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나서 바로 옮겨간 무주 덕유산. 널찍한 등산로와 쾌적한 햇볕이 반겨주던.



전날까지 내렸던 비 덕분인지 수량이 제법 불어난 개천, 아마도 무주구천동으로 이어지는 맑은 개천이 아니려나.




이틀동안 지리산을 걸었으니 좀 살살 다닐 생각이긴 했지만, 또 해발 1,614m의 향적봉을 못 밟고 돌아가는 것도


좀 섭섭한 노릇. 설렁설렁 걸어보기로 했다.



백련사였던가, 덕유산 깊숙이에 자리잡은 사찰의 담백한 색감과 가지런한 기와지붕이 차분하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아올린 야트막한 돌담.




그러고 나니 갑작스레 경사가 가팔라졌다. 산에 다닐 때 제일 맘에 안 드는 건 보폭을 고려하지 않은 들쭉날쭉한


계단인데, 특히나 향적봉 오르는 길의 계단이 전혀 사람의 보폭을 고려하지 않았던 듯.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태양 아래, 그늘 한 점 남겨두지 않은 민둥민둥한 덕유산의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


그래도 역시, 올라오고 나면 이렇게 내려다보이는 산들의 선굵고 울룩불룩한 근육질 모습이 멋지다.


정상. 바람이 어마무시하게 강해서, 뜨거운 햇살마저 땅에 채 꽂히기 전에 날아가버리던 느낌.



정상의 가장 높은 바위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 저아래 어디쯤 무주 구천동의 차디찬 개울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을 거다.




내려오는 길에 눈에 들어온 백련사의 커다란 법고와 단청지붕. 





그리고 올라갈 때에 비해 한 1.5배쯤 길어보였던 하산길 막바지에 마주한 자전거족들. 신나게 페달을 밟는 가족들의


모습을 따라 어디선가 다시 체력이 되살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애초부터 둘레길 코스에 딱딱 맞춰서 주파해나갈 생각은 없었다. 1코스 종반부의 민박집에 자리를 잡고 났더니 


2코스 끝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체력도, 시간도 남았다. 설렁설렁 3코스를 계속 가보기로 한 참이다.



모내기에 한창이던 시절, 저렇게 여리고 자그맣던 아이들이 올여름 무더위와 가뭄에 잘들 버티고 있기를 바랄 뿐.


둘레길 코스를 따라 함께 흐르는 강 너머엔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우는..(이 가사가 맞는지는 모르겠다만서도)



어느 장소의 분위기를 아는데엔 한번의 방문으로는 택도 없다. 사계절을 다 보는 것, 그리고 하루의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담는 것, 그런 공을 들이고서야 이 공간이 가질 풍성한 느낌을 비로소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꽃길을 따라 가볍게 걸어가던 길 끝의 어느 마을. 베이지색으로 단정하게 칠해진 담벼락에 벽화가 꽃길을 이어준다.



3코스의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 그 아래 개구멍을 꽉 들어채운 시퍼런 잡초.


담벼락에 기대 섰던 나무의 등걸에 기대어 그려진 벽화의 센스가 재미지다.



요새 축사는 그렇게 소똥 냄새가 멀리 않을 만큼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듯. 코앞에 도착해서야 저 안에서


뒹굴거리며 되새김질중이신 소들이 보였다.


산비탈을 따라 제법 층층이 포개진 다랭이논, 그리고 그 옆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둘레길.


3코스에는 황매암을 경유하거나 산신암을 경유하는 두가지 갈래길이 있다는데, 어쩌다보니 황매암으로 와버렸다.


코스 표지판을 부지불식간에 놓쳐버렸거나, 아니면 생각보다 길안내가 부실하거나 둘 중 하나.



그래도 황매암을 둘러보며 잠시 다리를 쉬어가는 건 꽤 괜찮았다. 산속길 깊숙이 숨은 곳에서 문득 마주하는


자그마한 암자의 정취도 그렇고, 온통 푸릇푸릇하게 감싸고 올라오는 녹색의 기운도 그렇고.






지리산 둘레길 중에 가장 인기있다는 3코스, 아무래도 1박2일에서 이 코스를 배경으로 촬영했던 덕분인 거 같은데


역시나 방송에 나왔던 장소라는 현수막이 이렇게 떡하니 붙어있다. 




이런 개울을 지나고 산길을 계속 걷다 보면, 


현지 주민들이 지각없는 일부 둘레길 여행자들에 대해 읍소하는 이런 표지판도 보이고.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마을길이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풍경.




그리고 마을과 함께 수백년을 함께 했을 오랜 낙락장송 한 그루. 가지를 휘청휘청 늘어뜨린 모습이 연륜 가득하다.


