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제 정세에 대해 논하시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그리고 당선된 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으레 질문은 내게 떨어졌다.

누가 될까? 오바마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암살당하지 않을까?ㅡㅡ;;


북한이 미사일을 쏘거나 6자회담이 삐걱댄다는 기사가 나올 때였을 거다. 당시 내가 RA로 일하던 회사의 이사가 물었다.

자네가 잘 알겠구만. 북한이 왜 저러는 거야? 어떻게 될 거 같아?


심지어는 그런 질문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왜 한국은 핵무장을 안 하는건데??!!


내가 아냐.


외교학과를 나왔다고 국제 정세 분석에 능해지는 건 아니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오만나라의 외교 정책과 기조를

파악하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외교관으로 갖출 만한 덕목일 외교술수 이딴 것도 없다. (외교관이 따논

당상인 건 더더욱 아니다. 별 상관없다;;)


첨에 난 외교학과라고 해서, 무슨 대사관 뒷뜰에서 가든 파티할 때 바베큐 잘 굽는 법, 와인 마시는 법 갈쳐 주는

데인가 하고 갔을 뿐이고. 배워보니 무슨 자신이 한국의 대표인 양 겉멋든 인간들만 잔뜩 양산하는 기형적인

외교학과/정치학과 분리 시스템에 속았을 뿐이고.


#2. 다음 주자는,

귀여운 8살짜리 아드님이 있으신 플투님(http://plustwo.tistory.com/)께 바통 살포시 놓고 오렵니다^^


뒤늦은 세줄 요약.
외교학과(학부 나부랭이)를 나왔다.

국제정세 분석은 커녕, 외교정책이나 외교술 역시 모르니 묻지 마라. 쌩깔 테다.

다음 주자는 플투님입니다~!






To. Adish님,


아디쉬님,

살포시 놓고 가신 편견타파 릴레이 잘 받았습니다^^

어느 순간 들불처럼 번져들고 있는 릴레이에 대한 염려가 고개를 들고 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라면 뭐랄까,

저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모든 문제를 스스로의 맥락에서 재구성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무언가로 먹기 좋게 바꾸어내곤 그에 답하기 마련이니까요. 포스팅의 주제로도 나무랄 데 없는 이런 멋진 릴레이들이

계속 제게 쏟아진다면, 물론 제가 여전히 마치지 못한 알제리, 파리..심지어 이집트 여행기의 마감이 더욱 늦어지긴

하겠지만...그래도 행복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뭐 제 여행기야 어차피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니니까요.ㅎㅎ)


아마 다른 분들도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요. 부담감을 느껴서 답을 하셨던 안 하셨던, 그렇게 던져진 질문들은

각자의 블로그에 모종의 파장을 남겼을 거고,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릴레이란 게, 마치 '왕의 남자'의

한 장면에서처럼, "너 거깄고~ 나 여깄어~" 를 확인하는 과정이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어쩌면 좀더 탄탄하고 믿음직한

대화를 스스럼없이 나누기 이전, 조심조심 서로를 탐색하고 '친구'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시니컬하게 표현하자면 '슬쩍 간을 보다'란 표현이 딱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ㅎㅎ


아디쉬님의 글([편견타파 릴레이] 전공자가 모든 것을 다 아는건 아니다...) 잘 봤어요. 저도 한 때 사학과를

지망했었는데, 사학과셨다니 왠지모를 우호감이 마구 밀려온다는.ㅋ

릴레이의 묘미는 어쩌면 조금씩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퍼뜩 드네요. 스스로 의욕해서

끼적대는 글들이 단단한 알껍질을 깨보겠다는 안에서의 쪼아댐이라면, 릴레이 바통을 받아 자의반타의반 쓰게 되는

글들은 그 껍질을 깨라고 도와주는 밖에서의 쪼아댐이랄까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이쯤해서, 제가 왜 이런

실없는 글을 기이이이이이이~일게 쓰고 있는지 인증샷 한 장.

집에 쵸큼 남아있던 양주를 홀짝홀짝 병나발을 불었더니 고만.ㅋㅋㅋㅋ

아,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글이 너무 길면 읽기 싫다고 서두에 석줄 요약을 해주는 게 예의라던 한 선배가 불현듯

떠오르는 밤입니다. 어쩔 수 없군요, 아디쉬님이 넘겨주신 릴레이는 다음 포스팅으로...^^;;


From. ytzsche.





1. "나를 만든 [ ]권의 책"을 제목에 적어주세요. (권수에 제한은 없습니다.)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7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5. 기타 세칙은 inuit님의 릴레이의 오상을 참조 바람

내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백설공주를 괴롭히던 왕비가 거울 앞에 서는 것과 같은 일이기도 하다.

(이전에 올렸던 독서론 [릴레이] 내게 책은 [자석], 독서는 [정렬]이다. 라는 것도 있었지만 대략 비슷한 의미다.)

