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로드웨이의 무수한 뮤지컬 극장 중에서도 오래전부터 맘마미아를 롱런중인 곳 Winter Garden Theater.

 

낮에 미처 열리지 않은 극장의 전면에는 각국의 언어로 맘마미아에 대한 각국의 평들을 적어놓았다. "마술의 밤!"

 

순식간에 그 '마술의 밤'으로 점프. 저녁 8시에 시작하는 맘마미아 공연이 시작하길 기다리는 관객들이다.

 

극장 안, 무대 뒤쪽으로는 음료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고, 천장엔 화려한 샹들리에도 있고.

 

 

관객석 2층, 3층에는 두어명이 앉아서 볼 수 있는 발코니석도 있었다. 저런 데는 더 비싸려나.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 강렬하게 빛을 뿜어내는 조명기구들.

 

어느새 공연을 마치고 무대인사하러 나온 배우들이다.

 

 

세 '아버지 후보'들의 무대 인사. 맘마미아는 영화로도 이미 보았었고, 국내에서도 뮤지컬로 보았었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뮤지컬의 주인공은 사실 이들이 아니다. 도나의 딸 소피 역을 맡았던 그녀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노래도 잘 부르긴 했지만,

 

사실 맘마미아의 주된 갈등을 이끌어내는 데까지는 그녀의 역할이다. (엄마의 젊었던 시절 분방했던 사생활을 새삼 끌어내는)

 

 

도나와 친구들의 무대인사. 딸이 새삼 끄집어낸 과거의 기억을 직면하고 해결하는 건 당당한 그녀들이다.

 

영어로 된 대사를 전부 따라잡긴 힘들었지만, 아바의 노래들 만으로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던 장면들이었다.

 

그렇게 무대인사를 마치고 전부 다 나와서는 두어곡을 더 부르며 팔짝팔짝 뛰노는 배우들. 아쉽게도 매우 불친절한 직원들이

 

카메라를 내려놓으라며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으르렁거리는 바람에 무대인사만 겨우 담을 수 있었다.

 

세시간 가까운 뮤지컬을 마치고, 무대의 막이 내려가고 난 후에도 아쉬움에 자리를 쉬이 못 뜨는 사람들.

 

뭔가 멍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정신을 못 차리겠는 기분을 표현하자면, '마술의 밤'이란 표현이 딱히 나쁘지 않겠다.

 

극장에 입장할 때 나눠주던 팜플렛 '플레이빌'. 내용은 어느 뮤지컬 극장에서나 같았고, 다만 표지만 각 극장에서 공연중인

 

뮤지컬의 타이틀 배경사진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타임스퀘어의 티켓오피스에서 싸게 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는 팜플렛 하나도 첨부~*

 

 

 

 

 

 

마법의 시간대. 방금까지 고요하게 느적대던 대기, 차들이 씽씽거릴 즈음에야 무겁고 게으르게 뒤척이던 대기가

번쩍 눈을 뜨고는 사방으로 천개의 팔을 한껏 뻗어 기지개를 켜는 느낌.


그럴 때면 뭔가. 언감생심 바라지도 못할 일들이 이뤄지거나 간절히 바라기만 하던 일이 실현되는 그런,

그런 마법같은 일이 벌어져도 그다지 놀라웁다거나 거푸 의심하지는 않을 거 같은 거다.


이태원에서. 차들이 거침없이 씽씽대는 소리와 사방팔방으로 폭죽 터지듯 터져나가는 빛살의 소란스러움을

헤치고 어느 육교에 올랐던 날. N극을 날카롭게 가리키고 있던 서울타워가 '인셉션'의 팽이처럼 뱅글거렸다.




별 생각없이 빌려든 디비디, 저번 여름 시사회에 당첨되고도 못 갔던 영화였던지라 왠지 묵은 숙제를 해낸다는

기분으로 보게 되었댔다. 사실 별 거 없을 거 같은 영화,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겠지 싶었다.


"키스를 못하면 그게 안되잖아. 애피타이져와 메인요리같은 거지."

몰입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키스는 섹스를 부르는 마법의 언어, 키스없는 섹스란 상상할 수 없다는 남자의

말 한마디. 느슨한 눈빛을 풀어놓고 느슨하게 보던 영화에 바싹 기대어 행간을 읽어보려 애쓰게 되고 말았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사실 단순한 섹스를 이르는 건 아니다. 세상의 남자를 두 종류로 가르라면, 사랑 없는

섹스가 불가능한 사람과 사랑 없는 섹스가 가능한 사람, 이렇게 가를 수 있지 않을까. 몸과 마음이 함께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그는 전자였다.


