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같아선 6시에 딱 룩소르 서안에 도착하고 싶었지만, 자전거를 빌리는 게 아무리 빨라야 7시가 넘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아침삼아 간단하게 바싹 마른 팥빵..? 파이 비슷한 걸 먹고 출발했다. 내셔널 페리 선착장이 워낙 머니까 그냥

자신들의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라 했던 펠루카 호객꾼의 구라와는 달리, 자전거로 한 10초 달리니까 바로

선착장이 나온다. 정말, 딱 10초 달렸는데 선착장이 나왔다. 대단한 구라빨이라 해야할지..

신나게 좀 달린다 싶을 때 덜컥 멤논의 거상이 나왔다. 네이*에 빌어 나온 자료사진, 이왕 찾아본 김에 설명도 좀

덧붙이자면 테베 근처 왕실 무덤군인 네크로폴리스의 입구에 있는 이 거상은 로마시대에 각광받았던 관광지라고

전해진다. 실제 크기는 이렇게 사진으로 볼때보다 훨씬 더 크단 느낌은 있지만, 워낙 허물어져서 그런지 뒤의 황량한

돌산과 함께 그저 황폐하단 느낌이 짙었다. 그래도 이 거상들이 왕과 왕비들, 귀족들의 무덤을 지키고 있는

수호자들이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자전거 페달 밟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무덤 중 가장 볼만하다는 네페르타리 여왕의 분묘는 역시나 닫혀 있다는 이야길 듣고 살짝 실망했다. 가장 먼 왕의

계곡부터 갔다가 고만고만하게 붙어있는 나머지 무덤군들을 좀 더 지나 해가 중천에 뜨고 더워질 때 돌아볼 작정으로

페달을 밟았는데 무진장 힘들다. 온통 그늘 한 점 없는 아스팔트 도로 위를, 그것도 약간 오르막길인데다가 벌써부터

미친듯이 무덥다. 해서 길을 틀어 합셋수트 신전부터.

어디선가 한번쯤 본 듯한 건물이다. 아마도 인디아나 존스였던가, 뭐 그런 데였을 거다. 돌산을 깍아내고 또 가공한 돌을

차곡차곡 이어붙혀 만든 건물이라는데, 크기도 크기지만 그 위치가 정말 절묘하다. 산 중턱에 덜컥 붙어있는 모양새랄까,

산은 온통 붉은 빛. 보기만 해도 가슴이 황량해지고 마는 그런 무생물스러운 산이다. 생명체 하나 품지 않을 것 같은 산.

신전도 같은 빛깔이다. 죽은 이들만 품을 듯한 느낌의 황량한 신전.

그런데 또 그쯤에서 룩소르를, 나일강 동안을 되돌아보면 온통 초록빛이다. 뭔가, 인디아나 존스가 식인종이 우글대는

정글이 지난다거나 온갖 고초를 겪은 후 짜잔, 하고 나타나는 낙원 샹그릴라나 잃어버린 성지처럼 그렇게 어슴푸레

나타난다. 야자수도 잔뜩 보이고, 약간의 건물을 제하면 마치 환영인 양 신기루처럼 펼쳐지는 싱그런 녹색 대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거기서 일하는-아마도 가이드인양 박시쉬를 잔뜩 뜯어낼 법한-아저씨들이 모여앉아

있다가 날 부른다. 경계모드로 돌입, 일단 순순히 가보니까 밥먹었냐고, 같이 빵이랑 차 먹자고.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일일이 박시쉬-팁-을 주지는 않아도 될 거고, 먹고 보자는 속셈 반, 꼬질꼬질하고 새까맣게 타버린 내가

2리터들이 물병 세개를 든 채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게 얼마나 불쌍했겠나 하는 공감 반, 함께 앉았다. 히에로글리프가

잔뜩 남아있는 돌멩이를 깔고 앉아 아저씨들과 함께 빵과 차를 나눠 먹었다. 여전히 발굴중이거나 복구중인 모양인지,

유적 잔해들이 걍 난해하게 흩어져있는 걸 아저씨들은 의자로 쓰고 있었다.

