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즐기는 해외여행 4, 외국 분위기 물씬한 마을(윤성의)-

 


* 2016. 8. 19(금)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부산 감천문화마을, 4년만의 재방문.)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돌아보고 싶은 한국의 이국적인 여행지는 부산의 산토리니, 혹은 마추픽추라고 불리는 감천동 문화마을입니다.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이쁜 파스텔톤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켜켜이 오붓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페루의 마추픽추처럼 가파른 산경사를 따라 층층이 세워진 건물들이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이런 별칭이 생긴 마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을 찾았던 오년전만 해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놀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님께 가자고 해도 전혀 모르셨거든요. 감천 문화마을, 태극도마을, 아니면 감정초등학교 앞으로 가자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전혀 모르셔서 네비게이션을 켜고 직접 안내해 드려야 했습니다. 도착해서 돌아봤을 때도 외지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였구요. 그렇지만 올해 다시 다녀온 그곳은 이미 꽤나 말랑말랑하게 상업화된 분위기랄까, 많이 알려진 관광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이 문화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건, 산비탈을 따라 쭉 올라세워진 달동네 마을이 낡고 허름해진 위에다가, 예술가들이 채색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조형물도 설치하며 마을 주민들과의 협업으로 일군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예전에 왔을 때보다 제법 여기저기에 유쾌한 조형물들이나 벽화들이 늘어난 것도 보기 좋았고, 곳곳에 공방이나 까페,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나는 것도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표시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관광객들을 인도하는 화살표는 곳곳에서 발견되어 길을 잃거나 엄한 데로 빠지기도 더욱 쉽지 않아졌습니다. 굳이 길을 비틀어 다른 곳으로 가도 금세 어디선가 안내를 발견하게 되어 내심 안심도 되고 했지만, 그런 친절한 화살표 아래에도 이 곳의 풍경은 묻어납니다. 가파른 경사길을 따라 내려가면, 이 곳에 사시는 할머니 몇분이 따뜻하게 덥혀진 시멘트 계단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앞서 걷고 있던 두 여학생들에게 뭐라뭐라 촬영하기 이쁜 데나 전망대를 알려주시는 분도 계셨고, 우리는 찍지 말라며 굳이 자리를 피하려 하시는 분도 계셨으며, 여기 뭐 볼게 있다고 이리들 기어와 귀찮게 구냐고 한소리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래도 골목 곳곳에서 만나는 길냥이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한발 앞에서 알짱거리면서 길앞잡이를 자처해주기도 하고, 곳곳에 숨은 자그마한 벽화나 센스넘치는 조각들은 감천문화마을의 미로처럼 얽힌 골목에 숨겨진 보물들입니다. 산비탈을 따라 다랭이논을 일군 사람들, 그리고 다랭이논처럼 비탈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그네들의 파란 네모집들. 빈틈없이 공간을 구획한 야트막한 옥상들은 그대로 빼곡한 모자이크가 됩니다. 부산 앞바다로 그대로 흘러내려갈 것만 같은 기하학적인 문양들입니다.

워낙 경사가 가팔라서, 굳이 골목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몇개 건물들만 슥슥 지나치면 금방 산아래 아스팔트 차도로 내려올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연두빛 분홍빛 파랑빛 페인트들이 골고루 이쁘게 칠해진 집들이나 공중화장실처럼, 그 사이로 놓인 시멘트 계단을 자근자근 밟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빛깔따라 조금이라도 화사해진다면 좋겠습니다.

다만 '산토리니'마추픽추란 이름이 갖는 묘한 설레임과 이국적인 향취, 그 별칭을 가벼운 마음으로 붙여주기엔 여전히 이 곳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가볍지가 않을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건물들의 군집이 이루는 그 전체 그림만을 보고 감상하며 '산토리니' '마추픽추'니 하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좀 실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니까요. 그곳에 사는 분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4년만에 다시 돌아본 부산 감천문화마을, 부산 지스타 출장에 뒤이어 시간을 따로 빼는게 쉽지 않았지만서도.


부산 감천 문화마을의 껍데기, '부산의 산토리니'라고들 하는.

부산 감천 문화마을의 속살, '산토리니'란 별칭은 내려놓는 게 어떨지.


