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의 재래시장인 돌라츠 시장, 자그레브 구시가지의 두 중심인 카프톨과 그라데츠 마을 사이에서

 

자연스레 발생했다는 이 재래시장에는 여전히 크로아티아인들의 일상이 이어지는 중이다.

 

꽃이 참 흔한 나라라는 생각부터 들 만큼, 도시 곳곳에서 꽃을 파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처음엔 이걸 어디에 쓰려고 이렇게

 

많이들 파는 건가 싶었지만 어쩌면 그런 질문에 깔려 있는 '실용성'이라거나 '가격 대비 가치'의 관념부터 틀렸는지 모른다.

 

 

 

돌라츠 시장에선 성당에 바칠 온갖 초들이라거나 올리브 오일 같은 생필품을 파는 한켠에 이런 전통적인 장식품이나 기념품들을

 

파는 상인들도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물건을 파는 데에 관심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여행 비수기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이곳 사람들의 성향이랄까 분위기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주인 없이 혼자 남아있는 가게들. 뭐, 옆가게 아주머니한테 마실이라도 가서 잠시 놀고 계셨던 건지도 모르지만.

 

부활절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때라, 게다가 워낙 가톨릭이 강세를 보이는 동유럽 국가인지라 부활절 달걀들이 주렁주렁.

 

다소 쌀쌀하고 흐릿한 날씨 속에서도, 살짝 유유자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역시나 재래시장 특유의 활력이 느껴지는 돌라츠 시장.

 

이쪽으로 보면 성모승천 대성당의 두 첨탑이 또 보인다. 첨탑이 생강이니 감자니 양상추들을 슬며시 내려다보는 중.

 

 

돌라츠 시장을 내려다보는 저 시계탑은 바로 성 마르크 성당의 그 종탑이다. 아쉽게도 형형색색의 지붕은 안 보이지만서도.

 

 

그리고 시장 한켠에서는 집에서 만든 치즈를 마치 우리네 순두부 팔듯이 팔고 계신 할머니들이 벙긋벙긋 웃고 계셨는데

 

참 이쁘게들 늙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들, 한 이십년 전에 독립전쟁을 치르셨으니 인생에 굴곡이 많으셨을 텐데도.

 

장사하시는 분들도 그렇지만 물건을 사러 장바구니 끼고 나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참 멋스럽다.

 

 

 

외국에 나와서 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이유 중의 하나는, 분명 같은 종류의 채소거나 과일일 텐데 참 다르게 생겼다는 거.

 

이렇게 짧고 통통한 오이만 봐도 그렇다. 처음엔 무슨 아보카도인가 했는데, 틀림없는 오이.

 

시장 입구에 선 할머니 동상이랑 똑같이 머릿수건을 바싹 땡겨묶은 백발의 할머니, 어째 콧날이니 눈매가 조각상이랑 똑같으시다.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부활절 달걀, 자그레브까지 오는 비행기 안에서 '가디언스'를 봐서 그런가 부활절 토끼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 영화 한줄평 : 가디언스는..음....비행기 안에서 잠은 안 오고 할 건 없을 때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

 

 

돌라츠 시장에서 옐라치차 광장으로 빠져나가는 길, 이제 좀 채소와 올리브 오일과 꿀과 프로폴리스에서 벗어나나 했더니

 

저기의 빨간 파라솔들은 온통 꽃을 파는 아주머니들의 대군단.

 

 

길을 걷다 말고 옆집 아주머니를 만나서는 대화 중이다.

 

"아이고 철수 엄마, 뭘 그리 샀어?""저기 영희네 가게에서 오늘 떨이하더라구" "아 그래? 어디 한번 봐봐~"

 

뭐 이런 식의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상상하게 만드는 두 아주머니의 재미있는 포즈.

 

 

그리고 느닷없이, 그렇지만 놀라울 것도 없이 사방에서 열리는 골목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지만 다만 한 가지,

 

어디로 걷던 성모승천 대성당의 첨탑은 하나의 훌륭한 기준점처럼 든든하게 버티고 섰다. 자그레브에선 길 잃고 헤메기도 어렵다.

 

 

 

 

 

여기가 거기였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구시가 복판에 있는 성 마르크성당. 예전에 어디에선가 사진으로 스쳐지나갔던,

 

그렇지만 굳이 여기가 어디에 있는 건물일까 찾아보게 만들었던 그 건물이었다. 하얀 외벽에 깜찍한 지붕을 얹은 성당.

 

성모승천 대성당을 지나,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를 지나 금세 다다른 조그마한 광장, 아니 광장에 채 진입하기도 전에

 

지붕부터 대번에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림이라기엔 기와 한장한장의 입체감이 너무도 뚜렷한, 그래서 흡사 레고블록을 쌓은 듯한.

 

사실 성 마르크성당의 건물 자체도 1200년대에 지어졌다니 굉장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내공을 풍긴다.

 

들어서는 정문만 해도 십여명의 수호성인들이 지키고 선 걸 보면 그렇다.

 

그렇지만 저 흰색과 파란색, 빨간색이 올망졸망한 지붕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하얀 벽 위에 얹혀 있는 데서 이야기는 끝나버렸다.

 

타일 지붕은 고작(?) 1880년에야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고 하는데, 왼쪽은 중세의 크로아티아 왕국, 달마티아 지방, 슬라보니아 지방을

 

나타내고 오른쪽은 자그레브 시를 나타내는 문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게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 더하기 달마티아 지방(현재 크로아티아의 중부 지방) 더하기 슬라보니아 지방(동부 지방)의 상징.

 

그리고 이게 자그레브 시의 상징인 셈이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까 타일 한장 한장이 선명하고 화려한 발색을 내며 각자의 입체감을

 

돋을새김하듯 지붕 위에서 어필하고 있는 모습이 더욱더 뚜렷하다.

 

성당 안에서의 촬영은 다른 여느 성당들이 그랬듯이-성모승천 대성당도 마찬가지였지만-촬영 불가. 잠시 들어가서 그 묵직하고 오랜

 

공기를 들이마시며 어두컴컴한 실내에 적응할 때쯤 다시 나와버렸다. 최소한 성 마르크성당은 밖에서 보는 게 진짜다.

 

아마 성 마르크성당 주변에는 EU 관련한 관공서랄까 정부 청사가 있는 건지 크로아티아 국기와 EU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패트롤이나 검정색 커다란 세단들도 누군가 귀빈들을 위해 대기중이었고.

 

그 와중에 경찰 아저씨의 허락을 득하고 찍은 크로아티아 경찰 오토바이의 위용. 진격의 BMW Motorad.

 

옐라치차 광장에서 성모승천 대성당, 각종 뮤지엄들, 그리고 성 마르크성당까지 그러고 보면 참 오밀조밀 잘도 붙어있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눈앞에 나타나는 굉장한 풍경들과 역사의 증거물들 앞에서 숨 한번 돌릴 여유를 찾기엔 노천 까페가 최고.

 

이쯤해서 돌라츠 시장의 노천 까페를 찾아 잠시 쉬어갈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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