지금 내가 답답한 문제들에 대해, 답답하게 옹친 감정들에 대해 한줄기 활로를 뚫어주거나, 최소한 그에 대한

힌트라도 던져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책장을 펼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니?


책아 책아, 대체 난 왜 이렇게 헛헛한 거니? 대체 세상은 왜 이렇게 굴러가는 거니? 세상을 읽기 위한 조금 더 정밀한

프레임, 안경은 어디 있는 거니? 혹은 지금 내 고민에 대한 답은 어디 있는 거니?


그런 질문과 그에 대한 적시성을 띈 답, 그런 궁금증을 품은 나와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독서는 마치 DNA의

이중나선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휘영청 꼬여들어간다. 그 궤적을 되짚는 것이 아마 '나'라는 걸 형성하는 코어,

핵심가치에 대한 되새김질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책 자체가 좋고 나쁘다는 평을 떠나, 그저 내가 어떤 생각을

해왔고 거기에 가장 큰 반향을 던졌던 책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때마다 책들이 내게 원하는 답을 줬는지, 아님 최소한 답이라도 했는지는 별개 문제다. 왕비의 거울 역시

계속해서 '백설공주입니다'라 대답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가장 과녁에 들어맞은 책, 혹은 저자를 선정해 봤다.


그리고 하나 더, 나의 독서가 자꾸 '말랑말랑'해지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감성을 건드리고 내면을

성찰하게 만드는 책들도 물론 소중하고 귀한 책이지만, 그런 식으로 보다 깊고 풍부한 '느낌'을 위한 감성을 쌓는 것과

동시에 보다 성숙하고 넓은 '사고-생각'을 위한 이성을 단도리해줄 수 있는 책도 같이 섭취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느낌과 생각, 감성과 이성, 둘 중 어느 한 가지만 과잉되어 발달하는 것도 독서 편식의 폐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해서, 굳이 이번 릴레이의 테마를 "나를 만든 사회과학 서적 5권"으로 잡아 보았다. 글쎄, 좀 애매하긴 하다.

사회과학이라고 통칭하기엔 역사서나 철학서도 들어간 것도 사실이니까. (뉴에이지 류의 사조도 철학이라고 칠 수

있다면) 뭐...그래도 내가 생각하던 큰 줄기를 뚝뚝 꺽어나간 결절점이랄까, 그런 책들을 고등학교때부터 시간순으로

나열했으니만치 '나를 만들었다'는 부담스런 표현을 참아주기로 한다.


사족 하나만 더 달자면, 지금 이 책들 중에는 더이상 내가 소중히 생각지도 않거나, 심지어 코웃음치며 "그땐 그랬지"

란 식으로 넘기고 마는 책들도 있다. 뭘지는..읽어보시면 자연히 알게 될 듯. 그렇게 내가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책들조차 내 생각과 시야를 넓혀주었다고 생각하는만큼 애증의 대상이랄 수도 있겠다.


#1.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주해, 정신세계사

"성경의 기원은 바빌론이요, 바빌론의 기원은 수밀이(수메르)요, 수밀이는 고조선의 12연방국 중 하나였다. 이스라엘이

선민(선택받은 민족)이라면, 우리는 천민(하늘의 민족)이다."라는 식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비주류 민족사관을

떠받치는 가장 큰 전거인 책이다. 외제품 선호사상이나 한국사람은 맞아야 한다는 식의 자학(식민)사관이 그간 천년에

걸친 사대주의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때문이라 하며, 우리가 그간의 자학사관과 식민사관을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뭐..한단고기 자체에 대한 진위 논란이 있지만, 천문학을 동원해서 몇몇 사실(史實)이 증명되었다고

하니 전부 거짓이랄 건 아닌 거 같다. (여전히 역사 강역을 논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차원에 제한된 이야기지만...하갸 한중일 고대사 논란은 현재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려 늘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신없는 역사는 정신없는 국민을 낳는다"라는 단재 신채호의 언명과 함께 잊혀졌던 휘황찬란한 고대사의 영광을

강조하는 순간, 파생되는 부작용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통일해서 핵무장하고 중국 내 간도지방 및 조선인 자치구를

다 돌려받고, 인디언들과의 유대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적 소유권을 주장하여 홍익인간의 교리로 황인종 중심의

'황백대전환' 세상을 이끌어나간다..라는 식의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적 논리로 발전한다. 80년대 대유행했다는 '다물

(김태영, 정신세계사)'이라는 소설이 단적인 사례랄 수 있겠다. 그리고 이는 '민족', '국가'를 '개인'보다 우위에 놓는 등

'민족주의자' 박정희에 대한 미화와 같은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이어진다.


#1-1.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임지현, 소나무

저자는 오천년을 내려온 단일 혈통의 한민족이라는 '신화'는 한국인들의 가장 큰 이데올로기이자 종교라고 지적한다.

