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다.


5년전, 일년반 기약하고 매달렸던 공부를 마치고 태국으로 놀러갔을 때부터 꽂힌 타투였다.

몇 군데 샵을 알아보고 샘플북을 뒤져보았지만 딱히 멋진 도안을 찾을 수가 없기도 했고

조금 무섭기도 하여 그때는 그냥 타투 대신 헤나로 만족하고 말았었지만, 헤나는 역시 일주일도

못 가서 뭉개져버리고 말았었다.


카오산 로드에 숙소를 정하고 나서 마음 내키는 대로 느적느적 놀기로 맘먹은 여행이었다.

눈뜨이면 일어나고, 대충 씻고 걸쳐서는 나가서 쌀국수와 캔맥주 하나로 아침, 오늘은 서쪽으로

걸어볼까 싶으면 서쪽으로 걷고, 동쪽으로 걸어볼까 싶으면 동쪽으로 걷고. 저녁에는 재즈바나

라이브클럽에서 공연을 보고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오렌지와 망고, 철지난 두리안까지 과일로

잔뜩 배를 채우며 가져간 책들도 다 읽고 다이어리도 꼬박꼬박 쓰고. 사진도 잔뜩 찍고.


그렇지만 이번에도 카오산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뜨인 건 역시 타투샵들. 돌아다니다 덥다 싶으면

에어콘이 빵빵한 샵에 들어가 샘플북을 뒤적거리며 맘에 드는 도안을 찾았다. 아쉽게도 대개가 무식하고

무시무시한 데다가 큼지막한 녀석들이어서 번번이 땀만 식히고 일어나길 수 차례, 드디어 맘에 드는

도안을 발견했다. 그렇게 커다랗지도 않고, '조폭'스럽지도 않으며, 평생 몸에 새긴 채 살아갈.


타투샵 전면에는 이런 경고문이 붙어있긴 했지만, 사실 위생상의 문제는 딱히 걱정스럽진 않았다.

내가 특별히 심장질환이나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타투 아티스트도 태국의 타투 대회에서

몇차례나 상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하니까 실력없고 장비없는 '야매'의 어설픈 솜씨로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있을 거 같지도 않고.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몸에 새겨넣을 순간이 다가오니까 살짝 긴장했다.

몸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 같은 거니까. 가볍게 생각하면야 어디서 사고로 죽더라도

내 시체는 손쉽게 찾겠구나, 식일 수도 있는 거지만 무거워지기 시작하면 한없어지는 거다.

회사에서 뭐라고 하진 않을까,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어떻게 보려나, 주위 여자들은 어떻게

보려나, 나중에 결혼할 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나중에 후회하게 되면 어쩌나.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고민, 주사맞기도 뜨악해하는 내가 일초에 구십번 다다다다 바늘이

찔러대는 타투머신 앞에서 괜찮으려나. 많이 아프진 않을까. 타투 아티스트가 본을 그리고

위치를 맞추어 내 몸에 본을 옮기는 와중에도 슬쩍 진땀이 났다. 새기다가 기절하지나 않을까,

발버둥치다가 바늘에 푹 찔려서 출혈과다로 급살맞는 건 아닐까 따위 망상이 시작됐다.

이미 돈은 다 냈는데, 걍 돌려달라고 하고 도망가버릴까.


근 한 시간, 재봉틀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움직이는 바늘이 파란색을 머금었다가 검은색을 머금은 채

몸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생각보다는 덜 아팠는데 특정 부위에 집중되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그치만 점점 아픔의 강도가 세지면서도 어느 순간 그정도 아픔에 만성이

되었는지 약간은 시원하다거나 자극적인 쾌감이 느껴지기에 이르렀고, 바늘 끝에서 그려지는 그림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며 선이 조금 엷다거나 저기 조금 색칠이 덜 되었다는 식의 지적질까지.


흔히 '낙인'을 찍힌 사람은 그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곤 한다. 만화에서든

성경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언젠지 모르지만 죽고 몸이 썩어질 때까지 변치 않을 그 낙인의 존재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메타포로 쓰이듯이, 타투의 무게 역시 정말 굉장히 무겁구나, 생각했다.


주어진 대로 쓰고 있는 몸뚱이에 내 의지로 결정한 뭔가를 그려넣고, 이 몸은 내가 장악하고

있음을, 이 몸에는 다른 몸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하나의 흔적이 있음을 말없이 보여주는 거니까.

내 몸에 대해서 남들이 뭐라고 하던 어떻게 보던, 그런 거 개의치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겠다는 조용한 저항 같은 걸 수도 있겠다. 최소한 내 몸만큼은 내 의지대로.


어쨌거나 이러저러한 의미 따위야 좋을 대로고, 이뻐 죽겠다. 이걸 찾으려고 몇 개의 타투샵을

뒤지고, 또 몇몇 권의 샘플북을 정독한 보람이 있었다. 이 그림을 새긴 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면 너무 과한 걸까. 최소한 ver.1.0에서 ver.2.0으로 렙업은 한 느낌.


I inked TATTOO.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었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 기형도, '가는 비 온다'

 *                                                  *                                                  *

빗방울이 톡......톡...톡, 톡톡, 번지다가 어느 순간 쏴아하고 쏟아지던 태국의 밤거리.

비가 번져나가면서, 번들거리는 불빛이 온통 사방으로 녹아내렸었다.
태국 여행 중에 어쩌다 보니 맞닥뜨렸던 전철의 마지막 종착역. 그 평행한 두 철길이 끊기는 곳에 적혀 있던 STOP.

그리고, 언젠가 술먹고 카메라를 덜렁대며 집에 돌아가던 길에 찍었던 시꺼먼 지하철 터널 속의 심연.

형광등이 찬란한 플랫폼이 끝나고 어둠이 불빛을 살라먹는 터널을 금지하는 '출입금지'의 푯말.
열반을 뜻하는 와불이 있어 열반 사원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는 왓 포. 46미터나 되는 거대한 와불상이 눈을 홉뜨고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는 곳이다. 왓 포는 또한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자 가장 커다란 사원이랜다.

오돌토돌한 머리가 무슨..손에서 갖고 놀며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그런 건강보조기구 닮았다. 온통 금빛으로 찬란한

불상인데, 왜 난 저게 정말 금일까 두께는 얼마나 될까 18K정도는 될까 요런 생각만 나던 걸까. 부처님 죄송염~*

미끈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부처님. 크기는 크지만 사실 디테일은 그닥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다리라고 쭉 뻗은

원통 두개를 붙여놓곤 끝이다. 어찌 보면 하반신 마비인 거 같기도 하고. 부처님 다시 죄송염~*

자개로 삼라만상을 표현했다는 부처님의 발바닥. 무슨 도장같이 파여져 있다. 이렇게 거대한 발바닥, 그리고 이런

그림으로 가득한 발바닥은 아마 이게 세계최고지 싶다. 그림은 하나하나 세밀하게 자개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하나씩 뜯어보아도 참 이뻤다.

거대한 부처님이 누워계신 방안에는 벽을 따라 쭈욱 헌금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왠지 저 항아리마다 동전 하나씩

빠짐없이 전부 봉헌하면 뭔가 소원성취 인생역전될 거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가방을 둘러메었던 어깨에는

땀이 흠뻑 젖었던 이 때는 8월..쯤이었던가.

왓 포의 바깥에는 이런 뾰족한 탑들을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었다. 딱히 열을 지어 서있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아무

곳에나 자유롭게 산개해 있다는 느낌. 저 기묘하고 이국적으로 생긴 탑이 하나만 덜렁 떨어져 있었음 얼마나

뻘쭘했을까. 배경처럼 층층이 세워진 왕궁의 지붕과 다른 것들과 맞물려 딱 어울린다.

