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의사아저씨 렌과 펠라페를 맛나게 먹구서는 걍 기차역에 마침 서있던 기차를 덥썩 잡아탔다.

3등칸이었다. 2이집션파운드(400원 가량?)만 내고 에드푸까지 갈 수 있었는데, 덜컹이며 무심히..요샛말로 '시크하게'

달리는 허름한 기차는 이제 우리는 없애버린 경춘선 열차랑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 난 애초 내가 탔던 칸에서

쫓겨나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겪긴 했다. 외간남자와 함께 앉아있을 수 없다며 거세게 손사래를 치는 검은 차도르

차림의 아주머니들이 옆칸으로 밀어냈던 것.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는 머..그저 느낌으로 그렇게 이해했을 뿐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남자인 것에 상관없이 내 생김새가 맘에 안 들었다거나 그런 건..아니길 바랄 뿐.


오히려 다행이었다. 옆 칸에 가서도 역시 유일한 외국인으로 만인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지만, 친절한 이집션 부부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빵에 치즈를 발라서 주기도 하고, 기차칸서 간식으로 팔고 다니는 볶은 콩..아마도 소금물에

푹 절였다가 볶은 듯 엄청나게 짰던..그런 것도 사서 듬뿍듬뿍 나눠주고 그랬다. 아마 적도에 인접할만큼 뜨거운 동네니만치

땀을 많이 흘리는 것에 대항해 염분을 보충하려는 건가, 그렇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왕소금을 씹는거 같은 느낌이라구

운운 혼자 머릿속으로 툴툴거리면서도 그들의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에 절로 웃음이 났다.  

3등객석은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었는데, 마치 우리나라 옛날 기차처럼 닭 같은 것도 들고 타고, 짐보따리도 잔뜩 

이고 타고, 그런 류의 푸근함이 느껴졌다. 나일강을 끼고 덜컹이며 유유히 움직이던 그 열차칸의 진동과, 흔히 외국인의

암내라 부르는 것과는 또 다른그 짙은 이질적인 내음, 닭털이 날리고 사람들의 와글와글함 사이에서 동그마니 던져져

있던 날 이어준 건 그 사람들의 따스한 정이었다.


나른하고 유유자적한 기차의 율동감에 나도 몰래 졸고 있다가, 아까 그 가족들이 깨워줘서 에드푸에 내려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경찰이었다. 자기들끼리 잔뜩 뭐라뭐라하더니 택시 타라면서 차 한대를 잡아준다. 십오 내랬다가 십 내랬다가.

나름대로 깎는다고 오파운드 불러놓고는 배짱 튕겼더니 뭐, 일단 타기로 했다. 근데 이게 알고 보니 이게 택시가 아니라

일종의 마을버스 같은 거였던 거다. 차 뒤 짐칸이 개조된 곳에 사람들이 잔뜩 서서 타고 내리는 걸 함께 부대끼면서

이게 절대 오 파운드일리가 없다 싶었다. 내릴 즈음 다른 사람들처럼 오십 피아스타만 내고 내려버렸다. 

신전엔 거의 아무도 없었다. 있어도 이집트인 관광객 하나둘.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디선가 시작된 아잔의 메아리소리가

신전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우르릉 흔드는 느낌이었다. 걍 앉아서 하염없이 그림보고 히에로글리프 보고 하다가,

이제 됐다 싶어져서 다시 기차타러 출발. 많이 더워져서 망고주스를 애타게 찾다가 큰 컵에 1.5EP라는 곳을 발견,

연이어 두잔을 들이키고 한잔을 사서 물병에 옮겨담았다. 이건 거의 중독이다. 여기에 마약탄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다시 기차역, 3등차를 타고 룩소르에 입성했다. 꾸준히 나일강을 끼고서, 나일강물의 빛깔은 뭐랄까, 심오해보인다.

투명하게 맑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럽다거나 거부감이 들지도 않는...적당한 의뭉스러움과 요요함을 숨긴 듯한.

룩소르 피씨방에서 칼리드라는 이집션을 만났다. 피씨방에서 미니홈피를 확인하다가 알바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알바생이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거다. 다짜고짜 넘겨준 전화통을 붙잡고 사실 적잖이

당황했고 이걸 어째야 하나 싶었는데, 짧고 성긴 대화가 오간 잠시 뒤에 그는 피씨방으로 직접 찾아왔다.