2011년 11월쯤 돌아본 소감으론, '산토리니'라는 당치도 않은 별칭으로 이 동네를 치장하는 건 불편하다는 거였는데,

막상 감천마을로 향하는 부산지하철에는 이제 '부산의 마추픽추'라는 더욱 거창스런 문구로 홍보중이더라는.




그새 꽤 많이 바뀐 입구에 조금 놀랐다. 이전보다 훨씬 말랑말랑하게 상업화된 분위기랄까, 그새 많이 알려진 건 알고


있었지만서도 이렇게 뭔가 관광지화된 느낌까지 들 줄은 몰랐다. 


그래도 뭐, 사람들이 많이 돌아보는 입구쪽의 큰길가나 그렇고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영락없다. 4년전의 모습들이다.


예전에도 저렇게 외딴 성처럼 뜬금없이 우뚝 솟은 빌딩이 있었던가.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던 건물들이 저 앞에서


격류에 휘말리듯 돌돌 휘감기는 듯한 환각이 보이는 듯.


빽빽하게 슬레이트 지붕을 겯고선 건물들 사이로 이어진 길들, 이전에 비해 동네주민분들은 외지인들이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데 훨씬 날카로워지셨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골목 곳곳에서 만나는 길냥이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한발 앞에서 알짱거리면서 길앞잡이를 자처해주기도 하고.



곳곳에 숨은 자그마한 벽화나 센스넘치는 조각들은 감천문화마을의 미로처럼 얽힌 골목에 숨겨진 보물들.


때로는 이렇게 파란 하늘로 난 파란 대문 앞에 서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까지 사람을 홀려내는 여시같은 고양이를 만나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이렇게 씁쓸한 '긍정 메시지'를 보기도 하고. 긍정적이 되라는 말처럼 알맹이없는 무책임한 말이란..


당장 이곳은 '산토리니'도 '마추픽추'도 아닌, 빈곤과 난개발이라는 거미줄에 얽힌 채인 현재의 생활터란 말이다.


이런 곳을 관광지화한다, 는 마인드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을까. 물론 그에 대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 역시도 자유롭지 않은 질문이다. 가난한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밀면서도 진부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으려면.



산비탈을 따라 다랭이논을 일군 사람들, 그리고 다랭이논처럼 비탈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그들의 파란네모집들.


빈틈없이 공간을 구획한 야트막한 옥상들은 그대로 빼곡한 모자이크가 된다.


다소 답답한 풍경에 잠시 쉬었던 까페의 하늘을 한 장. 샛노랑 파라솔 귀퉁이가 살짝 뭉개진 것도 정감있다.



부산 앞바다로 흘러내려갈 듯한 기하학적인 문양들.



그리고 에피톤프로젝트의 '유실물 보관소' 앨범 커버랑 비슷한 느낌으로 찍어본 사진. 그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사방으로 펼쳐진 전깃줄이지만서도.


그래도 이런 식의 유머러스한 벽화들이 늘어난 건 재미있는 포인트 중 하나.


그리고 곳곳이 새로이 단장중이고,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늘어난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공방이나 기념품점이나


까페거나 게스트하우스겠지만, 이 곳의 주민들에게 실제로 좀더 삶에 도움이 되는 방식이면 좋겠다.





부산 감천 문화마을의 껍데기, '부산의 산토리니'라고들 하는.


이전 포스팅에서는 그래도 최대한 '껍데기'의 아름다움, 전체적인 외견상의 풍경을 담으려고 했지만 곳곳에서 물이 새듯

현실의 신산함, 고단함이 묻어나는 걸 피할 수 없었던 거 같다. 그치만 사실 그 몇겹의 페인트칠로 달동네의 가파른 경사와

그만큼 가파르게 짊어진 무게감이 가려질 수 있을까. '산토리니'란 이름이 갖는 묘한 설레임과 이국적인 향취, 그 별칭을

갖기엔 여전히 이 곳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가볍지가 않다. 그런 헛되고 헛된 별칭 따위, 자꾸 그렇게

부를수록 사람들은 껍데기만 구경하고 그 안의 사람들을 잊지는 않을까 저어스러울 뿐이다.


