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묵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정기와 신비롭기까지한 분위기란 건 직접 맞닥뜨려야 실감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나무들이 한두 그루도 아니고 즐비하게 늘어서 아름답고 작은 성당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곳, 아산 공세리 성당이다.







신용산역에서 내려 조금 걸었더니 저 앞에 문득 많이 보던 건물이 보인다. 특히 '세무사 조xx 사무소'라는 저 파란 간판.

문득,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직접 와보는구나. 계속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제야.

[여기 사람이 있다] 우리들의 '구차한' 밥그릇싸움에 사형을 언도한 그들.

저 위에서 여섯 생목숨이 날아가 버렸다. 망루를 짓고 올라간지 하루만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어 그야말로

'테러분자들을 진압'하듯 불구덩이 속으로 토끼몰이해버렸던 거다.
그리고 책임자 처벌은 커녕 3000여쪽의 수사기록도 공개하길 거부하고, 진상 규명조차 마냥 소홀한 정부. 그들은

피해자 측에 대한 책임있는 사과나 유감 표명 등은 고사하고 어떤 대화도 일절 거부해 왔다.

그런 곳이다. 그런 곳에서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사제단과 피해자대책위, 철거대책위원회 분들이 분향소를

설치하고 매일 추모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내가 갔던 저번주 금요일, 이날은 참사, 혹은 학살이 발생한지 무려

193일째 되는 날이었다.

시끄러운 도심의 소음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점차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신호등을 건너니

아마도 작가선언 측에서 나온 듯한 분이 길거리 선전전을 하고 계셨다. "평범한 시민이었다. 죽여야 했는가?"

뭐라도 들고 가야겠다 싶어서 우선 현장을 지나 근처 슈퍼에서 집들이 선물용 휴지를 사가는 길, 유족분들 중 한분인 듯한

아주머니께 들려드리며 "어머니, 잘 풀렸음 좋겠어요."란 멘트를 하고 싶었다. 건물 위에 언뜻 잔뜩 불에 그슬려 허물어진

컨테이너가 보인다.

자, 여기서부터 일상이 깨어져나간달까. 사람들이 부산하게 쏘다니던 거리의 어느 지점에서부터 뭔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불안하게 만드는, 생경한 단어들과 '낯간지런' 호소들.

선연한 빨강색에 느낌표로 끝나는, 뭔가 강력한 어조로 요구하는 선전물들. 용산4구역 철거민들은 재개발을 틈타

한몫 벌어보겠다고 눈이 벌건 '속물'도 못 되었었다. 바랬던 건 단지 재개발 중에 영업을 계속하기 위한 가상가 제공,

그리고 재개발 이후의 임차/임대상가를 보장하라는 것이었을 뿐. 그조차도 묵살당하고, 이렇게 사태가 악화된 건

누구의 책임인가.

전철연의 삑삑거리는 소음 섞인 스피커, 낯설고 무서운 투쟁가, 그런 것들에 대한 관용, 나아가 이해를 바라는 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사실 무섭고 낯설기는 소리없이 사람을 짓밟는 세련된 공권력이 한 수 위라고.

검찰은 수사기록 3천쪽을 법원의 명령까지 거부하고 벌금을 감수하며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는 아마

용역과 경찰과의 공동 작전을 펼쳤던 정황이나 진압작전이 아무런 안전조치없이 취해졌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있을 거란

추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의혹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비공개하는 이유는, 정말 뭔가 있는 거 아닐까.

7월 초에 인터넷 공간에도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다. 경찰의 진압훈련 시범 중에 용산 참사와 너무나도 흡사한 그림이

나타났던 것. 경찰은 이미 용산참사를 '도심 테러리스트 섬멸'작전 정도로 규정지은지 오래인 듯 하다.

분향소 앞을 지키고 늘어선 화분들. 조그마한 꽃집처럼,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봉싯봉싯 꽃망울을 열고 있었다.

꽃이라도 없었다면 어땠을까.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을씨년스런 건물에 자리잡은 분향소가 풍기는 허름한 분위기에

더해, 조화라거나 거대한 화환 같은 것들 하나 보이지 않는 삭막함까지 사람맘을 쳐댔을 거다.

분향소는 한산했다. 검은색 전철연 조끼를 입고 다니시는 분들은 의외로 매우 밝고 의연하셨다. 뒤늦게서야 이렇게

찾아뵙고 착잡하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돌아다니는 스스로가 더욱 부끄러웠다.

다섯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역시 조그마한 화분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참사 이후 6개월, 아직 이분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했고...끊임없이 이슈를 몰고 다니는 이 정부 인사들에게 용산 참사란 마치 먼 옛날 일인양 까맣게 잊혀진게

아닌가 두렵다. 이분들에 대한 완벽하고 단호한 무시.