잠시 쉬다가 인사하고 다시 왕의 계곡으로, 어찌나 먼 길이던지. 게다가 그 먼 길에 어떻게 표지판 하나가 없을 수

있는지. 그러고 보니 시와 오아시스 마을도 그렇고 어디에서든 투어 위주로, 투어가 제일 편하도록 해 놓았을 뿐

개별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나 안내표지판 같은 것에 꽤나 인색한 것 같다. 땀을 삐질대며 구비구비 고갯길을

돌아오를 때마다 실망하길 몇 차례, 지쳐빠질 때쯤, 혹은 길 잃은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즈음 나타난

왕의 계곡 매표소.

캐나다 의사아저씨 렌과 펠라페를 맛나게 먹구서는 걍 기차역에 마침 서있던 기차를 덥썩 잡아탔다.

3등칸이었다. 2이집션파운드(400원 가량?)만 내고 에드푸까지 갈 수 있었는데, 덜컹이며 무심히..요샛말로 '시크하게'

달리는 허름한 기차는 이제 우리는 없애버린 경춘선 열차랑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 난 애초 내가 탔던 칸에서

쫓겨나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겪긴 했다. 외간남자와 함께 앉아있을 수 없다며 거세게 손사래를 치는 검은 차도르

차림의 아주머니들이 옆칸으로 밀어냈던 것.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는 머..그저 느낌으로 그렇게 이해했을 뿐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남자인 것에 상관없이 내 생김새가 맘에 안 들었다거나 그런 건..아니길 바랄 뿐.


오히려 다행이었다. 옆 칸에 가서도 역시 유일한 외국인으로 만인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지만, 친절한 이집션 부부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빵에 치즈를 발라서 주기도 하고, 기차칸서 간식으로 팔고 다니는 볶은 콩..아마도 소금물에

푹 절였다가 볶은 듯 엄청나게 짰던..그런 것도 사서 듬뿍듬뿍 나눠주고 그랬다. 아마 적도에 인접할만큼 뜨거운 동네니만치

땀을 많이 흘리는 것에 대항해 염분을 보충하려는 건가, 그렇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왕소금을 씹는거 같은 느낌이라구

운운 혼자 머릿속으로 툴툴거리면서도 그들의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에 절로 웃음이 났다.  

3등객석은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었는데, 마치 우리나라 옛날 기차처럼 닭 같은 것도 들고 타고, 짐보따리도 잔뜩 

이고 타고, 그런 류의 푸근함이 느껴졌다. 나일강을 끼고 덜컹이며 유유히 움직이던 그 열차칸의 진동과, 흔히 외국인의

암내라 부르는 것과는 또 다른그 짙은 이질적인 내음, 닭털이 날리고 사람들의 와글와글함 사이에서 동그마니 던져져

있던 날 이어준 건 그 사람들의 따스한 정이었다.


나른하고 유유자적한 기차의 율동감에 나도 몰래 졸고 있다가, 아까 그 가족들이 깨워줘서 에드푸에 내려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경찰이었다. 자기들끼리 잔뜩 뭐라뭐라하더니 택시 타라면서 차 한대를 잡아준다. 십오 내랬다가 십 내랬다가.

나름대로 깎는다고 오파운드 불러놓고는 배짱 튕겼더니 뭐, 일단 타기로 했다. 근데 이게 알고 보니 이게 택시가 아니라

일종의 마을버스 같은 거였던 거다. 차 뒤 짐칸이 개조된 곳에 사람들이 잔뜩 서서 타고 내리는 걸 함께 부대끼면서

이게 절대 오 파운드일리가 없다 싶었다. 내릴 즈음 다른 사람들처럼 오십 피아스타만 내고 내려버렸다. 

