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즐기는 해외여행 4, 외국 분위기 물씬한 마을(윤성의)-

 


* 2016. 8. 19(금)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부산 감천문화마을, 4년만의 재방문.)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돌아보고 싶은 한국의 이국적인 여행지는 부산의 산토리니, 혹은 마추픽추라고 불리는 감천동 문화마을입니다.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이쁜 파스텔톤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켜켜이 오붓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페루의 마추픽추처럼 가파른 산경사를 따라 층층이 세워진 건물들이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이런 별칭이 생긴 마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을 찾았던 오년전만 해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놀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님께 가자고 해도 전혀 모르셨거든요. 감천 문화마을, 태극도마을, 아니면 감정초등학교 앞으로 가자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전혀 모르셔서 네비게이션을 켜고 직접 안내해 드려야 했습니다. 도착해서 돌아봤을 때도 외지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였구요. 그렇지만 올해 다시 다녀온 그곳은 이미 꽤나 말랑말랑하게 상업화된 분위기랄까, 많이 알려진 관광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이 문화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건, 산비탈을 따라 쭉 올라세워진 달동네 마을이 낡고 허름해진 위에다가, 예술가들이 채색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조형물도 설치하며 마을 주민들과의 협업으로 일군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예전에 왔을 때보다 제법 여기저기에 유쾌한 조형물들이나 벽화들이 늘어난 것도 보기 좋았고, 곳곳에 공방이나 까페,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나는 것도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표시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관광객들을 인도하는 화살표는 곳곳에서 발견되어 길을 잃거나 엄한 데로 빠지기도 더욱 쉽지 않아졌습니다. 굳이 길을 비틀어 다른 곳으로 가도 금세 어디선가 안내를 발견하게 되어 내심 안심도 되고 했지만, 그런 친절한 화살표 아래에도 이 곳의 풍경은 묻어납니다. 가파른 경사길을 따라 내려가면, 이 곳에 사시는 할머니 몇분이 따뜻하게 덥혀진 시멘트 계단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앞서 걷고 있던 두 여학생들에게 뭐라뭐라 촬영하기 이쁜 데나 전망대를 알려주시는 분도 계셨고, 우리는 찍지 말라며 굳이 자리를 피하려 하시는 분도 계셨으며, 여기 뭐 볼게 있다고 이리들 기어와 귀찮게 구냐고 한소리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래도 골목 곳곳에서 만나는 길냥이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한발 앞에서 알짱거리면서 길앞잡이를 자처해주기도 하고, 곳곳에 숨은 자그마한 벽화나 센스넘치는 조각들은 감천문화마을의 미로처럼 얽힌 골목에 숨겨진 보물들입니다. 산비탈을 따라 다랭이논을 일군 사람들, 그리고 다랭이논처럼 비탈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그네들의 파란 네모집들. 빈틈없이 공간을 구획한 야트막한 옥상들은 그대로 빼곡한 모자이크가 됩니다. 부산 앞바다로 그대로 흘러내려갈 것만 같은 기하학적인 문양들입니다.

워낙 경사가 가팔라서, 굳이 골목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몇개 건물들만 슥슥 지나치면 금방 산아래 아스팔트 차도로 내려올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연두빛 분홍빛 파랑빛 페인트들이 골고루 이쁘게 칠해진 집들이나 공중화장실처럼, 그 사이로 놓인 시멘트 계단을 자근자근 밟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빛깔따라 조금이라도 화사해진다면 좋겠습니다.

다만 '산토리니'마추픽추란 이름이 갖는 묘한 설레임과 이국적인 향취, 그 별칭을 가벼운 마음으로 붙여주기엔 여전히 이 곳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가볍지가 않을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건물들의 군집이 이루는 그 전체 그림만을 보고 감상하며 '산토리니' '마추픽추'니 하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좀 실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니까요. 그곳에 사는 분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한국에서 즐기는 해외여행 3, 외국 분위기 물씬한 음식(윤성의)-


