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제주도. 비자림과 모슬포항, 가파도 청보리 축제까지 둘러봤던 짧은 여행. 들고 갔던 펜탁스 필카로 찍은 한 롤.





























 

제주도 앞바다 바람은 어찌나 세차고 몽글몽글하던지, 한번 쑤욱 하고 천막 아래로 들어가면 온통 들썩들썩이다.

 

제주도 남서쪽, 모슬포항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는 송악산과 산방산 지역을 찾은 날은 하필 날씨가 들쭉날쭉.

 

송악산 아랫도리에 뚫려 있는 무수한 인공동굴들, 일제시대 전쟁시설물로 쓰였다는 곳은 이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출입금지의 위태로운 공간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수륙양용기나 전함들, 아님 대포들이 숨어있었으려나.

 

 

그리고 송악산을 따라 이어지는 구비구비 올레길.

 

해안을 따라 오르내리는 율동감도 좋고, 좌우로 뱀처럼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걷는 느낌도 좋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벼려진 절벽을 지난 시선이 꽂히는 곳은 산방산.

 

 

 

 

해안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걷다보면 푸른 바다와 초록초록한 풀밭과 새하얀 파도.

 

 

그리고 바다 너머 점점이 꽂혀 있는 조그마한 암석 쪼가리들과 제주도의 실루엣.

 

제주도하면 역시 말, 이 푸른 초원 위에서 승마를 체험할 수 있으려면 말을 좀 배워야 할 듯.

 

 

 

제주도 이쪽 지역의 특색인 듯, 양지바른 곳에 잘 쓴 묘 주변을 현무암으로 저렇게 두텁게 둘러놨다.

 

동물들이나 잡초들의 침범을 피하기에 딱일 듯.

 

 

 

그리고 어느 시점에선가 시작된 나무데크 산책로.

 

 

송악산을 외곽으로 빙 둘러서 걷는 코스, 대략 2.8km라 했으니 한바퀴 도는데 한시간이 채 안 걸렸던 듯.

 

어떻게 보면 바다를 향해 단단히 채비하고 세워진 만리장성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무데크가 스물스물 기어오르고 내리면서 제주도 남단의 해안선을 그대로 끼고 걷는 산책로.

 

 

길 중간에는 떡하니 버티고 선 나무를 그대로 살려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한 바퀴. 형제섬을 앞에 둔 송악산 입구에는 여전히 펄럭펄럭, 깃발처럼 천막을 나부끼게 만드는 바람이 잔뜩.

 

 

 

 

 

모슬포여객선터미널, 새롭게 단장중이던 터미널 앞 건물에는 철썩철썩 파도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여객선으로 대략 20-30분 정도면 금세 제주도를 떠나 가파도에 가닿는다. 산방산과 송악산이 바다너머 보이고.

 

  

누군지 참 공들여 쌓아둔 돌탑.

 

올레길 코스를 가리키는 파란색 화살표가 오두막에 단단히 박혔다.

 

 

 

새파랗던 하늘, 시퍼렇던 바다, 초록초록하던 가파도의 해안길.

 

 

 

 

선인장이 드문드문 자라는 식생도 조금 이질적으로 보이고.

 

풀숲 위로 스물스물 낮은 포복하듯 기어가는 하얀 구름, 파란 배경 탓에 바로 눈에 띈다.

 

 

 

가파도 마을 사람들이 바다에 제사를 지낸다는 제사단.

 

그리고 사람들이 앉아 쉬었다 가는 팔각 정자의 시원한 대청마루.

 

 

 

 

 

온통 동글동글한 몽돌로 치장한 가파도 마을의 어느 민박집.

 

올레길의 또다른 상징, 파랑색 조랑말 모양의 표지판.

 

아무래도 이런 조그마한 섬에선 급한대로 이렇게 쓸 일이다. 나무판자에 (아마도) 락카로, 급커브.

 

 

 

해안도로랄까, 산책로와 바다의 경계에는 씨알굵은 바윗덩이들이 일렬로 늘어서 단단히 박혔다.

 

 

그리고 가파도 민박식당. 이곳의 정식은 갈 때마다 참, 신기하고도 맛난 반찬들로 가득하다.

 

어느 갈래길. 제주도의 흔한 현무암 돌멩이들로 쌓아올린 돌담들의 실루엣이 미묘하다.

 

 

 

단단히 묶여있고 싶었던 거다. 이리저리 묶고 조여서는, 붉게 녹슬어 거죽은 부서져내릴지언정 철심에 기대고 싶었을 거다.