이런 탑, 그리고 저런 문, 그 앞에서 지키고 선 거대한 석상까지..조영남 식으로 말하자면, 여기는 태국의 방콕,

왓포사원 앞마당입니다~* 타일을 하나하나 붙여서 저런 무늬를 만들고, 규칙과 배열을 만들어낸 것이 신기하다.

품도 엄청 많이 들었을 테고 시간도 그만큼 많이 들었을 거다. 하기야 과거의 사람들에겐 무던하고 참을성있게

몇십년, 한평생, 혹은 몇 세대에 걸쳐 일을 해낸다는 게 그다지 두렵거나 망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던 듯 하다.

요 쬐꼬맣고 귀여운 코끼리 모양의 수호상은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되었달까, 그 코끼리 코로 열린 문짝을 고정하는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근데 저렇게 바싹 말아올려진 코 모양이 영락없이 뭔가 힘껏 끌어당기는 모양새지 싶어

가만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났다.

다른 퉁퉁하고 묵직한 느낌의 수호상과는 달리, 상당히 얍씰하게 빠진 보디라인을 가진 이런 청동 수호상도 있다.

여긴 왓 포 사원과 인접한 다른 불당이었는데, 스님이 앉아 있는 자세가 워낙 다소곳하니 이뻤다. 무슨 일을 하던,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의 몸짓, 태, 이런 것들은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오랜 기간 연마한

발레리나의 손짓, 몸짓처럼 더없이 매끄럽고 우아하게 떨어지는 그 흐름과 분위기랄까. 스님은 부처님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 당신의 뒷태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 같았다.

금빛찬란한 좌대 위에 올라앉은 부처님 위에는 작은 양산도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보랏빛 꽃으로 온통 장식된

좌대 아래에는 국왕의 사진도 보였고 다른 스님들인 듯한 분들의 사진도 많이 놓여있었다. 조명의 효과랄까,

부처님은 그 모든 걸 지긋이 내려보고 있던 느낌.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청룡언월도를 꼬나쥐고 있는 걸 보니, 이 수호상들은 좀 최근에 만들어 세워진 것 같다.

저 수염은 왠지 '캐리비안의 해적2'에선가 나왔던 문어 수염 선장을 생각나게 한다.

저토록 정교하고 섬세한 문양들은 거리를 어느 정도 격하고 바라본다고 해서 디테일이 뭉개지지도 않을 뿐더러,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하나하나 박아넣었을지 절절이 느껴졌다. 돌출된 타일이래봐야 주변 것들에 비해 고작해야

몇 밀리미터 어간이겠지만, 그런 약간의 도드라짐으로 이런 입체감과 깊이를 느끼게 할 수 있다니 감탄했다.

우리 부모님. 뭔가 화보집 촬영이나, 적어도 2009 S/S 의류패션집처럼 나왔지 싶어서 살짝 자랑질.ㅡㅡ;ㅋㅋ

중요한 장소임을 드러내는 표식들 중에는, 하늘 높이 솟은 지붕이나 끝없이 늘어선 두툼한 기둥들 이외에도

어디에서든 문간을 지키고 섰는 온갖 수호상들이 있다. 청동, 대리석, 현무암질, 검은 오석, 철..다양한 종류의

재질에 다양한 표정,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대개 상상 속의 동물이란 점에선 유사한 것 같다. 꼬맹이들이

좋아라 하며 수호상의 발치를 차지하곤 방긋 웃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쪽 벽면의 그림을 복원하고 있는 걸까, 어떤 아주머니가 정성스럽게 두무릎을 모으고 앉아 벽화에 붓을 대고

계셨다. 옆에 놓인 여러 도구들이나 단단히 짜여진 아시바를 보면 훼손된 벽화를 덧칠하거나 다시 복구하는 전문가

틱한 작업이긴 한 거 같은데...붓끝이 너무 뭉툭하고 두툼해서 염려스럽다. 저렇게 세밀한 필치로 묘사된 화려한

마차와 건물들, 자연 풍광들을 묘사하려다가 되려 모두 뭉개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저 못생긴 동물은 해태인 걸까..개구리랑 사자를 합쳐놓은 거 같기도 하고, 꼬리는 볏이 듬성듬성 서있는게..닭?

그러고 보니 해태는 어느새 서울의 상징동물이 되었다고 들었었다. 대체 해태가 뭔지 문득 궁금해져서.

해태獬豸 ≒해타(). :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에 뿔이 있다고 한다. 중국 문헌인 《이물지()》에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는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대사헌의 흉배에 가식()되기도 하였고,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로 여겨 궁궐 등에 장식되기도 하였다.  (네이버 사전 참조)

왕궁을 걷다 보면 순간 길을 잃고 헤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비슷한 건물들이 온통 시야를 가리고 겹쳐섰어서,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무슨 건물과 무슨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걸까 지도를 찾아 확인하게 된다. 비가 살짝

나리고 바람이 쌀쌀한 날씨에도 여행객들은 개의치 않고 걷고 있다.

태국 왕실을 지키는 근위병의 근엄한 자태..라지만, 영국의 근위병이나 다른 서구 제국의 그것과는 느낌이 사실

많이 다르다. 일단 짧고, 왜소한 체구, 게다가 왠지 빈티가 살짝 나보이는 외모까지. 온갖 '양이(洋夷)'의 문물에

왜곡되어 버린 나의 시신경, 감각기관의 탓인 걸까 아님 정말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까. 어쨌든 이 분도 꼼짝않고

빳빳이 서선 왕실에 근엄함과 권위를 보탰다. 옆에서 왠지 뿌듯한 표정을 짓고 계신 부모님.

빗방울을 툭, 툭 흘리는 칠칠맞은 하늘 탓에 시야가 다소 뿌옇고 시크무레죽죽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화려하게

꾸며진 궁궐 건물들의 지붕은 되려 적당한 광채를 머금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사실 햇볕이 살짝 강하게 내려쬐었을

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단 말이다. 태국 왕실이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궁궐 지붕에

비기자면, 이런 식으로 적당히 구름낀 하늘 아래 담백한 광택만을 부드럽게 흩뿌리는 순금색의 느낌? 햇살마저

반사시켜 지가 반짝이는 양 보는 사람의 시야를 온통 얼룩지게 만들었다면, 그런 신뢰와 존경은 불가했을 거다.

중요한 사원, 신전들을 보호하는 수호상들. 비슷한 모티프로 제작된 상상속의 동물들이나 인물들이지만, 곳곳에서
 
색다른 표정과 뉘앙스를 만나게 된다. 약간은 찡그린, 멍청해보이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가득하거나 화장실이

급해보이기도 한 울상인 표정도.

왠지 색목인 삘이다. 다른 수호상에 비해 월등한 사이즈도 사이즈려니와, 움푹 패인 커다란 눈에 높고 큰 코,

게다가 이국적인 콧수염까지. 한 때 태국 왕실에서 서양인이 근무했던 적이 있는 걸까. 괜히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게 만드는 수호상.

왕궁은 야트막한 담을 경계로 외부 세계와 갈라져 있다. 파란색빨간색 촌스러운 색깔의 택시가 유유히 굴러다니는

2차선 도로. 이 곳을 구경하고 나니까 우리나라의 궁궐들도 한번 작정하고 제대로 구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대조군이 있어야 그에 비교해서 뭐는 어떻고 뭐는 어떻고, 이렇게 나불나불 이야기할 거리들이 생길

텐데 말이다.

뜬금없는 랍스터 사진. 저녁을 먹으러 근처 씨푸드 레스토랑에 갔는데, 들은 것과 달리 랍스터 가격이 한국에 비해

그닥 싸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배터지게 함 먹어보려던 애초의 계획을 철회하고 맛만 보는 걸로 급선회.

내 손바닥 두개 합친 것보다도 더 큰 듯한 이 통통하다 못해 퉁퉁하고 거대한 랍스터를 먹은 건 아니고. 



