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받은 프라하산 고양이 한 마리. 자그마한 비닐백 속에 담긴 채, 빨간 끈뭉치랑 놀고 있었다.

비닐백에서 풀어놓으니 앞다리도 움직이고, 뒷다리도 움직이고. 세모꼴 귀만큼이나 쫑긋 선 꼬리가 귀엽다.

가만히 보면 표정이 익살스럽다. 코를 벌름벌름대면서 금방이라도 냐아~ 할 거 같다.

빨간 끈을 완전히 감아 버렸더니 살짝 실눈을 뜨고 나를 흘기는 듯한 저 고냥이스런 표정.

요새 보고 있는 책에 갈피해 넣었다. 하나의 땅에 사는 두 개의 민족 이야기다. 쉽진 않지만 꽤나 재미있다는.

실 끝을 부여잡고 있는 고양이의 자세가 왠지 굉장히 절실하다. 실을 놓느니 죽어버리련다, 정도의 결기랄까.

다른 쪽 끝, 고양이에겐 마치 세계의 반대편 끝이라고나 느껴지려나. 단정히 주저앉은 실타래.

내 선물 말고도, 집에 하나 새로 생긴 꼭두각시 인형. 손발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데 심지어는 걷는

모습까지 '레알' 재현이 가능하다.


 
문득 울린 전화기, 시간은 새벽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도 사무실과 행사장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 버럭버럭할 기운 따위는 이미 엥꼬난지 오래. 행사장 세팅이 완료되려면 세네시까지 되어야 할 것

같아 이미 호텔에 방까지 잡아두고 다음날 입을 정장까지 챙겨온 채 행사장서 일하고 있던 참이었다.


전화기 너머 친구는 술이 잔뜩 올라있었다.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어메리칸 드림 따위가 아니라, 그냥 여기는

아닌 것 같아 사람답게 인정받으며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탈출한다고 했다.

늘 그시간쯤 술기운이나 하다못해 밤기운이라도 조금 빌어 느슨하게 전화를 주고 받는 녀석과 나인지라 다른

때와 달리 바짝 곤두선 내 목소리가 영 거슬렸나보다. 넌 뭐하고 있냐고, 일욜밤에 여태 일하고 있었냐고

묻는다. 오랜만에 오랜 친구와의 통화인지라 불끈 솟은 기운을 빌어 씨댕씨댕, 투덜거렸더니 이 녀석, 그게

너의 현실이다. 이런다.

밤 늦게까지 일하는 넌 현실을 살고 있구나, 난 내가 사는 시공간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운운. 혀꼬부라지고

억지섞인 그건 분명 '꼬장'이었지만, (그의 말에 따르자면) 내가 살고 있다는 현실의 황량함과 각박함, 그리고

그가 살고 있다는 현실의 비현실성 혹은 다른 의미의 우중충함 때문에 뭔가 날카롭게 다가왔다.

12월 2일에는 상담회와 컨퍼런스, 6일/7일에는 또다시 국제컨퍼런스. 파스칼 라미다 웬디 커틀러다 나름

굉장하다는 사람들이 온 자리여서 영 정신사나웠던 거다. 게다가 여전히 자유무역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교조적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였어서 더더욱 맘에 들지 않았었다. G-20정상회의로 이어지는 기간 내내, 아니

그 이후로도 계속 한국정부는 70년대 박정희식의 '수출입국', '자유무역만세' 따위 입장을 고수할 게 뻔하다.

외화내빈. 내수시장은 말라붙어가는데 대체 누굴 위한 무역인지. 언제까지 무역규모 몇 위네 얼마네 따위

숫자놀음으로 후발국 열패감을 위무할 건지. 어쨌거나 이게 (그의 말에 따르자면) 나의 현실. 머릿속의 생각과

관계치않고 밥벌이를 위해 조직 내 부품으로 일하고 있는.

