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울릉도 성인봉에서 내려가는 길, 다시금 발아래 짙은 구름을 헤치는 나가는 길이다.

 

 

 

제법 가파른 하산길엔 나무도 눕고 바람보다 먼저 고사리(같은 것)들도 누웠다.

 

 

대체로 보자면 성인봉 끄트머리를 잡고 바싹 땡겨올린 원뿔 모양을 하고 있는 울릉도, 그 북쪽 사면에 움푹 패인

 

너른 분지가 바로 나리분지. 옛날부터 사람이 자리를 잡고 살았던 곳이 나리분지 쪽이라고 한다.

 

 

 

 

 

 

나리분지 중간쯤에서 만난 투막집. 울릉도 전통 가옥인 투막집은 저멀리 구름을 두른 채 뾰족한 봉우리들과 대치 중.

 

 

 

 

 

 

사실 그렇다. 어디서부터가 성인봉 등산로의 시작이고 끝인지, 어디서부터 성인봉이고 옆 봉우리인지 알기란 어렵다.

 

그저 길이 이어질 뿐.

 

 

제법 늦은 시간에 성인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했는데, 나리분지가 끝나도록 여전히 해가 중천이다.

 

어디에 묵겠단 계획은 없었지만 이렇게 된 거, 바다를 보기로 했다. 울릉도 남쪽 바다에서 시작했으니 이제 북쪽 바다로.

 

 

 

 

파꽃이 온통 피어있는 밭을 지나고 캠프장을 지나, 길을 조금 더듬으며 가다 문득 고개를 돌려 발견한 풍경.

 

이곳저것 집들에서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연기가 뭉게뭉게 모여서는 산 중턱에 구름으로 걸렸다.

 

 

그러고 나니 다시 오르막길. 생각해보니 여긴 나리'분지'. 분지를 빠져나가려면 다시 야트막하나마

 

고개를 하나 다시 넘어야 하는 거다. 그냥 여기에서 멈출까 3초쯤 생각하다가 그냥 계속 걸었다.

 

고개를 얼추 올라 돌아본 나리분지의 전경. 마을이랄 것도 없는 집 몇 채가 듬성하니 꽂혀 있는 초록빛 풀밭같은 곳.

 

그리고 내리막. 닳고 나면 재생되지 않는다는 도가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파르고 꼬불거리던 길.

 

그냥 한바퀴 빙글 돌아 전방낙법을 치고 나면 아랫목에 도달했음 좋겠다 싶도록 지치고 질리고 힘들던 걸음.

 

홍살문이 하나 갈림길에 서서 삿된 것들을 걸러내고.

 

산을 둥글둥글 타고 내려가는 길은 대체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지는 건지, 이쪽으로 가면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멀찍이 보이는 바다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만 믿고 계속 걷기.

 

해가 조금씩 가라앉는가 싶더니 가속이 붙었다. 어느새 어둠이 살라먹은 짙은 숲, 나무그늘, 그리고 비탈의 사면들.

 

 

조금 마음이 바빠지던 찰나, 길을 헤매거나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지던 차에 문득 나타난 천부 마을.

 

 

이제야 안심하고 널 보낼 수 있을 듯 하여. 저물어가는 해를 잠시 구경해주며 아스팔트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가.

 

 

반나절만에 다시 만난 건물들이 반갑기도 하고, 그래봐야 울릉도의 조그마한 마을이라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독도수호 중점학교'란 게 뭔지 모르겠지만, 독도의용대라도 양성하는 곳인지 뭔지. 여하간 자그마한 학교.

 

이 조그마한 마을에 내려서는 와중에 놀란 건,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의 건물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에 십자가가

 

네다섯 개나 꼽혀 있었던 모습. 그것도 하나같이 크고 높고 뾰족한. 음...

 

드디어 천부 도착. 다행히 여전히 밝은 중에 도착했다.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 다음날이라 재수가 좋았던 걸지도.