* 2016. 8. 18(목)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타협하지 않은 아프리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돌아보고 싶은 한국의 이국적인 여행지는 서울 이태원 일대입니다. 서울 중에서도 특히 이태원은 외국인 관광객이나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이 많은 곳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한국의 유일한 이슬람 모스크도 있고, 아랍이나 인도, 남미의 독특한 음식들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라 이미 많은 분들이 이 곳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나름대로 즐기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소개하고 싶은 건 이러한 이태원을 더욱 이국적으로 맛볼 수 있는 두가지 아이템, 아프리카 음식과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머물러 보기입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소개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나서는 것부터 왠지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것 같은 설레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면도구와 옷가지까지 구겨넣은 가방을 메고 이태원의 가파른 골목길을 헤매며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짐을 풀면 왠지 배낭여행객들의 성지라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에 막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이야, 이제부터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라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짐을 풀고 찾아간 곳은, 늘 눈여겨보기만 하던 그곳이었습니다. 이태원에 갈 때마다 늘 지나치는 골목, 늘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던 아프리카 음식점. 아프리카 음식점이라니 대체 어떤 맛의 음식을 파는 걸까, 친절하게도 요리 하나하나 사진과 제목이 적혀 있는 메뉴판같은 커다란 간판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가늠해 볼 수가 없어서 호기심을 잔뜩 자극하던 곳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아프리카 음식은 대중화되고 세계화된 다른 지역의 음식들에 비해 그 고유하고 독특한 맛을 타협하지 않고 지켜내고 있을 거 같아서 약간의 주저함도 있었구요.

오늘 하루는 여행객이니깐, 기세좋게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안에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이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둘씩 셋씩 모여앉아 못 알아들을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한국인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쪽 벽면에 조그맣지만 단호하게 액자에 넣어져 걸려있던 사업자등록증이니 그런 서류들에서 보이는 낯익은 한글의 분위기 말고는 온통 낯선 이국의 분위기. 순간 나이지리아쯤 되는 아프리카 어딘가로 휙 순간이동해버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알 수 없는 메뉴 중에서 더듬듯이 주문을 하고 나서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비누랑 핸드로션의 용도를 알 수 있었습니다. 주문한 음식들을 손으로 먹고 나서 함께 나온 분홍빛 양동이에 담긴 물에서 손을 씻으라는 의미. 사실 다른 아프리카인 손님들에겐 전부 기본으로 주어졌던 이 양동이 대신 우리 테이블엔 스푼과 포크가 제공됐지만, 괜히 특별대접받고 싶지 않아 손으로 먹겠다고 양동이를 달라 굳이 부탁했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하얀 쌀가루나 나뭇가루 같은 걸 물에 개어서 떡처럼 해서 먹는 이란 음식이 있죠. 생각보다 풀기도 없고 미끈한 느낌, 그야말로 '무미'해서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빵을 손으로 떼어 돌돌 말아서 먹듯이, 알아서 적당량을 떼어 손으로 매만지곤 스프에 찍어 먹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함께 주문했던 볶음밥 역시 향신료나 재료가 꽤나 독특한 느낌이었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직접 손으로 떡처럼 만들어먹는 재미에 비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음식을 다 먹고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더니, 문득 낯선 느낌이 들었습니다. 왠지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훌쩍 돌아와버린 느낌, 약간의 아쉬움이나 섭섭함마저 느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이태원은 온갖 이국적인 음식점과 술집이 가득한 거리, 하룻밤을 머물기로 맘먹은 여행자에게는 또다른 도전과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평소 벼르고만 있다가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곳들이 있다면, 이렇게 하룻밤 여행자로 머물면서 시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한국에서 즐기는 해외여행 2, 외국 분위기 물씬한 바다(윤성의)-

 


* 2016. 8. 17(수)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울릉도 태하등대, 깊고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고 싶다면.)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돌아보고 싶은 한국의 이국적인 여행지는 울릉도, 중에서도 북서쪽 태하항 일대의 에메랄드빛 바다입니다. 해외로 떠날 때 흔히들 상상하게 되는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호젓한 분위기, 그리고 이국적인 먹거리를 그대로 국내에서 만끽할 수 있는 바다라고 소개하고 싶은 곳입니다.

물론 해외로 떠나지 않고도 동남아의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몇군데 있기는 합니다. 제주도 김녕 성세기 해안이라거나 남해 비진도, 동해 촛대바위 앞바다들이 그런 곳들이죠. 그렇지만 적어도 제게는 한국에서 접했던 최고의 에메랄드빛 바다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사진작가들도 이곳을 국내의 10대 비경 중 하나로 손꼽았다고도 하니까 그렇게 편향된 건 아닌 셈입니다.