파직파직 조각나 버린 퍼즐들이 사실 딱 아귀가 맞아 떨어질 거라 믿는 건 딱 하나의 이유에 근거한다. 내가

얼마만큼 돈을 주고 산 거니까. 답이 나오는 퍼즐을 위한 대가로, 일정액을 지불했으니까. 그렇지만 실은 그

걍퍅한 자본주의적 마인드, 등가교환의 마인드는 대개의 현실에서 작용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 친구가 맞추고 있는, 혹은 맞추다가 말고 에이썅 안해, 이러면서 다시 흐트려버린 퍼즐이나, 내가 궁시렁

궁시렁대가면서도 어찌어찌 맞춰나가는 듯 보이는 퍼즐이나, 별로 답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는 그에게 비친 내 '취직에 성공한' 모습, 혹은 기타 이러저러한 것들에 비추어 자신을 보겠지만, 나 역시

그의 호방함, 여전히 꺽이지 않는 자신만만함, 그리고 지를 수 있는 용기, 그러저러한 것들에 비추어 나를 보고

있다. 그는 나를 통해 그에게 아직 안 갖춰진 것을 보고, 나는 그를 통해 나에게서 휘발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본다. 현실과 비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 그리고 또하나의 현실이다. 각자도생중인 각자의 현실.

종종 세상이 장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뭐하나에도 진지한 열의가 생겨나지 않고, 그냥 엔간한 것 웃어넘기고

재미있는 경험했네, 이렇게 관찰하듯 딴 사람 이야기하듯 넘어갈 수 있는 때가 그런 때다. '재미있게'라는 말이

담는 경박함이 그런 장난스러움에서 나왔을 수 있지만 외부에 너무 휘둘리지 않고 바보같이 흥분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 싶다.


반면 가끔 세상에 너무 몰입해서 산다 싶어 경계하게 될 때도 있다. 세상이란 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들,

사람들, 그런 외부의 것들을 말함이다. 바보같다 생각하는 일이지만 어느 순간 문득 너무 깊이 발을 들였다

후회할 만큼 들어와버리는 경우도 있고 한발만 떨어져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바싹 붙어 생각한

나머지 쓸데없이 흥분하거나 맘상하게 되는 경우다.


회사 이야기, 일 이야기를 길게 쓰는 건 그 징조다. 바보같은 일에 너무 많이 에너지를 소모한 두세 주였다.

어쨌거나 그 친구에게 담날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미국은 안 간댄다. 그런 거다. 심각해지지 말고, 너무

진지하지 않게, 장난치며 놀듯이.




누구를 기다리던 길에, 손에 쥔 카메라가 심심했다.

눈앞엔 4차선 도로, 버스와 승용차들이 씽씽 소리내며 달리기도 했고, 더러는 빨간 불에 걸려 멈춰서기도 했다.

딱히 뭘 보겠단 의지없이 내던져진 시야에 보이는 불빛들의 일렁임, 이런 건 2004년 이집트에서도 봤었다.

그렇게 시작된 카메라 장난질.

빨간불빛 노란불빛 가득 담긴 페인트통에다가 손가락 한두개 푸욱 꽂아넣고는,

탐스러운 불빛을 뚝뚝 흘려가며 사진 위에 처덕처덕. 쭈우욱~ 길게 그어버린 사진들.

문득 인도에 정차한 오토바이가 눈에 띄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4륜으로 개조된 오토바이 위에 얹힌 양철 상자들.

보다 정확히는, 양철 상자들 위에서 너울너울 춤추고 있는 형형색색의 불빛들.

죽일 놈의 수전증...삼각대가 이래서 필요한가부다.

그 와중에도 얼추 찍혀나온 양철판 위의 불빛들이 무슨 도깨비불같은 궤적을 보였다.

그나마 좀 초점이 맞았다 싶은 건 양철판 위에서 뛰노는 불빛들이 별로 신나보이지가 않는다.

좀더 명랑하게 뛰어놀아보란 말이다~ 이리저리 마구 튀어올라 보라구.

동심원이라고 해야 옳을까, 나무 그루터기처럼 한쪽에 치우친 나이테를 보여주는 빛무리들.

뭔가 정신놓고 보다보면 뺑글뺑글 눈이 따라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뺑글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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