그 신화가 어떻게 남한의 극우 세력과 북한 정권을 위해 이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오늘의 시각으로 '민족사'와

'민족'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아전인수격인 해석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결국 정치 권력을

정당화하고 포장하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쓰여온 것이 '민족주의'라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2. 금강경, 오쇼 라즈니쉬 강의, 태일출판사

"저 세상을 지향하는 정신은 억압적이고 파괴적일 수 밖에 없다. 그 정신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동시에 타인을 파괴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병든 정신이다. (...)
그대는 오직 의식하는 만큼만 존재한다. 더 많이 존재하기를 원한다면 더 의식적이 되라. 의식은 존재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무의식은 존재를 앗아간다. 술에 취했을 때 그대는 존재를 잃는다.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을 때 그대는 존재를 잃는다. 그런 사실을 관찰해본 적이 없는가? 예민하게 깨어있을 때 그대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갖는다. 그대는 더 중심잡히고 깊이 뿌리내린다. 주의깊게 깨어 있을 때 그대는 존재의 확고부동함을 느낀다. 그러나 무의식적일 때, 그저 질질 끌려가듯이 살아 가고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존재에 대한 감각은 그만큼 무뎌진다. (...)
그대는 옷을 입을 때 기계적으로 입는다. 그대는 옷입는 방법을 기계적으로 터득하고 있다.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이 기계적으로 옷을 입는다. 그대의 마음은 계속해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달음박질친다. 목욕을 할 때에도 그대는 목욕을 무례하게 대한다. 그대는 거기에 있지도 않다.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다. 음식을 먹을 때 그대는 음식을 무례하게 대한다. 그대는 거기에 없다. 그대는 다만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넣고 있을 뿐이다. 그대는 모든 일을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행한다. 그러나 붓다는 어떤 일을 할 때 전적으로 거기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사회 문제에 등을 돌린 채 개인적인 관심사들-예컨대 모의고사 전날 솟구치는 욕정과 같은-을 해결하려는 와중에

접하게 된 오쇼의 강의들. 그가 강론한 반야심경과 금강경은 세속의 번다한 일들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으며, 그건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성숙시키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종교를 넘나들고, 동서양의 철학자들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현명한 통찰들은 나중에 인도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다짐을 이끌어내기도 했더랬다.


아무리 사회가 바뀌고 시스템이 좋아지면 뭐해, 사람이 바뀌어야지, 라는 생각이었던 듯 하다. 더구나 당시

'전생여행'이란 책이니, 피라밋 파워니, 차크라니, 기수련이니, 그저 '뉴에이지'로 묶을 수 밖에 없을 관심사들을

꿰뚫는 키워드랄까, 그건 자동인형처럼 살고 싶지 않다, 매순간 깨어서 의식적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였달까.


#3. 공산당 선언, 맑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이렇게 시작하는 공산당 선언만큼 파괴력을 가진 선언이 있었던가 싶다. 이후 백여년에 걸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공산주의, 사회주의, 혹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움직임을 정식화하여 선포한 맑스의 문건이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 맑스를 접했을 때 느꼈던 가슴 서늘함과 일종의 스릴감, 그리고 지적인 짜릿함은 여전히 생생하다. 여전히 인간

본성이니 내면이니 하는 문제도 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다시금 사회와 사람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맑스의 이름을 내건 숱한 철학자들, 정치학자들, 사회학자들이 있었고, 이미 그건 '애초의 맑스'(그런 게 있다면)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거나 상당한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중요한 것은 아마도, 맑스가 당대의 현실에서 제일모순을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맑스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이상향을 한번도 구체화해서

보여준 적은 없었다. 맑스의 공산당선언에서 시작한 그의 저작 읽기는 자본론, 독일이데올로기를 넘어 알튀세, 그람시..로

계속 뻗어나갔었지만, 남은 건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성찰 및 비판정신 정도랄까.(그정도만 남았어도 다행이겠다..ㅡㅡ;)


#4. 현대 민주주의론, 한국정치연구회 사상분과 편저, 창비

"민주주의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맑스주의자라고 자처하려면 지금의 민주적 절차라거나 제도를 모두 거부해야 하는 줄 알았던 풋내기 눈에 커다랗게

띄었던 책 두 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손호철 교수가 감수한 일종의 이론서랄까 다소 고급한 교양서랄까. 92년에 발간된
 
이 책 앞머리말은 "민주주의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현존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주의적 공세 하에서 무의미하고 사소한 문제로 전락해 버린 '민주주의'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게 뭘까.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에는 대체 좌나 우나 모두 옹호하고 지키고자 한다는 '민주주의'가 대체

무엇을 뜻하는 단어인지 명료하게 알고 싶었다는 지적 욕구가 컸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가 유행처럼 지난 2009년의 지금쯤에는 다시 한번 '민주주의'가 뭔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단어인지 절실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배부른 지적 욕구가 아니라, 뭐랄까 다소 절박한 생존 본능이

조금 발동.