풍경 안에 최대한 사람 냄새를 담으려 했다는 핑계로, 나 역시 카메라를 들어 풍경을 담았지만 이건 참. 예의가 아니다.


온통 색바랜 채 아귀힘조차 잔뜩 풀려버린 듯한 빨래집게들이 때가 꼬질꼬질한 빨랫줄에 턱을 괴고 매달려 있었다.

태극기와 무궁화가 주렁주렁 박혀있는 깃발대. 왜 저것들이 보이는 풍경은 늘 적당히 촌스러워 보이는 걸까.

골목길 한켠의 구멍가게 하나 겨우 차릴법한 공터에 윗몸일으키기용 기구와 자전거, 아령 두개가 놓였다. 그리고 이름붙기를,

"운동하는 곳 소변금지". 아닌 게 아니라 적당히 술이 오른 사람들이 슬쩍 가로등 불빛을 피해 바지춤을 내리기에 딱 좋은 곳.

온통 불룩불룩 부풀어오른 슬레이트 지붕 위의 커버. 의도한 건지 아니면 가스같은 게 찬 건지 모르겠지만, 롯데월드어드벤쳐의

그 펑펑 소리가 울리는 가짜 성벽과 동굴벽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곳이 뭔가 7,80년대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찍기에 맞춤한 세트장 같단 생각이 계속 들어서일까.

화려한 몸빼바지와 셔츠가 내걸린, 벽과 벽과 슬레이트지붕으로 둘러싸인 채 한줌도 안되는 하늘 아래 바람을 기다리는 곳.

계단이라고 반듯하게 만들어졌다거나, 보폭을 감안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적당히 시멘트를 개어서 적당히 척척,

발딛을 곳만 층층이 만들어주면 끝. 그래도 이 황량한 풍경을 견디게 해주는 건 곳곳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꽃화분들.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그 좁다란 골목을 따라 쇠봉을 두개 세우고는 여차할 때 빨래 거는 용도로도 쓰기도 했다.

이런 풍경들. 누군가에겐 그냥 조금 '불편'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본인이 아니라면 그렇게 말할 일은 아니다.

자칫 우범지역으로 화하기 쉬운, 사람들이 떠나간 빈집들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는 낡고 허름하고 가로등도 귀한

골목인지라. 범죄가 발생했을 때 바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해둔 위치 정보. 근데 이런 건 산에서 조난당했을 때나 쓸법한

방법 아닌가. 말하자면 여긴 동네 야산보다 높은 수위의 안전 장치가 요구되는 곳이다.

삐뚤빼뚤 대강 그어진 선들이 건물을 이루고, 옹벽을 이루고, 길가에 앉아계신 할머니 몸위로 쏟아져 내릴 듯한

시멘트 덩어리를 윤곽짓고 있었다.

어느 집과 집 사이, 여지없이 가스통이 세워진 그 틈새 사이에 지압 효과까지 겸한다는 훌라후프가 박혀 있었다.

저 커다란 훌라후트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방안에서는 택도 없을 거 같은 조그마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곳에서, 아마도 사람들의 운동장은 그네들의 집 옥상이 아닐까. 파랑색 수조통이 거개의 공간을 차지한.


이런 정도의 가파른 비탈, 한결같은 그 비탈 위에 건물들이 쓸려내려오다 가까스로 멈춘 듯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 감천동 문화마을이란 곳에 붙은 '부산 산토리니'라는 별칭은, 그리고 '문화마을'이란 이름조차, 어쩌면

이렇게 날것의 시멘트 위에 살짝 엉켜붙은 석회 같은 거 아닐까 싶다. 언제고 쉽게 씻겨나갈 수 있는 분칠.

그 아래에서 시멘트는 여전히 거칠하게 차가운 냉기를 내뿜으며 퇴락해 가고 있는 거고.

신속하고 전화비는 무료,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112를 안내하는 저런 거창한 광고 문구라니.

이곳저곳에 내걸린 빨래들이 바람에 함부로 휘둘리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몸을 내어맡긴

빨래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허탈해지는 느낌마저 들더라는.


