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개성시 초입에 있는 봉동관이라는 음식점이었다. 얼마전까지는 이 곳의 유일한 북한식

고급 음식점이었지만, 평양관이라는 곳이 근처에 문을 열면서 독점 체제가 깨졌다고 했다. 그 이전에 비해서

서비스하는 게 훨씬 부드러워지고 친절해졌다는 짧은 촌평도 곁들여졌는데, 실제로 내가 겪은 바에는 참 친절했던

것 같았다. 한층짜리 건물 외양만 봐서는 마치 시골 어디메쯤에서나 쉽게 볼듯한 콘크리트 벽돌로 설렁설렁 지어진
 
어설픈 가건물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나간 건물 전면에 내걸린 저 간판, 자칫 머리가

부딪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야트막하다.

일행들과 함께 조그마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상해에서였던가 북한에서 운영하는 옥류관을 갔을 때랑 비슷한

분위기의 홀이 옆에 있고 그 앞켠엔 무대도 있는 듯 했지만, 우리는 8명이 겨우 자리잡아 서빙을 받을 만큼의

자그마한 방으로 들어갔다. 무대가 있는 홀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했지만, 사실 난 '반갑습니다'라거나 '휘파람'류

노래와 연주가 이어지는 그 공연은 이미 봤었기 때문에 그냥 북쪽에 와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조용하고 밀폐된 방도 좋겠다 싶었다.


서빙되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손부터 씻으려는데, 남위생실/여위생실, 이렇게 명패가 붙어있었다. 마치 대학가의

허름한 주점에 달린 화장실같이 삐그덕대는 얄팍한 문짝으로 가리워진 그 내밀한 공간.

그러고 보니 자꾸 각지의 화장실 사진을 올리게 되는 듯 한데, 개성서 둘째간다면 서러워할 이 봉동관의 자그마한

화장실 모습.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거울이나 세면대 같은 것 하나 없고 그냥 물도 내려가지 않는

소변기 하나, 그리고 옆에 수도물이 나오는 호스 하나.

여러 메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인당 30달러짜리 식사를 하면 우선 술이나 음료가 나오고, 몇가지 음식이

연이어 푸짐하게 나오고, 그리고는 평양냉면이나 쟁반냉면을 마지막으로 서빙해준다고 한다. 물도 새 병인듯한

이 '고려 신덕산 샘물'의 마개를 따서는 따라주었다. EVAIN이니 FIJI니 외국물을 마셨을 때 느껴지는 다소 생경한

뒷맛이나 목넘김과는 달리 부드럽고 시원했다. 제주삼다수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술은 백두산들쭉술이니 뭐니, 꽤 종류가 많다고 했지만 괜히 술먹고 실수하지 말자고 음료수를 달라고 했다.

음료수라고 하니까 잘 못알아듣는 것 같아서, 이쪽 공장에서 오래 일하신 분이 다시 주문했다. 단물주세요.

그러니까 나온 '대동강 사과 탄산단물', 탄산의 느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노란색이었는데 꽤 맛있었다.


음식은 꽤나 여러가지가 나왔다. 녹두전, 소꼬리찜, 오리구이, 닭백숙, 잡채, 양고기 볶음. 우리를 전담하던 '접대원

동무'에게 양고기나 이런 식자재는 어디서 조달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모두 북한산이라고 한다. 북한은 양을 곧잘

키우고 있다고 했다. 거기에 도라지무침, 김치 등 밑반찬도 푸짐하게 나와서 배부르도록 먹었지만, 마지막에 나온

평양냉면은 끝내 남기고 말았다.


30달러짜리 식사면, 공단에서 일하는 공원들의 반달 월급인 셈이다. 그렇게 애초부터 살짝 불편한 마음으로 앉았던

자리였던데다가 테이블 위로 가득 펼쳐지는 음식들을 보면서 더욱 맘이 불편했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한

사람이 그득한 이곳 북한땅에서 이렇게 호사로운 밥상을 받아들고는 얼마 먹지도 않고 깨작대다가 남긴다는 건..

아침을 못 먹고 서둘러 나왔던 탓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이 쿡쿡 찔러왔기에 약간 무리를 하면서까지 먹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이 쪽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고 닝닝하다고 얘기도 한다지만,

난 외려 그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땡기기도 했다.

나오는 길에 '접대원 동무'한테 여기 맥주는 무슨 맥주가 있는지 물어봤더니 한켠에 놓인 냉장고를 보여준다.

대동강맥주. 맛을 못 보고 돌아가는 게 아쉽긴 했지만, 일단 어떻게 생겼는지라도 알아놨으니 담에는 꼭 맛보기로

했다.

'접대원 동무'. 보통 어떻게 불러야 하냐는 질문에 그렇게 부르라고 한댄다. 사진이 실물보다 못 나왔지 싶은데,

우리는 김민희 살짝 닮았다느니 이영아 닮았다느니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이자 모델이라고 하니, 그때까지 아저씨들의 얄궂은 농담들을 능란하게 받아넘기며 얼굴색 하나 안 변하던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일하는 '접대원'들은 상해나 북경에 있는 옥류관으로

순환하며 일하는 것 같은데, 다들 출신성분도 좋고 예술학교를 나와 노래나 악기에 모두 능숙한 솜씨를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20대 초반 정도의 나이임에도 천연덕스럽고 센스있게 사람들의 말을 받아치거나 받아주는 그 밀고

당기는 감각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일행 중 한 분이 계속 이 아가씨와 사진을 한장 찍자고 조른 덕분에, 그 사진을 찍어준 나 역시 이렇게 한 장 같이

찍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손도 꼭 잡아주셨던.ㅋ


'접대원'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남한 토양에서 뱉는 순간 상당히 불건전한 느낌으로 변하고 마는 것 같다. 그런

같지만 다른 단어의 뉘앙스를 악용했던 사례가 바로 2006년쯤엔가, 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이었던 김근태의원이

졸지에 '북측 접대원과 춤을 추는 추태'를 부렸다고 보도되며 '개성공단 춤사건'으로 비화되었던 것이다. 그

장소가 바로 여기, 봉동관이라고 했다. '북한처자와 춤을 춘 좌파세력의 총수'라고까지 매도하는 극우세력들의

선정적인 비난은 당시 핵미사일 발사직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점에서 일부 심적으로 이해는 간다고 해도,

앞뒤맥락 끊어놓고 '북측 접대원'이라는 단어를 설명없이 모호하게 방치하는 건 너무 악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중 연장자나 좌장 격으로 보이는 사람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잠시나마 함께 율동을

하는 건 흥을 돋우기 위해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라고 한다.


어쨌든 불과 1-2분, 앞 무대에서 노래부르며 춤추던 북측 '접대원'의 채근에 못이겨 춤추는 시늉을 했던 그는

보수세력의 십자포화를 맞았고, 유력한 대선후보에서 급전직하하고 말았으니..

봉동관을 떠나 길가로 내려서는 계단에는 그간 내린 눈이 조금 쌓였다. 쌓였다기보다는 살짝 얹혀있다는 느낌이

더 강할 정도로, 그렇게 얄포롬하게 내려있었다.

