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논란’ 진중권 “황상민 고소, 연아 이미지 타격”

 

[박동희의 입장] 김연아, ‘국민요정인가, 동네북인가’

 

김연아의 '까임방지권'은 까여야 한다

 

김연아의 까임 방지권은 누가 줬는가

 

 

숨가쁘다. 어느결엔가부터 김연아에 대한 기사는 상찬 일색이었던 과거가 무색하도록 극과 극이 공존하고 있다.

 

요새 내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김연아에 대한 극단적인 호오의 분열. 김연아의 탁월한 연기는 좋아하지만

 

표정관리랄까, 꾸미지 않은 분위기나 내숭이 풍기지 않는-게다가 더 이쁜-아마추어 일반인같은 아사다 마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이러나 저러나 김연아 개인에 별 관심없는 사람으로 이런 '국민요정'과 '돈연아'로 점점 과잉 분열하는 분위기가 웃기고

 

재미있기도 하고.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그녀의 몸값 유지전략의 위기 측면.

 

우선 김연아가 '연예인'과 '스포츠스타'를 번갈아 넘나들며 인기를 증폭시켜왔던 페이스가 한계에 봉착한 게 아닐까 하는 거다.

 

 

 

연예인의 짧은 인기 수명과 스포츠스타의 상대적으로 긴 인기 수명,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단 쇼도 진행하(다가 말아먹)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곧잘 출연하며 노래와 춤도 선보이고 하는 식으로 국제대회에서의 성취 사이사이 연예인으로서의 탈렌트를

 

보여 '몸값'을 올려왔다. 위의 사진에도 있는 '김연아의 키스&크라이'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겠다.

 

 

연예계 활동이 좀 급 시들해지고 질려갈 즈음 스포츠스타로서의 면모로 다시금 인기를 점프업시킨 후 다시금 연예계로 살짝 돌아와

 

대중의 열광 속에 광고 등 수익을 극대화하는 패턴이랄까. 뭐 김연아를 비난하거나 그의 몸값이 거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녀의 엄청난 광고 수익과 더불어 고대 입학과 교생실습 등 '혜택'이 가능했던 건 그녀 자신의 순전한 스케이팅 실력과 성취

 

이외에도 그런 패턴이 반복되며 몸값을 눈덩이처럼 키워온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의 균열과 대중의 극단적인 호오의 분열을 보면, 심지어 '고릴라'니 뭐니 외모에 대한 비난과 '돈연아'니 뭐니

 

인신공격까지 횡행하는 걸 보면 그런 그녀의 전략이 위기에 처했다는 느낌이다. 흔히 그녀를 까는 사람들이 말하듯 스포츠선수로서

 

실력을 다시금 보여달라, 빙판 위에서의 모습을 보여달라, 라고 하는 말은 그녀에 대한 겁박이나 강요라기보다는, 지금 그녀가

 

보이는 모습이 '연예인'에 가까우며, 그러한 모습엔 질렸다는 반증이라는 게 맞겠다.

 

 

어쩌면 '연예인'으로서의 모습과 '스포츠선수'로서의 모습을 넘나들며 대중의 인기를 얻어왔던 그녀의 두가지 가면 모두에 대해

 

일부 대중은 지치거나 질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스포츠선수가 아닌 연예인으로서의 김연아를 너무 오래 노출시켰는지도

 

모르겠고. 이미 그녀는 스포츠스타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다시금 점프업할타이밍을 놓친 듯해서, 그녀의 몸값은 더이상

 

예전같지 못할 거 같다. 평생 받을 '연금복권'을 일시불로 바싹 땡긴 것처럼 보일만큼 열심히 수익활동에 매진했으니

 

억울할 게 없을 수도 있겠다. (애초 땡길 수 있을 때 바싹 땡기자는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를 했을지도.)