한때 그래도 마을의 가게였을 곳, 위에 덮였던 차양은 전부 뜯긴 채 앙상한 뼈대만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바람에

희롱당하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쇠가 삭아나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하는 걸까. 그리고 언제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되었을까.


외벽이 없는 계단이란 건, 굉장히 위태해 보인다. 더구나 이곳처럼 경사가 급한 마을에서 아랫쪽으로 한없이

굴러떨어질 수 있는 곳으로 휘감아 돌아가는 계단이란 건.

야트막한 집들 사이로 불쑥 솟아있는 저 고층 아파트는, 왠지 서울로 치자면 강남의 타워팰리스랄까. 그런 위화감.




위태한 계단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이 기우뚱해 보인다. 아랫쪽의 철사를 두른 장독 하나와 풀떼기가 심긴

항아리가 신기해서 요리조리 살펴보았는데, 좀체 그 커다란 장독의 쓰임을 알 수가 없다.

전봇대가 힘겨워보이도록, 사방팔방에 십육방위로 하늘을 쪼개고 있는 전선들.


이 곳에서도 곳곳에서 보이던 교회의 십자가, 첨탑들. 비탈길의 각도를 완만하게 버혀내고 산뜻한 페인트로 건물을

단장해줄 수 있다면야 약간의 '마약'은 꽤나 유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기도 훌라후프 하나가, 공사가 진행되다가 만 건물인지 아니면 부수다가 만 건물인지 모르겠으되 뾰족하니

위태롭게 튀어나온 철근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이 동네, 훌라후프 보급운동이라도 벌어졌던 건가.

우리누리공부방 가는 길, 무슨 사막처럼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나 했더니, 흙바닥인가 했더니. 온통 시멘트가 부어져

꽁꽁 굳어있던 시멘트바닥.

그리고 터키니 대만이니 일본이니 프랑스니, 글로벌한 국기들의 휘황하던 공부방 옆에 만들어져 붙어있던 타일들,

그곳에 씌여진 말들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당연한 거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이렇게 허물어지기 직전처럼 보이는, 폭삭 삭아버린 슬레이트 지붕이 바람에 날려갈까 시멘트 벽돌로 눌러둔 공간.

빨간 대야들이 온통 집밖에 전시된 채 비바람과 햇살에 바래가는 공간.

미용실에 붙은 스티커가 온통 잘근잘근 찢기고 터져나가도록 간판조차 바꾸지 못한 채 문닫은 공간.

그리고, 언제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사진들 속 사람들이 온통 하얗게 바래지도록 남겨지고 지체된 공간.

오락실조차 온통 기계들이 불을 끈 채 잠들어있던. 사람들의 생기나 온기를 바로 느끼기가 쉽지 않던 공간.


그런 것들이 이 곳, 감천동 문화마을이 감추고 있던 속살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건물들의 군집이 이루는

그 전체 그림만을 보고 감상하며 '산토리니'니 '마추픽추'니 하는 건 좀 실례가 아닐까 싶은 거다.

간판 대신 거북이 박제가 걸려 있는 가게도 있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원하면 저거 사가라고 걸어둔 거라며

친절하게 말씀해주시던 할머니도 계시고.


아, 그리고 이곳 감천동 문화마을이, 감천2동이, '부산 산토리니'가, 태극도 마을 혹은 태극마을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 1950년대부터 이곳에 형성된 '태극도'라는 종교 집단의 집단거주구역이 감천동 이 곳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 들어가서 '도인'께 들은 설명에 따르자면 현재 이곳 문화마을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 중에도 상당수가 여전히 '태극도' 신도인 '도인'이라고 하던데 진위 여부는 모르겠고.

감천동 문화마을,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다.

산토리니 따위 허명에 속아 이쁘게 담으려 하는 것보다, 그곳에 사는 분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게 우선일 듯 하다.

그리고 사실, '산토리니'라는 포장으로 이곳이 관광상품화되고 팔린다 치자. 지역경제에, 이 곳에 사는 분들에게

어떤 혜택이 얼마나 주어질까, 주어지기나 할까. 도리어 구경거리로 전락했다는,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망가뜨리는

건 아닐까, 그치만 또 이런 건 너무 앞선 걱정은 아닐까, 여러가지 고민들이 일어나는 건 결국.