#5.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너는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다시 한번, 아니 수없이 몇번이고 되살아야만 한다. 새로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네 생애의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크고 작은 일들이 다시 반복되어야만 한다. 모든 것이 똑같은 순서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신은 죽었다."라는 문구가 등장하는 이 책, 물론 니체는 여러 차례 신은 죽었음을 이야기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랄까,

짜라투스트라는 스스로 "신을 모독하는 자"로 불리기를 원한다. 춤추는 자, 유희하는 자인 '초인(위버멘쉬)'이 되고자

하는 짜라투스트라의 성장기랄까, 구도기랄까, 그가 어떻게 종교를 극복하고 형이상학과 염세주의(니힐리즘)을

극복해내는지 보여준다. 니체의 말에 따르자면 그의 가장 특별한 책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의 모든 저서를 집대성한

느낌이다.


물론 그의 이 책은 여러 아포리즘과 함의들을 끄집어 낼 수 있으며, 그것이 이 책에 대한 수많은 해설서들이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 나온 이유기도 하다. 가능한 실마리 중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 것 하나는, 천국이든 내세든 일종의 이상향이든

끝이 닫혀있는 미래를 믿고 싶어하며, 자신의 삶이 왜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무언가에 기대어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는

달콤하지만 '강퍅한' 유혹을 뿌리치라 말하는 짜라투스트라. 쳇바퀴 돌듯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황량한 현실에 대한

거짓된 희망이나 약속 따위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바라보며 긍정하라 말한다. 단순화의 왜곡과 어폐를 감수하고

간단히 말하자면, 흔히 말하는 '카르페 디엠'을 보다 촘촘하고 치밀하게 뒷받침한달까. 아..설명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명하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그대들에게 대지를 초월한 희망에 대해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이 의식적으로 행하든 무의식적으로 행하든 그들은 독을 타는 자들이다."


#5-1.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

"신앙의 기원-속박된 정신은 자신의 입장을 근거에서가 아니라 습관에서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그가 그리스도교인인 것은, 여러 종교들에 대한 통찰을 거치고 그것들 중에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영국인인 것은 자신이 영국을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치 포도주 산지에서 태어난 사람이 포도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그에게 그리스도교와 영국 국적이 놓여 있어서 그것들을 아무런 근거없이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인과 영국인이 되고 난 후에, 그는 아마 또 자신의 습관에 들어맞는 몇 가지 근거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이런 근거들을 뒤엎는다 하더라도, 그의 모든 입장에서 그를 뒤엎지는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속박된 정신으로 하여금 이중 결혼에 반대하는 자신의 근거를 말하게 하면, 일부일처제를 찬성하는 그의 신성한 열성이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 습관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근거 없이 정신적 원칙들에 습관화되는 것을 우리는 신앙이라고 부른다."

신앙에 대해, 종교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니체의 아포리즘 속에서 거의 꼭같이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더구나

그것이 더욱 위트있고 우아한 글투로 잘 정련된 것이라면야.



#뽀너스~* 텔레비전에 대하여, 피에르 부르디외.

최근 검은괭이2님이 바통을 넘겨주셨던 [힘내자 릴레이] 좋은 글귀, 대사 같이 나눠요~^^에서 끝까지 넣을까 말까 했던

문구 중 하나가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텔레비전에 대한 대중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 사회학에

관심을 갖고 그의 아비튀스니 사회적 자본이니 이야기들을 따라가다가 만난 책이었는데, 짧으면서도 언론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준 책이었다. 요컨대 텔레비전이나 언론의 시청률 경쟁, 상업적 성공을 위한 질주 속에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비슷한 이야기에 둘러쌓이게 되고 만다는. 뱀이 제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돌듯, 언론사끼리 서로의 것을

조금씩 베끼면서 약간씩의 다른 이야기를 양념치듯 얹는데 만족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살짝 바꿔본다면? 텔레비전 대신 이른바 1인 미디어라는 상찬을 얻기도 하는 블로고 스피어 내의 블로거들이라면?