 

 

가파도를 해안선따라 한바퀴 걸어서 돌아보는 시간은 고작해야 두어시간, 중간중간 쉬고 사진찍는다 해도 그정도.

 

 

 

풍력발전기가 두 기. 거대한 바람개비처럼 윙윙 돌아가는 모양새가 한마리 학처럼 우아하기도 하고.

 

 

구멍이 숭숭한 돌들이 어찌나 많은지, 처음엔 신기한 수석보듯 보다가 나중엔 그저 범상해 보이기만 하더라는.

 

와중에 만난 하얀 강아지 한마리.

 

그리고 이 뜬금없는 시멘트 구조물은, 바다를 향한 미끄럼틀.

 

가파도를 닮아 담백하고 조용한 할머니 한분이 천천히 지나가며 슬쩍 웃음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제주도와 가파도를 오가는 배의 선장님은 때로는 피자배달부가 되기도 하더라는.

 

 

 

 

 

 

 

제주 모슬포항, 고등어회가 유명한 이 곳, 가파도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에서 맞았던 봄.

 

 

짠기운 섞인 비바람에 삭아내려 조각조각 부서져내리는 항구 끄트머리의 나무틀.

 

 

그 틈새에서 용케도 뿌리를 내리고 새 잎사귀를 틔워내고 줄기를 겯고 급기야 꽃망울까지 터뜨린 녀석들.

 

언제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모슬포항, 곳곳에 그려진 벽화도 무척이나 리얼하다.

 

모슬포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 버스를 몇차례 타보면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건 꼭 사람만은 아니더라는.

 

기다림이 간절하면 저렇게 갓 박아둔 보도블록 틈새로 손가락만큼 굵은 꽃대를 세우기도 하더라는.

 

 

 

 

 

모슬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마라도 아니면 가파도에 가 닿는다. 더러는 마라도를 지나 가파도에

닿기도 하고, 가파도를 지나 마라도에 닿기도 한다지만, 가파도로 바로 가는 직행 선박은 하루

서너차례쯤 있다고 한다. 9시, 11시, 14시에 모슬포행에서 출발.

빗발이 잘게 부서져 분무기에서 뿜어나오듯 사방으로 비산되는 궂은 날씨, 쾌속선 뒤의 스크류가

퍼올리는 바닷물 방울들까지 합쳐져 배 뒤는 온통 뿌연 안개다.

멀찍이 보이는 산방산. 신령이 한라산을 빚다가 너무 높다 싶어 산봉우리를 뽑아 내던져서 생겼다는

커다란 바위산이 불쑥 솟아서는 잿빛으로 케케한 풍경 너머 실루엣만 내밀었다.

가파도에 들어선 길. 채 20분이 걸렸나 싶을 정도로 짧은 코스였다. 날이 흐리고 파도가 높아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미처 걱정스런 마음을 채 펼치기도 전에 야트막한 바다를 건너 도착.

가파도는 '섬속의 섬', 제주 올레길 10-1코스다. 제주도를 따라 동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쭈욱

이어지는 긴 끈같은 올레길이 이어지는 와중, 우도니 가파도니, 옆으로 새어 나온 길은 '다시' 표시가

붙어서 가까운 올레길 번호로부터 갈라져나온다. 신기한 게 남쪽이 상동, 북쪽이 하동. 이 섬과

섬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살았단 증거 아닐까.

올레길 10-1코스, 가파도 코스는 총 5킬로미터, 한두시간이면 주파할 거리지만 어차피 조그마한 섬,

올레길에 구애받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한 세네시간 여유롭게 돌다보면 숨어있는

이쁘고 신기한 풍경들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게 조금 에러.

가파도에 살고 있는 인구는 겨우 150명 내외, 고양이가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겠지만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는 전부 알만큼 조그마한 섬인 건 확실하다. 바다 넘어 어디론가 달려가는 배 한척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동도 않는 고양이 뒷모습이 맘을 건드렸다.


어서 오십시오, 가파도 올레길을 시작하는 길 앞머리에 그려진 포석은 그려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

같은데 벌써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날근날근해졌다. 그 옆으로는, 바람 많은 섬 제주도의 구멍 숭숭한

돌 현무암으로 괴어올린 구멍숭숭한 돌담을 시멘트 벽돌로 따라 만들어 놓은 거 같다.

원래 이게 정석 아닌가. 돌 많고 바람 많은 제주도의 돌담이라고 하면.