콧수염, 턱수염도 그럴듯하고 풍채도 딱 벌어진 게 아저씨스럽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고작(!) 스물하나. 아직

대학생이고 투어가이드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내친 김에 룩소르 신전의 야경을 보러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혹해서 또 따라나섰지만 혹시나 몰라 경계심은 살짝 유지하기로 했었다.


룩소르 신전 입구서 한 '코리언'을 만났다. 칼리드가 먼저 알아보고 내게 저기 '코리언'이 있다고 말해줬다.

외국에서 한국인을 꺼리는 병이 도져 잠시 쭈뼛거리는데, 그에게 몇몇 이집션 애들이 다가와서 돈달라고 손내밀고

그러는 거다. 그러자 바로 한국말로 터져나온 욕의 향연. 마치 여긴 내가 하는 말 아무도 못 알아들을 테니 걱정없이

상스러워질 수 있다는 듯이. 질려버려서 걍 멀어져버렸다. 단지 과거의 돌덩이들만 보러 여행온 건 아닐텐데..

거기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건지. 상대적으로 칼리프에 부쩍 호감을 갖게 되어, 그의 그럴듯하게

자세가 잡힌 설명을 들으면서 룩소르 신전의 아름다운 야경을 잔뜩 구경하고, 뭔가 스토리가 잔뜩 웅숭그리고 있던

그곳의 정취에 함뿍 젖을 수 있었다. 빛이 모자라 잔뜩 흔들리고 깜깜한 사진들과 함께. (그래서 사진이 없다..ㅡㅡ;)


담날 새벽엔 변태를 만났다. 뉴욕에서도, 팟타야에서도, 심지어는 이집트의 아스완에서까지 변태는 내 친구..엉?

아침에 펠루카를 탄 채 나일강 위에서 해돋이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새벽 5시, 여전히 깜깜한 한밤중에 나일강변에

나섰더니 왠 이집션이 다가왔다. 시시껄렁한 얘기하고 어쩌구 하더니 불쑥, 자기 집에 아무도 없댄다. 아내도 없고,

자식들도 없고. 그리고 long banana가 있다나..not small이란다. 쳇..여전히 못 알아듣고 있던 나는, 50파운드

주겠단 얘기를 듣고서야 그제야 그제야 알아버린 거다. 일단..너무 싸다고 거절.ㅋㅋ 50파운드? 우리돈 오천원이잖아.


근데 이자식, 아니랜다. 여기 정가가 그렇다고, 얼마를 원하냐고 진지하게 치근덕거렸다. 장난으로 대거리하다가는

정말 큰일나겠다 싶어 더럭 겁이 났다. 단호히 거절하고 돌아서서 속보로 퇴각하는데도 계속 따라오길래..경찰이 보이는

곳으로 도망왔다. 성질 좀 내볼까 했으나...어찌나 정말 '남자답게' 생겼던지 화는 못 냈다.

그러고 찍은 해돋이 사진들. 아침 5시반..그 바나나 아저씨를 만나고 난 직후다. 더구나 펠루카를 빌려서 나일강 서안으로
 
건너가 해돋이 보기로 약속을 해놓고서 이 아저씨들이 바람이 없어 펠루카는 안된다며 모터보트로 건너갔던 터다. 전날

황혼을 펠루카에서 보려던 계획을 빵꾸낸지라, 대신 해돋이를 보겠다던 의욕에 불타던 내 기분이 살짝 흐려졌었지만...

하늘이 밝아지고 천지가 뿌얘지더니 그제서야 은근슬쩍 올라오는 해를 보며 모든 걸 용서할 듯한 마음이 되어버렸댔다.