특히나 최근 출판사나 온라인서점, 영화홍보사, 심지어는 온갖 가전제품 메이커들까지 뛰어든 '리뷰' 시장에 있어서

빗대어 생각해볼 만한 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길게 인용해 본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게 독창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집단적 구속이 매우 강한, 특히 경쟁의 구속이 강한 세계에서 특별히 적용되는 말입니다...즉 무언가 말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미디어 산물들이 동질성을 갖게 되는 메커니즘 중 하나입니다. 만약 '리베라시옹'이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사를 실으면, '르 몽드'는 무관심하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르 몽드'는 거리를 두면서 그의 높고 진중한 명성을 지키기 위하여 조금 다른 점을 보여주려고 애씁니다. 다양한 기자들이 주관적으로 부여하는 약간의 차이점은 많은 유사성을 가리고 있습니다...이런 모습은 특히 문학/예술 비평이나 영화비평의 경우에 눈에 띄게 나타납니다.
서로를 비추는 이같은 종류의 거울 게임은 정신적 유폐와 폐쇄의 무서운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사정에 밝고 재빠르게 행동하기 위하여, 그리고 좀 다르게 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아주 작은 차이점에 기자들은 큰 환희를 느끼고, 시청자들은 이 차이를 모르는 채 지나갑니다. 이 차이는 의식을 지배하는 이 세계의 숨은 신, 즉 시청률 상승에 기여합니다.
오늘날 제작편집실, 출판사 등에는 '시청률 정신'이 있습니다. 어디서나 사람들은 상업적 성공의 측면에서 생각합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플로베르와 보들레르 이후 약 30여년 간 작가를 위한 작가, 작가에 의해 인정된 작가들, 혹은 예술가에 의해 인정된 예술가들은 갑작스런 상업적 성공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시대와 돈 등과 야합한 징후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시장은 더욱더 정당화의 정당한 심급으로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최근의 심급은 '베스트셀러' 리스트입니다."


Special Thanks to 초하님~*

앞선 릴레이주자분들이 하도 빵빵하게 잘들 써주셔서..조금 다른 릴레이글을 남겨 보았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 독서

편력의 계보를 그려본 셈인데..맘에 안 드시려나..? 쓰다 보니 너무너무 거창해진 거 같기도 하구요..ㅡㅡ;;

쉐아르 :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다산선생 지식 경영법,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삼국지

brandon님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천국의 열쇠, 태백산맥, 하나님의 뜻,
                    
Parenting with Dignity

초하님 : 모모, 지와 사랑, 비둘기 외, 태백산맥, 기독교 종교 교육
이채 : 한단고기, 금강경(오쇼 라즈니쉬 강해), 공산당 선언, 현대 민주주의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Thank you in advance, 비프리박님~*

그리고 이 릴레이를 이어 받아 주실 분은...비프리박님(http://befreepark.tistory.com/)이 왠지 떠오르네요.

지난 나눔때 제게 임지현 교수-요 위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를 썼던-의 '적대적 공범자들'이란 책을 나누신 분입니다.

그리고 초하님도 말씀하셨지만, 누구든 자발적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과학적? 좀 팍팍해 보인다. 과학적이라고 하면 왠지 진지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천상 문과생인 거다.

부도덕? 꺄아~ 도덕 따위 운운하는 사람들과 상극이란 점에서 넘넘 맘에 들었다. 난 부도덕하고 더러워. 꺄아~* 

진리?? 진리?? 오오...신이 죽은 이 시대에 진리라니. 이거 뭔가 무지무지 거창해 보이는 릴레이닷. 오홋!


라는 게 김젼님(http://scat.textcube.com/)으로부터 릴레이를 넘겨받았을 때의 첫 느낌이었다.

요약컨대....뭥미?? 랄까.


애초 이 릴레이를 시작하신 capcold님(http://capcold.net/blog/3950)의 설명을 빌자면,

나름 엄밀한 제한조건을 둔다는 점에서 ‘과학적’이고, 양쪽의 약점을 동등하게 깐다는 점에서 ‘부도덕’하다.

진리..란 단어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뭐 어느 한 국면에서의 한순간 정도는 진리일 수 있을 테니 패스~

그치만 그것보다 더 매력적인 문구는 "애증의 시니컬 대향연 릴레이"~*

간단 규칙:
- “A는 좋다, **하기까지는. B(A의 반대)는 좋다, ##하기까지는” 이라는 무척 긍정적(…)이고 역설적인 접근방식으로 내가 아는 세상의 진리를 설파한다. 갯수는 제한 없음.
- 2명 이상의 사람에게 바톤을 넘긴다.
- http://sprinter77.egloos.com/tb/2423191 으로 트랙백을 보낸다. 자기에게 보내준 사람에게도 트랙백 보내면 당근 아름다운 세상.
- 마감은 7월 15일까지. (inspired by 이누이트님의 독서릴레이)

예컨대 이런 식이라는 거겠지? 대학 때 경험을 되살려 보자면,

#0.
운동권 선배는 좋다, 집회에 가자고 꼬시기 전까지는.

고시생 선배는 좋다, 조금만 깊이 말을 나눠 지겨워지기 전까지는.

* 뭐 운동권의 반대가 고시생이냐, 운동권이 어딨고 비권이 어딨냐, 고시생은 다 재미없고 지쳐있냐..는 따위 반박이
 
가능하겠지만. 말했듯, 어느 특정 인간의 특정 시간 0.94초 쯤에는 이 두 문장이 진실일 수 있을 거다.