분향소 왼쪽에 지어진 평상엔 신부님들이 인터넷도 하고, 책도 보시고, 이야기도 나누시며 자리를 지키셨다.

문정현 신부님이 그 오른쪽 평상에 앉아 사람들을 맞이하고 계셨다. 나지막한 평상은 왠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털썩 주저앉아 잠시 쉬어갈 수 있다고 유혹하는 듯 해서 나도 잠시 앉아 땀도 식히고..신부님과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귀기울여 듣고.

그러고 보니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가시는 모양이다. 수박에 생수에 포도, 사과에 쌀포대까지. 좋은 분들이 많다.

다섯 분의 생전 모습이 그려진 액자가 분향소 옆 유가족 분들의 살림터를 가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치 내장이

터져나온 생선처럼 삶의 '누추한' 흔적들은 여기저기서 불에 그슬린 양동이로, 손잡이가 떨어져나간 냄비로

나타난다. 이런 것들을 안전하고 위협없는 공간에 부려놓고 일상을 살아갈 만큼, 그만큼의 보장도 못해주는

정부라니 한심하다. 화가 난다.

유가족분들의 일상 아닌 일상은 분향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한쪽에서 매 식사를 준비했고, 또 건물외벽에

의지해 늘어뜨려진 빨랫줄에는 하루치의 빨래가 널려 있었다. 이토록 신산스런 삶을 자발적으로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건 이분들이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어느 한계에 도달했음을, 정말 그분들 말씀처럼 '악밖에' 남지 않은 싸움이다.

건물을 반바퀴 에둘러 보았다. 어느 지점에선가 올려다본 하늘은 시커멓게 그을린 채 팍삭 허물어져내린 컨테이너의

잔해로 가려져있었다. 울컥, 눈물이 났다.

여기였다. 이곳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들은 용산 주변 출근길을 온통 마비상태에 빠뜨렸으며, 용역들과 공조하여

토끼몰이식 강경책을 일관했고, 안전대책 하나없이 죽어라, 하며 기름불에 물을 끼얹었다.

건물 뒤에 있는 주차장에는 반짝반짝 세련된 색감의 닭장차가 마치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처럼 늠름히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닭장차 안에도 역시 먹고 살기 위한 양푼이며 냄비, 식판들이야 있겠지만 차곡차곡 잘 갈무리된 채

깔끔하게 숨겨져 있을 거다. 이건 인간의 존엄성 문제기도 하다.

참 허약하기 짝이 없는 철판 한장이다. 폭발물과 위험물질이 가득하고 인근 주민에 크나큰 위협이 된다 판단하여

해치워 버린 거라지만, 실제로 주변 주민들은 아무 위해도 느끼지 않았다고 증언했던 바 있다.

"죽이지 마라. 민중이 이긴다." 죽이겠다고 달겨들면 사실 방법이 없다. 죽고 나면 이렇게, 끝인가 싶기도 하다.

용산참사가 벌어지고 나서 한동안 여론이 술렁댔었고 이로써 정권이 끝난다는 성급한 예측, 기대섞인 전망도 있었댔다.

그렇지만 그렇게 산뜻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이야기란 거, 현실에서 찾긴 쉽지 않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철거민 분들, 저 망루에 오르셨던 분들의 마음이다. 정권 퇴진시키자고 올라간 거 아니다.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이한몸

열사되겠다고 올라간 거 아닌 거다. 내게 살 길 좀 마련해 달라고, 반토막나고 거리에 쫓겨나게 생겼으니 생계 대책

마련해달라고 올라간 거다. 용역이 경찰과 손잡고 죽어라죽어라 괴롭히니 올라간 거다.


최소한 국가라면, 정부라면, 지들이 국가고 정부를 '자처'하겠다면, 국민이 먹고 살게 해줘야 할 거 아닌가.

가톨릭사회교리에 따르면, 양심에 따라서 거부할 권리란 '공권력,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국민들은 양심에 비추어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한다. 전/의경들한테도

못할 짓이다. 그들도 이미 큰 상처를 입었을 터, 거기에 더해 스스로 용기를 갖고 불의에 항거하라 말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애초 그런 상황에 봉착하게 만드는 부조리한 명령의 발화자가 더욱 혐오스럽다.


그들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을 아프고 병들게 한다.

