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쪽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다면 이 사진을 주목해야 할 거 같다. 

이 뜨거운 나라들이 어쩌자고 물탱크는 건물 옥상에 저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있다. 사우디에서나 카타르도

마찬가지, 그래서 일반집은 물론이고 오성급 특급호텔에서도 차가운 물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아무리 차가운 쪽으로 손잡이를 돌려놓아도 나오는 물은 뜨겁길래 혹시나 하고 반대쪽으로 돌리면 약간 과장해서 

증발직전의 끓는물이 나왔었다. 그게 다 저렇게 직사광선에 노출된 물탱크 때문이다. 최소한 저기에 차폐, 단열을

위한 커버를 씌우는 간단한 시설 만으로도 이 곳의 사람들에게 찬물 세례를 가능케 해주리란 생각.

비자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공항에서 너무 지체되고 말았다.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거리를 밝히는 네온사인중에

문득 눈에 가는 게 있다. 저건 분명 술집에 오라고 달콤하게 꾀는 네온사인. 금주령이 공식적으로 너무너무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는 사우디, 어쨌건 술집 간판을 발견치는 못했던 카타르, 그 어디서도 술을 맛보지 못했던 터에 저런

술집간판이 눈에 띄는 동네에 온 것만으로도 뭔가 조금은 더 낯익은 동네에 온 반가운 느낌이었다.

쿠웨이트 Courtyard Marriot 호텔. 이미 많이 어두워진 상황에서, 호텔정문 앞 현관지붕이 마치 인디아나존스에서

성배찾는 편에 나왔던 투명한 다리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불빛들이 많이 반사되면서 반짝거리고, 그 투명한

지붕 뒷켠에서 비치는 불빛들이 섞여들면서 꽤 화려했는데, 막상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다.


이곳의 호텔 역시 들어서면서 탐지대와 금속탐지기를 각각 사람과 짐들이 통과해야 했지만, 그렇게 깐깐하게 굴진

않았던 거 같았다. 사우디나 카타르 호텔에 들어설 때마다 가방을 열어 물건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받았던 일행 중

한 분이 여기선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던 것만 봐도 그랬고, 이전과는 달리 위압적이지 않은 자그마한 탐지기를

첫눈에 띄지 않도록 구석에 밀어넣어둔 느낌이 들었던 것도 그랬다.

저녁 먹으러 간 곳에서 마주친 고양이. 그 곳이 유별난 곳이었는지, 아님 쿠웨이트가 대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고양이들이 사방에서 어슬렁대며 쏘다니고 있었다. 이 건방지고 사랑스런 것들.

호텔 방안에서 발견한 쿠웨이트식 나침반. 저 화살표가 친절히 메카가 있는 방향, 무슬림들이 기도를 해야 하는

방향을 일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좀 이해가 안 되기도 하는 게, 다른 종교들은 보통 신은 어디에나 편재한다고

가르치면서 아무데나 대고 기도를 한다. 물론 대개 신을 형상화한 십자가던 조각상이던 그런 물체를 앞에 두고

기도를 하게 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기도의 대상을 정형화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하는 이슬람교가 막상 기도

방향에 있어서는 저렇게 불편하고 까탈스러워 보이는 기준을 고집하는 건 왜일까.


그런 면에서 보면 저 '나침반'도 다소간 무슬림들의 고민이 녹아있는 건지도 모른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

메카가 있는 그곳을 나타내는 건 그냥 네모난 상자 모양, 혹은 단순한 건물 모양일 뿐이다. 특별히 메카나

기도의 방향을 나타내는 상징이 발달, 아니 발생하지도 못한 이슬람교의 처지에서 보면 저런 식으로 특별한

의미가 담기지 않은 기호로 메카를 표시하는 게 당연할지도.

호텔 창밖으로 내다보인 쿠웨이트 시내 전경. 내가 중학교 때던가 이라크의 점령과 뒤이은 걸프전을 치러낸 이곳은

덕분에 호텔이 흔치 않고 높은 건물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호텔 숙박비도 상대적으로 좀더

비싼 편이었다. 건물을 지어올려도 언제 또 이라크가 공격해올지 모른다는 학습된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런 불확실한 부동산 투자보다 다른 분야의 투자처를 찾았다는 얘기다. 그렇게 찾은 다른 투자처가 바로 두바이.