 
슬랩스틱이 난무하던 어린 시절의 개그 프로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나오던 동네가 있다. 방콕. 방에 콕? 그 방콕.

태국의 왕이 살던, 그야말로 방콕 중에서도 노른자위라 할 Grand Palace 내에 세워져 있는 이 황금빛 기둥은

'도시의 기둥'이란 의미의 락 므앙이라고 한다. 태국인들은 도시를 세우면 꼭 기둥을 세우고 그 곳에 사당을

세운다나. 끄트머리가 연꽃봉오리 모양인 황금빛 기둥은 얼핏 두꺼운 국기봉같기도 하지만, 글쎄, 아마도

태국인들은 이 기둥이 도시 위의 하늘을 떠받친다고 생각한 것일까.

뭔가 영험한 힘이 깃들었다는 곳은 한국이나 태국이나 온통 번쩍번쩍하고 화려한 문양이 눈에 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벽지 디자인하며, 붉은빛 금빛으로 채색된 문짝하며, 그리고 그 위의 얹힌 핑크 테두리 그림까지. 참

이질적이다 싶으면서도 또 어떻게 생각하면 익숙한 면이 없지 않다. 한국의 절들에서 보이는 사천왕상이나

다른 벽화들, 혹은 불교에 포섭된 삼신각의 그림들까지.

락 므앙에 들어가는 문 중의 하나였지 싶다. 저토록 조밀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문양들과 문짝의 그림들이라니.

금색을 그냥 쳐발랐다면 무지 촌스럽고 유치찬란해 보였을 텐데, 금색의 고급스러움과 위풍당당한 느낌은

살리면서도 화려함 역시 갖추려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지 않았을까.

왕궁, Grand Palace는 어디나 그렇듯 무지하게 넓다. 여러 전각으로 구획된 공간마다 층층이 높고 주렁주렁한

장식이 달린 럭셔리 지붕이 턱하니 얹혀있었다. 상대적으로 심플하고 깔끔해 보이기만 하는 하얗고 네모난 기둥들.

이곳 기둥들을 전부 그 '도시의 기둥'처럼 금칠해놨었음 더욱 화려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외려 시선이 분산돼

지붕에서 펼쳐지는 기기묘묘한 장식들의 향연을 즐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전철 안에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태국인들의 먼 선조들이 일군 유물들. 그치만 서울의 을지로입구쯤서 드문드문

마주치며 과거의 사실을 일깨워주는 황당한 대리석비들처럼, 기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과 과거의 그것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근대에서야 본격적으로 치장되기 시작한 과거, 박물관안에 모셔지고, 왕궁을

복원하고, 그렇게 시간 앞에 허물어지려는 기억과 흔적들을 애써 그러쥐며 난 관광중인 한국인, 그대는 순찰중인

태국인. 조금은 선명하게 너와 내가 갈라진다.

사진을 찍다 보면 문득, 아..이 건물들은 계속해서 내 시선을 높은 곳에 잡아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위풍당당하고 권위를 과시하려 지어진 건물들이 그렇다. 왕궁 안으로 들어와서 내 카메라는 계속 높은 곳을 향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지나다니는 여행자들의 목을 전부 뎅강뎅강 잘라버리고 건물을 담기에 여념이 없어지고 만다.

그치만 건물들이 워낙 화려한데다가 온통 금빛으로 번쩍거리니 원 정신을 차릴 수가 있어야지. 숨겨진 고대의

황금도시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면 주위의 여행자들, 동료들 목을 뎅강뎅강 친다는 스토리도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다.

같은 건물을 다른 측면에서 뒤로 잡고선, 조금 호흡을 가다듬어 한걸음 뒤로 재겨나서 찍은 사진엔 그래도 아빠가

제대로 들어가 있다. 왕궁이 관광자원화되려면 저런 식의 울타리는 필수인 걸까. 곳곳에서 마주치는 금지의 표식은

이 공간을 방문한 우리가 어쩜 상당한 불청객인지도 모른다는-실제로 그렇겠지만-느낌을 상기시키곤 했다.

이 금색의 원뿔탑은 부처님의 가슴뼈가 안치되어 있는 뼈라고 했다. 대체 어디에?라고 묻고 싶어지지만, 뭐 있다니

그런가보다 할 뿐. 너무 둔탁한 형태의 금빛 탑이라서 처음 봤을 땐 왠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햇살이

강하게 내리쬘 때는 온통 번쩍거려서 눈이 아프도록 부시더니 살짝 구름이 끼니까 번쩍이던 불빛이 여기저기서

툭툭 힘을 잃고 떨어져내렸다.

계단 옆 난간도 범상치 않은 용가리 모양이다. 그것도 머리가 다섯개 짜리인. 사실 용이라기엔 입크기나 모양이

살짝 조잡스러워서 무슨 제삿상 굴비 입과 이빨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그래도 머리 다섯개 위에 제각기 그럴듯한

모자를 쓰고 있으니 용이려니 너그러이 받아주기로 했다.

저 탑은 뭔가 돌덩이로 탑의 형체만 얼추 잡아놓고, 금색 천이나 금색 벽지로 얼기설기 풀칠해서 싸발라버린 느낌.

축축 늘어진 윤곽들도 그렇고, 왠지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의 금빛 광택도 그렇고.

그 탑을 밑에서 받치고 있는 괴물딱지들이 신기하고도 귀여워서, 어정쩡하지만 아빠랑 나랑 그 포즈를 따라했다.

...뭔가 저 괴물딱지들은 심하게 쩍벌쟁이들인 거다. 어떻게 저 자세가 가능하단 말이냐.ㅡㅡ;




 열반에 든 부처를 상징하는 와불상이 샛노랑 개나리색 옷을 입고 있다. 무슨 돌로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녹아내린 건지 얼굴이 얼룩덜룩하다. 왠지 어렸을 적 했던 스트리트 파이터의 한 배경화면같은 느낌?

사이즈로 승부한 느낌이다. 더구나 뒤로 돌아서 본 헐벗은 등짝의 남루함, 그리고 발바닥의 꼬질꼬질함이라니.

발가락이 네갠지 여섯갠지.

무슨 탑이었는데...뭐더라...제법 높은 탑에 중턱까지 오를 수 있는 계단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온통 평지만 펼쳐진

태국에서 여기보다 높은 곳이 없다는 설명을 얼핏 어디선가 봤던 거 같기도 하고. 올라가봤는데 주변의 풍광이

온통 발아래로 말갛게 펼쳐졌었다. 탑이라기보다는 무슨 얄쌍한 피라밋같은 느낌?

위에서 내려다본 탑 아래의 풍경. 깔끔하고 실감나게 꾸며진 디오라마 마을같기도 하고, 입체감이 잘 느껴지는

가옥과 대문들이 손에 잡힐 듯 했다. 저 건물은 기억컨대 부처님을 모신 불당이었을 게다.

 여행지마다, 고양이가 참 많이 따른다. 뉴욕서도, 이집트의 다합에서도, 그리고 태국의 아유타야에서도.

굳이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나름 말이 되는 것 중 하나가 고양이랑 개로 나누는 거다. 고양이과의 사람,

개과의 사람. 고양이가 가진 도도함과 자존심, 손길에 연연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표정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 다합의 모래사장에서 내 그림자를 청해왔던 그 자그마하고 귀엽던 새끼고양이처럼, 아유타야의 한 사원에서

중천에 뜬 태양을 피해 고양이가 내게 왔다. 고양이를 품었다. 그새 '품는 법'을 조금은 더 배웠구나.

적어도, 고양이 한마리 품을 만큼 여유가 생겼으니.