#1. 신과 인간 자아와의 관계

신이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지, 외부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오랜 성찰에 대해, 비교신화학자인 저자는 구석기

인류의 모권중심적 세계관, 혹은 이를 보다 온전히 이어받은 동양신화의 세계관과 주로 레반트(중근동)에서

유래한 서양신화의 부권중심적세계관이 부딪히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신이 인간의 외부에 있다는 입장은

신의 역사하심(곧 신화)을 역사, 과학으로 해석하여 자기완결적인 계시로 완성시키고자 골몰한 나머지, 일종의

훈고학적인 강박이나 단일진리를 향한 광기를 불러내기 십상이란 점이 부각되었다.


실제로 수 가지의 원전이 수 세기에 걸쳐 편집된 'Sacred Book'의 오리지널리티 혹은 마술성에 대한 주장이,

각 종파들간의 '이단' 투쟁이나 그를 빙자한 정치투쟁에 원용되었다. 그에 더해서 경전상의 지역과 스토리를

역사에 덧씌우려는 노력으로 인한 '역사강역'의 침탈, 그로 인한 끊임없는 지역분쟁은 여전하다. 특히 '신의

은총'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급독점의 상품이 여전히 개별 종교시장, 특히나 서구 기독교 계통에서 먹히는 이유도,

내 안의 신을 부정하고, 외부의 엄격하고도 질투심많은 심판자만을 바라보는 그들의 신화적 기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 전복된 상징과 이미지들.

그렇지만 부권중심의 신화가 모권중심의 신화를 전복하는 과정에서 변형해 차용한 과거의 상징, 이미지들은

여전히 그 내부에 이미 그와 반대되는 맥락과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리스 신화 내의 많은 사례들-메두사에 대한

여러 변주된 이미지들-을 제치고라도, 무엇보다 선악과와 뱀을 둘러싼 이미지가 그렇다는 지적이다.

인류에 최초의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이후 삶의 고역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고 만 선악과, 그리고 그 죄를

범하도록 유도한 뱀의 사악성과 여성의 미욱함이라는 소재는, 기실 기독교신화 이전에 전혀 내용의 방향을

달리하던 것들을 새로이 짜깁기하고 정렬시킨 에 불과하다. 애초 삶에 대한 긍정과 지혜의 획득을 의미하던

사과와 지혜의 나무는 차마 오르지 못할 금기의 대상으로 바뀌고 세상을 주재한는 뱀과 여자(여신)는 남성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방해자로 변화했다. 그렇지만 짓눌린 과거의 이미지와 스토리는, 어느때고 여차하면 돌진하여

그 위에 지어진 텍스트를 공격한다.



#3. 헬레니즘 - 인간 중심주의..신과의 관계에서.

여호와가 큰뱀 리바이어던에게 승리를 거두며 뽐냈다는 기록이 바로 부권질서가 모권질서를 전복했다는

의기양양한 선언이라고는 하지만, 부권적이라 통칭하는 서양신화 역시 나름의 균열을 갖고 있다. 레반트의 전통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이 신 앞에서 인간적인 판단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유럽의 토착전통인

그리스, 로마 등의 신화에서는 인간적 가치를 지키면서 그에 의거해 신들의 성격을 판단하는 굵은 구분선이

그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과 긍정에 기초한 헬레니즘의 범신론은 인간의 본성을 '이성'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본성에 따라 희노애락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포도나무가 포도열매를 맺듯 인간은 선행을 한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야기는 "(하느님이 갚아주실
 
터이니)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기독교 교리와의 관점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내용은 이후 인간의 본성을 이성에서 신성(부활의 신비)으로 대치한 중세 기독교교리로 변질되어

인간중심적인 본래의 의미를 잃고 말았지만, 르네상스로 되살아나게 되었고 다시 신을 인간의 도구로 돌려놓은

게 아닐까.



p.s. 매달 한차례 점심시간에, 코엑스 모처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인 가톨릭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나는,

일종의 의식을 참관하고 그 인위적인 성스러움을 느긋이 즐긴다는 기분이다. 다채롭고 혼란스러운 원전들에서

재구성된, 그치만 나름 고도화된 신화를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쌓여 올려진 신비적 제의와 신학적 백업.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칭한 맑스의 말은 여러모로 맞다. '응급처방약'이란 걸 알고 적당히 쓰일 수 있겠고,

아님 중독되어 버린 나머지 그로 인해 피어오른 망상 속에 평생을 지낼 수도. 어느 쪽이냐면 나는,

(굳이 말한다면)

Q.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성체를 모실 수 있다. ( O )

제사상 음식 지분거리지 말라지만, 배고프면 전부치면서 먹잖아.


신의 가면 3 : 서양 신화 - 8점
조셉 캠벨 지음, 정영목 옮김/까치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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