6시면 해가 뜰 줄 알았더니 동쪽에 딱 산이 있어서 생각보다 꾸물거린다. 6시 50분쯤에야 해를 봤다. 단순히 "해뜨다"란

표현으로 가리우는 그 지루할만큼 길고도 변화무쌍한 국면들...뿌연 하늘, 차츰 진해지는 청색과 서편 끝에까지 뻗어나가는

빛의 알갱이들, 동편이 차츰 붉게 달아오르다가 어느 순간 이미 햇님이 어디선가 뜬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밝아졌다 싶을

즈음, 불쑥, 하고 해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고개만 빼꼼히 그치만, 점점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고, 완전히 지면에서 떨어져

나갈 때조차 아직은 빛을 내는 아주아주 똥그란 다홍빛 원반같을 뿐. 그 열기는 한참 후에야 내게 도착해서 따뜻함을

전한다.


해뜨기 전이 가장 춥다느니 하는 통속적이고 진부한, 마냥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를 강조하는 말도 있지만, 기실
 
해 뜨기 전에 이미 사위는 모두 밝아진다는 점을 주목할 수도 있는 게다. 용례라면,

A : "해뜨기 전이 가장 춥다잖냐, 물고문, 성고문만 나오면 80년대와 다를 게 없다지만 좋아지겠지."

B : "꼬됴 이자식아. 해가 뜨기도 전에 이미 사방은 온통 밝아온다는 말도 모르냐."


여행 중 숱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고 가라앉는 해를 봤지만, 이때의 해돋이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물론, 그러고 나서

이 모터보트 선장이 애초 약속과는 달리 바가지를 씌우려는 바람에 불끈, 또 깡따구를 부려야 했지만. 머, 인샬라다.

이집트는 여전히 해가 떠오르는 동쪽...나일강 동쪽변에만 그들의 삶을 꾸린다. 서편은 별로 발전시킬 의욕도

없는 거 같고, 일단 과거로부터의 무덤이 너무도 많아서. 나일강을 보고 있으면 보통 볼 수 있는 water와는

다르게 점도가 상당히 높은 거 같다는 착각이 든다. 유속이 그리 느리지도 않은데, 수면에 계속해서 파문이

그려지면서도 쉽게 지워지지가 않는다. 살짝 끈적스러워 보이면서도 무진장 맑아보이는 나일강. 물 밑에는

거대한 물고기가 잔뜩 산다.






아부심벨에 가려면 아스완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한다. 실제 출발시간은 4시가 넘어서지만, 가기 전에 경찰에서

아부심벨로 향하는 차량대수와 총 인원수를 파악하고 행렬의 앞뒤에 패트롤카가 붙어 호위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서 절대 못가고, 결국 투어를 할 수 밖에 없단 얘기. 97년엔가 이집트 룩소르서 관광객대상으로 테러나고 일케

경찰이 잔뜩 깔렸다는데, 그와중에 어제 또 테러가 났으니 이제 이집트 난리났겠지 싶다. 관광자원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관광객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한다면...이미 이집트인들은 거의 계엄상태인양 쫙 깔린 경찰에 눈치를 보며

지냈었더랬다. 카이로에서 만난 한 이집트친구는 이집트인과 외국인이 같이 붙어다니는 것만 봐도 경찰이 와서 이집트

사람을 조사할 정도라고 그러던데.

아부심벨 가는 길은 한 3시간 채 안 걸린 거 같은데, 좁디좁은 15인승 미니버스에 빼곡히 실린 채 그래도 자보겠다고

잔뜩 힘쓰다가 문득 눈뜨니 6시쯤, 해가 꾸물꾸물 뜨고 있었다. 황량한 황토빛 황야에서, 아직은 그다지 강렬하지는

않은 태양이 미처 열기까지는 전달하지 못한 채 분홍빛 양광만을 세상에 꽂아주고. 반사적으로 사진 함 찍고 잠시

감상해주다가 다시 잠들어 버렸다. 사실은 끊임없이 펼쳐진 듯한 황야, 황량하고 쓸쓸한, 단조로운 풍경이 계속된

것에 지치기도 했다.

8시쯤, 기사아저씨가 갑자기 웰컴 투 아부심벨~! 외치는 소리에 깼다. 불쑥 눈앞에 나타난 나즈막한 산.

뒤로부터 정면으로, 조금씩조금씩 드러나는 아부심벨의 그 유명한 네 기의 석상은 생각만큼이나 멋졌다.

각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카르투쉬를 오른쪽 어깨와 가슴에 새기고, 먼곳 어딘가를 당당히 응시한 그 자세가

참 위풍당당하다는 느낌.