 

 


또 하나는, 김연아에 대한 이런 극단적인 반발의 이면에는 이제 뭐만 좀 하면 '나라의 영웅'이니 '국민 어쩌구'니 하는 타이틀을

 

붙이는 유치찬란하고 촌스런 수사학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난 게 아닐까 하는 점. 그런 거창하고 숨가쁜 호들갑에 순순히 호응했던

 

사람들은 늙어가고, 젊은 사람들은 그저 그녀의 개인적인 성취를 감상하거나 즐길 뿐이었던 건데, 더이상 그 오그라드는 단어들을

 

못 참아주겠다 하고 반편향의 거부감을 토하는 것 같다. 김연아는 그런 점에서 보면 미디어의 희생양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그만큼 얻은 것도 사실이니 일종의 무의식적인 야합이랄 수도, 혹은 의식적인 편승이었을지도 모른다.

 

경쟁에 반대한다 - 10점
알피 콘 지음, 이영노 옮김/산눈

제목부터 도발적인 책이다. "경쟁에 반대한다"

경쟁에 반대한다고? 시장 논리와 무한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의 신화가 경제 영역을 벗어나 교육, 정치,

문화 전 분야로 뻗어나가는 이런 시기에, 예컨대 '불공정한 경쟁'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 그 자체에

반대한단 제목이다. 이런 책은 둘 중 하나 아닐까,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으로 '낚아보려는' 책이거나

혹은 작심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보겠다는 결기 어린 책이거나. 둘 중 어떤 걸까, 이왕이면 후자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처음 집어들었다.


부제는 더욱 웃긴다. "왜 우리는 이기기 위한 경주에 삶을 낭비하는가?"

누구는 낭비하고 싶어서 하나? 그리고 나라고 지기만 한 경주는 아니었단 말이다, 라고 저쪽에서 루저 1이

울컥 핏대세워 이야기한다. 이번엔 졌지만 다음에 이기면 된다고, 더 큰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거라고

저쪽에서 또다른 루저 2가 자신없이 중얼거린다. 이건 낭비가 아니라 '두걸음 전진을 위한 한걸음 후퇴'라고

해병대 팔각모자쓴 저쪽 루저 3은 강단진 표정으로 이를 악문다. 1%의 인재가 나머지 사람들을 먹여살려

준다는 이야기는 이런 식의 경쟁, 줄세우고 비교하고 99%를 '비인재', 루저로 모는 무한경쟁 무한찬양의

극단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당장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싫어도 경쟁 속으로 뛰어들고,

혹은 더 큰 과실을 위해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치열한 몸값경쟁을 통해 낙찰,

낙찰가 88만원인 거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배웠네 하는 사람들도 이야기한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여태 인류의 발전 과정을

보면 끊임없는 약육강식의 갈등, 적자생존의 경쟁 상황 속에서 이런 '빛나는 문명'을 꽃피운 거랜다. 한국

사회로 스코프를 좁혀보아도 국내 기업간의 이기기 위한 경주, 뼈를 깍는 경쟁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난 거 아니냐는 이야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진단평가니 뭐니 시험을 보고 경쟁을 붙여야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도 올라가고, 그래야 우리 지자체의 경쟁력-이라고 쓰고 명문대 합격률이라 읽는다-도 올라가고

국가 경쟁력도 올라가고 나아가 인류 전체의 복지에도 공헌할 거라는 투다.


인류의 놀이문화를 봐도, 어쩌면 경쟁은 인간의 본성일 거라는 지레짐작이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이미

우리는 고대 그리스 이래 스포츠와 놀이 문화조차 '인격 형성과 성숙에 도움이 된다며 경쟁 일편향으로

기울어져 왔으니, 지금의 축구나 야구 같은 현대 스포츠가 전쟁과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더욱 폭력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어쨌든 경쟁적 스포츠로 인간 본성에 내재한

전투적 본능을 달랜다는 해석도 있는 거다. 스포츠맨십 따위 치장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건 굳이 승자와