글로벌 고양강아지

 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동물을 찾으라면, 아마 고양이와 강아지의 성격을 모두 가진 가상의고양강아지를 빗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고양이와 강아지가 서로 매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고양이가 가진 야무지고 조심스러운 성정과 고유영역에 대한 소신 있는 몰입과 같은 것들은, 강아지가 갖고 있는 원만하고 적극적인 친화력과 충성심 등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러한 두 특성을 모두 갖춘 채 적재적소에 필요한 성향을 드러내어, 최적의 맞춤형 인재로 부족함이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고양강아지의 유연한 태도와 타고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제가 귀 기업에 대해 품고 있는 깊은 애정과 소속감을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부드럽고 원만한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조직 및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 산문시집 '구직험난(求職險難)' 제 1장 '글로벌 고양강아지' 일부 발췌, 이채(생몰년도 미상) 作






그래, 이런거다.

시간이 지나면, 탐욕스런 열대의 녹색식물들이 

깨어진 돌틈새, 벽돌의 홈들을 후벼파며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 뿌리는 동강난 부처의 머리를 휘감으며 인간이 만든 것들을 무화하기 시작할게다.


리셋.


그게 두려워서, 사람들은 매일매일 사다리를 걸치고 탑에 올라 눈곱처럼 끼어있는 잡풀들을 베어낸다.

공든 탑은 무너지고, 삶을 다한 건축물들은 사라지는 게 맞지 않을까..


뇌사상태에 빠진 고대의 사원들. 고대의 신성함.

p.s.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는 아빠는,

스스로 지구 표면을 조각하는 조각가로 여기신다고,

이번 여행에서 말씀하셨다.


비록 커다란 건물이 아니고, 스카이라인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지표를 변화시키고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물론,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노가다'는 염증이 난다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그러고 보면, 석굴암의 나한들이나 다른 부처들의 체형은 대부분  이뿌다. 얘네들처럼. 비록 풍파에 휩쓸려 배에

할복이라도 한 양 커다랗게 칼자국이 나있고 머리가 분리된지 오래라지만, 가슴에서 배로 이어지는, 그리고 상체와

하체가 연결되는 그 매끄러운 곡선은 이상적이다. 정말. 달마조사 정도나 배불뚝이로 형상화될까, 그조차 달마의

득도과정에서 이야기되는 '추함'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하나의 팁으로 본다면, 몸에 대한 이상화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부처의 득도수행중의 금식과 고통을 형상화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더욱

컸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마치 예수의 삐쩍 마른 몸띵이처럼) 글쎄..여전히 통하는 모티프 하나는,

퍼진몸=게으름..정도 아닐까. 살빼야겠다--+

삐죽거리는 탑들을 이어놓은 회랑에는, 원래 뚜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황폐해진 벽면과, 그 벽면에

기대어 선 부처상들이 열지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마치 시멘트로 군데군데 엉성하게 보수해 놓은 것같은

붉은 벽돌 구조물같은 모양새지만, 원래부터 저렇게 덮여있던 회칠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마침 뿌연 안개가 빗방울을 머금고 대지에 무겁게 포복중이어서 그랬는지도.

원래 금박이 입혀져있었던 건지, 아님 시주 대신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금박을 한조각씩 붙여넣은 건지 모르겠지만

오돌토돌한 돌기가득한 머리를 괴고 누운 부처의 뺨과 오른쪽 팔엔 드문드문 금박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몸뚱이를

가리고 있는 커튼같은 노란색 천. 나중에 들으니 저 '옷'도 신도들의 보시로 만들어진댄다.

이곳의 스님들은 모두 주홍색 옷을 입고 계신다. 그래서 아유타야 사원에 촘촘이 늘어선 부처들도 모두 주홍빛

천을 휘날리고 계시다. 아..지금 다시 간다면 훨씬 이뿐 사진들을 찍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

가부좌를 튼 후 눈은 코끝을 내려다보듯 반개(半開)를 한다. 숨은 그칠 듯 그치지 않는 조식(調息)을 하고...운운.

고등학교 때 기수련에 관심을 가져선, 도우(道友)들과 계룡산에 올라선 밤새 비닐 거적을 뒤집어쓰고 이슬맞으며

연공(練功)을 했던 적이 있었다. 요런 비슷한 자세..였지 싶은데. 그치만 이분의 눈은 코끝이나 배꼽이 아니라 앞에

마주선 사람을 흘겨보는 느낌이다. 손에 들린 건방진 음료수는 또...언제 다 마셔버린 거냐.ㅋ

이왕 시주를 할 거면 온전한 한 컵을 주던가, 저건 누군가의 장난이 아닌가, 쓰레기를 버려놓은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저걸 치워서 버려주면 부처님이 복을 내려주진 않을까 잠시 고민했다.

은근히 와불이 많다. 저렇게 누워 있는 부처는 이곳의 햇살과 왠지 너무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뭔가 얇고 부드러운

실크같은 막이 태양에서부터 너울지며 떨어져 내려 온몸에 감기는 느낌이랄까. 무슨 선블록오일 광고문구처럼

끈적이지 않고 순식간에 흡수되는 뽀송거림. 그리고 기분좋은 나른함까지. 내가 부처라도 눕겠다.

요건 뜬금없는 보너스샷. 비둘기고기 통조림. 태국의 길거리나 공원에 왠지 비둘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싶었다.

맛을 보고 싶었는데,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아 관뒀다. 나름 여러가지 색깔의 통에 담긴 걸로 보아 여러가지

양념맛이 가미된 듯 했지만, 사실 저렇게 담겨있는 고기는 제아무리 한우 차돌박이라 해도 안 땡길 게다.



사실 태국이 어떤 나라인지, 무슨 풍광이 유명한지도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 사실 내 세계지도는 미국, 터키,

이집트 그리고 남한 땅덩이가 전부였던 거다. 여행 갈 때마다 부딪히는 질문은, 대체 무엇을 보러 가는지. 무엇을

느끼러 가는지. 아무리 피하려 해도, 제약된 시간 내에 한 지역과 그 땅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본다는 건, 유명한

관광지 그리고 짧막한 관광영어를 벗어나기 힘들다. 

진부한 멜로드라마처럼 타고 내리는 감정선들도 사실은 그렇다. 이미 누천년 이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느꼈고,

봐왔고, 글로 풀어왔던 감정들. 이미 모든 게 읊어졌고, 말해졌다.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생멸했고, 사람들은 두터운 대지의 더께위에 흙한줌을 보태며 쓰러진다.


그냥...그래도...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아무리 진부하고 범용한 감흥이라도, 내 아가미로 한번 걸러 나오지

않으면 속이 안 풀린다. 그래서...어쩔 수 없이, 혹은 적당히 용서하는 기분으로 카메라 앞에서 어정쩡한 포즈를

잡아주며 증빙샷.

무슨 골프장처럼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 위에 곧추선 붉은 벽돌 구조물들이 단단하고 야무져 뵌다. 햇살만큼이나
그림자도 진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담넌싸두악 수상시장으로 향하는 길, 차안에는 불상들과 온갖 장식품들이 주렁주렁 하다.

태국 사람들은 차 안에 저런 식으로 운행안전을 기원하는 부적 같은 것들을 많이 달아두는 것 같다. 버스말고

택시나 뚝뚝(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탈 것..이랄까) 같은 것들을 겪을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다. 실제론

어떨까ㅡ교통사고가 한국에 비해 적기는 할 거 같다. 사람들의 여유라거나, 푸근한 웃음 같은 거 보면.

누렁 황토와 청록빛 이끼를 물에 풀어넣으면 저런 물빛이 나오지 않을까. 손바닥만하지만 어엿하게 지붕도 달린

조각배들이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수로를 따라 둥실둥실 떠내리는 와중에. 수로 양켠으로 무질서한듯 마구 난립한

바나나나무들, 온갖 활엽수들은 그렇지만 또 가지런한 모양의 하늘을 열어놓고 있었다.

중간중간 짙푸른 정글이 한뼘쯤 물러났다 싶은 곳에느 여지없이 들어서 있던 관광용품 파는 곳들. 단순히 현지인들

생필품을 위한 마켓이라기보다는, 이미 관광코스화되어 버린 이 곳에서 관광객들 대상의 장신구를 파는 곳이었다.