어딘가로 가서, 누군가의 일상이 전개되고 있는 공간을 침범해서 렌즈를 들이대고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지극히도 이기적인 탓인지도 모른다.





첫째날 (해운대, 용궁사, 광안리)


9시 서울역 KTX 출발


12시 부산역 도착


1시 해운대 SEACLOUD 호텔 도착 by subway


1시 점심 @ 해운대 밀면전문점

2시 해운대(누리마루, 동백섬) on foot

 


3시 달맞이길 on foot

  * 용궁사 앞에서 맛본 부산오뎅의 정수!

4시 해동용궁사 by taxi


8시 저녁 @ 광안리 회타운 by taxi



둘째날 (자갈치시장, 국제시장(깡통시장 포함), 보수동책방골목, 감천동 문화마을, 족발골목)


11시 아점 @ 남포동 자갈치시장, 생선구이정식 by subway


12시 까페 @ PIFF 광장 on foot


14시 국제시장(깡통시장), 보수동책방골목 구경 on foot

16시 감천동 문화마을(a.k.a 태극도마을, 부산 산토리니...) 도착 by 택시




19시 광복동 40계단 도착 by 택시

 


20시 저녁 @ 부평동 족발골목 on foot 

 
21시 해운대 산책





셋째날 (태종대, 이송도마을)


9시 아침 @ 호텔 조식부페


10시 태종대 도착 by subway

12시 점심 @ 태종대 인근 돼지국밥

13시 이송도마을 도착 on foot


15시 부산역 KTX 출발

18시 서울역 도착.

 


* 실제 다녀온 일정에 기반해 약간의 수정을 거침.





대체 '부산의 산토리니'는 어디를 말하는 걸까.


부산에 '그리스 산토리니'마을처럼 이쁜 파스텔 톤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켜켜이 오붓한 마을이 어딘가 있다는 이야기는

계속 들었었다. 다만 그 어딘가가 정말 어딘지에 대해서는 인터넷 상의 정보가 워낙 분분하고 혼란스럽다고 느꼈던 게,

'부산 산토리니'로 찾으면 '감천동 문화마을, 태극마을, 태극도마을, 영도 흰여울길, 영선동, 이송도 마을..' 등등 굉장히

다양한 지명들이 쏟아져 나온 탓이다. 직접 가보고서야, 그 혼란스러움은 어느정도 정리가 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부산 산토리니 = 감천동 문화마을, 태극(도) 마을, 감천2동, 감정초등학교 골목..전부 같은 곳을 말함.

부산의 또다른 산토리니 = 영도 영선동 이송도 마을(영도 절영 해안 산책로)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노닐다가 택시를 타고 '감정초등학교'를 가자고 했는데, 기사분이 잘 모르신다. 왜 그 부산의

산토리니가 있다는 곳 모르세요, 해도 모르신다 하고 자꾸 감천초등학교 아니냐고 되묻기만 하시기에, 손가락을

바싹 여며서 내비게이션에 찍어드렸다. 그리고 도착한 감정초등학교 앞. 이 벽화사진은 이미 숱한 블로그에서

잔뜩 본지라 꼭 많이 와본 곳 다시 방문한 느낌이었다. 여기서부터 감정 문화마을, 혹은 '부산 산토리니'의 골목길이

시작된다고 했던가.

출발하기 전 우선 옆에 있는 안내지도 하나 찍어두고 출발. 빨간 길을 따라가는 게 정석이라는데 뭐, 골목길이란 게

가다가 내키는대로 요리조리 비트는 맛에 다니는 거니까 위치 확인만 할 정도로 참고할 생각이다.

문화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건, 산비탈을 따라 쭉 올라세워진 달동네 마을이 낡고 허름해진 위에다가, 예술가들이

채색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조형물도 설치하며 마을 주민들과의 협업으로 일군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입구는

제법 여기저기에 유쾌한 조형물들이 심심찮게 보이고 있었다.

입구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얼굴 모양의 새, 인면조들.