패자를 가려내고 승리를 통해 쾌감을 만끽하려는 욕구다. 승패 따위 가리지 않는 게임은 솔직히 지루하지

않은가, 라고 물어보기도 우스울 만큼 재미있으려면 당연히 경쟁적이어야 한다고 모두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티비에 만연한 온갖 버라이어티에서 보이는 경쟁 구도들, 갈수록 선연해지고 말초적으로 변해가는

경쟁들이 그 단적인 사례들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거다. 경쟁을 통해 더욱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믿음, 경쟁을 통해 삶이 윤택해지고

의미가 생긴다는 믿음, 심지어는 경쟁이 '인간 본성' 그자체에서 비롯한다는 믿음,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오해거나 혹은 악의적인 이데올로기라는 게 이 책의 골자다. 스스로에 대해 확신이 없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는, 자존감 부족이 바로 경쟁사회의 원인이자 결과, 그래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진단. 실은 협력을 통해 더욱 재미있을 수 있고 생산적일 수 있으며, 개인의 자존감 역시 더욱 고양될

수 있는데, 충분히 그런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들도 이미 나와 있음에도 워낙 근본적인 문제라 꼼짝도

안 한다는 거다.


생각보다 학술적으로 깊이 들어간 책이고 책 자체가 하나의 주장을 위한 탄탄한 논문이라 해도 좋을 만큼

논리 정연하고 논거가 풍부하다. 교육 심리학자인 저자는 기존의 학문적 필드에서 '정설'이라 일반화되어

버린 설들에 대한 강력한 반박을 하고 있어서 상당 부분 '팩트' 싸움, 유의미한 해석을 도출하는 실험의 인용

여부 및 신뢰도 싸움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총 10장으로 구성된 챕터 중 무려 아홉 챕터나 할애해서

집요하게 보여주려는 것, "승리와 성공은 다르다"라는 명제 아래 지금의 "경쟁"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키워드, "협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하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와 문제제기는 정말 너무나도 무겁다.


사실 이미 경쟁을 조장하는 구조가 문제냐, 경쟁적인 마인드에 절어버린 사람이 문제냐, 하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와 같은 무의미하고 무익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예컨대 '키작은 사람은 루저'라는

말에 분개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경쟁시스템에서 '키'라는 요소로 패배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한편 '키'라는 요소조차 타인과의 경쟁구도 속에서 생각하는 멘탈리티를 이미 장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키'라는 신체적/천부적 조건조차

이 도박장이나 주식시장같은-대부분의 사람이 돈을 잃는다는 점에서-경쟁시장의 칩으로 훌륭히 쓰이고

있는 거고, 또 칩으로 이미 유통되고 있으니 사람들은 '키'를 둘러싼 경쟁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뫼비우스의 띠.


그렇게 보면 참 공고하다. 아무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쟁하는 동물이 아니며, 경쟁 말고 협력을 통해

보다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떠들어봐야, 마치 맑스주의를 오늘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그래, 니말은 다 알겠는데, 참 논리정연하고 그럴 듯하고 멋져보이는데, 그래서 어쩌라구. 그런 차갑고

단단한 벽에 부딪히는 느낌 때문에 책을 읽어내리다가 덮어버리기를 몇 번. 단순히 경쟁 말고 협력에 의한

문화, 경제, 사회가 가능하겠구나 정도 고개 몇 번 주억거리고 말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뭔가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 지, 기업 구조, 경제 시스템, 학업 시스템 따위 거대한 것들 말고 당장

경쟁에 길들어버린 '내 입맛'은 어떻게 바꿔야 할지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저자는 치사하게 자기

전문분야인 '교육'에 대해서만 몇 마디 아이디어를 던져주고 말았다.