아마 저 왼쪽에 있는 길을 계속 가면 개성 시내로 들어갈 수 있나보다. 원래 개성공단 내에 있는 모든 교통표지판엔

서울 방향과 개성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그 글자들이 파란 페인트로 지워져 버렸고,

남아있는 표지판이나 버스 정류장 표지에는 '현대아산', '관리위원회' 등의 공단 내 지명만 남아버렸다고.


아마 교통표지판에 있는 '개성'과, 특히 '서울'이라는 글자가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까 겁났던

게 아닐까 싶다. 이쪽 방향으로 조금만 쭉 가면 서울이 나오는구나, 그리고 저쪽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개성시내가

보이겠구나. 이런 자각이 언제든 동토를 뚫고 싹을 틔울 수 있을 테니.

다시 본공장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에 내려앉은 눈발은 금세 물방울로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에 내려앉은 눈방울들이 금세 녹아버리는게 차내의 온도때문이라면, 정말 이렇게 초록색 솔잎위에 내려앉은

눈발이 녹지도 않고 가만히 쌓여있는 건 살짝 경이롭기도 하다. 눈이 녹지 않을 만큼 차가운 온도로 저 초록색

싱싱한 솔잎의 체온이 내려가 있다는 건데, 용케 얼지도 않고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아까는 스쳐지나갔던 것들이 조금씩, 배가 빵빵하게 불러버린 내 눈에 들어왔다. 라인마다 한 개씩 위에 달려있는

저 금일목표, 현재목표, 현재실적을 나타낸 안내판. 비록 찰리채플린은 모던타임즈에서 저런 단순 제조작업을

풍자하기도 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조업을 경원시하기는 하지만, 사실 일자리 창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조업을 살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괜히 금융선진화니, 대규모 토목공사니 할 게 아니라..

그렇다고 저런 목표량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이나 삶이 위협받아서는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애초 개성공단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남북간의 관계가 계속 진전하고 호전되기만을 바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남북관계가 점차 발전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통제가 점차 완화되고

숙련공이 자유롭게 다른 직장으로 옮겨다닐 수 있다거나 임금인상과 복리후생 등의 측면이 불거지게 되면,

저임금의 이점을 바라보고 개성에 들어갔던 기업들의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남북관계의 현상유지를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게 전진이던 후퇴던 너무 급박한 움직임은

원치 않고 있다는 건 확실한 거 같다. 지금이야 어쨌든 북쪽에서 정한 최저임금선에 맞춰서 노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5% 상당의 일률적인 임금상승도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상황인 듯.

해서, 남과 북의 관계 개선을 견인하는 여러 행위자 중에서 이렇게 북한 측에 이해관계를 가진 남측 기업인들은

점차 보수화된 입장을 표명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흔히 북한의 글씨체는 왼쪽의 저런 힘있고 전투적인 필체, 게다가 빨간 색과 검은 색이 장렬하게 섞여있기 쉽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오른쪽에 보이듯 저렇게 단정하고 힘뺀 글씨를 쓰는 사람도 북한에는 있는 거다.

아까는 제대로 귀기울여 듣지 않았지만, 여유있게 한바퀴 다시 돌아보면서 계속 가사를 분별해내려고 애쓰며

듣게 된다. 작업장 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는 마치 군가 풍의 씩씩하고 감정이 과잉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장군님 어쩌구, 승리 어쩌구 하는 가사가 들렸던 거 같다. 북한의

대중가요 같은 거 아닐까 싶은데, 노래하는 아저씨나 아가씨나, 금방이라도 감격해서 울어버릴 거 같은 목소리다.

작업장과 사무실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 낮은 파티션. 앞에는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 포스터 안에서 전지현이

화려한 외모와 모션, 그리고 옷차림을 과시하고 있었고, 뒷켠에는 하얀 머릿수건에 하얀 작업복, 주홍빛 앞치마를

두른 여공원들이 열심히 옷을 만들고 있었다.

청소를 깨끗이. 청소조로 짜여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면 참 재미있었다. 아까 봉동관에서

양념을 많이 한 음식 먹으면 건강에 안좋다고 한마디하던 '접대원' 아가씨에게도 느꼈던 거지만, 이곳은..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은, 마치 30년 전쯤의 한국과 같지 않을까 싶다. 우리 할머니또래의 이름들, 할머니또래의 입맛..

그렇지만 우리처럼 (아직은) 팽팽하고 젊은 사람들.

그렇지만 또 자주 개성공단을 왕래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이곳에서 일하는 여공원들의 화장이 갈수록

짙어지고 화려해지고 있다고 하니, 이곳의 시간은 어쩜 우리네 경제가 압축성장했듯 그렇게 압축해서 총알처럼

흘러버릴지도 모르겠다.

2시 30분, 출경할 때처럼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들이 북한군 차량의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해서 살짝

켜본 네비게이션에서는 노이즈 섞인 한국TV 방송이 볼만하게 나오고 있어서 깜짝 놀랬다. 정말 이렇게 가깝구나.


북한을 벗어나기 전에도, 들어올 때와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금속탐지기와 검색대를 지났고, 아까 들어올 때

삑, 소리를 유발했던 코트의 금속 쇠붙이는 또다시 삑, 소리를 내고 북한군인 아저씨의 이목을 끌었다. 북측에서

발부했던 출입증은 반납했고, 내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은 끝에서 끝까지 샅샅이 검사당했다. 군인아저씨가 직접

카메라를 쥐고는 사진을 한장 한장 빠르게 넘겨가며 매서운 눈매로 체크를 했다는 사실. 혹시 뭔가 꼬투리를

잡지는 않을까, 나도 모르게 뭔가 이상한 게 찍혀있는 건 아닐까..예측할 수 없는 위협이 언제고 머리를 쳐들 수

있다는 생각에 은근히 긴장했었지만 별탈없이 넘겨받았다. 하기야, 출입국으로 오면서 몇차례나 샅샅이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었고, 스스로 쫄아서 지워버린 사진도 적지 않았으니까.

개성공단 지구를 벗어나는 길에 세워져 있는 저 커다란 붉은 별이 박힌 바리케이트. 어렸을 때 똘이장군이니 뭐니

반공만화 드라마에서 보았던 북한군인들은 모두 머리위나 가슴팍에 커다란 붉은 별을 달고 있었다. 그것도 왠지

음흉한 느낌을 주는 붉은 색이었거나, 좌우지간 이뿐 빨강이라는 느낌은 전혀 안 들었던 거 같다. 근데 솔직히

군복은 북한 군복이 좀더 이뿐 거 같은데. 소련과 중국의 대륙식이랄까, 그런 군복과 유사한 느낌으로.

유리창 너머 보이는 전면의 커다란 송전탑. 저 탑을 통해 무려 15만여 볼트로 내달리며 남측의 전력이 북측의

개성공단으로 공급되고 있는 거다.