그치만 태국의 전통모자나 장신구들보다 눈이 가던 건, 배가 지나칠 때 잘박거리는 파도가 저 수상가옥들의 기둥을

넘실넘실 핥아대던 그림.

이런 식으로 인력을 사용한 탈것들은, 그 수혜자들에게 모종의 미안함을 거의 예외없이 느끼게 하기 마련이지만

이 조각배는 좀 예외였다. 그냥 노를 젓지 않아도 알아서 설설설 물 위를 미끄러져 갔고, 뭔가 나무뿌리같은 게

모여있어서 유속이 좀 처진다 싶은 곳에서는 장대로 한번 쿡 바닥을 찔러 밀어주면 끝.

중간중간 '부레옥잠'같이 생긴 수상식물들도 수로 위에서 번성하고 있었고, 이리저리 배에 치이다 저렇게 흐물흐물

넝마처럼 되어 버린 채 물길 옆으로 쑤셔박혀 있기도 했다. 그리고 좀 뜬금없다 싶은 수상 패션쇼. 참 시원하겠다.

참 저렇게 이뿌게 쌓아올리는 건 대단한 솜씨인 게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까지 쌓아올렸을 텐데.

코코넛을 배에 가득 쌓아올린 채 손님들을 기다리는 시장통의 아주머니. 어디든 재래시장, 전통시장의 아주머니들,

할머니들은 참 푸근한 표정과 자글자글한 미소를 가지셨다. 코코넛의 윗통을 큰 칼로 버썩 썰어내곤 빨대를 꼽아

쪽쪽 마시는 미지근하고 들크무레한 그 액체..뭔가 도구가 있었다면 껍데기도 마저 깨서 안의 하얀 속살까지 싹

발라먹었을 텐데 아쉬웠다는.

바나나도 있고, 람부탄, 리치, 망고스틴, 파파야...온갖 열대과일들이 배위에 그득그득 실린 채 짙고도 강렬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물 위에서 배들이 움직이며 팔고 있다는 걸 빼고는 완전 우리네 시골장터 분위기다.

이리저리 뽈뽈뽈 떠다니는 배들은 서로 살짝살짝 부딪치는 일도 없진 않지만, 빽빽하게 정체가 일었다 싶은 곳에서

유연하게 잘 빠져나간다. 물 위에서 기름을 바른 듯 매끄럽게 스쳐가는 날렵한 배들. 

시장을 지나면 많이 넓혀진 수로를 따라 조금은 큰 덩치의 가옥들이 늘어선 게 보인다. 중간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식당도 보이긴 하지만, 대체로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가정집인 듯 하다. 집앞에 '주차'되어 있던 배를 타고 막

어디론가 향하는 아주머니의 노젓는 손길이 마치 태극권을 시전하는 고수의 그것같다.
 
이 '누르초로께한' 물은 그대로 이 사람들의 생활용수가 되나 보다. 한 곳에서는 막 잠에서 깬듯한 아저씨가 나와

어푸어푸 세수를 하기도 하고, 그 반대편에선 저렇게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또 잔망스러운 아이들은 우르르

물에 뛰어들어 지들끼리 노느라 바쁘다. 이 물로 밥을 해먹는 거 같기도 한데..괜찮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느 포인트엔가 가면 저렇게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마구 용솟음치며 먹이감을 지들끼리 겨루는 장면이

보인다. 어쩌면 의외로 이 물은 꽤나 깨끗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난 저 '육교'는 배를 타고 내가 지나는 이 곳이 말하자면 차도임을 상기시켜주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어느쪽이든 '뭍'으로 '상륙'해서 저 육교 위를 걸어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그냥 패스.

지나다 보면 여긴 제법 정리를 깔끔하게 해 놓는구나 싶은 구간도 있다. 그런 구간 옆에는 예외없이 뭔가 좀

그럴듯하게 지어진 큰 건물이 서있기 마련이었지만, 어쨌든 마구 헝클어진 듯한 정글의 그 느낌도 좋지만 이렇게

잘 가꾸어진 느낌의 '갓길'도 맘에 든다.

이 길을 이용하는 건 배들만이 아니었다. 불쑥불쑥 주위에서 출몰하는 알 수없는 괴생물체들. 저게 도마뱀인지

뱀인지 아님 수달인지, 네 발로 열심히 헤엄치는 것 같기도 하고 몸통을 요리조리 비틀며 S자로 헤엄치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빨라서 제대로 포착하는 걸 번번이 실패했지만 그나마 나은 사진 한장.

배를 출출하게 만드는 데에는 때론 펄펄 끓어오르는 김과 구수한 냄새면 충분하다. 태국식 쌀국수를 팔고 있던

시장 어귀의 노점. 몇척의 배들이 멈춰서서는 국수그릇을 넘겨받으며 맛나게 먹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한국에도 쌀국수 전문점들이 들어온 지 꽤나 오래지만 대부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맛이 변했다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맛봤던 쌀국수는, 뭐랄까..마치 우리네 천원짜리 잔칫국수같은? 그런 소박함과 정겨움이 묻어났던 것..

같은, 시간이 지나 윤색된 기억으론 그렇다.



"알카자 쇼는 남자들의, 남자들에 의한, 남자들을 위한.."이란 식의 제목을 달긴 했지만, 사실 그닥 어울리지 않는

형용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만 이야기하고 사진 보여주기 컨셉 포스팅으로 낼롬.

팟타야에서 벌어지는 여러 캬바레 쇼들이 있지만, 그중 알카자 쇼가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노출 수위나 쇼의 내용도 그렇게 위험하지 않아서 가족들이 즐기기에 딱 좋은 데다가, 연기자들도 그중 이뿌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성전환자들. 돈을 모아서 생물학적으로까지 변환한 경우도 있고, 아직은 정기적으로

호르몬만 맞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남성이 여성과 달리 지방이 얇고 근육량이 많아서 몸매를 관리하면 보다

쉽고 빠르게 '효과'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있지만, 정말 다들 어케 그렇게 키도 크고 늘씬하신지들.
 
키가 전부 180은 넘겠다 싶었다. 물론 10센티는 훌쩍 넘을 듯한 힐높이를 포함해서지만.









국제적인 몇가지 레파토리 중에 한국의 부채춤, 장고춤, 그리고 'SES'가 있었다. 저 세 아가씨..얼굴 분위기도

비슷하다.ㅋ 그녀들이 게이라는 사실은 내겐 사실 큰 감흥을 주지 못했는데, 머..전혀 모르겠던걸. 그녀들의

리드미컬한 워킹과 바디 라인. 감각적인 워킹 한발한발이 가슴에 콕콕 박혔다.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뿐 궤적을 그리는지, 그런 걸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몸에 대한 철저한 관리..통제. 동작하나도

세밀히 다듬어진 듯한 느낌의 이뿐 몸. 팔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얼마나 이뿐 궤적을 그리며 몸을 움직이는지

가히 통제불능상태로 폭주하듯 몸을 '굴리고 있는' 나로선 마냥 부러울 뿐.








the Queen of Alcaza. 허접한 한국가이드북으로부터 쇼타임후 사진 촬영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입수한

나는, 사진을 찍을라고 달려들었달까..-.ㅡ^ 어떤 목소리가 나올지 자못 기대되었었는데, 역시 하리수랑 비슷한

톤이던걸. 중성틱한 목소리는 그녀들의 여리여리한 몸매와는 너무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했냐 하면.."이천원 이천원" 이랬다. 물론 퀸은 그런 말을 직접 대놓고 하지 않았고, 다른 출연진들과

연기자들이 그렇게 긁적긁적한 목소리로 외쳤었다.