그냥, 계속 생각해 볼 만한 책이고 어쩌면 좀 확장해서 읽어보아야 할 책일지도 몰라서, 정리가 채 되지

않은 상태로 글을 쓰고 있다. 아니, 정리해 버릴 책이 아닌 거다. 계속 책상 위, 머릿속에서 ing로 남아있어야

할 책, 남아있어야 할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외부의 자-타인이 되었건

그들이 정해둔 기준이 되었건-를 빌어 스스로를 재어 보며 위축되거나 과시하지 않고, 스스로 혼자 설 수

있도록 좀더 애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취직 시즌이라 알게 모르게 또 마음속의 자를 가동해보는 자그마한

모터 소리가 윙윙 들리는 거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어디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어디쯤, 이런 식의 등수

놀이를 피하려면 다소간 '도 닦는 마음'이 필요한 거다. 스포츠에 비기자면,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려는

축구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신기록을 갱신하려는 역도나 높이뛰기쯤에 임하는 마음이랄까.
 

책을 보면서 문득 떠올랐던 대학교 2학년 때의 기억 하나. 학과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새내기준비위원회

회장을 맡아서는 오리엔테이션에 뭐하고 놀지, 뒷풀이에선 뭐하고 놀지, 새터가서는 또 뭐하고 놀지

나름 열심히 고민고민했었다. 뭐 결과물이야 통속적이고 보잘것 없었지만, 만약 내가 '경쟁'과 '협력'을

감별해낼 만큼의 미각을 갖고 있었다면 좀더 신선하고 즐거운 놀이들을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함께 즐겁고, 서로의 얼굴을 기억해내고 이름과 쉽게 매칭시킬 수 있게 만드는 게임들.

누구보다 앞서고, 누굴 제치고 이기려고 바둥바둥대느라 잔뜩 지치고 상처받았을 녀석들하고 굳이

또 그런 게임을 할 필요는 없었던 건데.


얼마전 회사에 한국양궁협회에서 어떤 분이 와서 강연을 하고 간 적이 있다.

그 분은 한국이 '동이족(東夷族)'이라는 판타지에 기댄 채 금메달을 당연시하는 양궁이라는 분야가 실은,

미국, 구 소련, 그리고 일본이 장악했던 종목임을 지적하면서 그런 근거없는 과거 이야기는 어느 나라나 들먹이고

있다고 했다. 마치 '그 옛적의 금송아지 운운'하는 이야기처럼 자신들 조상이 세상에서 활을 가장 잘 쏘았다는.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무한경쟁, 꿈과 희망'이었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환타지'를

불어넣는 고도화된 양궁 국가대표선발 시스템의 윤곽이었다. 아무래도 기업체에 와서 양궁 관련 이야기를 버무려

열심히 무한경쟁하자, 꿈과 희망을 품고(혹은 상상하며) 일하자, 그런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다 보니 그런 걸까.

아님 양궁 같은 체육 종목 자체가 워낙 국가대표 선발과 메달 획득을 두고 치열하다는 반증일까.


강사가 이야기하는 국가 대표 선발 과정은 그 자체로도 지옥이었지만, 사람을 참 처절하게 만든다 싶었다.

새벽 5시반에 기상해선 밤 8시까지 훈련, 그리고 고작 2시간의 자유시간 후 10시 취침이랜다. 그렇지만 누구든

한명이라도 숙소를 벗어나 개인훈련이라도 하는 것 같으면 어느새 대부분이 나와 훈련을 하게 되는 분위기.

예컨대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 약 일년전부터 남녀 국내 랭킹 100위까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시켜서는, 10달 동안 대회를 열 차례나 치르고 남녀 각 4명을 선발한다고 한다. 국내 랭킹 80등이

대략 세계 랭킹 5위에 들 정도라고 하니, 그 압박감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거다. 거기서 끝이 아닌게, 또다시

세 번의 국제대회를 거쳐 남자 셋, 여자 셋의 국가대표를 최종 선발한다는 바늘구멍 이야기.