왜 그렇게 고양이가 많던지. 어쩜 가파도도 노인분들 밖에 남지 않아서 반려동물로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있는 거 아닐까, 외로움을 달랠 벗삼아서. 그래서인지 고양이들 눈빛이 더욱 새초롬하다.

섬 외곽의 해안선을 따라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긴 하지만, 조금만 화살표 벗어나 섬 안으로 들어가면

온통 미로같은 길이 꼬불꼬불하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온통 까만색 현무암으로 구획된 채 사방으로

열리거나 닫혀있는, 더러 가정집 앞마당이나 뒷마당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하는 그 길이 재밌다.

가파도에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건, 역시 섬에서 마실 물을 구할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풀떼기가 무성하게

자라난 저 웅덩이가 우물인지 아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때는 우물 비슷한 거였지 않을까. 그리고

둥그스름하게 곡선을 그리며 쌓아올려진 돌담은, 왠지 똥돼지를 가둬놓고 기르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저 쪽이 제주도. 자욱하게 피어오른 바다안개와 비구름 사이에 낀 채 겨우 봉오리만 봉긋 세운

산방산과 울룩불룩한 제주도의 실루엣이 보인다.

올레길을 조성하면서 섬 해안도로를 시멘트로 포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미처 다 완공되진 않았다고

옷이랑 신발 버린다며 딴 길로 가라고 알려주시던 가파도 주민 할머니, 맘 써주시는 게 고맙긴 했지만

조금 묘한 생각도 들었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의 길, 흙길을 더욱 반길 테지만 막상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흙길 대신 시멘트길을 당연히 더 반기는 거다.


'지방'에 대한 '서울' 사람들의 인식, '시골'에 대한 '도시'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다. 휴양지로서, 추억을

되새기고 재충전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 이상화된 자연, 박제된 과거의 이미지가 유지되길 바라는 건

아닐까. 불편함을 감수하고 인간다움과 자연을 만끽하겠다는 건, 그게 일상이 아니라 잠시지간의

일탈, 혹은 여행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레길이 유명해지며 자연이 파괴되고 인심이 황폐해진다는

걱정은 도시 사람들의 것, 올레길이 유명해지니 이제 좀 살길도 트이고 개발되어 좋다는 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것 아닐지. 많이 거칠게 굳이 나눠보자면. 쉽지 않은 문제다.

깡총 솟아있는 한쌍의 쓰레기통이 귀여웠다. 금방이라도 저 철봉을 잡고 앞뒤로 흔들대다가 훌쩍

한바퀴 공중제비라도 넘을 거 같은 거다.

가파도를 걸으며 만난 꽃들, 거센 빗방울에 툭툭 꺾였다가도 힘내어 곧추서는 단단한 줄기에 매달려

말갛게 꽃잎을 씻어내고 있었다. 침침한 날씨에 꺼뭇한 돌틈 사이에 가려져서 원래 빛깔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 꽃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꽃도 있었고.


가파도 북쪽 끝단에 가까워질 무렵, 아까 길이 채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 있는데 비때문에 진창이

되어 있을 거라더니 여기 이야기였다. 온통 찐득한 진흙이 철퍽대는 길을 따라 걷다가 굵어진 빗발을

그을 겸 옆의 오두막 같은 곳으로 올라가 잠시 쉬었다. 알고 보니 여기가 가파도에서 일출을 보기

가장 좋은 해맞이 장소라던데, 저렇게 잿빛 파도가 출렁이는 너머에서 해가 뜬다면 굉장히 멋질 듯. 


가파도에서 봄에 열리는 축제가 하나 있는데, 청보리밭 축제라고 한다. 조그마한 섬이지만 중간중간

제법 커다란 손바닥만한 보리밭이 현무암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아직 청보리를 수확하지

않은 건지 그 푸르름을 미루어 짐작함직한 '샘플'들이 남아있었던 것. 4,5월 쯤에 청보리가 지천에

틔워올랐을 때 다시 와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도 뭐, 다른 계절에 왔다고 해도 저렇게 돌뿌리에

기대어 소담하게 피어난 꽃들도 보이고, 갑갑한 창고 속에서도 초록빛 싱싱한 풀떼기도 보이고.

이쪽 각도로 보면 날이 좋을 때 무려 6개나 되는 봉우리를 볼 수 있다는 안내가 있었지만, 날이

잔뜩 궂은 날에야 그런 풍경보다는 차라리 저 안내판이 더 눈이 갔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말의

형태를 본딴 게 틀림없는 파란색 철제 표지판. 제주도에 흔했을, 그래서 가파도에서 제법 흔했을

말과 소 같은 짐승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제주도의 무덤은 저렇게 돌담으로 네면을 모두 꽁꽁

싸매어놓는다고 한다.