한시간여의 공연동안 정말 이뿌게 다듬어진 그녀들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물론 쇼 자체도 화려하게

볼만했고. 아마도 졸업 여행쯤 온듯한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의 소란스러움과 무배려함에 짜증이 살짝 났었는데,

끝나고 나서 한 아저씨가 크게 떠드는 말이 귀에 꽂혔다. 인생이 불쌍하다나..글쎄....?

그녀들이 이 일을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부록. 알카자쇼 팜플렛.


부록2. 알카자쇼와 유사한 내용의 티파니쇼..라는데, 가보진 못했다.



* 어쨌건 이 블로그는 여행 이야기를 차곡차곡 쟁여두고 싶었던 공간이라, 요 며칠의 딴 글들을 씻어내릴 만한

쉬어가기용 & 분위기 쇄신용 포스팅을 시도..

방콕의 주말시장은 우리네 재래시장같다. 좁고 살짝 지저분한 시멘트 발린 길 양쪽으로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입구쯤에서부터 눈길을 팍 끌었던 가방. 저건...부분을 재활용한 걸까 아님 단지 흉내만 낸 걸까.

실제로 저런 걸 들고 다닐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웃기다기보단 살짝 어이가 없을

거 같기도 하다. 저런 짧막한 가방에 신발까지 맞춰 신는다면 다갈빛 카우보이모자까지 쓴 카우보이 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불끈불끈 들 거 같은데, 혹자는 그런 걸 똘끼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냥 보는 게 더 재미있지 싶다.

레드 하우스. 맑스의 초상화와 공산당 선언의 전문이 새겨진 초록색 티를 기념품삼아 산 곳이다. 체게바라, 로자

룩셈부르크, 맑스, 마오쩌둥, 레닌..온갖 혁명가들의 초상화가 전시된 그 공간에는 붉은 별과 붉은 목도리, 그리고

붉은 색 휘장이나 배지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왠지 보고 있으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흥분되는 빨간색. 그치만

투우에서 빨간색 천을 휘둘러봐야 소는 색깔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는.

2006년에 태국을 방문할 즈음이나, 2009년 지금이나. 그리고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이후부터 줄곧

국제 이슈로 남아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립 문제. 이 성조기 무늬가 들어간 쪼리는 팔레스타인에서

수입되었다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얼마전 부시가 신발에 맞고서야 알게 된 중동 지역의 문화적 특징이랄까,

전통 중 하나는, 발에 밟히거나 신발에 맞는 건 최악의 혐오감을 표현한다는 사실. 그러니까 미'제국'의 화신

부시와 성조기가 발(신발) 아래에서 밟히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되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대학교 때 체게바라 평전이 갑작스레 대중적인 인기를 받았었다. 이미 평전을 그 전에 읽었고 평전살 때 받았던

체게바라 배지를 가방에 자랑스레 달고 다니던 나는, 왠지 나의 체게바라가 '세속화'되는 것 같아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치만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 잘생긴 체게바라, 그리고 역시 멋지게 생긴

맑스..그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각자에게 달려있는 몫인 거다. 그들의 이미지와

메시지, 아이디어가 상품으로 유통되는 건 사실 자연스럽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일 듯.


난 이내 그런 '상품으로서의 체게바라'에 익숙해졌고, 나름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태국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친 요 혁명가의 전당 같은 샵에서 티셔츠를 샀다. 사진 가운데에 있는 어두운 녹색 바탕에

하얀 맑스 얼굴이 둥둥 떠있는 티. 한국에 돌아와선 신나라~ 하면서 입고 돌아다녔었다.

휴지가 콧구멍에서 나오고, 입에서 나오고, 심하게는 가슴에서도 뽑혀 나오게 만드는 마법의 휴지걸이.

주말시장 길거리에 벌여진 가판에선, 태국의 복권을 팔고 있었다. 다소 조잡해 보이는 인쇄물이지만 저렇게

열맞춰 다소곳이 놓여있는 모습에서 왠지 경탄해 버렸다. 정리하기 힘드셨겠어요.

잠시 보고 있으려니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한장씩, 두장씩 사가는 듯 하다.

우리네 재래시장에선 얼음을 가득 재여놓은 판 위에 생선을 보기좋게 깔아놓지만, 여긴 그런 건 안 보인다.

더운 날씨 때문일까. 아마도 반건조쯤 된 듯한 생선들을 한 마리씩 저렇게 비닐팩 안에 담아놓고 팔고 있었다.

하긴 날씨도 덥고 날파리 같은 것들도 많을 테니 저렇게 하는 게 위생적인 면에서나 신선도 면에서 나은 방법이지

싶다. 역시, 지역의 특성에 적응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바뀌는 법인가 보다.

주말시장엔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발걸음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동대문시장에서 좌판을 벌인 분들이 핏대선

목청으로 손님을 끌듯 상인들은 태국어로 뭐라고뭐라고 시끄럽게 외치고, 그 소리에 끌려들듯 사람들은 잔뜩 쌓인

옷가지무더기로 몰려든다.

그 와중에 뻥 터진 해맑은 웃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발랄한 마네킹. 그녀는 모든 걸 웃어버리고 치울 거 같다.

이거 뭐라고 하더라..짚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전통적인 저주 인형은 '제웅'이라는 허수아비인데, 그 비슷한 거같다.

부두교랑 태국이랑 관련이 있나, 아님 태국의 전통적인 저주 인형인 걸까..여튼, 내가 설명들었던 바로는 이 곳의

저주 인형을 좀 귀엽게 캐릭터상품화한 거라던가.

* 볼 때마다 까먹는 단어 : 짚으로 만든 인형 제웅에 대해서...(http://mybox.happycampus.com/godrnehd/375722)

제웅이란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것. 추령(芻靈) 또는 처용(處容)이라고도 한다. 뒤에 가서 종이나 형겊에 그린 화상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사람의 나이가 나후직성(또는 제웅직성;나이에 따라 운수를 맡아보는 아홉 직성의 하나)에 들면 액운이 들어 만사가 여의치 않다고 하는데, 이 직성은 남자 11세, 여자 10세를 시작으로 9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온다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직성이 든 사람은 제웅을 만들어 거기에 그 사람의 옷을 입힌 다음 푼돈을 넣고, 이름과 출생한 해의 간지(干支)를 적어 음력 정월 14일 밤에 길가나 다리 밑에 버린다고 한다. 옛날에는 정월 14일 밤에 아이들이 문 밖에 몰려와 제웅을 달라고 청하면 선뜻 내주었고, 돈만 꺼내고 아이들이 길에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이를 제웅치기[打芻戱]라고 하며, 그 유래를 신라 구역신(驅疫神)인 처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무녀가 제웅을 만들어 비는 경우도 있었으며,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과 《계축일기(癸丑日記)》에는 제웅을 만들어 남을 저주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다음 백과사전 p.14150』

어디선가 단체 관광객이 왔다. 시장통 한쪽이 떠들썩하더니 빨간 색 티를 맞춰입은 학생스러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미소의 나라 태국이라 했던가, 내가 카메라를 여기저기 들어대는 걸 보더니 환호성을 터지고 온통

손끝에서 브이가 만발한다. 수학여행쯤 온 건가 싶은 밝은 미소의 아이들.

그런 왁자한 시장통 분위기 한 켠에선,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단정하게 생긴 여학생이 단정하게 앞머리를

내리고선 짙은 핑크색 리코더를 청승맞게 불고 있었다. 뭔가 설명이 붙은 종이상자를 앞에 두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마치 시장통의 시끌벅적함이나 왠지 들뜬 분위기엔 전혀 굴하지 않는다는 듯, 학교 교과서에서

나왔던 듯한 심플한 가락을 뽑고 있었다.