두바이의 건설붐을 뒷받침한 총알은 실제로 쿠웨이트의 투자자들로부터 나온 것들이라고 한다.

사진과는 그닥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돈은 뭘까. 달러, 엔, 유로, 파운드? 몰랐는데 쿠웨이트

디나르(DINAR)화가 가장 비싼 돈이다. 1쿠웨이트 디나르는 자그마치 5,416.32원이다.(2008.11.27 현재)

1쿠웨이트 디나르는 또 3.66739달러, 달러가 아무리 요새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새삼스런 것도 아닌 오래전부터 그랬던 거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쿠웨이트 디나르화.

미국이 중동에서 일으킨 전쟁들의 가장 큰 전비부담도 직간접적으로 쿠웨이트가 가장 크게 짊어졌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 재정은 건전하기 짝이 없댄다. 갱장히 돈이 많은 나라다.

상담회 진행을 하며 총총거리고 다니다 몇번씩 타는 엘레베이터가 그때마다 재미있는 거다. 따로 층수가 정해진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 싶은 층 번호를 저 전화기 다이얼같은 걸 눌러서 입력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 A부터 D까지 이름이 붙어있는 엘리베이터 중 하나의 이름이 딱 뜨면서 그쪽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층수가 적힌 번호를 누르느냐, 아님 층수 자체를 본인이 입력하느냐의 사소한 차이랄 수도 있겠지만

왠지 꽤나 새롭고 흥미롭게 보였다.

미처 방안을 어지를 시간조차 없이 짧았던 쿠웨이트에서의 체류시간. 단지 일박만 하고 밤비행기로 돌아가는

스케줄이어서 그랬는데, 다음에는 더 길게 올 수 있기를 바랬다. 기름값이 1리터에 60원(20센트)라는 이 기름진 땅.

순수쿠웨이트인은 100만명에 그치고 외국국적의 사람들이 200만이 넘는다는, 역시나 한국인으로서는 쉽게 상상키

힘든 상황이지만, 병원, 학교 등 대부분이 국영으로, 거의 무료나 다름없이 제공되는 유토피아같은 이미지의 땅.

이렇게 된 건, 쿠웨이트의 석유채굴 원가가 무지 낮기 때문도 한 몫했다고 한다. 대부분 육상에 위치한 유전이어서

석유채굴 원가가 배럴당 3불 정도밖에 안된다는 거다. 국제원유가가 백이삼십불에서 보합이라고 쳐도 대체 얼마나

수익률이 높은 장사를 하고 있는 건지.

밤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 마주친 쿠웨이트 타워(Kuwait Tower), 총 3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형물이라고

설명은 들었는데, 대체 왜 내 눈에는 저 조명이 이뿌게 비치는 탑 하나밖에 안 보이는 건지.

쿠웨이트를 나서는 공항에서 마주친 내가 보지 못한 쿠웨이트의 풍경들. 아...저런 곳이구나. 그렇지만 이곳에

두고 오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얼른 출장을 마치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뭉싯뭉싯 커지기 시작한

터라 그다지 미련은 없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아쉬움을 끊어냈다.

이런 옷을 입은 배나오고 전반적으로 뒤룩뒤룩한 아저씨들을 보는 것도 이제 다시 흔치 않은 일로 돌아간다.

실내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던 곳, 여성들의 눈만 보고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곳-물론 사우디를 제한 나머지 나라들은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지만-, 꼭 출장이어서가 아니라 술을 마시기가

불가능에 가까운..살기 힘든 곳, 그런 곳을 벗어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짧았다. 지구 자전의 도움을

받아, 10시간이 넘게 걸리던 서울-두바이 구간이 불과 8시간 45분이 소요되는 두바이-서울 구간으로 단축됐다.



이런 세계도 있을 수 있음을 몰랐다.

'여행'이라는 방법만이 외국을 접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때에는, 여행자의 카메라와 시계 등속에 관심을 보이며

서툴게 말을 건네던 길 위의 행인들이 그 나라의 얼굴이었다. 마주치던 그 나라의 풍경 역시 대부분 길위에서,

어느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해 가는 그 선상에서 마주한 것들이었다. 바람이 불고, 하늘이 보이며, 땅을 밟는.

설혹 박물관이나 기념건물 등의 실내로 들어선다 해도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신기하게 바라볼 태세가 되어 있는

여행자의 시각으로, 뭔가 그 장소에서 그 나라가 보여주려는 걸 동조해 보려고 노력하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출장이란, 출장으로 떠난 나라를 맛본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도 않지만 또 다른 이야기같기도 하다.