큼지막한 신전의 덩치도 덩치지만, 그 온갖 벽면과 천장을 온통 히에라글리프(이집트 그림문자)와 그림으로

가득 채워놨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이빠이 안력을 돋구고 사방을 쉼없이 돌아보며 눈을 엄청나게 혹사시켜야

그걸 그래도 대략이나마 훑을 수 있을 정도니, 왠만한 궁전의 호사스러움에 비길만하다.


뭘 그렇게 남기고 싶었을지, 그렇게 극렬하게. 이집트인들이 죽음에 그토록 집착한게 아니라, 사실은 그 행복한

삶을 죽음 너머까지 잇고 싶어서 그토록 사후에 대한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 그림과 도안들은

그저 치장을 위해서라거나 무의미한 단편들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무수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 하다. 뭐랄까..

신전 자체가 한권, 혹은 그 이상의 책으로 느껴진달까.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사람이 침튀겨가며 무언가 웅변조로

스스로 감동먹은 채 잔뜩 얘기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문제는, 마치 렌이라는 캐나다 의사아저씨가

종종 그렇듯,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서 흥분하다 보면 말이 무진장 빨라지는데 그럴 때 내가 느끼는 감정, 뭔말인지

대략은 알거 같은데 맥락이 대부분 끊기고. 그저 어렴풋한 뉘앙스와 의도만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인, 그런 느낌이

바로 내가 읽고 해석하지 못하는 그 고대의 텍스트에 대해 갖는 거랑 똑같은 거 같다.

혹 내가 그걸 읽어내고 벽면에 걸친 스토리를 이어낼 수 있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릴

거란 생각...그것은 람세스2세의 자기자랑이거나 마누라자랑, 혹은 이집트 위대하다 식의 쓸데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고, 혹은 이 신전에는 뭐가 얼마나 들어갔고 짐 무슨 신에게 언제 제사를 지내며..그런 이야기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그 히에라글리프와 그림들은 자체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무식'자의 눈에 신비로움을 더하고,

게다가 그토록 방대하고 빽빽하게 채워진 스토리를 읽어내릴 수 있다면 일종의 외경심마저 들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옆에 있는 좀 작은 규모의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도 가봤지만 글쎄..아부심벨과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가득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이야기들이 내게 신기함과 이국적인 느낌 이상을 던지지 못하고

이해되지 못하는 이상 아부심벨의 전투신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어찌보면 이집트 고대문화는 기독교문화와 이슬람문화 모두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 거 같다. 오벨리스크가 이슬람

사원의 미나렛이나 교회의 첨탑으로, 히에로글리프가 모스크의 캘리그래피로,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는 상형문자가

교회의 십자가 원형태로. 올곧이 전승되었다거나 의식적으로 계승되었노라고 말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영향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신기하게도 또다시 체코에서 온 파블로와 마르코 남매를 만났다. 어제도 기차역에서 멀찌감치 날 봤다고 하던데, 참

질긴 인연이다. 뭐..여행자들 가는 루트란 게 워낙 비슷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부심벨 안에서 만나다니 하도

반가워서 덥썩 사진 한방 찍으려다 제지당하고, 밖에 나와 함께 사진 한장.


9시까지 미니버스로 돌아오라 하던 차에, 시시각각 여행객들이 단체로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길래 질려버렸다.

한번 다시 완상해주고는 차로 돌아가선, 같은 숙소에 머무는 미나꼬와 그녀의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아스완 하이댐으로.

마침 그녀 친구중에 하나가 하루끼의 '댄스댄스댄스'를 읽고 있길래 엉성한 영어로나마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아스완하이댐은, 볼 건 하나도 없으면서 보안에는 가장 철저했다. 사진 한장 찍지 못하게 할 정도.

다음으로 필라에 신전, 기대했던 만큼 멋졌다. 섬에 세워진 신전이란 컨셉도 그렇지만, 신전의 외벽을 크게 장식한

인물들의 조각들이 참 볼 만했다. 다만 거슬렸던 건, 비잔틴 혹은 이슬람 문화가 유입된 이후, 새롭게 등극한 신의

이름으로 이전의 신들을 말살하려는 듯 잔뜩 뭉개버린 흔적들이다. 태양이 있던 자리에 십자가가 험상궂게 새겨져

있거나, 온갖 신들의 얼굴을 위주로 몸체가 완전 뭉개져 있고, 그러다 힘겨움 걍 얼굴만 지워놓기도 하고.