보너스 샷...이랄까. 이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디자인은, 그냥 보고 웃으라고 한두벌 만들어 놓은 거겠지? 그렇지만

사람들이 전부 여유롭고 마음 넉넉해 보이는 이 나라, 태국에서라면 왠지 저런 거 입고 다녀도 모두들 허허 웃고

말 거 같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자기검열도 심해져가는 한국에서라면..음..웃고 치울 수 있는 여유도 갈수록

줄어가는 것 같은데, 아마 저런 티를 입고 돌아다니면 이곳저곳에서 치일지 모르겠다.(머..진지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남근주의가 반영된 거라 말할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한국에선 이런 걸 웃음의 소재로 삼기에는 아직

사회적 상식이나 암묵적 합의의 수준이 그에 이르지 못해서..개그나 유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인 거 같아서 아쉽다.)

중요한 사원, 신전들을 보호하는 수호상들. 비슷한 모티프로 제작된 상상속의 동물들이나 인물들이지만, 곳곳에서

색다른 표정과 뉘앙스를 만나게 된다. 약간은 찡그린, 멍청해보이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가득하거나 화장실이

급해보이기도 하는 다양한 표정들. 

이거 왠지, 서울시청 으슥한 곳으로부터 아무런 조율도 의견수렴도 없이 서울의 상징으로 불도적식 밀어붙여지고

있다는 '해태'와 느낌이 닮았다. 사실 내가 알기로는 해태란 상상속의 동물은, 불교적인 색채를 많이 띄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불교의 나라 태국에 비스꾸레한 형상들이 넘쳐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다.


찍다 보니까, 얼레,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사원 내 온갖 곳에 그런 수호상이 세워져있다. 문 양쪽으로 당당히 시립해

있는 건 물론이고, 이 아이들은 왠지 저 쓰레기통을 지키고 있다. 주위에 흘리거나 제대로 버리지 않음 우씨,

제스처를 취한 저 아저씨의 돌주먹에 호되게 맞는다는 뜻이렸다.

계단 모서리에도 생명체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스물스물 계단턱을 타고 내려와 쫑긋, 대가리를 세웠다. 머리

다섯개 달린 용가리라고 해야 하나, 발가락 하나하나 날카롭고 까칠할 듯한 이빨을 품고 있는 발바닥이라 해야하나.

난 왠지 황금발바닥에 한 표. 발바닥이라기에는 넘 심한 평발이긴 하다는 반론은 기꺼이 인정.

뭔가 불꽃같은 이미지의...개? 늑대? 여우? 어찌 보면 또 닭같기도 하다.

이 녀석은 왠지...뭔가 닮았다 닮았다 싶더니, 퍼뜩 떠올랐다. 요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왠지 살짝 슬퍼보이면서 순종적인 눈매와 처연한 입꼬리, 그리고 몽땅한 두 앞다리를

치켜든 제스처와 분위기가 딱인 거 같은데.

이런 서양적인 마스크를 가진 녀석은 언제부터 이 태국 땅에 서있었을까. 어쩌면 이미 '색목인'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다른 이러저러한 경로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고대, 중세에는 훨씬 활발한 교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녀석, 얼굴을 조금만 추상화시켜서 볼라치면 딱 시골동네 어귀에 섰는 장승닮았다.

입꼬리를 자세히 보면, 이녀석 비웃고 있는 거다. 푸훗..이런 식으로.


그리고 현대적 의미의 수호상들은, 영국의 왕궁 앞이라거나, 미국 워싱턴 국립묘지의 교대식장이라거나, 아직

잔존하는 몇몇 왕궁과 같은 시설을 경호하고 있는 살아있는 경비병들일 게다.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체, 공간의

일부가 되어 관광객들의 배경이 되어 주기도 하고 여전히 날선 권위의 생생한 증인이 되어 주기도 한다.

태국 왕궁의 경비병들은, 하얀 제복이 새하얗다 못해 형광등처럼 푸르스름한 기운마저 머금었다.

종종 수호상들은 문짝을 고정시켜놓기 위한 유용한 받침돌로도 사용되고,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수호상들은

차가운 금속성의 철파이프를 잡고 있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용도를 발굴해낸 근대의 도구적 인간들.


이를 드러내고 제법 용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돌을 간지럽히며 표정 흉내내보기.

저 달그락거리는 자그마한 돌맹이를 만지작대다 보니 왠지 유쾌해졌다. 그나저나, 어떻게 집어넣었을까?

저 녀석이 찌익~ 입을 벌리고 돌을 앙 물고선 다시 빳빳하게 돌로 돌아갔을 리도 없는 거고, 돌을 덧붙여서 구멍을

막는다거나 할 리도 없는 거고, 신기한 일이다.

태국적인 느낌의 수호상..이라고 하면, 이제 이미지가 좀 머릿속에 구체화되면서 그게 무얼 말하는지 알 거 같다.

마치 A형의 혈액형을 가진 여자라거나 O형의 남자..라는 묘사가 대화하는 사람 간의 머릿속에 무언가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해서 나름의 유용성을 확보하듯이 말이다. 태국적 느낌의 수호상이라는 걸 머릿속에 그려보자면

아마도 뭔가 도톨도톨한 느낌의 혹이 잔뜩 붙어있고, 입꼬리를 쫘악 올려붙이고 있으며, 굵은 주름이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얼굴에 표정이 생생하게 묘사된 다소 위압적이면서도 살짝 우스꽝스러운..동물상이랄까. 그것도 닭의
 
벼슬, 사자의 갈기, 개의 꼬리 등속을 마구 짬뽕시켜 놓은..상상력에 적지 않은 재량권을 허용하는 윤곽.

나중에, 여행을 많이 다녀서 이런 수호상들 사진을 잔뜩 모으게 되면, 나름의 컬렉션으로도 괜찮겠다 싶다. 종교를

막론하고 지키고 싶은 권위와 힘이 있던 곳에는 모종의 경비병, 신적인 권능을 상징하는 수호자를 세워놓기 마련.


일종의 power-base가 소재하는, 소재했던, 혹은 새롭게 부각되는 곳의 상징, 슈렉 고양이를 닮은 수호상들.


전란으로 목이 잘려나가 땅에 나뒹굴었을 부처의 머리가 똑바로 서있다.

나무 뿌리에 단단히 걸린다는 다소 과다한 우연의 힘과, 실수없이 끌어올려지는 수백년의 시간의 힘을 빌어.

부처상의 머리 부분에 대고 빈다기 보다는, 난 왠지 그 우연과 시간이 빚어낼 수 있는 경이로움에 질려버려 비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왠지 2000년대 한국의 건축물에서도 자주 쓰이는 붉은벽돌로 지어졌다 해도 그다지 큰 어려움없이 믿을 수 있을

법한 아유타야의 사원들. 그렇지만 약 1300년대에 건설되어 400여년 동안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로 번영했다는

그 단단한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 보면, 저 정교하고 튼실한 벽돌郡이 수백여년을 버티어 왔다는 사실이

경탄스럽다. 더구나 여기는 여름, 우기, 겨울로 계절이 구분된다는 비많고 수풀우거지는 타일랜드인 거다. 인간의

흔적 따위 한 철 비바람이면 물에 씻기고 녹색 덩굴에 씻기기 십상일 텐데.

그런데 이렇게 하늘을 향한 탑..혹은 탑파의 원형을 세밀한 부분까지 보존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새들이 남기고 간 얼룩부터 시작해서 군데군데 잠식해나가는 파랗고 강인한 풀떼기가

보이지만. 한 옆에서는 서울서 가로수 정비할 때 쓰는 도구같이 생긴, 끝에 칼을 묶어놓은 장대같은

것으로 관리원들이 식물의 접착을 막고 있었다.

여행의 컨셉은 배낭여행이었다. 휴가를 못받은 동생을 빼고, 엄마랑 아빠랑 나. 여행을 좋아하는 가족인지라,

패키지는 애초 코웃음 한방, 투어는 원칙적으로 안하기로. 일정은 전적으로 내가.

