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 주기만으로 봤을 때는 울산바위에서 내려오는데 한 열흘 가까이 걸리는 거 같지만, 실제로 내려오는 길은 세시간 정도.

 

내설악과 외설악, 병풍처럼 늘어선 설악산 능선들이 시야를 첩첩이 가로막는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끼인 바윗덩이 하나. 거대한 바위산인 설악산 울산바위 어귀 어드메쯤의 균열에 오도가도 못하고 딱 낑겼다.

 

 

그저 눈앞의 계단만 바라보며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내려갈 때 보니 살짝 아찔할 만큼의 경사였다.

 

죽어버린 고목 한 그루가 이파리고 줄기고 다 잃어버린 채 뒤틀리고 갈라진 기둥 하나만 남긴 채 가을처럼 서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내달려오던 구름이 어느순간 울산바위 위의 하늘을 꽉 채웠다 싶었는데, 또 저만치 내달리며 파란 하늘을 남겼다.

 

흔들바위까지는 그렇게 금세.

 

사진사 아저씨가 딱 자리잡은 곳에서는 흔들바위와 울산바위가 동시에 이렇게 담기는 것이었다. 살짝 눈치보며 찰칵.

 

내려오는 길에 막걸리 한병과 파전과 전날 사둔 '만석닭강정'으로 푸짐하게 배를 채우고.

 

 

사람들의 소망이 텅빈 나무등걸을 꽉 채우고 흘러넘치던 모퉁이를 돌아나오고.

 

 

제법 형체를 우람하게 갖춘 돌탑이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슬쩍 곡선을 그리며 섰는 모습도 눈여겨봐주고.

 

 

신흥사에서 올려다보이는 설악산 바윗덩이들의 우람한 육질도 감상하고.

 

 

손을 꼭 맞잡은 어느 커플이 돌다리를 건너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부러워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설악산 입구. 언제나 그렇다지만, 안 가본 길을 처음 갈 때는 무지 멀고 길어보이지만 되돌아오거나

 

다시 한번 밟을 때는 어라, 하면서 생각보다 짧고 쉽게 느껴지는 거다. 이렇게 올해 가을은 끝.

 

 

 

 

 

 

속초 위쪽으로 있는 제법 커다란 호수, 영랑호. 그 주변길에는 왠지 80년대 정권의 핵심층이 '안가'로 썼을 법한 고풍스런 리조트가

 

열지어 늘어서있기도 하지만, 가을인지라 단풍이 곱게 든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는 거다. 혹시나 하고 찔러본 길이 대박.

 

 중간에 마주치는 연못에선 활짝 핀 연꽃도 구경하고, 범바위였던가 온갖 형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커다란 바위도.

 

 그리고 속초 닭강정시장통으로 가서 만석닭강정과 중앙닭강정과 시장닭강정집이던가, 3대 닭강정집을 둘러보며 시장조사.ㅋ

 

 마침 설악문화제던가, 축제기간이었는지라 시끌벅적하던 시장통을 한발 빗겨나오니 막 공연을 마치신 듯한 아주머니들이 길가에서

 

쉬고 계시길래 한 컷. 하와이에서 훌라춤을 전승받고 막 동남아 순회공연에서 돌아와 속초의 축제를 평정하신 아줌마들 되시겠다.

 

(물론 사진 촬영에 대한 허락은 자못 공손한 인사말로 얻어낼 수 있었음)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속초의 맛집 봉포머구리집. 가게가 휑뎅그레하길래 깜짝 놀랬는데,

 

최근에 건물을 새로 올려서 훨씬 번듯하게 장사를 하고 계시더라는. 물회와 성게알비빔밥 모두 맛은 그대로였다.