물론 출장이라고 해도 다양한 방식과 목적을 가진 출장이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떠난 출장은 호텔에서 호텔로

전전하며 비즈니스상담회를 진행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다르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봤던

건, 여행자로서 부닥뜨리게 될 세계와는 또 다른,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지만 엄청 다른 풍경을 보이는 세계였다.

같은 사우디라 해도 호텔 내에서 하늘 한번 바라보지 못하고 해가 뜨고 지고 하는 그런 조건에서 보이는 사우디는

당연히, 사우디가 외부에 보여줄 준비가 된 관광지-그게 실내 장소이건 실외 장소이건 간에-를 둘러보며 느끼는

사우디랑 다른 게 당연할 게다. 그러니 자칫 출장을 나가 된통 고생하고 온 나라에 대해서는 첫인상은 첫인상대로

구기고, 제대로 본 건 없지만 그렇다고 안 갔다고 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리니, 선배들 이야기대로 그 나라와의

관계를 망치기 십상이겠다 납득이 간다.


그렇지만 최대한, (할 일은 하면서도) 여행자의 시각을 갖고 비즈니스의 세계 호텔을 둘러보고, 짬나는 시간마다

창밖을 둘러보려고 애쓰다 보니 또 나름의 쏠쏠한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호텔 건물이라 해도, 여행자에게는 아늑한 휴식의 공간, 출장을 나온 직딩에게는 밤 두세시가 지나도록 일을

하는 작업의 공간. 이틀만에 옮겨야 하는 일정인지라 가방은 다 풀지도 않고 저렇게 쩍하니 입만 벌려놓았다.

아무리 호텔의 백열등이 그 불빛의 세례를 받은 것들을 고급스럽고 아늑하게 보이도록 마법을 걸어준다 해도,

이 정신사나운 풍경마저 그렇게 감싸기란 쉽지 않다. 생각보다 환시(幻視)란 건 조건이 까다로운지도.ㅋ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한 일은 한 켠의 화장대로 쓰일법한 테이블 위를 싹 밀어내고는 노트북과 휴대용 프린터를

설치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사우디는 220볼트 돼지코 콘센트가 그대로 쓰인다. 카타르나 쿠웨이트는 별도의

호환 플러그가 필요하다.

잠시 호텔을 나서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쇼바가 꺼졌는지 잔뜩 출렁이는 차에서 운전자 뒷좌석서 겨우 찍은

사진에서는 불빛들이 팔분음표를 그리고 있다. 내가 이 사진을 찍으면서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다른 중동

국가들처럼 사우디 역시 직업군에 상당히 강고한 위계가 있으며, 그 위계 내 '하층 직업'을 차지한 사람들은 대부분

서남아 등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란 거다. 예컨대 택시기사는 인도/파키스탄 사람,(인도사람은 또한 중동의 오일

머니를 실제로 운영하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장악하고 있기도 하다) 청소부는 방글라데시 사람, 트럭운전수는

어느나라 사람, 이런 식인 게다. 택시기사란 직업은 우리나라랑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인지, 사납금을 일정액씩

매일 납부를 해야 하는데, 그걸 채우기도 벅찬 데다가 아저씨 삶을 꾸리기 위해서는 하루에 18시간씩 운전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푸념하는 아저씨. 그 얘길 들으면서 문득 불안해졌었다.

이 차가 이렇게 꿀렁이는 게 단지 아스팔트 바닥면의 문제라거나 차의 쇼바 문제가 아니라, 급출발 급제동을

반복하며 잠을 쫓아내는 아저씨의 발놀림에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행사장이 세팅된 Najd룸은 인테리어가 특이한 거 같다. 거울을 별 모양으로 천장이고 벽면이고 할 거

없이 붙여놓았고, 심지어 나즈드룸에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기둥조차 이런 식으로 별모양으로 세워

놓고는 유리로 감싸 버렸다. 이게 몇각별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랍권의 문화와 맥이 닿아 있는 걸까.

지배인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해놓고 까먹어 버렸으니,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은 궁금증.

상담회가 시작되고, 나는 현지 바이어들이 한명씩 제대로 스케줄에 맞춰 오고 있는지, 상담은 문제없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챙겨놓은 오렌지 주스 한잔을 홀짝대기도 쉽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사우디의 바이어들이 살짝 원망스러우면서도, 성황을 이루고 있단 사실

자체가 뿌듯하기도 했다.