 

 

잠시 바닷가를 거닐다가 바다를 코앞에 낀 전망 좋고 파도소리 좋은 펜션에 절룩거리며 들어갔더니 맘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우뭇가사리로 만든 냉콩국을 한 사발 내어주셨다. 어찌나 감사하고 맛있게 먹었던지.

 

금세 어둠이 나리고, 밥먹을 곳을 찾아 조금 마을을 헤집고는 부둣가 제방에 앉아 바람 쐬며 파도소리 듣다가 한장.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KBS중계소부터 울릉도 성인봉 오르는 길, 계획없이 일행없이, 또 정해진 숙소없이 가는 길이었는지라 그냥

 

내키는 대로 걷고 쉬고 걸었다. 초반에 가팔랐던 비탈길은 정말 쉬엄쉬엄 올랐고.

 

 

 

나무데크로 잘 꾸며진 길을 지나 구름다리를 출렁출렁, 그냥 얌전히 지나려다가 괜히 우다다 뛰어서 건너보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잠시 앉았다가 누웠다가 온몸으로 그 출렁이는 진동을 맛보기도 하고.

 

 

고사리같은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에선 바람이 일일이 그 조그마한 이파리들을 손잡아주는 걸 보았고.

 

 

안개가 슬슬 서리기 시작하는 울릉도 깊은 산속의 흐릿한 풍경.

 

 

 

 

어디선가 숲의 정령이 톡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풍경이 이어졌다.

 

 

그냥 아무 말없이, 가슴속 깊이 숲의 초록향을 들이마시며,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

 

 

나무들이 드릴처럼 윙윙 뿌리를 맹렬히 땅에다 대고 회전시켜 박아버린 느낌이다. 덕분에 좁다란 숲길마저 같이 휘감긴.

 

 

 

인적조차 없는 등산로.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는 숲길이어서 문득 현실감이 희박해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퍼뜩 현실에 발딛게 해줬던 건 저런 산악회들의 끄나풀, 그리고 살짝 거슬리던 쥐새끼들.

 

 * 울릉도 때아닌 ‘들쥐와의 전쟁’ (2012. 6. 21, 문화일보)

 

 

기사에 여러 차례 다뤄질 만큼 들쥐들이 창궐한 것도 사실인 거 같고, 고양이가 있는 민가나 마을이 아닌 천적이 없는

 

산으로 전부 올라와 사는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뭐..피리부는 사나이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다. (하여간 쥐가 문제...)

 

 

그래도, 들쥐 한마리가 길 앞섶에서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울릉도에서 사는 검은비둘기가 푸드덕거리며 머리 위 나뭇가지를 박차고 도망가는 게 더 사람을 놀래킨다.

 

 

 

 

이런 정경에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그저 아슴프레하고 꿈결같던 풍경.

 

촉촉하게 젖은 공기에 오래 묵은 나무 향기와 흙내음이 가득 담겨있던.

 

 

 

 

그리고 성인봉을 900미터 남겨둔 지점. 도동에서 출발하면 성인봉까지 대충 4~5km정도 소요된다고 생각함 될 듯.

 

KBS중계소를 기점으로 해서도 거리가 별반 차이는 없을 듯.

 

 

 

그리고 초록빛 운무를 꿰뚫고 나려든 빛무리.

 

 

오히려 정상에 오르니 구름인지 안개인지 뿌옇던 시야가 말끔해졌다. 성인봉 중턱에 짙게 드리웠던 커튼을 뚫고 올랐다.

 

 

성인봉 정상의 표석.

 

 

울릉도를 에워싼 푸른 바다와 하얀 구름바다. 그리고 희뿌연 하늘.

 

울릉도의 듬성듬성한 봉우리들이 구름바다 위로 섬처럼 솟았다.