아까 그 봉동관에는 이 전기가 공급되는 게 아니겠지? 밥먹는 와중에 세네차례나 전기가 끊겼더랬다. 갑자기

형광등이 꺼져버리고 주위가 조용해지는 순간, '접대원'이나 이곳에 오래 머물렀던 분들은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난 정말 개성의 전력수급이 이렇게 열악하다는 걸 체감하고 깜짝 놀래버렸다. 개성은 북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도시인데, 실제 하루에 전력이 들어오는 시간은 네다섯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무장지대를 건너,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서 계속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어쨌든 지금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고

지금 사진을 찍던말던 북측에서 어떻게 제재할 방법이 있겠어, 그리고 남측에서도 그렇게 빡빡하게 나오겠냐라는

생각을 했지만...어쨌든 북한 지역은 벗어나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라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북측과 남측의 구역을 식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선도로를 따라 함께 늘어선 가로등

중간쯤 꿰어진 저 플라스틱 링을 보면 알 수 있다. 남측 구역은 노란색 링을 끼고 있고, 북측 구역은 파란색 링을

끼고 있는 거다. 실제로 이 사진을 찍은 건 비무장지대를 한참 지난 후의 일.

입경하는 코스는 북한에 들어갈 때와 비교하면 훨씬 간단했고, 훨씬 부드러웠다. 아까 카메라 검사받을 때 한번

크게 풀린 긴장감은, 일렬로 마치 장송행렬하듯 천천히 전진하던 자동차 대열에서 벗어나 남측 출입사무소에서

일단 내리면서 다시금 완전히 해제되었다. 그러고 보니 입경, 표지판에는 한자와 영문이 모두 병기되어 있다.

왠지 그 밑에 웰컴 투 코리아 혹은 웰컴 백 투 코리아, 이런 거라도 적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지만, 또한 금세 내가 개성을 갔다왔고 북한땅을 밟았다는 사실이 꿈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혼란한 느낌도 들었다. 이건 너무 가까운데, 너무 다른 세상이었다.


저녁때 종로에서 가볍게 술한잔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으레 그렇듯 떠들썩하게 와 하고 퍼지는 웃음소리와

시끌벅적한 붕붕 떠있는 분위기. 개성에서 첫눈을 맞았던 나는, 서울에도 첫눈이 왔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난 오늘 하루 어디를 다녀왔던 걸까 싶었다. 차로 불과 한시간 거리면 그렇게도 비슷하고 닮은 사람들이

참 다른 세상을 감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이다지도 낯설고 모를 뿐더러 무관심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 너무나 놀라운 건데..아무리 놀라운 것도 반세기가 넘으면 그저 진부한 레토릭이 될 뿐인가.


개성엔 편의점이 있을까? 공업단지 내의 도로를 돌아다니다 보면 불쑥 어디 모퉁이에선가 나타난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바로 옆쯤에 있는데, 무려 '개성공업지구점'이란 거창한 지점명도 갖고 있었다.

안 들어가 볼 수 없어서 얼른 들어가 봤더니, 북한 아가씨인 듯한 젊은 처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다. 엷은 화장에

남측 기준으로 평범한 복장이어서, 순간 여기가 개성 맞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곳은 개성,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위험한 시장경제 실험을 벌이고 있는 곳 아닌가. 모든 상품은

달러로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 점원누님은 아마도 16년동안 편의점 알바를 뛰어온 알바의 달인인 듯 능란하게

손님들을 받고 있었다. 다만 다소 들떠 보이고 리드미컬한 북한 사투리가 도드라졌다는 점을 빼면.

이곳에서 파는 담배나 술 종류는 면세가 되기 때문에 가격이 상당히 싸진다고 한다. 이 곳에 주재하며 일하는

남측 직원들은 2주정도마다 남쪽으로 돌아갈 때 애용하기도 한단다.


이 곳에서 쓰이는 돈은 달러, 최소단위는 1달러지폐라는 것이 북한에 넘어오기 전 방북 교육의 내용이었다. 그렇담

저 센트 단위의 거스름돈은 돌려 주려나, 아님 그냥 올림하려나. 편의점을 떠나는 순간부터 궁금했지만 끝내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혹시 모두들 기를 쓰고 센트 단위 거스름돈을 안만들기 위해 머리를

쓰며 상품을 고르려나. 0.9달러짜리를 샀다면 꼭 1.1달러짜리라도 하나 골라서 같이 사는.

그 옆에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라는, 남측의 관리 주체가 있다. 지금 현재 이곳은 2번째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판-옵티콘으로 입주하기 전까지 임시로 머물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자동차들에 붙어 있는 번호판들을 보면, 흰색

번호판은 이쪽에서 상주하며 쓰이는 차량이거나 잠시 넘어왔던 차량, 그렇게 남쪽 차량을 의미하고, 노란색 판은

북한 차량이다. 노란색 번호판을 단 차량을 꼭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지만, 대부분 그런 차들은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찍을 수가 없었다.

개성공단 내에는 병원도 있다. 그린 닥터스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병원인데, 1층짜리 건물에 남과 북의 의사와

간호사가 다소 섞여서 남, 북한의 환자를 각기 치료중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남쪽 소속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병원 한쪽 공간에는 남측 의사와 간호사가 주가 된 채 두세명의 북측 의사, 간호사가 함께 진료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의 다른쪽 공간에는 북측 의사와 간호사가 주로 포진하여 북쪽 소속의 환자를 치료한댄다. 그 두 공간

사이에는 반투명한 유리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꼭 항상 열려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남측에서 은행도 건너가 있었다. 다소 작다 싶은 지점 수준의 규모였는데, 창구가 두 개 정도 되었던 거 같다.

한쪽 벽면에는 그간 다녀간 귀빈들의 방문 사진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시절 개성공단을

한번 쭈욱 둘러본 듯 하다. 여기저기서 그의 사진을 볼 수가 있었다.

참 심플한 메뉴판이다. '안내표'란 말은 글쎄, 북한에서 고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어색한 느낌은 없는데

메뉴판이란 단어 대신 바꿔봄직한 거 같다. 그래봐야 영어+한자를 한자어로 바꾼 거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어느

건물인가에는 이런 찻집도 있다. 다시 한번, 참 심플한 안내표다. 1달러, 1달러, 2달러, 2달러, 1달러. 여기선

최하 1달러지폐를 통용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듯한 느낌이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현재 소재하고 있는 건물 한 켠엔가 붙어있는 한반도 지도. 출입증에 보였던 것처럼

명백하고 과장스럽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저기 얼룩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의도된 두 개의 점을 볼 수 있다.

참 드문 경험이지 싶은데, 독도에 대한 한국정부의 명쾌하고 단호한 입장을 이렇게 쉽사리 마주칠 수 있단 건.

'소방대'도 있다. 이 사진을 찍어도 될지 안 될지, 그리고 저 옆에 살짝 찍힌 아저씨의 츄리닝이 '제복'에 포함될지

안 될지..백만분의 일초 사이에 머릿속에 온갖 걱정과 근심이 어른거렸다. 북한, 개성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단

사실도 놀랍고 슬펐지만, 내가 스스로 이렇게 개성에 다녀왔노라 글을 쓰면서도 단어와 표현, 뉘앙스를 스스로

정제하고 가다듬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슬픈 것처럼. 아, 그러고 보니 이 사진 안의 차들은 모두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있는 북한측 차량이다.