중동의 거상이나 거물정치가를 떠올릴 때 당연히 연상하게 되는 저 머릿수건. 평소 궁금했던 점은, 저 색깔이나

디자인, 혹은 착용방법이 본인의 신분이나 위치를 드러내는 걸까 하는 거였는데, 아니랜다. 빨간 격자무늬를 하던,

민무늬 하얀천을 하던, 띠를 두르던 안 두르던 아무 상관없이 그냥 패션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머릿수건을

하고 하얀 긴팔소매 치마옷을 입고 온 사람들은 딱 보기에도 유한계층이랄까, 그런 느낌이다. 뛸 수도 없고 손을

놀려 일할 수도 없는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은 마치 18세기 조선에서 유행했다던 넓은 소매 옷을 입고

유유자적하던 양반들을 떠올리게 한다. 생산하지 않는 계층으로서의 과시일까.


그치만 아랍권에 왔다는 실감을 느끼게 해주니, 양복차림새보다는 저런 차림새로 상담하러 온 사람들이 더 반가운
 
건 인지상정. 또 계속 보다보면 은근히 매력있는 옷이라고 느끼게 된다. 옷에서 흘러내리는 주름이라거나, 몸의

윤곽을 살짝살짝 드러내주는 그 부드러운 재질감이라거나.


참, 저 머릿수건을 벗겨내면 유대인들이 쓰고 있는 조그마한 모자같이 생긴 게 나온다. 유대인의 문화(혹은 종교),

아랍권의 문화(혹은 종교)가 기실 한끝 차이임을 드러내는 거 같아 유쾌한 발견이다.

오찬을 위해 이동한 곳 천장에서 대롱대는 특이한 형태의 조명. 이런식의 형용사가 허용된다면, 왠지

"아랍스럽다".

두바이를 떠난 비행기가 리야드에 도착할 무렵이 되자 창밖 풍경이 언뜻언뜻 보인다. 온통 누렇고도 붉은 기가

감도는 모래벌판인데, 네모난 건물들이 보이고 모래벽을 쌓아 자신의 앞마당을 구획지은 듯 하다. 왜 선사시대의

집터를 발굴해 놨다는 곳에서 저런 식으로 복원된 흙벽이 꼬불대며 이어지고 있는 거랑 비슷해 보인다.

모랫판 위에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 걸까. 그런 선사시대 집터 복원현장같은 공간들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며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가 놓여 있다. 잘 보면 사막의 모래가 야곰대며 그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의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침식해들어가고 있는게 보인다. 누런 사막과 검정 도로의 경계가 슬몃 섞여 들어가는 느낌.

도착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아마도 초원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정확히는 초원이 아니라 각 집에서 꾸미는 정원이나

그런 거지 싶다. 아랍에서 초록색을 평화의 색, 부의 색..이라고 한다는 건 이 황량한 사막에서 마주친 녹색 식물의

귀함을 생각하면 쉽사리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저 가정들도 정원을 꾸미고 녹색 공간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고와 비용을 들이고 있을까. 가정이라기엔 너무 크지 싶기도 하지만, 왕족만 기십기백을 헤아린다는 이 독특한

왕국에서는 그런 왕족의 집 중 한 채인가부지 하고 마는 게다.

사우디에서는 관광비자를 내주지 않고 단지 사업용, 비즈니스용 비자만 내준다고 한다. 사전에 여러 복잡한 서류를

구비해서 사우디 비자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 후에야 사우디를 향해 떠날 수 있는 셈이다. 여성의 경우에는 그 비자

받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하며, 사우디 현지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댄다. 여성은 사회생활도 못 하고,

운전대도 못 잡으니 집밖에 나서려면 꼭 운전수 혹은 가드 역할을 할 남자가 필요한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왕국.


비행기가 착륙했다. 황사가 심한 봄날처럼 시계가 온통 뿌연 비행기창 너머로 보이는 공항 건물도 특이하다.

모랫바람을 피해 땅위에 바싹 웅크린 듯 한 모양이랄까. 비행기가 몇 대 보이지 않는데, 알고 보니 왕족 전용

공항은 따로 있다고 한다. 그 쪽이 훨씬 사용자 수도 많고 비행기 수도 많다나.