감천동 문화마을, '부산의 산토리니' 안으로 들어서는 길은 기본적으로 저렇게 생긴 화살표를 따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파스텔톤의 색색가지 물감으로 칠해진 건물 외벽에 절대 놓칠리 없는 크고 작은 화살표들의 무리가 지긋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골목은 좁았지만 말끔했다. 페인트칠이 위부터 아래까지 꼼꼼하게 칠해져 있었고, 골목 양쪽에 마주본 벽면의

색감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데다가 여기저기서 쉽게 눈에 띄는 꽃나무들이 분위기를 한결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야트막한 건물 위에서부터 슬몃 기어들어오는 분무기로 뿌린 듯한 햇살까지.

경사는 매우 가팔랐고, 이 곳에 사시는 할머니 몇분이 따뜻하게 덥혀진 시멘트 계단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앞서 걷고 있던 두 여학생들에게 뭐라뭐라 촬영하기 이쁜 데나 전망대를 알려주시는 분도

계셨고, 우리는 찍지 말라며 굳이 자리를 피하려 하시는 분도 계신듯 했으며, 여기 뭐 볼게 있다고 이리들 기어와

귀찮게 구냐고 한소리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렇지만 사진은 말이 없고, 찍고 나면 그뿐. 풍경속 할머니들의

등저리로 내려쏟는 부드러운 햇살이 노곤해 보인다.


낡고 녹슨 사다리가 단층 건물 옥상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인 듯 했다. 페인트칠이 잘 되어있는 벽면에 비해

벌써 많이 녹슬고 피곤한 모습이라 눈에 띄었다. 벽을 칠할 때 같이 칠했을 텐데, 생각보다 페인트가 오래 못

버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한번 칠해서 될 일이 아니다. 달동네의 고되고 신산한 풍경에 '산토리니'의

느낌을 부여하고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많은 페인트통이 소요될 거다.


골목을 걷다 어느 탁 트인 시점에서 내려다본 풍경. 다닥다닥, 서로의 어깨를 내주고 모서리를 공굴리며 세워진 집들이라

집 모양이 네모반듯한게 아니라 삼각형, 마름모, 사다리꼴..유치원생들 도형 공부하기 딱 좋겠다. 그런 분방한 집들이 버틴

틈새로 차마 길이랄 것도 없는 골목들이 이리저리 꺽이는 게 또 매력적이다.

그리고 나름 배합에 신경을 쓴 듯 연두빛 분홍빛 파랑빛 페인트들이 골고루 쓰인 집들, 그 사이로 놓인 시멘트

계단을 자근자근 밟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그 빛깔따라 조금이라도 화사해졌다면 좋겠다.

감천 문화마을, 이 '부산 산토리니'를 표방한, 혹은 '마추픽추'를 표방한 동네의 또 하나 특징은 온통 전선이 하늘을

달리고 있다는 점. 고작해야 이삼층 짜리 야트막한 건물들이 가파른 비탈 위에서 미끌리고 있는 와중에 우뚝 솟은

갸냘픈 전봇대 위에서 사방팔방으로 뻗는 전깃줄이 한뭉치다.

어느 집 슬레이트 지붕에 살짝 몸을 얹은 채 내려다본 풍경. 완만하게 휘어진 산비탈을 따라 맞은편 등성이에 비슷한

높이에 있는 집들이 보인다. 파란색 물탱크는 하나씩 죄다 옥상 위에 올린 건물들.

저렇게 사람 하나 지나기도 힘든, 지나면서 가방이고 겉옷이고 다 거칠하기 그지없는 시멘트 맨벽에 긁고 지나는

골목길을 품고 있기도 했다. 감천동 문화마을.

전깃줄이 사방으로 뻗은 하늘 아래, 조그마한 공간이 남아 푸른 빛이 맴돌았다. 사람과 건물과 골목이 온통

서로에게 한곁을 내어주고 살고 있는 듯한 풍경이 정겹기도 하고, 살짝 서글프기도 하고. 혹은 운치랄 수도.

빨랫감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여기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고, 골목을 다니며 만나는 건 커다란 카메라를

이고 진 외부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소리없이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런 빨랫줄에

도달하기 위해 밟아야 하는 네칸짜리 사다리가 앙증맞다.

여행객들, 관람객들, 관광객들을 인도하는 화살표가 곳곳에서 발견되어 길을 잃거나 엄한 데로 빠지기도 쉽지 않겠다.