대충 두어시간을 걷고 나니 장항마을에 도착, 또다른 아름드리 나무에 기대 만들어진 쉼터에서 맥주랑 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며 머리를 맞댄 결과 숙소로 이제 돌아가기로. 죽자고 걷기보단 여유롭게 가자는 컨셉이니만치.



버스 시간표를 잠시 확인해보니 대충 이삼십분만 기다리면 한대 오겠다 싶다. 이런 여유로운 자세라니.





광화문 인근을 지날 때마다 늘 맘속 한켠에 머물던 산, 인왕산. 온통 바윗덩이로 이루어진 듯한 험준한 산세 때문에

 

주저하곤 했었지만 이 짧디짧은 봄철의 산을 놓칠 수 없다 싶어 전격 트레킹.

 

 

대체 철쭉과 진달래는 어떻게 구분하는 건지, 늘 이맘때면 헷갈리고 다시 찾아서 익히고, 그리고 다시 내년엔 까먹고.

 

생각보다 훨씬 금방 올랐던 인왕산 정상머리쯤. 광화문과 서촌, 북촌은 물론이고 효자동 윗자락의 청와대까지도 환히

 

보인다. 슬쩍 카메라를 그쪽으로 돌리니 어디선가 휘리릭 나타난 의경 아저씨가 '사진 찍으시면 안됩니다'라고.

 

국내지도의 해외반출이 안되는 거나 청와대 사진찍으면 안된다는 거나 참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백악관 사진 찍으면

 

안된다거나 다른 나라 정부수반이 위치한 공간에 대해서 사진찍지 말란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한 일이다.

 

그래도 물리력을 갖춘 의경아저씨가 있으니, 얌전하고도 순순하게 카메라를 돌려서 이번엔 인왕산 자락 반대편,

 

독립문쪽이랑 아마도 신촌 근방이려나. 애꿎게 사진 한장.

 

 

광화문이랑 경복궁 궁궐들이 내려다 보인다. 아마 조선시대에 인왕산에서 내려다본 한양의 전경은 꽤나 멋졌겠지 싶다.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아 시계가 맑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아늑한 느낌으로 자리잡은 서울의 구도심이라니.

 

내려가는 길에 줄곧 함께한 북한산 성곽.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벽이 제법 운치가 있다.

 

그렇지만 코앞에 들이댄 풍경은 또 다르다. 키치와 오리지널이 각기 보여주는 깊이와 색감의 차이.

 

 

벚꽃잎을 풍성하게 매달았던 벚가지 끄트머리에도 비로소 새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봄이 지난다.

 

 

 설악산 주차장으로 가는 편도1차선 길은 이미 차들로 꽉꽉 막힌지 오래. 그보다 한 4킬로미터쯤 아래쪽에 주차하고 걷기 시작,

 

그래서 왕복 5시간 정도면 될 울산바위 코스가 왕복 7시간짜리로 늘어났다는 건 함정.

 

 그러고보면 설악산은 초중학교 때 극기훈련이나 스카우트 활동으로 잼버리장 왔던 가물가물한 기억밖에는 없었던 거다.

 

이렇게 산이 이뻤었나, 싶기도 하고 나중에 울산바위에 오르고 나니 다른 코스 역시 한번 쫙 돌아보고 싶기도 하고.

 

 

 

입구에서 커다란 불상을 지나쳐 케이블카 승차장을 지나 계속 걷고 있는 참, 아직은 단풍의 냄새만 풍기는 풍경.

 

 

슬슬, 입질이 오기 시작하나.

 

모르는 분이 불쑥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버렸지만, 온통 검정색 옷 덕분에 단풍빛깔이 더 고와보인다.

 

 

중간에 만난 매점, 산에서 끌어내린 시원한 물이 음료수병 가득한 빨간 대야로 쏟아져내린다.

 

 

그리고 흔들바위, 아마도 어렸을 적 내 로그는 여기까지였을 거다.

 

커다란 바위, 흔들바위 옆에 명문을 새긴 자국이 어슴푸레하게 보인다.

 

 

그리고 산뜻하게 새로 칠해진 듯한 단청이 새초롬 끄트머리를 끌어올려 웃고 있는 뒤로, 바야흐로 만개한 단풍.

 

흔들바위 옆에는 석굴이 하나 있는데 영험하다나, 현판도 '신통제일나한석굴'이렸다.

 

그나저나 흔들바위가 이렇게 느닷없이 길가에 있었던가 싶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밀어보는 포즈 사진을 찍는 것도

 

왠지 전혀 새로운 느낌이어서, 아무래도 이번에 설악산 오른 걸 처음이라 치는 게 옳겠다.

 

 

 

 

 설악산 울산바위까지의 등정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아직 채 농익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또 풋풋한 단풍을 눈에 담았다.