개성공단 내의 도로를 달리면서 보면, 서울이나 어디 남녘 소도시를 다니는 것과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친숙하고 낯익은 풍경들에 놀라게 된다. 단순히 남과 북의 민족적 일체감...운운이 아니라, 개성공단

내 도로나 가로등, 도로표지판까지 모두 한국 측에서 제공한 것이기 때문인 거다. 파란색 도로표지판의 색도나

그 글씨체까지 모두 남측에서 통일되어 있는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가 탄 차 앞에서 달리는 트럭에 빼곡히 탄 북측 인부들. 사실은 저것도 애초의 룰과는 벗어나는 일이다. 애초

약속하기로는, (노랑 안전모를 쓴) 북측 사람들은 (노란 번호판을 단) 북측 차에만 타고, (흰색 안전모를 쓴) 남측

사람들은 (흰색 번호판의) 남측 차에만 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게 어디 되겠나 싶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얼굴 맞대고 한공간에서 일하고 이야기하며 '살고' 있는데, 편의적인 이유에서든 심리적인 이유에서든

그런 불편한 룰은 금세 지워질 수 밖에 없었을 거다.

노란색 안전모들이 몽글몽글 뭉쳐져 있던 그 계란판같은 트럭 위에서 살짝 드러난 얼굴. 나이를 가늠하긴 힘들지만

꽤나 연로해 보이시고 피곤해 보이시는 표정이다. 아님 단지 코가 간질거려서 잠시 재채기를 하려고 하셨는지도.

저런 식으로 유려하게 씌여진 한글 간판이 이 개성공단을 꽉 채울 수 있다면 그것도 꽤나 멋진 광경이 되지 않을까.

이미 몇가지 서체, 그것도 대부분 일본에서 유래되었다는 서체에서 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남측의 한글디자인

그리고 한글문화에 조금은 자극을 던져 주면서, 북한이 남한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지도.

현대아산 사무실에 들어왔더니, 개성상황실이 있다. 벽면에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중국횡단철도와 연계해서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개성을 보여주기 위한 온갖 도면이 붙어있었고, '복스럽게' 생긴 북한아가씨가 우리에게

개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개성은 유명한 박연폭포와 한석봉이 판액을 쓴 걸로 유명한 남대문, 그리고

정몽주가 피살당한 선죽교 등의 문화유산을 품고 있습니다..운운. 어라? 피살? 단어가 상당히 세다고 느꼈는데,

나만 그렇게 느꼈던 걸까. 설명중인 아가씨는 여전히 피냄새가 풍기고 훈김이라도 오를 듯한 그런 단어를 발음해

놓고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별반 반응이 없었다.

저 디오라마 한가운데 있는 붉은 기둥 같은 건 아마도, 거대한 김일성 동상인 듯 했다. 개성 시내 한가운데에는
 
저런 게 서있나 보다. 설마 조명까지 저 섬뜩한 붉은 색으로 비추는 건 아니겠지.

현대아산의 개성상황실에서 능숙한 말투와 자세로 흐트러짐없이 개성의 현황, 개성공단의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하던 아가씨. 내가 카메라를 들고 멈칫거리는 걸 센스있게 눈치채곤 한마디 해주었다. 자유롭게 사진찍으셔도

됩네다. 그 말 듣고 당장 찍은 그녀의 발표 모습. 겉모습만 보곤 남한과 북한의 처자를 구분하기가 그리 용이하진

않은 듯 하다. 남측보다 결혼이 빨라서 20대 초중반에 결혼을 한다고 하는데, 그 이전까지는 남측과 비슷하게

연령대에 맞는 외양을 유지하다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는 같은 나이의 남측 여성에 비해 한 10년쯤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고 한다. 아무래도 출산을 위해 모체의 영양분을 모두 아이에게 넘겨주고 나서 그를 보충할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않는 환경이니까 그렇지 싶다. 산후조리, 그리고 산중 영양섭취의 중요성이랄까.

개성은 저기다. 강화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금방 닿을 수 있는, 아마 서울까지 가는 것보다 개성에 가는 게

더 가까울 거 같다. 참 가깝다. 이렇게 남측에 최근접한 곳을 공단시설부지로 내놓을 수 있었던 건 확실히 김정일의

일인독재에서 기인한 결단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북한 군부에서는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김정일은 이를

모두 물리치고 기어코 이곳을 남측과의 경협사업에 내어준 거라고 들었다.

이게 개성공단 1단계 공장구역, 백만평에 이르는 부지라고 한다. 현재 노동집약적 업종 중심의 개발사업은 완료된

상태로, 남북경협의 기반을 구축하는 단계라고 한다. 약 250여개 업체가 들어가서 실제 50여개 업체가 공장을

가동중이라고 하는데, 주로 봉제, 신발, 가방 등의 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2단계 공장구역은 250만평에 이르며, 기계, 전기, 전자 등 기술집약적인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적인 수출기지로의

육성을 꾀하고 있댄다. 배후지역에는 골프장도 두세개 건설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음...골프장이랜다.

3단계 사업은 IT, 바이오 등 첨단산업 중심으로 550만평을 개발하여 동북아 거점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2012년까지의 계획이라고 했는데..글쎄, 현재까지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으로 보아서는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크지 싶다. 그리고 다소 지연되더라도 좋으니 그런 청사진대로 개발이 될 지에 대해서는,

글쎄, 지켜보는 수밖에 없지 싶다.

1단계 공장구역과 3단계 공장구역 사이로 고속도로와 경의선 철도가 놓여 있을 텐데, 그 부근에 상업구역을 만들어

저런 고층빌딩을 잔뜩 올릴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다. 저 반달 형태의 호수는 남북한의 화합과 번영을 상징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너무 먼 이야기인 거 같아 사실 흘려들었다.

빨간 선이 고속도로, 노란 선이 경의선 철도. 지금도 도라산역에서는 북측으로 하루에 한 차례씩 철도가 운행중에

있다고 한다. 딱히 무언가를 싣고 옮길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모처럼 놓인 철로가 못쓰게

되고 수명도 짧아진다고 했던 것 같다.


놀랬던 건, 설명을 하던 북한 아가씨의 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 '가격경쟁력', '세계 일류', '세계 시장'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이 잔뜩 튀어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아..북한도 변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던 순간.

현대아산 건물 위에 올라 개성공단을 조망했다.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의뭉스럽게 꾸물꾸물하더니 기어코 눈발을

뱉어놓고 있었다. 황량한 공사현장이 산재해 있고, 저 기분나쁜 판-옵티콘은 어디서나 잘 보이지만, 그래도 올해

첫눈을 개성에서 맞게 되다니 기분이 색다르다. 처음에는 딱딱하게 뭉쳐진 싸리눈이 투둑대며 떨어지더니, 조금씩

부드러운 눈발로 바뀌어 나리고 있다.

눈이 내리는 걸 보면서,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든 생각은 머리에 바른 왁스물 흘러내리겠다는. 어느순간 눈내리는

것이 싫어진다면 나이를 먹었다는 증표라고 했지만, 단지 머리에 뭔가를 바르지 않던 시절과 멋 낸답시고 뭔가를

바르기 시작한 이후라는 차이가 아닐까 싶다.