양궁 과녁이 노란 골드 부위 지름이 12cm랜다. 사수는 70m밖에서 서서 쏜다. 그것도 화살 한 발당 30-40초 내에

쏘아야 한다는 심적 제약도 있다. 그 바늘구멍에 누가 가장 가까이 근접해 있는지를 따지는 바늘구멍 이야기는,

혈연이나 지연, 혹은 학연같은 불공정한 요인으로 얼룩지지 않은 only 실력으로만 따진다는 점에서 충분한 매력이
 
있을지 모른다. 열정만 있으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거대한 환타지.


그렇지만 노력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절대 아니다. 성공은 금메달로 계측되며, 금메달은 한 사람 몫이다.

비단 그런 까칠한 현실인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미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열정'이라는 개인적 덕목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을 모두 꽁꽁 싸매고 있다는 느낌이다.

'무한경쟁'을 반복적으로 호명하면서 "메달 획득은 곧 대한민국의 경사"라고 국가에 대한 헌신과 충성, 그리고

목적의식을 요구하는 국가대표 양성 시스템은 그 자체로 적나라한 (학생들이 맞닥뜨린) 우리 교육계의 현실,

(직딩들이 맞닥뜨린) 기업계의 현실, 그리고 (국민들이 맞닥뜨린)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동원되는 각종 현대과학과 심리학의 결과물들. 스포츠 생리학, 스포츠 심리학, 스포츠 역학...여성들의 경우

생리할 때 컨디션이 40%까지 떨어진다는 게 현대 과학의 분석이고, 그에 대한 과학적 '심판'은 다음과 같다.

음식과 기타 의학적 도움을 받아 생리주기를 미미하게 이동시키기 시작, 생리시기를 피해 가장 컨디션이 오르는

시점에 경기일이 맞춰지도록 몇 달에 걸쳐 조정할 것. 시차에 따른 신체적 적응 여부는 상쾌한 하루를 여는 화장실

행사가 몇시에 있었는지 그 시간을 체크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으니, 쉼없이 관리하고 체크하고 기록할 것.

써놓고 보니 이미 숱한 지면이나 화면을 통해 유사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치만 그때는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 '꿈과 희망', '도전' 따위의 화창한 단어들과 병존했기 때문일까.


20대에서 30대 초반은 운동선수로서의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선수들을 재우쳐

가며 강박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극한 상황을 다소나마 희석시킬 수 있는 그럴듯한 핑계, 보다 중립적인 단어로는

이유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역시 많이 들어본 논리다.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성공을

위한 마지막 기회, 기실 그러한 '마지막' 기회 뒤에는 누구도 알려준 적 없는 또다른 기회들이 무수히 있었다.

사람을 조바심내게 만들며 눈을 옹이구멍만하게 만들어, 불과 몇 걸음 앞만 내다보도록 농간부리는 이야기.


그렇지만, 하고 생각했다. 최소한 양궁 국가대표팀을 꾸리는 감독, 코치는 선수보다 항상 먼저 시범을 보인단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감을 준다는 11미터 하이다이빙을 할 때에도, 다른 무슨 훈련을 할 때에도, 선수를 앞세우고

뒷통수 치는 게 아니라 함께, 또 먼저 앞장선다는 것. 그런 게 훨씬 인간적이다. 최소한, 최소한 자신들이 말하고

시키는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도 믿고 있음을 나타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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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웅동체형의 이명박-왠지 그는 남성스럽지도, 여성스럽지도 않은...그저 괴물같다.- 앞에

'금메달'을 '바치는' 식의 스포츠 경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월드컵도, 올림픽도, 그다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치 못하는 나이기도 했고, 그러한 국제스포츠의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국력을 견줘보려는 조바심이 맘에 안 들기도 했다.