 

 

 

 

속초에서 꼭 돌아봐야 할 곳은 속초관광중앙시장이란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원래 여행을 다닐 때 시장구경하길

좋아하기도 하지만, 수수부꾸미니 닭강정이니 오징어순대니, 항구쪽보다 싼 횟집들까지 먹거리도 많고 이것저것

구경할 것도 많았던 곳이다. (그리고 갯배랑 바로 이어지는 동선이라거나 속초시내 중심에 있다는 점도 좋다)

갯배에서 내려서 조금만 걷다보면 바로 만나는 이 커다란 황금색 황소. 뉴욕 월스트리트가에 있는 황소는

Bull's Market, 호황을 바라는 증권맨들의 마음을 담은 거라면, 이 녀석은 소를 닮은 지형의 속초가 번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속초인들의 마음이 담긴 걸까.

사실 시장이란 게 여행하기에 딱 좋은 곳이기도 하고 그자체로 여행의 메타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건 딱히

정해져있는 입구와 출구도 없고, 루트도 없고. 발 닿는 대로 걸으면서 둘러보면 되는 거고,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러야지, 라거나 사야지, 라고 맘먹었던 샵이나 위치는 대체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어지는 묘한 마력이 있다는.

그리고 시장에선 애써 꾸며지거나 포장되지 않은 모습들이 드러난다는 점도 참 맘에 든다. 이렇게 빛바랜 만국기가

잔뜩 낡은 건물들 사이에서 하늘을 가르고 있다는 점도 왠지 맘에 들지만, 저런 '미용휴게실'이니 다방이니 하는

촌스런 간판들이 늘어서 있다는 점도 그렇다.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시장에서 눈에 띈 사람들 중 열에 여덟은 손에 들고 다니는 거 같던 '만석닭강정'.

줄이 어찌나 길던지 뱅글뱅글 용트림을 하고도 한참 늘어서 있어서 좀체 줄을 설 엄두는 못 내고, 맞은편의 맛난

수수 부꾸미와 찹쌀 부꾸미를 파시던 분께 부꾸미를 사며 슬쩍 물어봤더니 그 옆의 '속초닭강정'도 추천해주시더라는. 


먹어본 사람들의 말도 분분하던데, 맛이 거기서 거기다, 라는 말도 있고 아무래도 만석닭강정이 짱이다, 라는 말도.

모르겠지만 가격대는 대략 이렇게 비슷한 거 같고, 아무래도 방송과 입소문의 힘, 그리고 무엇보다 줄이 저렇게

늘어서 있단 건 그 자체로 저 꼬리에 붙어서야 할 거 같은 굉장한 압박감을 주는 거다. 시장입구의 호떡집도 그렇고.

여하간 속초닭강정, '매운맛/보통맛/순한맛'으로 나뉘는 삼단계 양념소스 중에서 보통맛도 조금 매콤하다고 하여

보통맛을 골라 순살닭강정을 맛보는데 오오..따뜻해도 맛있고 식어도 맛있고 배고파도 맛있고 배불러도 맛있고.

시장 안에는 이렇게 천장이 막혀 있어서 바깥 날씨에 상관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구역도 있고, 여느 재래시장처럼

천장이 없는 대신 파라솔들이 촘촘이 늘어서서 자연스레 하늘을 막고 있는 구역도 있고.

아바이순대타운, 닭전, 어물전, 의류, 그리고 중간중간에 박혀 있는 호떡집이라거나 국화빵집이라거나. 제법 너른 공간에

끼리끼리 뭉쳐있는 상인들의 난전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가 또 줄이 늘어선 호떡 겸 붕어빵 집을 보면 슬쩍 줄을 이어서서 하나씩 맛보기도 하고.

지하에 있는 수산센터, 노르웨이에서 온 냉동 고등어들이 빳빳하게 몸을 비튼 채 박스의 형체를 간직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다듬는 생선은 광어 한마리와 우럭 한마리. 그렇게 간식거리들을 맛보고도 어쨌든 저녁은 먹어야겠다며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먹자는 단순한 소망을 끝내 이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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