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운좋게 그 1기 회원에 합류하게 되어 토요일 새벽같은 아침에 약수역 출사를 나갔다.

 

굉장히 소탈하고 편안한 스타일의 조세현 선생님은 재개발을 앞둔 이 지역의 분위기를 쿠바 하바나의 그것에 비겨보아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며 곳곳에 숨어있는 풍경들을 잘 찾아보라 말씀해주셨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부지런히 찍었다.

 

w/ Pentax K-5, 43mm limited

 

 

 

약수동도, 작년 드로잉 수업 들으며 쏘다녔던 여느 서울의 뒷골목처럼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무너지고 헤집어진 폐허에서 인간적인 풍경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사실 아이러니라 부르기도 뭐하다.

 

대책없이 까발겨진 내밀한 일상, 고유명사 '집' 안에서의 안식과 평온함을 담당하던 가재도구들이 길거리에 전시된 풍경은

 

외려 인간적이기도 하니까.

 


더이상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쇼파. 더이상 24시간 담배를 팔 수 없는 편의점. 더이상 ...외부로부터 내부를 지킬 수 없는 현관문 따위.

 

그렇게 보면 다소 안쓰럽고 흉물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어떨까. 반대로 한때는 그런 역할을 맡고 온기를 전했다며

 

무너져내리는 형체를 애써 가다듬고 있는, 그 의연함 같은데서 공감하고 마는 거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에서 스산함을 느끼는 건 어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억지로 길가 위에 끄집어내진 원주민들의 삶과 추억들이 발하는 온기가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들을 이해하고 소중히 다뤄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그 스산함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비롯한다.

 

내가 끄집어낸 감정, 기억, 일상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의 그 상처.


 

 

 

 

 용산의 망루, 왠지 남일당 건물의 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던..약수역의 주인없는 옥탑방.

 

제법 경사가 급한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고서야 기사분들도 한숨 돌리는 이 곳, 421 버스의 종점.

 

 

 온통 깨지고 뜯겨진 건물 내부. 슬몃 안으로 들어가 보기라도 할라치면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라붙던 철거현장 작업반들.

 

눈부시게 새하얀 햇살도 가려버리는 우중충한 가림막 안쪽의 숨겨진 폐허.

 

 

누가 무슨 이유로 현관문을 저렇게 살풍경하도록 부숴놓았을까. 

 

 두 개의 그래프, 혹은 두 개의 덩어리. 그리고 흑과 백.

 

 

 빨랫줄에 꽂힌 빨래집게까지 일일이 챙겨줄 여유 따위는 없이 다들 떠난 건 아닐지.

 

잠시 반짝 빛났을 이 곳의 부동산 경기. 이제는 숱한 부동산 간판들만 가림막 안쪽의 세상에 묻어두고 말았다. 

 

 

 아마도 자전거가 묶여있진 않았으려나, 장바구니 무거운 아주머니가 스쿠터를 세워놨던 건지도 모른다.

 

 

 재개발 지역 앞의 높다란 아파트들로부터 수혈이라도 받는 듯, 굵은 전선동앗줄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아마도 연세 지긋하실 아버지와 아들, 손목을 꼭 잡고 나란히 머리를 빛내시며.

 

 새로 지어진 아파트촌, 그리고 이제 사라질 재개발촌. 교회 첨탑으로 겨우 자존심의 높이를 맞췄다.

 

 

 

길고 지루하던 겨울이 갔지만 여전히 스쿠터엔 두껍고 낡은 레자가죽의 장갑이 꽁꽁 싸매어져있다.

 

재개발, 그건 이렇게 훌쩍 뒤집어져버린 화분 같은 걸지도 모른다. 한줌만 대접받으며 옮겨지고 나머지는 고꾸라지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던 출사가 끝날 즈음 올려다본 하늘. 철거 현장의 분진을 막기 위해 둘러쳐진 가림막은 햇빛마저 막았다.

 

 

 


#0.

처음 '코르다 사진전'의 사전광고가 코엑스몰 인근에 쫙 깔렸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체게바라의 사진이었다. 무슨 사진전인지 몰랐지만 체게바라의 얼굴을 앞세워 그 이미지를

팔아먹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인가 싶으면서, 대학 내내 가방에 달고 다니던 체게바라의 배지를

두고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새 애들 그저 다들 멋져보이니까 하나씩 달고 다니지.

맞네 아니네 다투기보다 그냥 묵묵히 있기로 했었다. 체를 좋아하고 체로 대변되는 혁명정신이

좋은 거고, 난 호치민과 로자와 레닌의 생애와 지향이 좋은 거라고 말하고 싶었었다.


사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99년, 그리고 이삼년후 갑자기 '체게바라 평전'이 출간되고 영화배우

문소리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방송에서 이 책을 소개했던 이후쯤 한국 사회에 나타난 체의

얼굴은 마치 68혁명 이후 미국에서 체를 '자본주의적으로' 소모하는 것과 딱히 다를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잘 생겼고, 획득했던 학력자본과 문화자본을 과감히 포기했으며,

쿠바를 끝내 혁명하는데 성공하고는 다시 제3세계로 달려가 그야말로 '세계혁명'의 야망을

품었던 사람이니, 그런 팬덤을 불러일으켰단 건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1.

코르다사진전, 아마도 '코르다'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전인가 본데, 아무래도 그가 '체게바라와

쿠바'의 사진으로 이름을 알렸나보다, 그걸로 어필하려는가보다 하고 좋게 넘어가주기로 했다.