시계가 순식간에 잔뜩 움츠러들어 버렸다. 거대한 감시탑 혹은 망루처럼 세워져있는 저 관치냄새 풀풀 풍기는

건물도 슬몃 눈발이 만들어낸 장막 뒤로 한 걸음 숨어들었다. 그리고 여긴 개성.


남북출입사무소 뒷문으로 나가 차를 타려 했는데, 주위의 차들도 그렇고 우리 차도 그렇고 모두 분주하다. 
차 앞의 번호판을 흰 판으로 가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안 적힌 흰 판으로 고정시켜 가리는 경우도 있었고,

'림시(아마도 임시번호판이란 뜻이겠지만)'라고 적힌 번호판으로 덧대는 경우도 있었고.
 
그리고 차 한쪽에 저런 붉은기를 꼽아 놓아서, 여러 차들이 모두 그런 깃발을 꼽아 둔 걸 보면 마치 어딘가

단체로 여행가는 차들 같다. 저 깃발은 현재 이 차량은 비무장 상태로서, 합법적으로 북한에 방문한 차량임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으레 호전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붉은 기보다는 이왕임 하얀색

깃발이 낫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가, 그건 자칫 북한에 투항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이내 폐기.

실제로 그런 논의가 남북간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조선 동무, 백의민족답게 흰색으로 하갔시오?" "북한에

사는 친구 A-yo, 그건 우리가 백기들고 투항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다른 색으로 합시다." 운운.

또 하나, 차 안에 있는 네비게이션은 탈착이 가능한 경우 빼두고 가져가지 말도록 하고, 이것처럼 아예 빌트인

형태의 것이라면 회선을 끊고 흰 종이로 덮어 두어야 한다. 그렇게 부산하게 준비를 마친 차들은 일렬종대로

북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남한측 2km, 북한측 2km의 비무장지대(DMZ)를 지나 북측에 있는

출입사무소까지 가는 동안에는 사진 촬영이 일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차들이 비무장지대 한 복판으로 천천히

나아갔고, 어느 지점쯤에선가 남측 군인들이 탄 지프가 멈춰서서는 우리가 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는 북측 군인들이 탄 지프가 우리가 오는 걸 지켜보고 있었고. 그렇게 우린 남에서 북으로 '인수인계'.

겨울로 가는 문턱이라 그런지 비무장지대라 해도 뭐랄까, 사람 손 타지 않은 천혜의 자연..이란 이미지는 별로

느낄 수가 없었다. 누렇게 죽어가는 풀떼기들과 나무들이 있을 뿐이었는데, 정말 어느 순간 그 나무들이 무척

키가 작아지고 어린 것들만 보인단 느낌이 들었다. 북측 지역에 넘어섰던 즈음일 게다.


차에 함께 탄 일행 중 한명이 한번 더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고 풀떼기만 보이는 것 같아도,

북한군인이 어디선가 다 보고 있다고 하면서 사진은 절대 찍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군인들이 찍은 사진을

전부 검사하며, 혹시 사진촬영금지지역에서 찍힌 사진같으면 벌금 몇백달러에 자칫 카메라 압수까지 당할 수

있다고 했다. 별 수 없이 카메라를 얌전히 꺼두고 차창에 붙어 열심히 눈알만 굴렸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 옆으로 커다란 송전탑이 따라 오고 있었다. 개성공단 지역의 전기 수급을 담당하기 위해

남측에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설비라고 했다. 송전탑이 든든히 남과 북을 잇고 있는 듯한 느낌.

정주영회장이 몰고 왔던 소떼들이 바로 이길을 지나 북으로 갔다고 하던데, 아마 그 소떼의 걸음속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이었지만 4km는 금방이었다. 그래서 불과 십분 안팎?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저 앞에 북측

군인들의 경계 초소가 보였고, 붉은 별이 그려진 바리케이트가 얼기설기 놓인 것이 보였다.


서울에서 개성까지 불과 80여km. 참...가깝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남한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말그대로

깜깜하기만 한 구역, 블랙박스를 지나면서 은근히 긴장했던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마 북한을 다시 떠나기

전까지는 이런 긴장이 계속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그 블랙박스는 북한에서만 설정한 건 아니겠지만.

북한측 출입사무소에서 비행기 입국심사하듯 검색대를 지나, 세관에 출입증을 제출했다. 빨간 계급장과 김일성

배지가 달라붙은 채 칼같이 각잡혀있는 누런 북한군복을 입은 군인이 딱딱한 낯빛으로 나를 맞았다. A4지 몇장에

걸쳐 프린트된 소속, 이름 등등의 표를 한장씩 넘겨가며 내 이름을 확인하길래, 그보다 먼저 내 이름을 발견한 내가

손가락을 짚어 여기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도장 한 방, 쾅 찍고는 통과. 딱히 무섭게 하려거나 긴장감을

준다기보다는, 그냥 그 군인은 나를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보는 느낌이다. 소 닭 보듯 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바로 공장으로 들어섰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정일국방위원장도 방문한 바 있고, 최근에 북한군 고위

장교가 개성공단 내 공장을 돌면서 짐싸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볼 때 맨 처음 다녀갔을 만큼 개성공단의

대표적인 공장이다. 한붓그리기를 하는 듯 죽 지그재그로 이어진 형광등 아래 북한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광경을

첨 맞닥뜨리고 살짝 당황했던 건 단지 미처 심적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공장 건물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그 옆에서부터 작업 라인이 늘어서 있단 걸 몰랐기 때문에 당황키도 했지만, 솔직히 이렇게 많은 북한 사람과

한 공간에..그것도 상대적으로 소수인 입장으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내 속내가 어떻게 복잡하게 돌아가는지 상관없이 그네들은 모두 자신들이 할 일에 골똘히 열중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재단하는 공원(직원)들, 그리고 차례차례 순서를 거쳐가며 봉제를 해나가는 공원 라인들.

그러고 보면 난 단지 의류 제조공장이란 곳에 처음 들어와서 느낀 생경함을 북한사람들과의 대면에 대한 문화적

충격으로 잘못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방에서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 그리고 자신의 수족인양 민첩하게 쓰이는

다리미와 각종 도구들. 처음엔 그냥 이 '봉제실 2반'의 전체 덩어리를 뭉뚱그려 보고 있었지만 조금씩 한 명 한 명,

여공원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공장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2층에 있는 샤워실, 북측 공원들은 이곳에서 샤워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기본적인 먹는 문제조차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동네에서, 수도시설이나 전기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을 리가

없는 거다. 설혹 제대로 되어 있다고 해도 샤워를 하는 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샤워실'이란 문패 아래 붙은

스케줄표를 볼작시면, 보이는가. "샤와실 리용계획".