 

왕복 네다섯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해가 뉘엿해질 무렵, 설악산 초입쯔음에서 문득 돌아본 설악산의 석양. 노란빛과 파란빛이

 

적당히 버무려진 신비로운 하늘 아래에는 금빛을 잔뜩 품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에만 해도 사람이 바글거리던 좌불 동상 앞에는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하산객들만이 띄엄띄엄.

 

 

셔터속도를 달리 해서 찍은 사진은 좀더 밝기는 한데, 금빛이 덜 표현된 듯. 이것도 이것대로 좋다만서도.

 

 

해발 2,590미터의 타다파니, 롯지들이 몇채 옹기종기 모여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집집마다 티벳 불교도임을 알리는 깃대가 섰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 치즈를 얹은 볶음면. 고수도 들어가고 몇가지 향신료가 독특했지만 전반적으로 좀 질척하고 양도 너무 많았다.

 

그러니까 오늘 새벽 4시반부터 걸은 코스는, 고레파니에서 왼쪽위의 푼힐, 다시 고레파니로 가서 데우랄리에서 벤탄티, 타다파니까지.

 

점심을 먹고 나면 출레, 구르정을 지나 촘롱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계속 오르막길.

 

 

 

점심을 먹고 계속 가는 길, 점점 구름이 짙어지는 것이 심상치 않은 날씨다 싶더니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어느 아저씨는 물소고기를 손질하느라 휘어진 모양의 네팔 전통칼을 능란하게 휘두르고 계시고.

 

롯지 앞을 장식한 염소의 뿔.

 

그리고 한사람이 겨우 지나는 오솔길을 턱하니 온몸으로 막고 선 물소 녀석. 네팔을 떠나기 전 네녀석 고기를 맛보고 싶었는데 아쉽.

 

 

잠시 쉬었다 가는 길. 물소가 지났던 길에는 거머리를 조심하라더니, 여기서 잠시 쉬다가 순식간에 거머리의 습격으로 피를 빨리고.

 

 

 

그리고 여기서 쉬던 참에는 우연찮게 며칠째 같이 걷고 있는 스페인 친구가 또 거머리에 당해버렸다. 어찌나 피를 많이 빨던지.

 

 

그리고 촘롱까지 가는 길, 더이상 억수같이 붓는 비를 견디지 못하고 카메라를 가방 속에 넣어버리는 바람에 더이상 사진은 없고,

 

그저 우비를 입고 가방에도 비막이를 씌우고 물을 뚝뚝 흘리며 물에 빠진 생쥐처럼 몇시간을 더 걸었다는 것만.

 

대략 오전 4시반부터 오후 6시까지 걸었으니까..13시간 이상 걸은 셈이다. 그리고 촘롱에서 도착직후 쓰러져 잠들다.

바탄티에서 점심을 먹고 고레파니까지 가는 것이 2일차 오후의 목표. 고레파니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중 이름난 전망대인

 

푼힐 전망대와 1시간 이내로 떨어져있는 곳이어서, 내일 아침 해뜨는 것을 푼힐에서 보려면 해발 2,874미터의 고레파니까진 가야한다.

 

으레 그렇듯 점심 메뉴를 고르고 나면 적어도 삼십여분, 노닥거리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롯지 주변을 어슬렁대다가

 

새끼 고양이를 둔 고양이 부부를 발견했다. (주문후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최소 삼십분, 길면 한시간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어미인지 애비인지, 제 부모 꼬리가 들썩일 때마다 정신못차리고 덤벼드는 꼬꼬마 새끼 고양이.

 

여긴 그래도 제법 사방에 꽃도 피어있고 나름 정원 비스무레한 느낌을 주는 앞마당이 아늑한 편이다.

 

주인 아저씨가 돌을 일정하게 깔아둔 포석 사이의 잡풀을 뜯고 있는데 고양이 녀석은 안겨들고, 강아지는 뜯긴 풀을 씹고 있다.

 

그야말로 개풀 뜯어먹을 만큼 평화롭다 못해 나른해지는 정경.

 

메뉴는 달밧. 달밧을 시키면 저 콩으로 된 스프인 '달'과 밑반찬들, 그리고 풀풀 날리는 안남미쌀밥을 무제한 리필 요청할 수가 있다.

 

 

 

주인 아저씨가 다른 가이드들과 한담을 나누는 사이 이번엔 주인 아주머니가 풀뜯기에 나섰다. 몇분 지켜보지 못하고 아주머니한테

 

엉겨붙어 놀아달라고 애교부리는 강아지 녀석. 아주머니는 반갑게 덥썩 안아주며 요래조래 놀아주었지만.

 

 

너무 신난 나머지 정신못차리고 엉겨붙던 녀석은 급기야 아주머니한테 한대 씨게 얻어맞을 뻔 하고서는

 

잔뜩 주눅이 들어 저쪽 그늘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 가족들의 단란한 한때. 새끼고양이의 재롱에 부모 모두 차마 눈도 못 뜨고 있다.