방콕에서 북쪽으로 두시간,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비가 오지는 않을까, 일정을 얼마나한 밀도로 채워야 할까..

(더구나 부모님이랑) 이런저런 생각이 피워올랐지만. 여름, 우기, 겨울, 이렇게 세가지 계절을 가진 태국은 우리가

한나절 내내 걸어다녀도 그닥 덥지않을 만큼 선선한 날씨를 선물했다.

'툭툭'이라는 이름의 탈것은 오토바이를 개조한 엉성한 삼륜차지만, 나름 태국 시내에서나 근처 관광지를 돌때에는

아주 편리한 것 중 하나다. 뭐..두 명이 타기엔 저렇게 다소 힘들어보일 수는 있지만, 정작 부모님 본인들은 괜찮다

하셨다.


인력으로 움직이는 이러한 탈 것에 대해 다소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마치 제3세계 빈곤국의 아이들이 커피를

수확하는 노동에 종사한다는 사실에 대해, 가혹한 수준으로 착취받고 있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반면 그러한

노동의 기회마저 없다면 당장 그 아이들의 생존이 백척간두에 처하고 만다는 엄연한 사실도 동시에 존재하는 거다.

어쩌면 이렇게 뚜렷한 옳고 그름의 지표를 집단적인 차원에서 내릴 수 없는 경우라면, 우선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그 긴장을 해소하려 노력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진심이 느껴지고 따뜻한 웃음으로, 조심스럽고

존중하는 태도로, 상대와 상대의 일을 존중하고 내게 그 서비스를 베품에 감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그렇게 우리가 간 곳은 코끼리 탑승장, 사람이 태워주는 것도 민망한 판에 코끼리를 타는 것도 다소 미안했다.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 나로서는, 이런 식으로 사역당하거나 공연장에서 쇼를 하는 코끼리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부려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미지가 가득했던 거다.

그렇지만, "코끼리 비스켓"이란 표현이 적절했던 것 같다. 나 한명 그리고 저 아저씨..조종수랄지 운전수랄지 혹은

기수랄지..가 탔다고 해서 코끼리가 움쩍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냥 앉았다가 일어서는 동작, 사뿐하고도 부드러운

리듬을 타고서 지상 삼 미터쯤 위로 불끈 올라섰다.


코끼리의 등짝과 정수리쪽의 가죽은 물에 흠뻑 젖었다가 바싹 말라비틀어진 소가죽같았다. 거칠거칠하면서도

아무런 수분의 느낌없는 부석부석한 촉감. 그리고 완강하게 잡혀있는 깊게 패인 주름들. 동물을 만질 때 느껴지는

체온이나 따스함, 부드러움 등의 느낌은 별로 전해지지 않는 거대한 초식동물.

중간에 아저씨는 코끼리와 모종의 교감을 거쳤는지, 억센 생명력 그 자체인양 뻗어나간 풀잎들이 삼엄한 한 쪽

풀밭에 코끼리를 주차했다. 이내 강력하고도 섬세한 코를 사용해 식사를 시작한 코끼리.


부드럽고도 날렵한 코의 스냅이란. 그리고 단호하면서도 세련된 그 완력이란.

내가 탄 코끼리를 '운전'하신 분의 이름은 KLUAYMAI. 그리고 그 밑에 병기된 일어가 눈에 거슬렸었나보다.

앞뒤로 파도치듯 일렁이는 코끼리 걸음의 리듬을 타고 있었을 한 자존심강한 '한국인'이 굳이 한글로 적어넣었다.

        아이   이'. 코끼리 등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이 고스란히 글자에 남아있었다.
 '클루     마


글쎄..다소 유치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실제로 태국으로 많이 쏟아져들어가는 한국인들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처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다만 그렇게 한글로 굳이 적어넣은 행동이 영어와 일어가 병기된 데로부터

촉발해 발끈한 속좁고 치졸한 행동만은 아니기를 바랬다.

왠지 몽환적이었다. 정글 한가운데서 불쑥 튀어나온 고대의 사원들은 어느새 인공의 느낌과 자연의 느낌을 묘하게

뒤섞어 놓은, 인간의 것도 자연의 것도 아닌 느낌이었다.

자연을 굳이 '신'이라 표현한다면, 신과 인간의 경계지대에 놓여있는 듯한 느낌.

거대한 것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적당한 거리잡기가 가장 중요하다.

얼마만큼 거리를 격해야 나와 당신의 그림이 이뿌게 나올 수 있을지..당신의 위풍당당함과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고

내가 그 곁에 자연스럽게 설수 있는 사진은. 

너무 멀면, 모든게 용서될 것 같다. 고작 한웅큼 흩뿌려진 저녁 햇살 만으로도 너무도 부드러워보이는 당신의

실루엣.

 
너무 가깝게 들이대진 말기. 그 오색찬란한 빛깔과 생생한 질감이 사실은 사기접시를 깨넣고 엉성하게 붙여넣은

재활용품처럼 보일 수 있으니.

고슴도치가 사랑을 하듯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바싹 다가가기엔 한 평생 호흡이 길다.

크레딧이 올라가도 삶은 계속되고, 한마디 말로 감정을 전달한다는 건 편집기술의 승리일뿐. 간격잡기는,

고수의 스킬. 당신은 내 간격 안에 들어와있어. 베인다.


디자이너랄까, 헤나와 타투는 가격차도 꽤나 컸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 디자이너들은 조폭 느낌의 도안이나, 엉성한

필치의 한자어..예컨대 愛라거나 忠 같은 것들을 선호하는 것 같다.

창가에 붙어있는 한자, 假紋身. 말그대로 헤나는 가짜 문신, 가짜 타투지만 그만큼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타투를 함 꼭 해보고 싶었는데...헤나로 타협. 50바트짜리 헤나. 한국돈으로 1250원정도? 한 3개월 간다고 하더니

고작 1개월도 안 되어서 벌써 많이 풀이 죽었다. 원래 빳빳한 느낌을 주던 녀석인데.


조폭들이나 할 법한 용틀임하는 그림이나 매화꽃이 화창한 그림들은 너무 거시기해서 맘에 안 들었고, 몇 권의

도안집을 들여다 보다가 내가 발견한 건, 저 얏! 하는 느낌의 귀여운 사람 모양의 밑그림이었다. 왠지 '멋지다

마사루'나 '이나중 탁구부'의 캐릭들이 연상되는 이미지랄까.


세밀한 붓에 헤나 염료를 묻혀서는 살살살 그리는 작업이 은근히 자극적이었다. 촉촉하면서도 살짝 찐덕한 느낌의

염료가 말라붙으며 안겨주던 시원한 느낌이란 건.



01년 미국갈 때 샀던 여행가방..무슨 숫자이던가 세자리로 암호를 걸어놓았는데, 그새 잊어버렸다.

동생 졸업여행갈 때도 공항 가는 길에 전화해감서 삽질을 해놓고는, 여행 간다니까 이제야 다시 번호를 챙겨보려

다이얼을 하나씩 돌려서 확인해 보는 단순작업을 했다. 총 세자리. 000부터, 999. 대략 13분 20초정도.


상식적으로 그 1000개의 번호 중에 하나의 정답이 있어야 하는 건데, 없다. 아마 그 이유는 둘 중 하나.

1000번의 무료하고 멍청한 삽질 중 멍해져버린 내 감각이 그 순간을 놓쳐버렸거나, 혹은 애초 1000개의 번호 중

답을 찾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 자체의 오류..곧 가방 자물쇠의 고장.


분명 그중에 숫자 하나는 맞을 꺼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내 우매한 선입견을 비웃는 前백승독서실 3층 27번座

핑크곰돌이 자물쇠. 아마..비밀번호는 8991같은 네자리 숫자거나, 아님 '내려쳐뽀사뿌라'정도 아닐까 싶다.


어쨌든, 2006년 8월 태국으로 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