굳이 길을 비틀어 다른 곳으로 가도 금세 어디선가 안내를 발견하게 되어 내심 안심도 되고 했지만, 그런 친절한 화살표

아래에도 이 곳의 풍경은 묻어난다. 누군가 내어놓은 쓰레기들, 그리고 누군가 써둔 '재활용 분리바람'이란 문구.

워낙 경사가 가팔라서, 몇개 건물들만 슥슥 지나치면 금방 달동네의 바닥 아스팔트 차도로 내려올 수가 있을 거 같다.

굳이 같은 높이에서 좌우로 돌아보며 이것저것 찾아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야, 저런 화살표 무더기들을 보고서

얌전하게 내려온다면 생각보다 금방 끝나버릴 '부산 산토리니' 투어가 될 듯.

그 길위에는 이렇게 아직도 생생하게 보랏빛깔이 살아있는 벽도 있고. 색색이 재미있게 칠해진 공중화장실도 있다.

멀찍이 가파른 옹벽 위로 차곡차곡 놓인 화분들도 보이고. 그 위로 분홍빛 상아빛 페인트칠이 곱게 된 건물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다. 그러고 보면 저렇게 좁디좁은 옹벽 위에 화분을 하나씩 끌어다 놓았을 사람은 누구였을까.


어느 집 앞, 온통 유리테이프와 누렁테이프로 발린 우체통 위에는 북어 한 마리가 제물로 바쳐져 있었다. 가게나 집에

들어오는 입구에 저렇게 북어 한마리를 걸어두면 복이 들어온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면 언젠가 티비에서 생활풍수,

어쩌구 내용이 나온 이후로 어머니도 변기 뚜껑을 잊지 않고 꼭꼭 닫아두셨었다. 그런 마음 아닐까.

이렇게 국자를 재활용한 듯한 풍차도 지붕 위에 얹어놓고 있는 집이 있는가 하면.

차갑고 거친 시멘트 벽면 위에 스마일 표시가 하얗게 웃고 있는 집도 있었고.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인 것처럼 비탈길 한 면에 위태하게 솟은 다용도 공간. 지붕조차 없는 그 옆면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져 달린 스텐레스 문짝과, 지붕 없이 그냥 흉내처럼 달려있는 문 아닌 문.

이렇게 부분부분 끊긴 채 담긴 사진으로는 감천동 문화마을, 혹은 태극마을, 태극도마을, 혹은 부산 산토리니라는

거창한 수식을 가진 이 마을의 풍경이 오롯이 담기지 않아서 아쉬울 뿐.

옹기종기 모여앉은 장독들, 위에 하나씩 얹힌 돌멩이, 시멘트덩어리, 벽돌 따위 모양과 형체는 다르지만 그런 다름조차

장독대 위에선 별달리 다툴 의미를 잃고 만다. 멀찍이 보이는, 이 골목들을 쏘다니며 사람보다 더 많이 발견했던 가스통.

곳곳에 잘 정비된 깔끔하고 귀여운 색감의 공중화장실이 있단 건 꽤나 인상적인 일이었다. 꼭 방문자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가파르고 좁고 불편한 달동네에 사시는 분들에 아주 실용적인 도움이 될 거 같아서다.

그리고 발견한 공부방 하나. 왠지 모르겠지만 일본, 터키, 중국, 프랑스, 베트남, 대만..온갖 나라의 국기가 펄럭이는 벽면,

그리고 각국의 언어로 쓰인 응원의 말들이 발길을 잡았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국기 아래 씌인 문구가 참 좋았는데.

"감천동, 난 너희들이 좋아. 그저 너희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 뿐이야." 미래에 대한 약속도, 현재에 대한 위로도 없이 그저

지금 이순간 함께 하고 싶다는 그 마음만으로 충만한 메시지. 그만큼 솔직하고 절절하게 느껴지는 거 같다.

아마 각국에서 봉사활동으로 왔던 교육 활동가들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그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꽤나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 보이는 '우리누리 공부방' 나무 현판 옆으로 보이는 에펠탑이니 뭐니 글로벌한 풍경을 보니 그런 거 같다. 이곳이 비단

부산 사람들, 혹은 한국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곳을 알고 챙기려는 사람이 있다는 훈훈함.