사진전 첫테마는 그의 스튜디오. 쿠바에서 광고사진으로 잘 나가던 그의 작업공간을 보여주고

있어 체게바라는 역시나 미끼였나 싶었지만, 이후 보여준 두번째 세번째 테마를 거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리더들', '민중'이라는 이름의 두세번째 테마에서 보였던 건 쿠바 혁명을 지도하던 카스트로와

체를 비롯한 다른 전사들의 긴박하고 웅장한 혁명 활동과 나른하고 깨알같은 일상의 모습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눈높이를 맞춘 채 광장을 가득 채워 혁명을 지지하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특히 피델 카스트로, 털이 북실북실한 그는 여전히 '미국의 골칫덩이' 쿠바를

지켜내며 농업중심의 산업사회, 복지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젊은 날의 그 역시 왕성한

열정과 패기로 새로운 쿠바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


#2.

그 중에서도 가장 맘에 남았던 것은, 쿠바 어딘가를 여행하던 피델이 사탕수수밭에 그야말로

'철푸덕' 소리나게 주저앉아 쉬던 풍경. 그 격의없는 인간적인 모습이 참 매력적이었다. 사진

곳곳에서 드러나는 피델의 인간적인 면모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이고,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눈빛을 지닌 그런 사람. 이렇게 허름한 입성으로 아무렇게나 몸을 던지며 남들 보기에는

무모하기만 했던 쿠바 혁명을 이루어낸 사람이니,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아니,

그런 대중의 사랑을 등에 업을 만큼의 그릇이었던 덕분에 혁명도 성공시킨 거일려나.


그러고 보면 사실 코르다의 이번 사진전에서 '체게바라'를 전면에 내세운 건 역시 일종의

낚시,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코르다 사진전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도록 그는

피델과 가까웠고 그만큼 많은 사진을 남겼던 거다. 피델이 소련에 방문했을 때도 함께 했고,

그가 기지개를 켜거나 잠을 잘 때도 늘 사진을 남길 수 있을 만큼 가까웠던 사이였다니

사진작가로서 그의 이력엔 커다란 축복이었을 터.


#3.

사실 그는 모나리자 다음으로 전세계에서 많이 복제된 체게바라의 얼굴사진을 찍은 작가니까

그의 이력에 미친 공험으로 따지자면 피델이나 체나 오십보백보. 코르다는 그들과 같이

혁명쿠바의 세례를 받은 아이들이라 하는 것이 공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코르다가 전하는

체에 관한 짧막한 일화 하나가 소개되어 있었고, 다시금 체를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체, 당신이 쿠바에서 최초로 만든 사탕수수 수확기를 운전하는 모습을 찍으러 이 먼 시골까지

왔어요. 코르다 당신은 사탕수수를 수확해본 적 있나요? 아뇨, 솔직히 농사일은 한번도. 그럼

일주일동안 칼을 들고 직접 수확을 해 본 후에 내가 수확기를 운전하는 사진을 찍도록 하죠.


그렇게 일주일 후에야 찍었다는 이 사진. 체는 드디어 쿠바의 농업에 과학을 접목해내었다는,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게 되었다는 감격을 사진에 온전히 담고 싶었던 것이리라.

책상물림하는 도시 인텔리와 일반 노동자, 농민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추구하던 그에게는 코르다에 대한 그런 요청이 자연스럽고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4.

그가 광고사진으로부터 사회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는 사진을 찍게 된 건 나무토막을 인형처럼

소중하게 품에 보듬고 있는 꼬마여자아이를 만나고 나서라고 한다. 아바나 교외의 어느 시골로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카메라를 총처럼 들이대는 낯선 이의 방문에 놀란 아이는 저 나무토막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괜찮아 다독거렸다고 했다. 코르다는 저 사진을 찍으면서, 혹은 찍고 나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그 아이의 세상은 광고 속 화려한 환타지와는 달리 윤택하지도 풍요하지도,

최소한 공정하거나 안전하지도 않은 사회였다고, 문득 미안해진 걸까.


체게바라를, 피델 카스트로를, 쿠바를, 새삼 2010년의 한국에서 여러 장의 사진으로 늘어놓는

이유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굳이 이 시점에 이 공간에서 이런 전시를 하는 목적이자

문제의식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큐레이터가 어떤 식으로 기획했던 간에, 백이면 백 모두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진전을 읽어내고 감동을 남겨가겠지만, 나의 버전은 그렇다. 체의 그럴듯한

껍데기, 피델의 (알고보면) 역시 그럴듯한 껍데기를 볼 게 아니다. 화보사진같이 멋지지는 않지만

그들이 함께 나섰던 행동의 순간, 역사의 먼지를 털고 다시 한번 그들의 이미지 뒤에 숨은

가치와 자유 정신을 봐야 하지 않을까.


#5.

체게바라가 남미의 정글에서 정부군에 살해당하기 직전에 했던 말이라고 한다. "I know you have

come to kill me. Shoot, coward! You are only going to kill a man." 마찬가지로 그는 코르다와

피델 사이에 서서 이렇게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You are only going to see a celebrity!"


사실 체를 좋아한다 해서 모두가 총을 들고 제3세계 정글로 달려가 괴뢰정부를 전복해야

한다거나 당장 사회에 기생하는 기득권세력을 척살해야 하는 것도 아닌 거다. 체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이미 달라졌고, 권력은 일부 키맨에 쥐어진 게 아니라 전체 시스템에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짙은 쌍꺼풀의 털많은 젊은 백인남성 '체'을 알고 좋아하고 이해하는 만큼

그보다 훨씬 오랜 삶으로 신념을 증거하고 생활을 변혁시킨 외꺼풀의 쪼글쪼글한 동남아남성

'호치민'도 알고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리고 그들과 같은 열정으로 지금 세상을

바꿔내려 '계란으로 바위치기'하는 사람들을 알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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