그 옆에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수준의 식당이 있었다. 2005년이던가, 이 업체의 개성공장 준공 기념 패션쇼를

이 공간에서 열었다고 한다. 의자와 테이블을 모두 치워놓고 만들어진 런웨이 위에서 김태희가 워킹을 했다는데,

한국 최고의 여배우가 온다는 소식에 이곳 공원들이 모두 기대감에 충만해 있었댄다. 근데 정작, 김태희는 기대에

못 미쳤다며 그녀와 함께 워킹을 했던 다른 모델이 더욱 이뿌다는 한 목소리였다고 했다. 아마도 조금 통통하고

'복스럽게' 생긴 녀성을 날씬하고 다소 마른 체형의 여성보다 선호하는 이쪽의 미적 기준이 작용한 결과일 게다.

어쨌든, 왠지 그녀와 나는 여러모로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묘한 생각을 잠시. 크흑.

원래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으나, 언젠가부터 중식을 제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식은 이곳에서 일하는 북측 인력들의 가장 중요한 식사시간이란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알 만하다. 제법

식단도 다양하게 잘 나오는 거 같은데, 모든 식자재는 남측에서 건너온다고 한다.

다시 1층의 작업 공간으로 내려와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한달의 약 60불의 임금을 받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고졸 이상의 높은 학력 수준과 이해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인사관리의 권한이 남측 업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측에 있다고 해서, 근태관리라거나 인센티브 부여, 혹은 내가 이해한 바대로 보다 나이브하게 말해 작업장내

규율 확립과 효율성 증진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고 한다. 사실 이 여공원들도 북측 상부에서 여기에 와서

일해라, 하니까 일하는 거지 개인의 희망이나 의지가 반영되어 배치된 것은 아니란다.

작년 말께 있었던 제2차 정상회담에서 노전대통령이 언급했던 개성공단 인근 기숙사 건설 문제는, 아직까지는

아무 후속방침이나 조치가 없다고 한다. 이미 개성 인근의 노동력을 모두 흡수한 상태라 하던데 공장들이 증설되면

새로 신규 인력을 어디서 끌어올지도 문제고, 그들이 어디에서 머물지도 문제가 될 거 같다. 다소 심한 경우일지

몰라도, 이곳에서 일하는 한 북한아가씨는 밤 3시에 일어나 밥을 하고 치장을 하고는, 4시 40분께 집을 나선다고

한다. 공단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긴 하지만 코스가 다양하지도, 길지도 않아서 어느 정도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하며, 그래야 6시 반이던가 출근 시간에 맞출 수 있댄다. 하여 취침시간은 9시에서 9시반. 참...빡빡한 삶이네

속으로 생각했지만..맘 속 한구석에선 월급쟁이란 북녘땅이나 남한땅이나 비슷하구나, 했다.

처음에는 작업장 밖에 안 보이더니, 조금씩 사람들이 보이고, 그리고 그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네들은 자기들끼리 웃으며 이야기도 드문드문 하고, 뭔가 짜증이 났는지 작업반장같은 사람한테 목소리 높여

살짝 항의도 하고, 옆사람이 시범보이는 걸 진지하게 눈여겨보며 배우기도 하고, 가끔은 발랄한 웃음소리도

시끄러운 재봉틀 소리와 함께 풀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재단을 하는 사람이나, 제봉을 하는 사람이나, 심지어는 숙련된 작업 고참으로 작업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나, 임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어쨌든 집도 한 채씩 국가에서 제공하고, 일자리도 제공해주고,

기본적인 식량도 국가에서 (원칙상) 제공하게 되어 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소비하는(혹은 벌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원칙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이상적인 원칙에 한결 가까운 건 맞겠지만..글쎄, 아직 그 누구의 필요도 채울만큼 충분히

주어지지는 않는 건 확실하다. 북측에서 커미션삼아 떼어가는 몫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북측의 불공정하고 불완전한 형태의 노동시장이 갖는 문제일 수도 있고.

공장을 나서서,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신공장 건설현장을 가보기로 했다. 빨간 기를 꼽고 '림시' 번호판을 단 차를

타고 조금 움직이니 금세 공사현장이다. 노랑색 안전모를 쓴 사람은 북측 인부, 흰색 안전모를 쓴 사람은 남측

인부 혹은 기술자라고 한다. 이 곳에 새로 지어질 공장은 여태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이 지은 공장들 중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실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공사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찍는 건 되고, 경찰복이던 군복이던 제복을 입은 사람을 찍으면 안 된다.

공장 내부에서는 맘껏 찍어도 되지만, 개성공단이 차지한 땅 바로 그너머서부터 시작되는 민가들은 찍으면 안

된다. 다 쓰러져 가고 페인트칠조차 드문, 지붕엔 다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너덜너덜한 기왓장이 용케

달라붙은 채 웅크린 폐허같은 민가들이었다. 개성공단과 바로 인접한 개성시내에는 12층짜리던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아파트가 있긴 하지만 엘레베이터는 안 움직인지 오래라고 했다. 북측 윗사람들이 무작위로 지정해준

자신의 집이 그 꼭대기층이라면, 게다가 자신이 5,60대 노인이라면, 죽을 때까지 집아래로 몇번 내려오지도 못하는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한다.

남측도 우스운 건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중앙에 높다랗고 지어올리고 있는 저 건물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입주해서 행정, 법제 관련 업무를 담당할 곳이라고 한다. 아마 남측의 관료나 높으신 냥반들이 왔을 때 호텔로도

활용되지 않을까 싶다. 저렇게 높은 건물을 대체 무슨 용도로 다 채울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보니까 조금 뜨악하달까, 푸코가 이야기했던 판-옵티콘이 생각났다. "감시와 처벌"이란 그의 책에서 나왔던

근대적 의미를 충실히 구현한 360도 전방위를 감시할 수 있는 감옥 시스템. 끽해봐야 몇층짜리 건물이 전부인

요 야트막한 동네 한가운데다가 저런 건물을 떡하니 지어올려서 감시라도 하겠다는 건지, 그 건물 설계의 의도가,

조금 요란하게는 철학이 궁금해졌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업체들의 편의를 봐주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인드가 제대로 서있다면 저런 과잉하고 권위적인 건물에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관치의 느낌.

산을 따라 빙 둘러쳐진 녹색의 펜스는 사실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자유의 다리를 건너 비무장지대를 지날 때부터

줄곧 우리를 따라 내달리고 있었다. 한발짝이라도 저 펜스를 넘는 순간 허가받지 않은 '입북자'가 되는 거라고.

'입북자'라는 건 '탈남자'의 같은 말인 걸까. 그렇담 '탈북자'를 북측에선 '입남자'라고 하려나. 희떠운 생각 한조각.


북한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들린다고 했다. 최근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북측으로 삐라를 마구 뿌려대는

사람들을 과연 이명박 정부가 못 막아서 못 막는 건가. 이미 촛불집회 때 유모차 부대라는 애기아주머니들도

강경하게 대처하고 진압했으면서, 이제와서 민주주의 국가라고 못 막겠다는 걸 믿으라는 건가. 물론 법적인

근거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거나 등의 미시적 차이를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해가 진 후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

어이없는 법률이라거나 지극히 자의적인 법적용 등을 차치하고 말하더라도) 거시적 차원에서는 일견 수긍할

만한 구석이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장을 돌아보고 나오려는데, 옆에서 한 북측 인부 아저씨가 설렁설렁 자전거를 타고 지나길래 서둘러 셔터를

눌렀다. 마치 남녘땅 시골 촌로들이 자전거를 타듯 거칠것 없는 유유한 자세로, 많이 차갑고 매콤한 바람이 불어

얼굴하며 손등이 온통 새빨개졌음에도 그 바람결을 즐기는 것 같은 태도로 움직이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북측의 삶의 패턴이랄까, 리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하자면, 내 삶의 리듬은 어떤지

돌아보게 되었다.