사우디 아라비아 항공의 꼬리 날개 부분. 야자수 아래 교차된 칼 두자루 그림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상징같은

거다. 비행기 댓수가 적어서만은 아닌 거 같은데, 방금 거쳐온 두바이 공항에 비해서는 왠지 활기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사우디에 머물렀을 뿐이지만, 그 잔뜩 처지고 늘어지는 느낌이란.

사우디 출장용 비자는 단수 비자, 유효기간은 발급일부터 3개월. 그리고 "Not Permitted to Work"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혀 있었다. 두바이를 떠난 비행기에서 내려 모랫빛 건물 리야드 공항 안으로 도착하니, 정말 휑하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은 전혀 없고 단지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한 사람들이나 공항을 이용하겠지만, 사우디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몹시 쉽지 않기 때문일 거다.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왕정 체제에, 기십명에 달하는

왕족과의 연줄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사우디의 유력자가 스폰서십-그것도 심히 불공정한-을 맺어주지 않으면

왕국 내에서 사업도 불가능한 나라랜다. 게다가 공무원을 거슬리면 입국도 못하고 쫓겨나는 수도 있다는 아주

고약한 공무원 우위의 나라.


입국심사대 앞에서 받은 입국카드. 마약소지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붉은 글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나씩 칸을 채우다가 잠시 펜끝을 망설이게 만든 항목, 종교. 무슬림이라고 적어야 통과시켜 주는 건 아닐까.

아님 최소한 기독교 계통은 아니라고 적어야 통과시켜 주지 않을까. 무교라고 적으면 뭐라 그럴까. 왼갖

생각들이 소용돌이치다가, 그냥 비워버렸다. 나중에 들었지만 무슬림들은 믿는 종교가 없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쉽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신은 분명히 있는데 왜 믿지를 못하냐는 식인 거 같다.

입국카드의 뒷면. 스폰서와 주소를 적는 칸이 있지만, 우리는 사우디에서 스폰서를 구해서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비운 채 패스. 스폰서를 구하게 되면 보통 수익은 51:49로 배분하게 된단다. 사업자가

51이 아니라 스폰서가 51을 먹는 불공정한 룰. 게다가, 언제든지 스폰서는 사업자를 떼어내고 자신의

바지사장을 내려보내 본인의 사업으로 꿀꺽할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소다.

무사히 공항을 벗어났다. 에어콘이 빵빵하던 공항문을 나서자마자 훅, 하고 뻗쳐오는 건조하고 텁텁한 열감.

오랜만에 느껴보는 중동의 열기였다. 흐르던 땀이 말라붙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는 땡볕 아래서 잠시 해바라기.

공항을 벗어나 시가로 진입하는 길에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모랫빛이다. 화려한 색깔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모랫빛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건 그나마 짙은 녹색의 야자수 가로수들. 하늘마저 파랗다기보다는 뿌연

하늘빛이다. 왠지 침침하고 모래가 서걱서걱해 보이는 살풍경.

도심으로 향할수록 차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 차들, 운전이 과격하다. 양쪽 사이드미러를 다 깨뜨리고 앞뒤

범퍼가 성한 차를 찾기 힘든 이집트 차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깜빡이도 안 켜고 훌쩍 1차선에서 3차선으로 내려서는

차가 있는가 하면 맹렬히 앞차를 추격하고 기어코 끼어드는 차들로 가득한 도로. 과격한 운전솜씨는 유명하댄다.

도착한 곳은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 오성급 특급호텔이라지만, 꽤나 오래된 건물이지 싶다. 역시 누런 모랫빛

건물이고, 건물 앞의 네온사인은 중간중간 허물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들어가서

돌아다니며 확인을 해본 후 평가를 내리기로 했다.

그래도 호텔 주변은 잔디밭도 조성되어 있고 이런저런 녹색 식물들이 잘 가꿔지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우디 호텔이나 공항 등 공공장소를 함부로 사진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이 호텔도 들어가려면

정문에서 자신의 짐과 몸 모두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잠시 나갔다 들어올 때에도 꼭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하는 불편함은 기실 사우디 뿐 아니라 이후 카타르, 쿠웨이트 모든 나라들이 다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처음에는 엄청 불편했다. 테러의 위협을 대비한 것이라고 하던데, 실제 이집트나 쿠웨이트에서

호텔을 겨냥한 테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몇 년 전쯤  얼핏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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