고, 한 손에는 담배를 끼우고 옆엣 아저씨들과 열띤 이야기중인

 

그를 빨간 쓰레기통에 그려진 아저씨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한시간 반을 여유롭게 달린 완행 버스는 드디어 블레드 호수, '알프스의 눈동자'에 도착!

 

 

 

일본의 알프스라 불린다고 했던가, 일본 본섬의 동북부 쓰가루 평야를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공원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겨울철에는 스키리조트로 활황을 누리고, 여름철에는 고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라 하는데, 아무래도 때가 때인지라 무척이나 한적했던 분위기.

여기에 눈이 잔뜩 쌓이면, 여느 일본 리조트들이 그런다듯이 별다른 코스 제약 없이 나무사이를 헤치며

산 아래까지 스키타고 쭉 내려갈 수 있는 걸까. 완전 두근두근하는 경사에, 지금 시퍼렁 풍경도 맘에

들지만 여기가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고 하면 더 멋질 거 같다.

전반적으로 호텔은 유럽 분위기를 내고 있었고, 한 옆에는 결혼식을 치를 수도 있을 거 같은 조그마한 성당,

아니면 교회도 지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아오모리 지역의 호텔들은 온천이 포인트. 여기 호텔도

소박하지만 편안한 온천 시설에 피부를 매끈하게 해주는 '물이 다른' 온천수가 펑펑 나오고 있었다.

호텔에서 내려가는 길, 우리나라로 치면 대관령 고갯길이나 지리산 굽이길처럼 굽이굽이, 가파른 언덕에

도로폭도 좁은 길을 한참 감아 내려가고 올라가고 해야 도착할 수 있는 호텔인지라 그만큼 아는 사람들만

찾아올 거 같기도 하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일본 동북부의 시골 풍경을 내려다보며 즐기는

온천의 맛도 제법이었으니 한가로운 휴가를 즐기기엔 딱 좋을 듯.



@ 아오모리 로얄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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