* 아마 태그에 몇가지 북측과 관련된 금칙어가 있는 것 같다. 애초 올렸던 글이 티스토리 메인홈에 노출되지 않고

거의 읽혀지지 않았던 걸 보고 태그를 좀 수정했더니 그제서야 메인홈에 정상적으로 게시되었던 것 같은데..

뭐가 금칙어였을까.
문득 눈을 뜨니 제법 얼음이 올라붙은 자그마한 강이 보인다. 아마도 임진강의 지류일 게다. 
아침 7시반에 모여 개성으로 출발하기로 했는데, 추운 바람에 뻣뻣해져버진 몸을 삽시간에 녹여버리는 지하철의

빵빵한 난방 탓에 10분 정도 지각하고 말았었다. 미친 듯이 뛰었던 탓일까,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며 차에 타고는

피곤함과 노곤함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와 금세 또 잠들어버렸었다.


지금 난 개성으로 가고 있다. MB정권이 출범하고 나서 쉼없이 삐걱대던 남북관계, 급기야 개성공단의 존폐를

위협하는 이야기들마저 떠다니다가 급기야 다음달부터 개성으로 통하는 육로를 제한, 통제하겠다는 북측의

통고가 전달된 상황이다. 이번 개성행도 몇 주전부터 갈 수 있을지, 혹 재수없으면 못 가게 되는 건 아닐지 적잖게

걱정했었지만, 그래도 어쨌건 난 북측에서는 통행증이, 남측에서는 방북증이 무사히 발급되었다고 했다. 방북증이

북한을 갈 때 쓰는 여권이라면 통행증은 일종의 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함께 오기로 했던 다른 사람같은 경우

이유는 모르겠으되 북측에서 통행증 발급을 거부했다고 한다.

가을걷이를 끝낸 임진강변 들녘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난 육로를 통해 개성에 방문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하는 10시부터 14시30분까지 무얼 볼 수 있을지 잔뜩 휘저어진 상태였지만, 우아한 날개짓을 뽐내는

새떼들을 보며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여차하면 총 맞는 거 아닐까, 북한사람들이 다시 경직되었다고

하던데 자칫 맘에 안들면 못 들어가거나, 혹은 못 돌아오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과 설렘이 교차했다.


이곳 남한 최북단의 마을, 얼마전 가봤던 장단콩 마을을 포함한 파주 근방의 마을은 모든 세금이 면제된다고 한다.

게다가 병역의 의무 또한 면제된다고 하니..논밭에 나가든 마을 밖 마실을 나가든, 혹은 새로운 트랙터나 차를 사든

일일이 군인들에게 알리고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 쯤은 감수할 만 하지 싶다. 아닌가..?

남북출입사무소 앞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차들이 열맞춰 서있었다. 한대씩 들어가는 게 아니라, 대략 삼십분

단위로 끊어서 한꺼번에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아침에 지각만 안 했으면, 사무실 들어가서 "개성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서 차를 타고 바로 개성에 다녀오는 경이로운 그림이 나왔을 텐데..

늦는 바람에 지하철 역 앞에서 픽업당해버렸다. 개성간다는 말을 마치 옆집 철수네 가듯 별일 아닌 것처럼

무심하지만 시크하게 내뱉는 그런 멋진 그림은 그래서 다음 기회로.

남북출입사무소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바글대는 게, 그냥 무슨 대합실쯤 온 느낌이다. 1층에선 사람들이

출입증 신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고, 2층에는 이제 오늘 다녀올 사람들이 출발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북출입사무소의 광고판은 계속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는데, 예컨대 컴퓨터 반출하면 혼난다~

라는 이야기. 군수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 통제라는 차원에서 노트북이던 데스크탑이던 컴퓨터 반출이

금지되어 있댄다. 대부분의 사무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요즘 세상에,  개성에 가서 일하시는 분들이 좀 많이

불편하겠다 싶었다. 게다가 몇가지 금지품목이 더 있었다. 정확치 않은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배율 10배 이상의

망원경/쌍안경, 휴대폰과 충전기, 160mm이상 렌즈의 카메라, 그리고 시집과 소설책, 종교서적 등이었다.


휴대폰은 북측 주민들이나 공원(북에서 직원을 '공원'이라 부르는 건 중국식이지 싶다, 꽁위엔)들 손에 넘어가면

자칫 영화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문득 받은 전화 건너편의 사람이, 내레 북조선 인민입네다, 이렇게.

그리고 시집과 소설책은 다소 의외인데, 자본주의적 문화가 담겨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여성의 나체나 누드가 담긴 책도 반입 불가.

또다른 잔소리는, 모든 식물류, 그리고 흙이 부착된 식물 반입금지라는 국립식물검역원의 안내가 있었다. 이런

경고가 좀더 절실한 건 역시, 지금 여기선 사람들이 육로를 통해 외국에 다녀오는 거니까 그렇지 싶다. 비행기를

통해 먼거리를 왔다갔다 하는 거라면 좀더 관리가 편하겠지만, 그냥 자신이 집에서부터 타고 온 차 그대로 갔다가

오는 거니까..암만해도 좀더 의뭉스런 노림수들이 먹힐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개성을 포함한 북한 남부지역엔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는데, 그 징후 중 하나는 '무기력증'이라는 안내에 살짝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렇다면 나는 말라리아 초기 징후가 하루에도 몇번씩 수시로 도지는구나. 가장 좋은 예방책은

모기에 물리지 않는 거라는 다소 무책임해 보이는 설명에 분개하려다가, 지금같은 때엔 말라리아 염려는 없다는

일행의 설명에 급격히 평온해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손씻기 등 개인위생에 철저하란 이야기는 잘 듣기로 했다.

2층 한 켠에는 저런 사물함이 있고, 가기 전 이런저런 짐들을 넣어두고 있었다. 이런저런 책들이 들어있는 가방과

함께 핸드폰을 잠시 꺼두고는 함께 넣어두었다. 천원, 오백원짜리 두개로 문이 잠기는데 잔돈이 없어서 맞은편

북한상품 판매소 아줌마한테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나중에 짐 다시 꺼낼 때 돈도 돌려받나요, 하고 여쭈니까

그래서 어디 장사가 되겠냐고, 공짜가 어디 있냐고 타박하셨다. 나는 혹시 이것도 일종의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로 간주해서 정부가 지원해주는 건 줄 알았지만, 역시 공짜는 없는 자본주의 세상이다.