신전엔 거의 아무도 없었다. 있어도 이집트인 관광객 하나둘.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디선가 시작된 아잔의 메아리소리가

신전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우르릉 흔드는 느낌이었다. 걍 앉아서 하염없이 그림보고 히에로글리프 보고 하다가,

이제 됐다 싶어져서 다시 기차타러 출발. 많이 더워져서 망고주스를 애타게 찾다가 큰 컵에 1.5EP라는 곳을 발견,

연이어 두잔을 들이키고 한잔을 사서 물병에 옮겨담았다. 이건 거의 중독이다. 여기에 마약탄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다시 기차역, 3등차를 타고 룩소르에 입성했다. 꾸준히 나일강을 끼고서, 나일강물의 빛깔은 뭐랄까, 심오해보인다.

투명하게 맑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럽다거나 거부감이 들지도 않는...적당한 의뭉스러움과 요요함을 숨긴 듯한.

룩소르 피씨방에서 칼리드라는 이집션을 만났다. 피씨방에서 미니홈피를 확인하다가 알바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알바생이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거다. 다짜고짜 넘겨준 전화통을 붙잡고 사실 적잖이

당황했고 이걸 어째야 하나 싶었는데, 짧고 성긴 대화가 오간 잠시 뒤에 그는 피씨방으로 직접 찾아왔다.

콧수염, 턱수염도 그럴듯하고 풍채도 딱 벌어진 게 아저씨스럽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고작(!) 스물하나. 아직

대학생이고 투어가이드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내친 김에 룩소르 신전의 야경을 보러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혹해서 또 따라나섰지만 혹시나 몰라 경계심은 살짝 유지하기로 했었다.


룩소르 신전 입구서 한 '코리언'을 만났다. 칼리드가 먼저 알아보고 내게 저기 '코리언'이 있다고 말해줬다.

외국에서 한국인을 꺼리는 병이 도져 잠시 쭈뼛거리는데, 그에게 몇몇 이집션 애들이 다가와서 돈달라고 손내밀고

그러는 거다. 그러자 바로 한국말로 터져나온 욕의 향연. 마치 여긴 내가 하는 말 아무도 못 알아들을 테니 걱정없이

상스러워질 수 있다는 듯이. 질려버려서 걍 멀어져버렸다. 단지 과거의 돌덩이들만 보러 여행온 건 아닐텐데..

거기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건지. 상대적으로 칼리프에 부쩍 호감을 갖게 되어, 그의 그럴듯하게

자세가 잡힌 설명을 들으면서 룩소르 신전의 아름다운 야경을 잔뜩 구경하고, 뭔가 스토리가 잔뜩 웅숭그리고 있던

그곳의 정취에 함뿍 젖을 수 있었다. 빛이 모자라 잔뜩 흔들리고 깜깜한 사진들과 함께. (그래서 사진이 없다..ㅡㅡ;)


이집트 룩소에서 만난 Hassan에게 소개를 받아 직접 공장까지 가서 만들어온 카르투쉬 반지.

그에 따르면 이런 상형문자를 새긴 반지는 과거 파라오들이 왕의 상징으로 들고 있던 왕의 홀(인장)과 같은 의미를

띄고 있다고 했다. 엷은 웃음과 함께, 그는 그랬다. 넌 왕이 될 거야.


공장이라지만, 비어있는 은색 반지에 알파벳에 해당하는 그림들을 하나씩 녹여붙이는 작업을 손수 하는 조그마한

가내수공업 현장같은 느낌이었달까. 여덟 혹은 아홉 글자를 집어넣을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이리저리 내 이름을

짜맞추어도 딱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저기엔 y, t, z, s, c, h, e 그리고 앞뒤로는 '호루스의 눈' 그림과

또다른 수호상의 상징이 들어갔다. 그게 2004년 8월에 있었던 일.


그 이후로는 잠을 잘 때 빼고는 한번도 빼지 않았던 반지였다. 아, 저 오돌토돌한 문양 사이로 비누가 끼곤 했어서

씻을 때도 빼기는 했다. 반지를 끼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이집트의 풍경들이 떠올랐으며, 그때 내가 했던

생각들을 계속 쥐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이집트에서 발에 채이던 수다스런 옛사람들의 말풍선들..이 다시 그리워지는 날이다.

이집트에서 해온 카르투쉬 반지를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 The Hieroglyphic Alpha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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