 

그렇지만 문이 닫힌 채 불이 꺼져있던 공부방, 아이들을 볼 수 없던 감천동 문화마을 어딘가의 골목에서 내려다본 풍경에

옥상에서 열심히 줄넘기를 하는 소녀가 잡혔다. 아이들은 전부 옥상에서 날아갈듯 맹렬하게 줄넘기를 하고 있는 걸까.


누가 여기를 '부산의 산토리니'라고 이름붙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편하고 럭셔리한 이름이 이 곳에 맞는 옷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산토리니를 연상케하는 파스텔톤의 껍데기는 말고, 좀더 골목을 헤집으며 살폈던 속살 사진들은 다음 포스팅에...


부산 감천 문화마을의 속살, '산토리니'란 별칭은 내려놓는 게 어떨지.







부산 중앙동 '40계단' 일대,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의 판자촌이 형성되고 부두 노동자들이 구호물자를 부리던 장소가

바로 이 일대라고 한다. 2004년에 당시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한 문화거리로 만들어 '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로

조성했다고 하는데, 그 계단을 오르는 길에 만난 아코디언 연주자의 찌그러진 중절모나 투박한 손매가 딱 그때 그시절,

고되고 허름한 삶의 편린을 보여주는 거 같다. 더구나 분위기를 띄우는 저 주황색 가로등 불빛까지.

길가에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는 다른 조각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여긴 '뻥 아저씨'의 뻥튀기는 소리가 금세라도

터질 듯 꼬맹이들이 귀를 꽉 틀어막고 있는 풍경이 담겼다.

그 외에도 1950-60년대 부산역이나 부산항 근처에서 쉬이 볼 수 있던 풍경들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해가 금방 저물어 더이상 찾는 건 포기하고 혹시나 몰라 동광동 주민센터로 올라가 보았다.

동광동 주민센터로 오르는 나선 모양으로 배배 꼬인 길, 360도가 한 바퀴니까 한 720도나 900도 정도 돌았다는

느낌이 들 즈음 주민센터가 나타났지만, 5/6층에 '40계단' 관련한 전시가 있다는 안내판만 버티고 섰을 뿐

문은 단단히 잠겨있더라는. 주민센터가 쉬는 주말, 연휴에는 운영하지 않는 듯 하다.

남포동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용두산공원, 롯데백화점 광복점 그리고 40계단에 이르기까지 올망졸망

모여있어 하루쯤 시간 내어 휘적휘적 걸어다니며 구경하기 딱 좋은 거 같다. 지도에 나와있는 곳들에 더해 택시를 타고

기본 요금 조금 넘어 도착하는 '감천동 문화마을'(태극도마을, 부산 산토리니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도 가면

하루 일정으로 딱 맞춤한 스케줄이 나올 거 같다.



어렸을 적 '아크로폴리스'와 '자금성', '타지마할' 같은 곳에서 콘서트를 벌이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를 인상깊게

눈여겨보고 그의 노래를 들었더랬다. 더이상 뉴에이지라는 단어로 한정지어질 수 없는 아티스트, 야니.

그가 이번에 한국에 와서 펼쳤던 공연, 그리고 지난 주말 '아크로폴리스' 콘서트 라이브 DVD로 울컥 격동해버린

마음을 달랠 겸 그의 명곡들을 엄선해보았다. 세계 각국에서 펼쳤던 콘서트 실황 영상과, 그에게 헌정된

아마추어들의 연주 영상과, 그리고 심지어 DVD 내용을 파일로 썰어낸 영상들까지. 야니는 때로는 콧수염을

기르고 때로는 말끔하고 때로는 턱수염까지 기른 모습이었지만, 연주를 하며 동시에 한 손으로 음표를

더듬는 듯한 그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놀림은 어디나 한결같다.


특히, 그의 노래 중에서 연습해서 꼭 쳐 보고 싶은 곡은 'one man's dream'. 그렇게 난해해보이지도 않으면서

굉장히 매력적인 음표의 진행이 멋지다. 단단하게 발밑을 딛어나가며 차츰 나풀거리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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