손에 카메라만 든 채로, 한결 홀가분한 몸으로 출발 전까지 좀더 둘러보기로 했다. 1층에는 우리은행이 있어서

원하는 사람들은 달러화로 환전을 해갈 수 있다. 개성, 평양과 금강산 지역에는 달러화가 통용되며, 기타 지역에는

유로화도 통용된다고 하는데, 원화는 안 받아준댄다. 혹자는 미국과 극렬히 대치하고 있는 북한이 달러 아니면

안 받아주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비웃듯 말하기도 하지만 글쎄, 보기에 따라서는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는 행정이나 각종 인허가, 법제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통일부 산하기관으로

생각해도 될 거 같은데, 여기 남북출입사무소 2층에는 도라산 출장소가 나와있었다.

출발 전 약 25분에 걸쳐서 방북교육을 받아야 한다. 10분 정도 동영상을 보며 개략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교육을

들은 후, 나머지 시간은 사무관이 그 내용을 보완하고 질문을 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화해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자는 첫 멘트가 다소 생경하게 들렸다. 10년간 나름대로 진지하게 발전해 온 남북관계가 이렇게 순식간에

얼어붙고 퇴행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욱 그간 남북경협을 통해 쌓아온 경제적 연결고리가 소중한

게 아닐까 싶다. 꼭 그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기능주의적인 기대가 아니라 해도,

남과 북 모두에서 이전의 공고했던 '국가' 행위자 아래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생겨난다면 최소한 파국은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올라가지 않을까 해서.

정말인지 모르겠는데, 최근 방북했던 사람 중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병세를 물었다가 즉시 추방당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왠만하면 민감한 이야기는 피하되, 꼭 해야 하는 경우는 이런 호칭을 써서 말하라고 했다. 대통령님...이라...

국방위원장님이 아니라 국방위원장인데, 대통령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대통령 자체로 이미

존칭인 거잖아. 괜시리 걸어보는 딴지인지도 모르지만, 어디 가서 우리 MB대통령님은,(꼭 MB가 아니라 해도)

우리 대통령님은 어쩌구저쩌구, 이렇게 말하는 거 웃긴다. 왠지 우리 대통령님께서는..이라고 말해야 할 거 같다.

금강산 관광이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남북간 통신선도 얼마나 오래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노후화되고 있어 서울을

떠나 개성으로 향하는 걸음을 방해하고 있다. 통신선은 노후화하고, 이산가족분들도 고령화하시고, 그리고 (전쟁의

기억을 잊어간다고 한탄하는 것만큼이나)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기억도 휘발되고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포스터에 등장했던 도라산 역 앞의 철마는 워낙 부식이 심해져서 자칫 폭삭 부스러져 내릴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포스코에서 5억원을 들여 복원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오랜, 아주 오랜 휴전 중이다. 그리고 그 휴전 기간동안

두 나라는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외면한 채 기형 내지는 불구가 되어가고 있다. 시간의 세례를 받아 늙고 낡아가는

것들은 죄가 없을 거다. 죄가 있는 것은, 그러한 기형화된, 불구화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득을 보는 집단 아닐까.

남북간 출입만을 규율하고 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영어나 한자로 병기되어 있지 않아 그 정확한 뜻은 추측하는 수

밖에 없지만, 입경, 출경은 아마도 거의 99%의 확실성으로 경계 경자를 쓴 出境, 入境이라는 한자를 쓰지 않을까

싶다. 설마 서울 경자를 써서 出京, 入京이라고 쓰지는 않을 테고. 국경을 넘어선다는 의미일 거다. 한반도라곤

하지만 막상 대륙에 이어진 반도라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은 여지껏 없었던 게 사실이다. 단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거나, 부산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거나. 그런데 이제 이렇게 땅을 밟으며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예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국경이 아니라 다른 말로 바꾸지 모.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영토의 경계를 넘는 경험.

남북출입사무소에 붙어있는 포스터. 흰색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고 머리를 야물게 빗어올린 북한 아가씨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된 개성공단, 세계로 미래로라..사실 개성공단은 평소 내게 일종의 딜레마를 던지기도 했었다.

마치 절대빈곤선 부근에서 허덕이는 제3세계 아이들을 부려서 커피를 따게 한다거나, 낮은 임금을 주며 잡일을

시키는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안 서듯이 말이다. 개성공단 혹은 북한의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해서 가격경쟁력을 부활시켜 한국의 부, 혹은 한국 기업들의 부를 축적한다는 건 일종의 윈-윈일 수도

있겠지만..이미 우리 사회의 노동자층이 정규직,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이주노동자) 등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하나 저임금노동자의 공급처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스럽기도 했다.

2층 오른켠에는 북한상품 판매소가 있고, 비매품으로 전시된 북측 도예가의 작품들과 수십년은 묵은 듯한 더덕,

상황버섯 등으로 빚은 술, 그리고 제1차 남북정상회담 기념 도자기가 놓여있었다. 한 차례 정상회담으로 뭔가

경천동지할 일이 급박하게 전개되리라고 기대치는 않았지만, 뭔가 많이 바뀌었다 싶으면서도 역시 또 뭔가가

허전하다. 당장 불과 작년에 있었던 제2차 정상회담은 그 시기와, 결과와, 의미 등에 있어 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결국 기억조차 희미하게 지워지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예전에 어디에선가 북한술을 파는 걸 봤었을 때는, 고작 몇 종류 안 되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이런 두 줄짜리

진열대를 두 칸이나 차지한 채 늘어서 있다. 학교 앞 '그날이 오면' 서점에서 운영했던 '미네르바'였던가, 그 찻집서

한과와 함께 백두산 들쭉술을 마시면서 학회 세미나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술 참 맛있었던 거 같은데 뭐라도

한 병 살까 하다가 말았다.

이게 북한에 들어가기 위한 비자 역할을 하는 출입증이다. 눈길을 끌었던 건 파란 색으로 그려진 한반도 지도에도,

밑에 스탬프 모양으로 만들어진 엠블렘에도, 한반도 등허리 건너 편 동해바다에 점 두 개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거의 비등한 사이즈로 그려져 있는 저 점 두 개.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한반도 그림을 그릴 때 저토록

선명하게 독도를 표기했던가 싶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독도를 저렇게 뻥튀기한 사이즈로까지

부각시켜서 그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또, 혹 남북간에 쓰이는 이런 출입증에만 쓰이는 거라면 괜히

못난 애비가 집안에서만 위세피우는 식인 건 아닌가 싶어서 의아하기도 하고.

출입증과 함께 받은 방북증명서를 보여주고 세관을 통과했다. 방북증명서는 주민등록증처럼 생긴 플라스틱카드로,

유효기간이 5년쯤 되는 복수 여권인 셈이다. 반면 출입증은 북한에서 돌아올 때 반납하게 되는 단수 비자인 셈.

수속을 마치고는 남북출입사무소 뒷쪽 문에서 차를 기다려야 한다. 차는 운전기사 한 명과 함께 별도의 수속을

밟고 이 곳에 와서 다시 일행들을 태우고 출발하게 되는 식이다.

개성, 이라는 표지가 선명한 뒷문어귀에서 한 할아버지가 고개를 떨구고 계신 모습을 보았다. 지난 세월에 닳고 또
 
다듬어져 표정조차 가늠키 힘든 얼굴을 떨구고 상념에 젖은 것처럼 보이셨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할아버지의 속내엔 무슨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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