우연찮게 저녁을 먹으며 티비를 보았을 뿐이다. 마침 노르웨이와의 여자핸드볼 준결승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채널을 돌려도 모두 같은 경기를 중계중이었고, '우생순'의 훈훈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후반 10분여부터 경기를 따라갔다. 사실 난 아무런 룰도 모르고, 후반전이 몇분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네 골 정도 뒤지고 있었고, 스피디한 공수 전환 속에서 그 차이는 두 골, 세 골,

다시 두 골, 그러다 세 골, 네 골, 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건 선수들의 안타까운 표정과

사력을 다하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이기건 지건, 세계 최고건 꼴찌건 상관없다. 뭐 큰일도 아니고 그저 서로의 기량을 재는 유희일

뿐이다. 아무리 국가를 대표했다 해도, 각자의 이해관계와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 대

사람(들)'의 경쟁이 먼저지, 국력으로 왜곡된 판정이나 외부 효과, 훈련시설차 이런 것들은

차후의 문제다. 그러한 차후의 문제가 사람간의 경쟁을 악의적으로 방해하고 왜곡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건 스포츠맨십에 어긋날 뿐 아니라 '올림픽 정신'이라는 것에도 어긋날 게다.


그런 점에서 오심 혹은 편파판정의 문제는 크다. 노르웨이 선수들이 막판에 공을 잡고선 경기

속행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룰에 걸리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하나의 전술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고 있는 측에서 경기 스피드를 올리려고 노력하는 게 정상적이라 용인되듯, 이기는

측에서 호흡을 늦춰 안전하게 가려는 것도 마찬가지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고 본다.

다만, 막판의 한 골. 우리가 세 골, 두 골, 한 골, 마침내 6초전 동점을 만들어내고 나서 그

드라마틱한 흥분을 채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벼락처럼 내리꽂힌 노르웨이의 한 골.


그거 골 맞아??





"우리 생애 가장 억울한 순간"
(프레시안 양진비 기자)
핸드볼 준결 오심논란속 분패…그들은 짐을 쌀 수 없었다
등록일자 : 2008년 08 월 21 일 (목) 22 : 01  
 

  농구와 달리 핸드볼에는 버저비터가 없다. 골인이 되더라도 마지막 종료 버저가 울리는 순간 공이 골라인을 넘지 않았으면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세계핸드볼연맹(IHF) 경기규정집 9조 1항에는 "볼이 골라인을 완전히 통과하기 전에 레프리나 계시원이 경기를 중단하는 경우에는 득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A goal cannot be awarded if a referee or the timekeeper has interrupted the game before the ball has completely crossed the goal line)"라고 되어 있다. (☞규정집 원문 바로 가기대한핸드볼협회 경기 규칙 바로 가기)
  

▲ 노르웨이 선수가 마지막 슛을 던지는 장면 ⓒMBC 캡처화면

  
▲ 종료 시간이 떴을 당시 공은 선을 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MBC 캡처화면

  그러나 21일 베이징 올림픽 여자 핸드볼 준결승 한국과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심판은 종료 순간 골인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득점을 인정했다. 종료 버저 소리를 "계시원이 경기를 중단한 경우"로 유권해석이 가능하지만 주심은 막무가내였다. 한국은 종료 6초를 못 버티고 1골 차로 분패한 팀이 됐다. 28-29 아까운 패배였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또 한 번 꿈꿨던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이렇게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억울한 순간을 맞았다. 종료 직후 경기 감독관들은 임영철 감독의 강한 어필을 받고 처음에는 '노골'을 선언하더니, 주심 2명과 상의를 한 뒤 결정을 번복, 골을 인정했다. 그리고 하나 둘 자리를 떠버렸다.
 
  그러자 임 감독과 김진수 핸드볼협회 부회장은 경기장에 마련된 IHF 사무실을 찾아 비디오 판독을 요구했다. 그러나 IHF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9시간 내에 500 스위스 프랑(약 50만원)과 함께 정식 항의서를 제출하면 된다는 말을 들려주기만 했다.
 