본격적으로 생각해 본 몇가지.

#1.
여성인 친구가 좋다, 이쁜 척하며 삥 뜯는 게 느껴지기 전까지는.

남자인 친구가 좋다, 사실 널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전까지는.

#2.
군대있을 때가 좋다,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 전까지는.

사회에 있을 때가 좋다, 뭘 해야 할지 생각하기 전까지는.

#3.
소주는 좋다, 다음날 머리가 쪼개지며 눈뜨기 전까지는.

맥주는 좋다, 다음날 올챙이배가 툭 튀어나온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3번에 대한 응용, 진리는 꼭 대척점에 서라는 법은 없으니. 동서남북 사방에서 대치할 수도 있는 게다.

#3-1.
소주는 좋다, 다음날 머리가 쪼개지며 눈뜨기 전까지는.

맥주는 좋다, 다음날 올챙이배가 툭 튀어나온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막걸리는 좋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트림이 나오기 전까지는.

양주는 좋다, 키핑해놨던 술에 물이 부어진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 보낼까, 했더니 마침 초하님이 또 제게 바톤을 넘기신 게 있군요. 그리고 카타리나님은 어제 오전근무만 하고

퇴근하신다고 놀리고 도망가셨구요.ㅎㅎㅎ

하여 초하님(http://chohamuseum.net/)~! 그리고 카타리나님(http://blog.daum.net/juryan39)~! 


이 릴레이는

capcold님, (중간 과정 증발;;) 아키토님, 톨™님, 김젼님..의 뒤를 이어 제가 받았네요.

Special Thanks to 김젼님. 감사해요, 덕분에 재미있었어요^-^*



검은괭이2님께서 좋은 글귀나 대사 등을 공유하면 좋겠다고 시작하신 릴레이를 처음으로 이어받았습니다.

[힘내자 릴레이] 좋은 글귀, 대사 같이 나눠요~^^ 에서 저를 포함한 세분(무량수won 님, 초하 님)에게 바통이 갔어요.

(왜 다른 분들에 대한 소개는 저에 대한 소개 분량에 두 배에 이르는 걸까요..ㅜ 앞으로 더 친해져요 검은괭이2님ㅋ)


덕분에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거리거나, 제가 드문드문 핸드폰에 메모해뒀던 구절들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생겼네요^^

그러다보니 공유하고 싶은 구절이나 대목들이 꽤나 많아져서 은근히 3개로 압축하는 것도 쉽지 않아졌습니다.


룰은 다음과 같아요.
1. 책이나 만화책에서 본 좋은 글귀, 영화나 드라마에서 감동 받았던 대사 등을 1개에서 3개 정도 써주세요~^^
2. 출처를 반드시 남겨주세요^^ ㅎ
3. 다음 주자 2~3 명 정도에게 바톤을 넘겨주세요^^
4. 이 릴레이는 7월 15일에 마감합니다~

저는 이에 더해 하나 정도 룰을 더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요. 뭐, 안 내키시는 분은 그냥 무시하셔도 되구요..ㅡㅡ;
5. 글귀 중 하나 정도는 직접 손글씨로 써서 올려주세요.


#1.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삶에 대해 곰팡내를 풍기는 낡아빠진 시시한 말들을 지혜로 여기는 자는 식탁에 앉을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으며, 심지어는 맛있게 먹기 위한 식욕조차도 가지고 오지 않는다."

 - 제가 이해한 바로는, 어줍잖은 아포리즘이나 겉멋든 말들에 현혹되서 인생 다 살아본 양 껄렁대지 말자는

니체의 경고가 아닐까 해요. 일단 살아봐라, 하루하루 정말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라, 라고 말하는 듯 하네요.
어익후 글자가 너무 삐뚤빼뚤하군요...ㅡㅡ;; 그치만 줄도 안 그어진 A4 용지 아무데나 끄적여 본 거라서 이정도면 내심

만족입니다. 제 글씨는 어머님도 구박하는 악필이라.ㅋㅋ(참고로 파커 만년필, 검은색 잉크 만땅충전된 상태입니다.)


#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똥누는 순간은 하나님의 창조를 수락하지 못하겠다는 데 대한 일상의 증명이다. 둘 중의 하나다. 똥을 수락하든지 아니면 우리들 자신이 수락할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된 것이다."

 - '똥'. 우리 뱃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것이지만, 무시당하고 터부시되어 마치 없는 것인양 대접받고 있죠.

그렇지만 인간이 신과 다르다는 가장 단적이고 원초적인 증거 아닐지, 게다가 '똥'을 복권한다는 건 함부로 폄하되고
 
경시당하는 인간의 육체적이고 생리적인 욕구를 제대로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인간 그대로의 인간으로 회복된달까요.


