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 PIFF

토요일 아침 댓바람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국제영화제.

대학 들어와서부터 계속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갈 만한 타이밍이 없었달까. 다른 짓들을 이것저것 

하다보니 번번이 '보다 더' 바쁘고 중요해 보이는 일들이 생겼더랬다.

원래는 토욜부터 일욜 저녁까지, 한 예닐곱 편의 영화를 쭈욱 볼 생각이었지만. 이러저러한 변수들로 인해 예매했던

표들을 전부 취소하거나 현장에서 교환하게 되었고..군대 동기들 그리고 그 여자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걷고, 바다를 보고, 학교 캠퍼스에서 연못을 보고, 길에 눕고, 술을 마시고, 해맞이를 했다.


야외상영관에서 했던 '공각기동대' 감독의 애니 '스카이 크롤러' 더하기 2008 칸느영화제 심사위원장상이던가..

라던 이태리 영화 '고모라'를 보다가 영화가 중간에 끊기고 이탈리아어가 너무도 리드미컬하게 잠을 불렀던 게

그 모든 걸 촉발시켰다. 아마도 야외상영관의 약간은 산만한 배경도 한몫했을지도.


부산내려간다 하면 니 와봐야 지갑아작나고 몸씹창난다고 오지말라고 걸진 욕지거리를 전화로, 문자로 질겅이는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결국, 이번에도 밤새 뭔가 촛불 하나를 뿌리채 태워버리는 듯한 기분으로 놀아제껴버렸다.

가장 최근에 봤던 건 올해 초 협회 연수기간, 북경, 상해를 거쳐 부산으로 왔을 때, 룸메이트였던 행님 한분을

옆방에 밀치고는 밤새도록 양주마시고 웃고 떠들고..우리가 포대 BX에서 냉장고 열린 문짝서 새나온 불빛을

조명삼아 밤새 술마시던 이야기와 하루키의 소설을 두고 벌이던 담배 한개피의 이야기들..그런 안주거리 삼아 

진지해지기도 했다가는, 결국 침대에 담배빵 한두개 내주고 토하고..담날 아침에 정신못차린 녀석들 쫓아내곤

나 역시 하루종일 널부러져 지냈던 기억.


그나마 이전처럼 숱하게 잘려나간 필름쪼가리들만 넝마처럼 늘여뜨려 돌아온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있는 기억을 갖고 돌아와서 다행이다. 비록 리비도와 어렴풋한 불만으로 가득한 자유연상법을 차용해

스토리와 인과관계를 무시한..일종의 포스트모던을 표방한 독립영화였지만.


다음엔 영화만 보고 와야겠다..고 잠시 생각도 했었지만, 흔들리는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로 로드 무비를

찍듯 부산녀석들과 밤새 이야기하고 걷고 노는 게 역시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도, 영화를 한꺼번에 세네편씩

과식하는 건 잘 소화시켜 내는 것보다 도로 토해놓는 게 더 많은 거 같아서.




#2. 채용설명회

어제 1시, 서울대학교 140동에서 무역협회 채용설명회가 있었다. 140동이 어딘가 했다. 홈피에서 확인해보니

국제대학원. 몰랐는데, 우리학교에서 채용설명회를 위해 공간을 빌리려면 대관료를 내야 한단다. 한 번에 30,

두 번에 50. 학교가 배가 불러서 그런 걸까. 여러 모로 생각해도 배부를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 다른 학교는

쌍수들고 환영이라건만 이상한 일이다. 결국 협회와 관계를 맺고 계신 국제대학원 교수님을 통해 무료로 장소

협찬. 빈정상한 협회 인사팀분들은 자칫 우리학교를 스킵할 뻔 했고, 난 하루 볕쬐며 모교안에 포스터붙이고

채용설명회를 준비하는 색다른 이벤트를 놓칠 뻔 했다.


협회 신입에서 3년차쯤까지 중에 서울대 출신 '대표'로 뽑혀나온 나로선, 내게 주어진 15분쯤의 시간을 어찌 쓸까

고민하다가 그냥 최근 대두되는 '사회적 기업'이란 개념을 끌어다가는 60여년전부터 협회가 그런 상을 구현해온게

아닐까 한다거나, 민간부문과 같은 역동성으로 공익성을 추구한다는 매력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국제통상본부에서 내가 하는 일들이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민간통상협력활동을 촉진'하는 거창하고 보람찬

일이며 일과 삶의 밸런스가 잘 잡혀 있다는 반증으로 PIFF 참관기와 색소폰 연습 등을 주워섬기는, 나름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했던 것 같다. 


중소업체들이 행사나 세미나에 참석하며 진정 고마워할 때 보람을 느끼지만, 가끔 걸려온 전화가 코트라가 아니냐
 
따진다거나 협회는 어디에 있고 대체 뭐하는 데냐고 물을 때 당황스럽다는 '진솔한' 얘기도 가볍게 눌러 해주고.


Q&A시간에는 대부분 구체적인 전형 절차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글쎄..사람들이 보통 채용설명회 안 오는

이유가, 질문이 어떤 수위를 넘어 예민한 영역으로 넘어오면 정답이 안 넘어오기 때문 아닐까. 나도 그래서 작년에

채용설명회는 두세번밖에 안 가봤던 것 같은데 그것도 대개 선물로 준다는 USB나 꽁짜점심 때문이었다. 뭐..그런

당근도 없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이라 감사했고, 열심히 질문을 해준 사람들이라 더욱 감사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도 아닌 것이, 사실 나는 작년 한 번, 그 중에서도 고작 한 차례 서류에서

CEO 면접까지를 거쳤을 뿐인 조그마한 샘플인 거다. 동기들도 제각기 다른 질문, 다른 취향의 면접관을 마주했고,

일년 전 전형절차를 밟은 선배들은 더욱더 다른 환경과 내용으로 시험에 처했다. 그리고도 올해 전형이 어찌 될

지에 대해서는 인사담당자가 아닌데 무슨 책임있고 신뢰감 있는 말을 할 수 있으리오.


물론, 그런 건 있다. 협회의 분위기에 비추어 어떤 사람을 원할지,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이 역시 어쩔수없이 많이
 
주관적이겠지만), 그리고 이 곳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지. 아마 마지막 문제의 경우에는 이미 이 공간에서
 
닳아버린채 닮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나로서는 외부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위한 채용설명회마저 내 고민과 기억을 위한 자리로 변질시켜버렸달까. K, Ba, Ca같은 강력한 산화력으로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을 나를 중심으로 도는 양 묘사하는 건, 지독한 이기심의 발로인 게다. 사랑을 한다는 건

마음을 가로세로 넓히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오로지 그 상대만을 향해서였을 뿐, 어쩜 주위에 대해서는

외려 가로세로 좁혀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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