마을의 안녕과 고기잡이의 성공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던 마을 제단이 있던 곳. 남자 9명이 제관으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제를 올렸다는 이곳은, 정확히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공간이다.

지금도 매해 정월쯤에 날을 잡고 제사를 올리고 있는데 벌써 그게 150여년의 전통을 만들었다는.

해안길을 따라 계속 걷는 길, 그래도 자그만 섬에 항구는 남북으로 두개나 있는 데다가 커다랗게

헬기장도 하나 지어져 있다. 뭐 이렇게 날씨가 궂은 날에는 파도도 높고 기상도 안 좋아서 바닷길이나

하늘길이나 둘다 위험하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특히나 긴급 후송환자가 있다거나 할 때 많이

도움이 되겠지 싶다.

비가 와서 그런가, 초록빛 식물들이 아주 극악스럽게 고개를 내민 것 같기도 하다. 깨어진 시멘트 길 

사이로 번개치듯 우르릉쿵쾅 내달리는 초록빛 새싹들하며, 해안가 옹벽을 잡아먹을 것처럼 두텁고

무섭게 흘러내리는 덩쿨들하며, 길가의 커다란 돌멩이 곳곳에 틈을 내어 뿌리를 뻗고 자라나는

끈질긴 녀석들까지.  


쉼없이 내리는 비, 우산을 접어버리고 우의를 걸친지 오래지만 맹렬히 내리는 비 앞에서는 전부

별무소용이지 싶다. 말하자면 이렇게 휑하니 뚫려있는 지붕 아래 서 있는 기분.

가파도수퍼를 필두로 해서 골목 곳곳에 이렇게 파랑색 벽화가 그려져 있는 거다. 이쪽 벽에서는

해녀가 자맥질을 하고 있는가 하면 저쪽 벽에서는 가파도의 마을 제단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나무들이 꽃을 주렁주렁 매단 채 우뚝 서있기도 하고. 그렇게 화려하거나 그림 하나하나가

심오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벽들이 좌우로 늘어서 만들어진 골목길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가파도 깊숙이 들어서며 사방으로 번지는 골목길들이 모두 이런 식이니, 사방으로

헤매고 다니며 그림 구경을 해도 다리 아픈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파란 하늘과 파란 청보리밭이 그려진 긴 벽면에 나있는 구멍 하나. 쥐구멍이라기엔

넘 높고, 무슨 호스같은 게 지나는 물받이 구멍이라기엔 넘 어정쩡한 위치. 뭔가 해서 가까이 다가가니

그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던 초록색 잎사귀들. 저 식물을 살리려고 구멍을 뚫어두진 않았겠지만

자꾸 그런 식으로 상상이 되는 거다. 벽을 세우려는데, 저기에 저 풀떼기 하나가 눈에 자꾸 밟혀서

그 부분만 저렇게 빼놓고 벽을 세운 건 아닐까, 그런 식으로.


저 커다란 꽃들, 한송이만으로도 푸짐한 느낌이 넘쳐나는 화려한 색감의 꽃들은 가운데에 하나씩

뽀얀 색 진주를 박아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담백한 돌담벼락에 기대어 손가락길이의 잎사귀를

피워내고 끝내 담벼락을 닮은 담백한 빛깔의 꽃봉오리까지 활짝 틔워낸 녀석도 대견하다.


벽화 작업을 언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 가파도에 옹기종기 모여살던 집들도 바닷바람과 파도에

씻겨내린, 그런 자연스러움이랄까 분위기가 한껏 살아있다. 적당히 낡고 헤진 옷이 갖는 편안함같은.


가파도에도 고인돌 군락지가 있다길래 궁금해서 푯말을 따라갔더니, 글쎄, 아직 발굴조사 중인지라

뭐가 고인돌이고 뭐가 자연석인지 구분하기가 영 쉽지 않다. 그냥 맨들맨들하니 조금이라도 인간이

가공한 흔적이 남아있고 평평한 돌이 있으면 저게 고인돌 추정 돌멩이인가 하는 거고. 고인돌 찾으러

들어갔다가 게으른 청보리밭 한뼘 구경하고 돌아나왔다.


