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풀에서 티케둥가까지.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대충 다섯시간을 걸어 올라와서 쉬엄쉬엄 맞이하는 저녁시간.

 

여력이 충분히 남은 상태인지라 마을을 둘러보고, 산장 겸 식당으로 기능하는 롯지도 요모조모 살펴보고.

 

심심치 않게 지나는 염소떼라거나 당나귀들도 구경하고.

 

웨스턴 스타일의 토일렛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네팔은 물을 사용하는 수식 화장실. 그러니까 휴지 따위 준비되어 있지 않고

 

수도꼭지와 바께쓰 하나만 놓여있을 뿐. 손과 물을 써서 닦아낸 후에 물로 흘려보내란 이야기인데, 자연에 조금 부담을 줄지언정

 

표백물질과 화학물질이 혼합되어 있을 새하얀 크리넥스 티슈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직 우기가 끝나기 직전이라 비수기에 해당하는 9월 초중순, 1인실, 2인실에 따라 방값도 다르지만 넉넉하게 혼자 차지한 독채.

 

게다가 양쪽으로 창이 훤히 뚫려 있어 햇살도 잘 들어오고 모기랑 나방도 잘 들어오고..

 

 

 

숙소 2층에서 내려다본 당나귀들의 행렬. 양쪽으로 균형잡고 실린 짐들은 대개 생필품이라거나 곡물류, 심지어는 가스통까지.

 

 

 

이 곳에는 편마암이랄까, 결을 가지고 일정한 두께로 쪼개지는 돌들이 많이 있나보다. 계단도, 포석도 모두 그런 돌들로 마감되어있다.

 

 

롯지 안의 다이닝룸, 사방에 트레킹족들과 산악회들의 깃발과 명함이 나부끼는 가운데 한글로 된 깃발들도 많이 보인다.

 

그 와중에 머리끄댕이를 못박힌 채 노랗게 잘 말라가고 있는 옥수수 몇 자루.

 

높은 산들로 가로막힌 고산지대의 밤은 꽤나 이르게 내려앉았고, 몇개 되지 않는 알전구들의 밝기란 밤하늘의 별빛보다 못했으니.

 

어디서든 거의 마찬가지였는데, 식사를 주문하고 나면 나오는데 거의 한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 같다. 아무리 간단한 단품이던 달밧이던,

 

조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조차 예외없이 삼십분 이상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다는. 역시나 저녁은 달밧, 이었지만

 

이것도 롯지마다 레시피가 다르고 곁들여 나오는 반찬이 달라서 매번 새로운 느낌이다.

 

그렇게,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에서의 1일차가 지나고 있었다.

 

 

 

 

나야풀에서 시작한 트레킹, 비레탄티Birhethanti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속행하여 좀더 걷기로 했다.

 

저녁까지 해발 1,540미터의 티케둥가Tikhedhungga까지 가기로 했다.

 

 

길가에서 유유히 노니는 암탉과 병아리들.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피하지도 않는 대범함을 소유했다.

 

 

 

특히 이 위풍당당한 녀석은 카메라를 보더니 더욱 당당하게 앞가슴을 내밀고는 지나다니는 암탉들을 노려보느라 여념이 없더라는.

 

 

 

그리고 비레탄티 마을을 벗어나 본격적인 산과 강을 벗삼은 트레킹이 시작됐다.

 

 

 

 

신기하게도 제주도의 전통적인 문살처럼 이 곳에서도 나무기둥 두세개로 문짝을 대신하고는 표지를 정해 의미를 전달한다고.

 

 

 

완만한 오르내리막이 계속되고 층층이 만들어진 다랭이논과 지붕만 겨우 덮은 비닐하우스가 띄엄띄엄 눈에 띈다.

 

상하수도 시설은 이미 포카라를 떠나는 시점에서 포기, 모든 물은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흘러내리는 자연수에 파이프를 대고 얻는다.

 

물소떼가 길을 문득 가로막는 건 흔한 일, 물소떼가 몰고 다니는 거머리에 물리는 것 역시 흔하디 흔한 일.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시루떡처럼 쌓아올려진 다랭이논들.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롯지에서 만난 부녀는 페인트칠로 새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기가 막 끝나는 9월중순이니

 

이제부터 트레커들이 많이 찾아들 것을 대비하는 타이밍이라는 게 함께 한 가이드 꺼멀의 친절한 설명.

 

 

쌀과 옥수수를 재배해서 주식으로 삼는다더니 온통 집집마다-트레킹 중에 만나는 집은 대부분 롯지를 겸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옥수수를 잔뜩 내걸고 말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티케둥가 마을에 도착. 첫날이라 그런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고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정도랄까.

 

살짝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느낌도 들었고. 여하간 아침 10시쯤부터 오후 3시쯤까지 설렁설렁 걸었다. 이쯤이면 할 만 한데 싶은 정도.

 

 

 

9월 초인 아직은 우기가 끝나기 직전이라더니, 티케둥가에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소낙비. 얼른 숙소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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