단지 1800년대에 다녀간 사람들의 장난기어린 낙서가 아니라, 새로운 신의 새로운 '미신'으로 과거를 그렇게 거부

혹은 부정하려는 게...얼굴 지운다고 어떤 신적인 힘이 사라질 거라 믿는 건 또 하나의 미신일 텐데.

어쨌든, 캐나다에서 의사질을 하고 있다는 렌이라는 아저씨와 같이 보조를 맞춰 돌기도 하고 때론 혼자 돌아보기도

하면서, 사진 찍고 싶을 땐 주위에 있는 울 차 사람들-어느새 얼굴도 익고 친숙해져 버린-을 아무나 잡아 부탁하며

투어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신전의 수호신인 호루스. 그의 샐쭉한 표정이나 다소 새침스러워 보이는 자태가 은근히 웃음을 불렀다.

약간 사팔뜨기같기도 하고..이 새 말이다.

마지막으로 갔던 곳은 미완성 오벨리스크. 이미 해는 중천에서 이글이글, 저토록 까맣게 탄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정오의 시간이었다. 역시 투어는 이래서 문제다. 빈칸 네개 만들어진 데다가 숙제했다고 도장 하나씩 받는

기분이랄까, 그땐 이미 여행이란 기분은 싹 사라지고 얼른 '해치우고' 가버리기만 바라게 되는 거다. 게다가

아부심벨과 필라에 신전이 주였다면, 아스완 하이댐과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그에 비해 현격한 체급차가 나는

소품에 불과하다. 미완성 오벨리스크, 가보니 걍 커다란 돌덩이, 쪼다말고 버려진 돌덩이 하나 덜렁 있었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일종의 채석장이자 그토록 거대한 오벨리시크나 피라밋들이 결국 인간의 손으로

저렇게 돌 하나를 쫄아 만들어졌다는 걸 증거하는 강력한 현장인 건 맞다. 다만 그게 워낙 덜 만들어진 거라서

기둥의 삼면만 설렁설렁 다듬어지고 아무런 다른 손길이 미처 닿기 전이었는지라 좀 많이 밋밋했단 얘기.

조금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저걸 마저 어떤 식으로 꾸며넣었을지(그니까 수다스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새겨

넣었을지), 어떻게 세우고 밑면을 어떻게 다듬고 어떻게 운반했을지 정도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흥미로운

것도 사실이지만, 이미 기진맥진해 있던 상태라 그런 거 생각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얼른 퇴각했다.




밤 10시 기차,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13시간을 달렸다. 내가 앉은 좌석에 또다른 티켓이 발부되어 잠시 소란이 이는 등

영 못 미더운 이집트 기차의 저질 서비스를 실감하고 내리 자다가, 꽉꽉 들이찼던 사람들이 많이 빠진 한적한 찻칸에

동그마니 남았다. 아침 6시밖에 안 되었는데, 유리창 너머 햇살이..느낌일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남으로 내려갈수록

심상찮다. 입으로 이글이글 소리를 내면서 내리쬔다는 느낌?


불쑥 승무원 아저씨가 객실에 들어오더니 통로바닥에 깔린 카펫이 깨끗하다고 막 자랑을 늘어놓는다. 어이없게도

그러고 나서 박시쉬 달라고. 기차 카펫 깨끗하니 팁달라는 건 대체 무슨 경우냐. 하이 머니 헬로우 머니 어쩌구 하는

아이들도 적나라한 사례였다. 뭐랄까, 그들의 생업 자체가 관광객에 달려있어서, 아직 그다지 세련화하지는 못한

-서비스 정신으로 치장되지 못한-fight for money가 더욱 두드러진다고 느꼈다.