이제 슬슬 가파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항구로 돌아나오는 길, 9시 배를 탔었고, 2시엔가 떠나는

배를 타겠다고 미리 표를 사뒀었던 거다. 일단 사고 나면 회항 시간은 못 바꾼다 했던가, 그래서 부러

여유있게 돌아보고 있었던 거기도 했다. 가파도 한가운데쯤 있는 건 초등학교. 놀이터가 잘 꾸며졌다.


항구에 가까워지니까 어라, 이런 좋은 길이 또 정비되어 있었단 말야, 싶도록 말끔한 산책로가 나왔다.

청보리밭 산책로라던가, 3,4월에 청보리밭 축제를 할 때 이 길을 거닐면 온통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청보리바다 한 가운데서 유영하는 느낌이 들 거 같다. 그리고 가파도를 지키고, 남해를 지키고 있는

해수관음상.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질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관음의 상이 남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동포구, 모슬포행 선착장에 거의 도착할 무렵 또다시 마주친 제주의 바다. 이 정도 섬 사이즈면 딱

내가 좋아라 하는 섬의 크기다. 빨리 걸어서 이십여분이면 섬의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가닿을 수 있는

크기, 그리고 섬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이 보일만한 크기. 그 정도 사이즈라야 이게 섬이구나,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채 외로운 땅덩이구나 할텐데, 사실 제주도는 섬인지 뭔지 잘 감이 안 오니까.

항구를 둘러싼 채 두툼한 가랑이를 한껏 찢어벌린 방파제들이 흠뻑 젖었다. 빗물에 젖은 건지, 아니면

바닷물에 젖은 건지, 그렇게 조금씩 헐어가며 차갑게 반들거리던 시멘트 껍데기는 자갈과 모래가 섞인

뼈다귀를 드러낼 거다. 다음번에 조금더 헐어있는 방파제를 밟고 올라설 때엔, 눈위로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어김없이 정시에 가파도를 떠난 배는 불과 이십여분만에 다시금 제주의 모슬포항에 사람들을

부려놓았다. 섬 속의 섬, 이라는 표현이 딱 와닿았다. 서울이나 다른 '육지', '본토'에서 제주도로

넘어온 사람들에겐 제주도 자체가 섬이란 감각이 생경하다지만, 막상 또 제주도에서 가파도로

들어오니 이게 진짜 섬같다는 느낌이 확연한 거다. 모슬포항에 도착하니 왠지 발딛고 선 땅덩이가

커진 만큼 가슴도 넓어지는 거 같고, 좀더 세상이 커다랗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커다란 컨테이너가 흙바닥을 찍어누르듯 자리잡고서 오랜 시간이 지났나보다. 온통 붉은 녹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컨테이너 철판껍데기에는 햇빛 알레르기처럼 자잘한 물집이 빈틈없이 잡혀 있었다.

흉흉하고 살벌해보이는 그 두껍고 우왁스러워보이는 컨테이너차벽, 그런데 그 벽면에 바싹 기대어선

노랗고 하얀 꽃들을 피워내는 들풀들이 있었다. 햇볕도 가리우고, 철이 부식되고 페인트가 떨어져

나오며 참 많이 방해받았을 텐데, 기어이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 제주, 가파도.


이런 거 왜 계속 방치해두고 있나 모르겠다. 아예 저렇게 철판이 다 썩어서 산산이 부서질 때까지

방치할 생각인 걸까. 가파도의 풍광은 아름다웠지만, 시멘트를 때려부어 만든 길은 편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고, 그 와중에 이 녹슨 컨테이너 박스가 가시처럼 박혔다.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가파도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저 털뭉치였다.

흐릿한 하늘 아래 황토빛 털복숭이가 하나, 해안가의 시꺼먼 현무암 돌담 위에서 바다로

나서는 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귀를 쫑긋 세우고는 등을 둥글게 말아올린

고양이가 배웅이라도 하듯,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먼바다로 나서는 배에 붙박혀있었다.
 

배가 멀찍이 나아가며 점점 나아가는 걸 확인하고야 귀찮다는 듯 슬쩍 몸을 돌려 카메라를

바라봤다. 뭐야, 배웅하는데 왜 방해하고 그래, 라는 투다. 배에 녀석의 친구나 주인이 타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님 누군가가 배를 타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바다를, 배를

바라보고 꼼짝없이 앉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온갖 드라마를 불러온다.

가파도엔 왜 이리 고양이가 많아, 싶어지도록 몇걸음 채 걷기도 전에 다시 발견한 이쁜 고양이.