  한국팀은 선수도 감독도 30분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여자 핸드볼의 투혼을 기대하던 관객들도, 시청자들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 관련기사 : 여자핸드볼, 석연찮은 '버저비터'에 울다)
 
  ( ☞ 관련기사 : 임영철 감독 "가장 아름다운 이는 女핸드볼 14명")
 
 
▲ ⓒ연합뉴스

 
6분 남기고 우생순식 추격전 성공했지만…
 
  한국은 전반전에서 한 골씩 주고받는 팽팽한 경기를 펼쳤다. 특히 맏언니 오성옥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골을 터뜨리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전반 중반의 8-8 동점 상황에서 한국은 연속 4득점을 올리며 12-8의 역전에 성공했다. 노르웨이의 반격으로 13-12까지 추격당했지만 오성옥의 스탠딩 슛과 골키퍼 오영란의 선방으로 15-14, 1점 앞선 상태에서 전반전을 마쳤다.
 
  그러나 후반 들어 노르웨이의 속공으로 연속 세 골을 내주며 다소 불안하게 경기를 시작했다. 이에 뒤질세라 한국팀도 계속해서 속공을 시도했으나 골은 골대에서 조금씩 엇나가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경기는 뒤집혔다.
 
  20일 남자부 8강전에서 한국팀의 슛이 번번히 스페인 골키퍼에게 막혔던 것처럼 후반전 들어 상대편 공격은 골대를 가른 반면 한국팀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 21일 오후 베이징 국가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올림픽 여자핸드볼 4강전 한국 대 노르웨이 경기에서 안정화가 강슛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후반 24분 27-24로 뒤지고 있던 한국은 마침내 '우생순식' 추격전에 시동을 걸었다. 후반 종료 3분여를 남기고 문필희의 스카이슛으로 2점차까지 쫓아가 마지막 역전의 희망을 되살렸다.
 
  이어 종료 1분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허순영이 중앙 돌파 슛까지 성공시킨 뒤 6초를 남겨두고 기적 같은 동점골까지 나와 극적으로 28-28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연장전으로 갈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방심했던 것일까. 한국팀이 후반전 마지막골이라고 믿었던 골 뒤에 노르웨인 선수가 경기종료 부저와 동시에 골을 성공시켰다.
 
  이어 골이 부저가 울리기 전 들어간 것이 맞냐는 판정논란이 일었고 심판들이 모여 판정에 관한 상의를 하는 동안 28-28이 기록된 전광판은 잠시 멈춰있었다.
 
  결국 전광판이 28-29의 기록을 알리며 심판은 노르웨이의 승리를 선언했다.
  
▲ 종료 직전 석연찮은 판정으로 한국이 패하자 오성옥이 코트에 주저앉아 허탈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림자도 금에 안 걸렸다"
 
  이로써 한국은 올림픽 결승 진출에 실패하면서 오는 23일 동메달을 위한 3-4위전을 치르게 됐다.
 
  한국 여자핸드볼팀은 지난 15일 열린 조별리그 B조 4차전에서 '남미의 복병' 브라질에 1초를 남겨놓고 역전골을 허용해 32-33으로 패했었다. 그러나 이번 노르웨이전의 경우 0.01초를 다투는 수준의 판정이어서 논란이 쉽게 잠재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진수 핸드볼협회 부회장은 제소와 관련해 "받아줄 지 안 받아줄 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아시아에서 당한 데 이어 올림픽에서까지 이렇게 당하는 것은 협회 차원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정식으로 항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임영철 감독도 "절대 노골이다. 하프라인부터 시작한 노르웨이의 마지막 공격도 파울이었고 골을 넣은 선수도 오버스텝이었다"라고 말했다.
 
  한편 경기가 끝난 직후 인터넷은 오심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 '네티즌 응원방'의 한 누리꾼은 "득점이 인정되려면 공이 금에 걸치는 것은 물론 공 전체가 통과해야 한다"며 "그림자도 금에 안 걸렸는데 골을 인정해주다니 너무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핸드볼은 농구처럼 손에서 떠나는 그 순간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오심을 반드시 정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 직후 감독관에게 항의하는 임영철 감독 ⓒ연합뉴스

  
▲ 맏언니 오영란은 일어설 수 없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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