 

 

그러다 이내, 이렇게 두 녀석이 휘영청 구부러진 몸뚱이를 찰싹 붙이고는 하트 모양으로, 게다가 제 새끼는 척, 팔로 감싸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건 오래 걸려도 먹고 잠시 쉬다가 출발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통틀어 한시간 내외정도.

 

뭐, 어차피 스케줄이나 움직이는 시간 같은 거야 전적으로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니깐 내 맘대로 하면 되지만, 그래도 움직여야 할 때.

 

노랑꽃들이 흐벅지게 길 양옆에 피어났다. 원래는 봄철에 와야 산 전체가 네팔의 국화인 붉은 랄리그라스가 지천에 피어 더 이쁘단다.

 

잠시 쉬어가는 길, 내 짐과 (양 팔을 이어 두발로 기능케해 준) 두 개의 스틱, 그리고 가이드이자 동반자인 친구의 짐을 내렸다.

 

 

우연히 마주친 다른 일행의 포터. 포터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 짐을 옮겨주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짐이 무겁다.

 

 

얼마동안이고 힘들고 지칠 때까지 걷다가, 잠시 길가에 적당한 돌들을 골라 그 위에 털썩. 이왕임 근처에 물가라도 있음 더욱 좋고.

 

 

그리고 고레파니 도착. 꽤나 큰 마을이어서, 마을 입구에는 이런 환영의 표지물도 다 서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머물 롯지를 찾는 중에 발견한 히말라야 마오이스트들의 표지와 구호. 이제 3천미터에 가까운 고도에 걸맞게

 

슬쩍 서늘한 느낌이 드는 터에, 이 게릴라 집단이 여전히 횡행하는 지역에 있다는 실감에 더욱 소슬해졌다.

 

그랬다가, 요 염소 녀석이 꼬맹이들을 무시하고 사방으로 내달리려 하는 모양새에 이내 웃음이 터져버리고.

 

줄을 꼬옥 움켜쥐고 끌려가지 않으려는 다홍빛 전통의상의 꼬맹이 입매에 서린 긴장과 결의가 대단해 보인다.

 

 

고레파니의 체크포인트. 트레커 카드와 TIMS 카드의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지금 현재의 이곳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도착했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능을 하는 곳이다. 만의 하나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한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이 고산지대 마을 가운데 조그마한 광장 한가운데서 눈에 띄었던 '부처의 눈'이 그려진 조그마한 탑.

 

 

 

 

싱싱한 대궁이 아직 살아있는데, 그 위에 얹힌 꽃은 물기가 삭 날아가고 가을이 되어버렸다. 가뜩이나 가볍고

얄포름한 꽃잎은 바람 한오라기에도 자칫 바스라질 듯 위태롭게 아름답다.






잎사귀를 전부 떨군 은행나무, 그리고 그 밑에 소보록하니 쌓인 노란색 카펫. 이제 앙상하지만 촘촘한 잔가지를

가득 이고 있는 은행나무를 거꾸로 쥐고선 사각사각 쓸어내면 좋을 듯.

고등어는 등푸른생선, 등은 푸르고 배는 은빛으로 번쩍이는. 소나무도 비슷한 투톤으로 바뀌었다. 등은 여전히

초록색이고 배는 갈빛으로 바뀌어버렸다.




도마뱀이 숨어있는 사진. 깨끗한 1급의 자연환경에서만 사는 게 도마뱀이라고 들었는데, 여긴 그만큼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하긴 이미 나 있던 등산로도 아니고 산 칠부능선 어딘가부터 잔뜩 헤매며 길아닌

길을 만들며 무작정 위로 오르고 있었으니.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로 지나는 등산객들을 툭툭 밀쳐낼 거 같은 압박감을 주던 나무.




무당집이나 성황당에 걸린 불그죽죽한 리본들을 연상시키던, 온갖 산악회들이 명성산에 남기고 간 흔적.



나방이 숨어있는 사진. 털이 복슬복슬한 나방은...징그럽지만, 그래도 사진 속에서도 역시 징그럽긴 하다.

누군가가 반듯하게 마모된 돌판 위에 가지런히 낙엽 세 장을 펼쳐 놓았다. 상처도 제법 있고 끄트머리엔 벌레도

슬었는지 색깔도 누렇게 죽은 부위도 있지만, 그래도 어찌할 수 없는 그 색감이란 역시. 가을이다.








전봇대를 따라 기어오르던 덩굴은, 미처 꼭대기를 못 밟고 가을을 맞았나보다. 이미 이파리는 거의 떨어져버렸고,

몇장 남지 않은 이파리가 세상의 모진 풍파는 다 겪은 표정으로 깔딱깔딱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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