숙소를 잡자마자 나섰다. 정처없이 아스완 시내구경 좀 하다가, 이집트 남단의 원주민이라는 누비안족의 문화나 유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엘레펀트 아일랜드에 들어가기로 했다. 20파운드(2000원)이라는 관광객요금을 요구하는 페리호
 
선장을 쌩까고 1파운드(200원)의 현지인요금만 내고 건너간 그 섬에서, 플라스틱 물병을 소중히 간직한채 5시간여 거닐며

온갖것을 볼라다가 일사병 걸리는 줄 알았더랬다. 그 조그마한 섬에서도 길을 잃고 헤매던 내게 자신의 짐을 들리시곤,

자신의 집방향과 같은 곳에 있던 누비안박물관을 안내해 주셨던 순박한 아저씨, 들고 갔던 2리터짜리 물병을 다 비우고

탈진해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뜨신 차이를 나눠줬던 맘좋은 아저씨..들 덕분에 살아돌아나왔달까.

햇빛 가릴 한 줌의 그늘이 아쉬워질 정도의 열기, 눈알이 화끈거리며 말라붙는 듯하던 그 열풍이라니. 물통 역시

금세 끓어오를 듯이 뜨거워져서는 물이 이미 미지근함을 넘어서버린지 오래였다. 박물관에선 그래도 손님이 나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관리인이 따라다니며 불켜줬다가 다시 끄고 설명도 해주고 차도 함께 마시고 그랬다.

펠루카와 엘레판트 아일랜드. 강에 내려앉은 나비떼 같은 저 하얀 돛단배들이 바로 펠루카. 무동력범선이랄까.

오로지 돛의 힘으로 움직인다는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 때는 노를 쓰고. 그치만 갈수록 모터도 다는 추세인 거

같았다, 펠루카 선장들과의 인터뷰 결과 노질이 너무 힘들어서 모터를 다는 거라나. 아스완은 수단과의 경계에

가장 근접한 도시인지라, 내가 내려간 최남단의 도시이기도 했다. 아부심벨은 물론 여기서 한 160킬로 더 남단에

있었고. 무진장 더웠다. 하루에 1.5리터 펫병을 네개까지 먹을 정도였으니...에어콘은 커녕 선풍기조차 천장에 붙은

크다란 팬밖에 없는 숙소는 그저 밤에 잠잘때만 들어갔고, 나머지 시간은 저 유유한 나일강의 유유한 펠루카를

바라보며 유유하고자 했다.

 펠루카와 나일강..은 참 잘 어울린다. 한강에는...거북선이 어울릴라나. 뜬금없이 한강도 보고 싶어졌다.

어딜가나 박시시(일종의 팁)을 요구하는 이집트인들, 오죽하면 카이로공항에 첨 떨어져서 화장실을 이용할 때
 
휴지 빼주고 건조기 버튼눌러주고는 팁을 요구할까..어딜가나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내가 자발적으로 박시시를

줘야겠다고 맘먹은 아저씨, 너무도 더운 아스완에서 그것도 2시에서 3시쯤에, 아스완 서안에 있는 tombs of

nobles를 안내해가며 다니는데 할아버지가 넘 힘들어하는 거다. 내 욕심같아선 몇개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나도 지쳤고 물도 떨어졌고 해서 걍 만족하고 내려오는 길. 이미 볼만치 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덤들의 열쇠를 가진 할아버지는 내가 보자고 하는 무덤에 앞장서 도착해 문을 열어줬고, 내가 보고 나온 무덤을

다시 잠그고는 서둘러 앞장섰더랬다. 무덤들은, 비슷하게 정형화된 양식인 듯 했지만, 그 안에 온통 가득한

히에라글립스(상형문자)들과 그림들은 정말 볼 만 했다. 단순히 치장이나 배경이 아니라 죽은 자의 일생을

세세히 새겨넣어 후생을 기하려는, 그런 어떤 의지가 강렬하게 와닿을 정도로,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내게 등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을 앞세우는 것은 살짝 안심스런 일이기도 하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호의가 쌓여

무언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사이라면, 난 그사람이 쥐여준 끈을 잡고 길을 인도받는 셈이다. 누군가에게

등을 보이고, 누군가에게서 등을 빌리고. 그 길이 비록 뜨끈뜨끈한 모래바람이 휘몰아친대도, 태양이 아무리

녹여내릴 듯 작열한대도.(저 짙은 그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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