하나를 쓰고 났더니 확실히 마음이 풀려 글씨도 풀어졌다는 느낌이네요. 조금씩 글자가 날아가려는 듯한 기색이

움찔움찔. 그래서 세번째 구절은 그냥 쓰다가 꾸깃, 구겨버렸습니다.ㅎ


#3.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 中 플로베르의 경구.

"만족을 느낀 후엔 싫증을 내고, 사랑이란 단지 정욕뿐이라고 말하는 그런 천박한 인간들과 나를 같다고 생각지 마라. 아니다. 나의 마음속에 생긴 것은 그렇게 빨리 사라지지 않는다. 내 마음의 성들은 세워지자마자 이끼가 자라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성들이 완전히 무너지더라도 폐허가 될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 메일의 서명으로 자동등록해 둔 구절이기도 한 플로베르의 이 문구는, 어떤 면에서 제 마음이 움직이는 바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뭔가 뜨끔뜨끔한 느낌이에요. 마음이란 게 때론 무지하게 팔랑대는 거 같아

보이면서도 기실은 그렇게 쉽게 생기지도,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 면도 있단 걸 잘 포착한 표현이 아닐까요.



다음 선수 세 분 모십니다~*

제가 요새 자주 놀러가는 파아랑님(http://paarang.tistory.com/), 더구나 지금 저랑 같은 이벤트에 당첨되었는데 책이

서로 뒤바뀐 거 같죠?ㅎㅎㅎ 제가 읽고 싶어했던 마교수님 책 두 권 잘 받으셨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소월ⓥ님(http://addition.tistory.com/). 뇌테스트에서 105 75 80 나오셨다는 소월님은 이제 기말고사도 얼추

끝났을 테니 멋진 포스팅 기대할께요~호호^^

마지막으로 아디오스님(http://aiesecks.tistory.com/), 얼마전부터 아디오스님의 손글씨가 정말정말 궁금했거든요.

제가 굳이 손글씨 옵션을 넣은 이유도, 블로거 이웃분들끼리 조금은 더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이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아디오스님 이뿌게 잘 부탁드려요.ㅎㅎ


릴레이 러너들의 계보.
검은괭이2 님 - 이채 (님) -




2. 이제 별걸 다 시켜주시는 우리 초하님♡(http://chohamuseum.net/241)

릴레이는 뭥미..하고 내용부터 살펴 보았다. 독서란 '네모'다, 라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기회를 주는 릴레이다.

누가 묻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대답들이 있고,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하지 않는 대답들도 있는 법인데,

아마 자신에게 독서란 무엇인지,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그러한 것 중의 하나일 거다.

1. 독서란 [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를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명을 지정해 주세요
.
4. 릴레이는 6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
5. 기타 세칙은 블로그 릴레이의 오상(五常)


이미 많은 분들이 쉼없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독서가 자신에게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주셨다. 혹시 내가 생각하는 키워드가

겹치지 않을까,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위의 3번항, 누구한테 넘길지를 정하기 전에 누가 이미 답을 하셨나 확인해 보고

싶어서 한분한분 찾아가보았다. 머..무슨 생명의 나무를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궤적을 되짚어보는 험난한 여정이어서,

그냥 조금 찾아보다 말았는데, 얼추 기억에 남는 네모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아디쉬님에겐 "지식의 습득, 그리고 그에 의한 즐거움". (http://adish.tistory.com/123)

초하님에겐 "책 나눔". (http://chohamuseum.net/241)

맑은독백님에겐 "거울". (http://rayny.net/entry/릴레이-나의-독서론)

웰덴지기님에겐 "재미". (http://walden3.kr/1873?TSSESSION=140467c038b6c304337c42b25d25399b)

Read&Lead님에겐 "월아(越我)". (http://read-lead.com/blog/entry/월아-알고리즘?TSSESSION=131722e74232374d4ad74d43284e8006)

다들 너무너무 글도 잘 쓰시고, 생각도 많으시고, 게다가 책도 많이 보시고 포스팅도 많이 하신다는..ㄷㄷㄷ

이미 나올 말은 다 나온 게 아닌가 싶어서..살짝 쫄아버렸다.


1-1. 내게 책은, 자석이다.

내게 책은. 자석이다. 독서가 뭔지 답하기 전에, 우선 책은 그렇다. 자석이다.

책을 열기 전부터, 제목이나 작가, 혹은 약간의 사전지식만으로 내 안의 뭔가를 끌어당기곤 한다.

그건 내가 어떤 감정상태에 있는지, 어떤 불만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혹은 어떤 부문에서의 갈증과

무식함을 느끼고 있는지에 따라 달랐지만, 거칠게 구분하자면 어려서는 문학이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역사였으며, 대학교 때에는 사회과학 도서가 특히 강력한 자력을 띄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요새는, 책이 가진 자력에 이끌리기보다는, 뭔가가-알라딘이나 위블 등-따끈한 신간 서적들을

하늘에서 떨어뜨려주고 있다. 가끔은 내게 징징 울리며 마력같은 자력을 발휘하는 책들을 제쳐두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간, 게다가 소설류로만 편중된 책들과 마주한다는 게 속쓰릴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요샌 다시, 사회과학 서적류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고 있다. 생체권력을 다룬 푸코라거나,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들..