울릉도는 뭍으로부터 접근하기 쉽지 않아 아직은 그 천혜의 비경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섬입니다. 사실 섬의 해안선 어디에서든 기암괴석이 즐비한 가운데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만끽할 수 있으니 굳이 그 중에서 어딜 손꼽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23일동안 걸어서 섬을 돌아다니던 중에 가장 극적으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태하항 앞바다였습니다.

성인봉을 오르내린 후 나리분지를 지나 접어든 북쪽 해안산책로, 태하항에 도착하니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해변마을이었습니다. 이미 울릉도 해안가의 여러 마을을 거쳐온 터였지만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던 마을, 아마도 뜬금없던 모노레일 탑승장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박집을 겸한 자그마한 슈퍼와 이발소와 음식점들, 그 옆으로는 태하 등대가 있는 향목전망대로 향하는 모노레일 탑승장이 동그마니 있었습니다.

여행객은커녕 동네 주민분도 보이지 않아 운행은 하려나 싶었는데, 그래도 시간표에 맞춰 운행중인 모노레일, 거의 거의 수직 급상승하는 느낌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눈높이를 따라 시퍼런 바닷물 수위가 모노레일 위로 넘실넘실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 육분 정도, 순식간에 해안가에서 가파른 야산 위로 올라오고 나니, 향나무숲이 울창한 오솔길 끝에 보이는 태하등대 너머 탁트인 바다 풍경에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동남아 어느 리조트 앞바다에서나 볼 법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바닷물이 저런 빛을 띌 수 있는 건지 이쪽 끝으로 가서 내려다보다가, 또 다시 저쪽 끝으로 가서 하염없이 내려다보다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맑고 부드러운 색감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어떻게든 그 느낌을 그대로 담고 싶어서 수십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시시각각 다른 빛깔을 내뿜으며 반짝거리는 푸른 파도의 질감이라거나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그저 눈과 가슴에 담길 뿐 사진에는 담기지가 않더라구요.

모노레일 안에 붙어있던 울릉도 순환버스 시간표, 버스회사 이름은 우산버스였습니다. 한때 우산국이라는 이름의 나라였던 자취가 이런 식으로나마 남아있었습니다. 성인봉을 찾는 단체등산객들이 많은 항구 주변 말고, 이렇게 북서쪽 깊숙히 들어온 곳에서 울릉도의 명물 따개비국수를 꼭 맛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색다른 음식을 맛보며 원시림 향기가 그윽하게 번져오는 섬그늘에서, 눈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에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면, 이 곳이 정말 한국이 맞는지 혼란스러워지실 겁니다.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광복절을 맞이하여 독립운동의 자취를 따르는 여행 (윤성의)-



* 2016. 8. 15(월)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안녕하세요. 라디오 전국일주 청취자 여러분. 오늘은 19458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맞이한 한국의 제71주년 광복절입니다. 해마다 빠짐없이 전국 각지에서 경축식과 기념행사가 치뤄지는 날, 어쩌면 70년도 훨씬 전의 일이라 그저 감사한 빨간 날 휴일 하루로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나라를 되찾았다는 걸 광명을 되찾았다고 표현할 만큼, 그렇게 힘들게 우리 나라를 되찾아온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피와 땀 앞에 조금은 더 경건하고 숙연한 마음으로 보내야 할 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그저 여느 휴일과 다름없이 보내기보다는 조금은 더 의미있는 곳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서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립운동의 자취를 따라보도록 하겠습니다.

독립운동 사적지들은 대체로 현재의 서울 종로구, 서대문구와 중구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 중 대부분은 비석 하나로만 그 흔적이 겨우 남아있거나, 새로 지어진 번듯한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백년 가까운 과거의 역사를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는 오랜 사적들을 찾아 서울 시내를 돌아보려 합니다. 우선 독립정신의 뿌리를 세운 독립문부터 시작해서, 덕수궁 내의 중명전, 서대문형무소와 탑골공원, 잠시 강남으로 내려가 도산공원을 거쳐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에 이르는 길을 따르다보면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간단하게나마 되짚어볼 수 있을 겁니다.