 

 

검은 비둘기가 날고, 온갖 산새들이 지저귀고, 그리고 구름은 잠시동안 지켜보는 와중에도 시시각각 물결친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사동항 앞의 몽돌해변. 돌들이 파도에 쓸려 뒤척이며 내는 소리가 하나하나 포개지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하모니.

 

 

초록빛 무성한 잡초사이로 점점이 붉은 꽃이 인상적으로 콕콕 박혀 있었다.

 

원래 울릉도의 전통가옥은 너와지붕을 얼기설기 엮은 투막집이었던가, 강원도 동부쪽에도 비슷했던 거 같은데

 

그 현대적인 형태랄까. 함석조각을 얼기설기 이어붙인 해변가의 집들. 사실 울릉도의 외딴 집들은 대개 이런 모습이었다.

 

 

도동으로 걷는 길, 어느 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왠지 눈에 익은 풍경인 거 같기도 하고. 1박2일에 나왔던가.

 

울릉군의 상징은 오징어, 그리고 호박꽃.

 

 

해안선을 따라 드문드문 박혀있는 간첩잡는 건물. 그냥 하얀색 콘크리트 건물인데, 살짝 벙커처럼 생긴 채 낡아가는 중.

 

 

 

 

도동에 도착해서 본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함석 집들. 도로시와 함께 다녔다는 양철 나뭇꾼을 연상시키곤 하는 함석판.

 

생각보다 울릉도의 도로는 경사가 오르락내리락 가파르다. 아무래도 섬이란 게 바다 밖으로 삐쭉 튀어나온 산봉우리

 

같은 거니까 그렇겠지만, 걸어다니기에 편한 길은 분명 아니다.

 

울릉도 내에서 돌아다니는 차들, 특히 택시들은 전부 SUV라는 게 그런 이유일 거다. 워낙 꼬불꼬불한 길에다가

 

경사도 솔찮은, 포장이 되지 않은 길도 드문드문 있는 소금섞인 해풍이 심한 섬, 울릉도.

 

 

그런 탓에 곳곳에서 이런 케이블이 보인다. 가파른 언덕 위와 아래를 연결해서 새참이던 뭐던 자그마한 것들을

 

이동시킬 수 있는 케이블카. 사람이 타면 아마..기둥 뿌리가 뽑혀 나뒹굴지 싶지만 왠만한 무게는 견딜 거 같다.

 

 

이제 울릉중계소 푯말이 보인다. KBS중계소 등산로입구 안내판이 나왔으니, 그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길을 혼자

 

걸어오며 제대로 가고 있는지 조금은 불안했던 마음이 씻겨내렸다.

 

 

충혼탑을 지나.

 

직사광선이 내리쬐이는 붉은 열매 한웅큼을 지나.

 

짙고 끈적한 구름이 산을 허리춤까지 집어삼킨 길을 향해 계속 걷는 길.

 

 

 그리고 '언론 자유 보장하라!' 라고 누군가 써놓은 KBS 울릉중계소. 저거 누가 썼을까. 누굴까ㅋㅋㅋ

 

 여기가 바로 'KBS 중계소' 구간의 기점, 성인봉 등산로의 공식 출발지점이다. 할머니가 약술과 얼음물을 팔고 계신.

 

 

 지금부터 '공식적으로' 성인봉 등산을 시작하려는데 옆에서는 아저씨가 흔치 않은 나무 전봇대를 등산하고 계시고.

 

 

여기서 천부까지..음..5시간 40분은 굉장히 넉넉하게 잡은 시간인 거다. 여행용 짐을 전부 챙기고, DSLR과

 

삼각대를 바리바리 싸짊어지고 밤새 운전하고 세시간반 배를 타고 이미 두세시간 걸었던 성인 남자가 걸린 시간.

 

이미 중계소 기점으로 내려다보이는 울릉도 도동쪽의 풍경. 울퉁불퉁 돋아난 근육질 산맥 사이로 폭 파묻힌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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