1-2. 내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렬이다.

내게 있어서 독서란 스스로를 정렬시키는 행위인 것 같다. 자석 끝에서부터 파닥이는 철가루의 정렬처럼.

불쑥 들이밀어진 자석에 어김없이 감응하며 바싹 곤두서는, 혹은 두개의 자석 사이에서 파르르 긴장하는

그 이미지처럼, 그 선명한 떨림과 가쁜 호흡. 저자와의 섬세하고도 마력적인 조응. 그렇게 책을 읽으려 한다.


그게 비단 정묘한 개념과 로직으로 한층한층 쌓이는 사회과학 도서가 아니라 설렁설렁 넘기며 '느끼면 되는'

시집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가능한 푹 빠져들어 그 책이 보여주는 세계와 만들어내는 아우라를 한껏

즐기고는 그게 내 안의 어디를 건드리고 있는지, 무슨 부분을 채워주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는 것은

행복하다.  내게 빈곤했던 상상력, 표현, 내가 보지 못한 풍경, 내가 느끼지 못한 감정, 혹은 내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아이디어와 그걸 극한까지 밀고가는 사고 유희들을 따라 기꺼이 저자들과 나란히 서있어 본다는 것은.


한 권을 읽으면서도 내 안의 무수한 철가루들이 이리저리 파닥대며 종횡하는 걸 느낀다.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물만났다는 듯 쌩하니 어딘가로 날아가붙고. 서로 상충하거나 다른 시각을 가진 책들이 이어진다 치면

철가루들은 더욱 정신없이 휘몰아치고서야 잠시 정렬..혹은 휴전 상태로 들어간다. 하물며 내가 안으로만 품고 있는

이야기를 밖으로 토해낼 때 일어나는 소요 사태란.


그러고 보면 '정렬'이라기보다는, 철가루들이 떠다니며 그려내는 무늬랄까, 해변가 파도가 그려내는 모래사장의

무늬랄까. 그런 것이 나의 독서인 것 같다는 자괴감이 한 웅큼 불쑥. 생각보다 사람을 바꿔내는 책이란 많지 않다는

깨달음도 한 몫했다.


3. 윤뽀님(http://qtotpz.tistory.com/)과 나른한고냥이님(http://petiteneco.tistory.com/)

블로그에 대해 얹어주는 제각기의 의미와 가치들이 있겠지만, 사실 내 글쓰기는 우선 나를 위한 행위이다. 얼마전

똥파리의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두고, 자신을 위한 영화라 당당히 밝혔던 장면이 너무도 솔직해 보였고 와닿았었다.

그게 내 블로그에 '나를 위한 이야기' 카테고리가 별도로 있는 이유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꺼려하지도 않고 냉소적이지도 않다. 차라리, 기본적으로 나를 위한 이런 주절거림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발판이 되길 바란다는 게 맞을 거 같다. 그런 소통의 념을 조금 더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기꺼운 고심끝에 두 분께 짝대기를 향해 본다.


책을 정말 좋아라 하시며 얼마전 제게 동족 '괴물'을 업어가신 윤뽀님,

그리고 요새 배부른 막내사원이라 느끼시며 뭔가 '자기계발'의 욕구가 강렬하신 나른한고냥이님.

부담갖지 마시고, 잘 부탁드려요~∩_∩*

애초 6월 20일까지라는 마지노는 누가 정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그대로라면 두 분께서 문을 닫으심 되겠군요^^



덧붙임1_

'정렬'이라곤 했지만, 독서의 여운에서 벗어나는 순간, 혹은 다른 책으로 덧씌워지는 순간 대부분의 형체가

흐트러지고 만다. 아무리 울림이 크고 깨달음이 깊은 책이라 해도 나의 내부를 보기좋고 이해하기 좋도록

완결된 형태로 정돈/정렬하는 건 불가능할 게다. 아마 그건 죽은 후 관짝 뚜껑이 덮일 때쯤에야 가능하겠지.

흐트러진 걸 좋아하고 모순투성이인 철가루 탓이지 자석 탓할 일은 아니다.


덧붙임2_

예전에는 타블라 라싸, 아무것도 씌여지지 않은 공간이었는데 차츰 뭔가 고집스럽고 꼿꼿한 것들이

생겨나면서 그 '정렬'을 방해하는 것들도 많아졌다. 빠릿빠릿 움직이며 촥촥 모양을 그려내는 유연하고

가벼운 몸놀림의 철가루가 아니라, 둔하고 무딘 철괴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시, 어설프게 아는 건

아예 모르느니만 못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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