연애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여자는 남자에게 묻는다. 자긴 내 몸이 좋은 거야 아님 내가 좋은 거야. 나와

하는 게 좋은 거야 아님 그저 함께 있어도 좋은 거야. 몸과 마음, 욕망과 마음을 구분지으며 자신에 대한

순도 백퍼센트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기 쉽다. 영화에선 다행히도 남자와 여자는 그런 경계를 일찍이

뛰어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싶도록. "뾰루지 퇴치용으로 여자를 만나는 건 싫어."


대신 그들이 봉착하는 혼란스러움은 조금은 조잡스러운 거다.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고 여자는 이미 결혼한

몸, 법률적 '주인'-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몸에 대한 주인이란 의미에서-이 있는 거다. 키스로 시작된 그들의

일렁이는 감정에 무엇이라 이름붙일지 몰라 서로를 시험에 들게 하고 다시금 맛보고 괴롭히는 모습은, 마치

질풍노도 십대의 그것과 같다. 키스로 불붙은 서로의 몸을 두고 이게 순수한 감정일까 아니면 잠시 환각에

취한 걸까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다.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고픈 욕망이 만든 일탈일까. 사랑이 아니라 속궁합만 잘 맞나? 난 남들보다 나약해서
이유없이 흔들리는 건가? 난 너무 이기적이어서 내 생각만 하는 건가? 달랑 키스에 애무 갖고 인생을 뒤집어
엎을 수 있나?"

어휘는 다를지언정 그들이 겪는 혼란스러움은 어쩌면 다시, 처음이다. "난 지금 그의 몸이 좋은 걸까 마음이

좋은 걸까. 그와의 키스가 좋은 걸까 아니면 사랑하고 있는 걸까." 차마 사랑이라는 단어를 유부녀의 입과

여친 있는 남자의 입에서 다른 사람을 향해 뱉어내기 힘들어서일 뿐, 그녀 역시 몸과 마음의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들고 말았다. 남자는 끊임없이 설득하려 하고,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며, 함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그런 끌림이 바로 사랑이라고 되풀이 말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인다.


여기서 싸우게 될 상대는 두 가지다. 일부일처제라는 혼인제도, 그리고 지금의 남편/혹은 여친. 싸울 맘이 

용케도 생겨서 싸워야 한다면 상대가 그렇단 얘기다. 영화는 혼인제도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대신, 멋지게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약간의 힌트를 남긴다. 그건 다시금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하니, 제도적 측면을 우회하여 '사랑'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사람에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 이쯤에서..헤어지자. 자기 잘못 아냐. 자기 탓 안해, 탓은커녕 자긴 부족한 게 없어. 근데 내 사랑이 부족한
거 같아...더 노력해볼걸 하는 아쉬움은 남아. 요즘 내가 많이 소홀했지? 안됐지만 진정한 사랑을 만났어.
헤어지게 되서 맘이 안 좋다.." 운운.


글쎄. 새로운 사랑들에겐 과거를 닫아버리는 불쾌하지만 건설적인 '통과의례'라 해도, 남는 사람에겐 분명

치졸하고 열불 뻗치는 변명이다. 그의 여친처럼 "서툴러서 그런건데 뭐. 서툴다고 뭐랄 순 없지."라고 쿨하게

넘어갈 수 있으려면 그야말로 운명론자쯤이나 되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둘만의-셋 이상의 사랑도 있을 수

있겠지만-사랑을 위해 상처받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면, 그런 걸 구할 수 있는 절대자가 있다면

말이지만, "그(전 남편)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할 거 같애"라는 여자의 말에서 그녀가 짊어질 짐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이야기의 화자는 그녀 자신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마지막을 가까스로 봉합한다. "미련은...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해요. 애써 알려고도 만나려고도 하지 말아요. 그냥 키스가 끝나면 떠나요. 말없이, 눈길도 주지 말고

어떤 표정도 짓지 말아요. 여운은 가슴속에 추억으로 담아두기로 해요."
키스를 마친 후 몸과 마음의 반응을

정지시켜 버린 그녀, 그렇담 그녀는 사랑한 걸까 아닌 걸까. 키스는 몸이 반응한 걸까 마음이 반응한 걸까.

어쩌면 키스는 몸과 마음이 모두 담긴, 그래서 역시나 소크라테스 말마따나 '가장 힘센 도둑'인지도 모른다.


키스를 못하면 그게 안 된다. 키스란 건 마음을 말하기도, 몸을 말하기도 한다. 마음이 안 땡기면, 몸이 안 땡기면

섹스가 안 된단 이야기. 첫번째는 (남자를 좀더 믿어도 된단 의미에서) 의미심장하고, 두번째는 뻔한 이야기.


"키스는 나누기 전엔 가벼울지 무거울지 아무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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