현무암 돌무더기에 살짝 가려진 몸을 빙글 돌리고는 얼추 반쯤 가려진 얼굴로 이쪽을 초롱초롱

바라보고 있었다. 선명히 드러난 한쪽눈의 모양새라거나 얼룩덜룩한 무늬가 호랑이같은 몸의

실루엣이라거나, 뒷배경으로 당당히 서있는 싱싱한 풀떼기의 위풍당당함이라거나.

잠깐 그렇게 포토세션을 갖고는 이내 가르릉대며 몸을 피해버리는 도도한 녀석. 뭐, 그래도

저렇게 멋진 포즈를 잡아주었으니 그걸 제대로 포착하고 못하고는 찍는 사람의 문제인 거다.

이제 여기저기서 고양이가 툭툭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달까. 가파도의

해안길을 따라 둘려진 바람숭숭 돌담 위에서도 고양이 한마리를 발견했다. 이녀석, 비를

피하지도 않고 저렇게 계속 맞고 있는 건가, 싶도록 엉망이 된 털인데다가 눈도 잘 못뜨고

꼬박꼬박 조는 모습이 걱정스럽다. 온몸을 잔뜩 옹송그리고 꼬리까지 바싹 몸에 두른

모습이 정말 어디가 안 좋은 건가 싶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도 귀찮다는 듯 고개만 휘휘 돌릴 뿐 딱히 새초롬하니 도도쟁이 놀이를

하지도 않고, 움직임도 느릿느릿하다. 그냥 졸릴 뿐인거 같기도 하고.

가파도의 한가운데 교회 앞마당에서 발견한 껌정얼룩고양이. 정문 뒤에 슬쩍 몸을 가린 채

이쪽을 경계하는 모습을 처음에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한걸음씩 가까이 접근하는 모습을 바싹 곤두선 모습으로 경계하다간 후다닥 도망가서

몸을 숨기겠답시고 벽돌 뒤에서 눈치를 빤히 보고 있던 녀석이다. 저기에 몸이 숨겨질거라

정말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제법 커다란 벽돌의 든든함이 맘에 들었는지

꽤나 가까이 다가서도록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얼음, 하고 있었다.

한바퀴 휭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어디선가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냐옹냐옹. 이 녀석이

인사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님 나랑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건가 싶어 반가운 맘에 둘러보니

초록색 풀밭에 배깔고 누워서는 게으르게 냐옹거리는 중. 눈도 반쯤 감긴 게 얼마나 태평해

보이던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가 저런 표정이었을 거다.







* 제주도 2박3일 실제로 다녀온 일정을 기록한 것으로,

렌트카, 빡빡한 시간표, 그리고 짧은 시간에 많이 보려는 욕심, 이렇게 세 가지에서 해방된

삼무(三無)의 일정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토요일(첫째날)

6시반,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출발.

7시반, 제주공항 도착.

8시, 제주시외버스터미널 도착. 모슬포행 시외버스 탑승.

9시반, 모슬포항 도착. 숙소 IN.

11시, 읍면순환버스 탑승. 화순해수욕장 도착

11시반, 올레길 10코스(화순해수욕장-모슬포항, 약 16km) 시작.

12시~13시, 점심(고등어구이, 해물뚝배기)

17시반, 올레길 10코스 끝, 모슬포항 도착.

18시반, 숙소에서 휴식.

20시, 저녁(고기국수 등)

일요일(둘째날)

8시, 모슬포항 도착.

9시, 가파도행 배 탑승.

9시15분, 가파도(올레길 10-1코스, 5km) 도착.

12시~13시, 점심(가파도정식)

14시20분, 가파도 출발.

14시35분, 모슬포항 도착.

17시, 모슬포항 인근 까페.

18시, 숙소에서 휴식.

18시~20시, 저녁(고등어회)

월요일(셋째날)

10시, 모슬포항 출발.

10시반, 읍면순환버스, 초콜렛박물관 도착(농공단지 버스정류장)

11시, 도보 2km, 초콜렛박물관 도착.
 

12시반, 초콜렛박물관 출발.

13시~14시, 점심(밀면 & 수육)

14시, 숙소 OUT, 서일주버스 탑승.

15시, 협재해수욕장 도착.

16시, 한림공원 입장.

18시, 한림공원 퇴장.

18시~19시, 저녁(빅허브버거)

19시반, 서일주버스 탑승, 협재해수욕장 출발.

20시반, 제주공항 도착.

21시반, 비행기로 제주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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