3호선 전철을 타고 독립문역에서 내리면 굉장히 이국적이면서도 오랜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건축물 하나를 보게 됩니다. 독립문이 바로 그것인데요, 조선시대 한양을 찾아오는 청나라의 사신을 영접하던 장소인 영은문과 모화관을 허물고 1897년 독립협회가 건립하였습니다. 독립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기금으로 만들어진 15m 높이의 문은 프랑스 파리의 에투알개선문을 본뜬 모습이라고 하는데, 당대의 천재라고 불렸던 서재필이 스케치한 것을 근거로 설계했다고 하니 그 천재성에 놀라울 뿐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서재필과 이승만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독립협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토론회인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계급을 초월한 대중이 주체가 되는 근대사상을 도입하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찾을 곳은 비극의 현장, 중명전입니다. 19051117일 밤,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대신들을 회유, 협박해 을사늑약을 체결한 곳이죠. 중명전은 잘 아시는 덕수궁 내, 덕수궁 미술관 뒤에 있는 근대식 건물입니다만, 잘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곳인 것 같습니다. 중명전은 우리나라 궁중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 중 하나로서, 1904년 덕수궁이 대화재로 인해 전소된 이후 황제의 거처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이듬해인 1905년 이곳에서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었고 이후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시련의 근대사를 간직한 현장이라는 점에서 한번 찾아볼 만한 곳입니다.

이렇게 국권을 상실한 대한민국을 위해 제한몸 아까워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분들이 계셨죠. 그분들을 탄압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 중 하나가 바로 서대문형무소일 겁니다. 독립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면서 이에 항거하는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 등 국권운동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나자, 이러한 저항을 종식시키고자 대규모의 근대식 감옥을 지었던 것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1910년 강제병합과 1919 3·1독립만세운동 이후 수감자가 급격히 증가하자, 일제는 서대문감옥 기존 건물을 대대적으로 신축하여 수용인원 3,000여 명 규모의 대규모 감옥으로 운용하기에 이릅니다. 3.1운동 당시 시위관련자 1,600여명이 수감된 것을 비롯해 의병장 허위와 유관순 열사, 강우규 의사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순국한, 가히 민족수난의 현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191931일 오후 2, 그날의 역사는 종로 탑골공원에 생생하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학생대표가 공원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을 겁니다. 학생들은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공원 밖으로 나섰고 수많은 군중들이 시위 대열에 합류하면서 만세시위는 대대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3·1운동의 발화지로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탑골공원 안에서는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미독립선언서를 네배 확대한 모사본을 볼 수 있고,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을 대표했던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도 모셔져 있습니다. 탑골공원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하나, 본래 탑골공원은 종로 한가운데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내 근대식 공원으로 대한제국 황실의 음악 연주장소로 지어졌으나, 백성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 모여들면서 1913년부터 백성들도 이용할 수 있게 허락되었다고 합니다. 또 최근까지도 불탑사원을 의미하는 파고다 공원이라 불렸으나 탑이 있던 곳이라 하여 탑골이라 불리던 옛지명을 따 1991년부터 공식적인 명칭으로 탑골공원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쯤에서 잠시 옛 서울의 중심가를 벗어나 번화한 강남으로 내려와봅니다. 도산대로 옆 도산공원, 바로 도산 안창호기념관이 있는 곳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 등을 이끌며 활발하게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던 분입니다. 민족 산업 육성과 민족의 지도자 양성에 힘쓰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전개해나갔던 민족의 지도자이자 실천가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민주주의적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정신과 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안창호기념관에서는 안창호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 그의 글과 서한, 연설물, 심지어 선생이 작사한 노래까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산공원은 1971년 기공되었고, 1973년 선생의 탄신 95주기를 맞아 망우리 공동묘지의 선생 유해와 미국의 이혜련 여사의 유해를 도산공원으로 이장, 합장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하니, 평소 아무생각없이 지나쳤던 도산공원의 이름부터 새삼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의 숙소이자 환국 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입니다. 백범 김구선생이 서거할 때까지 3 7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며 임시정부 요인들을 모아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등 감격스러운 해방 후 닥친 혼란 정국을 수습하려 노력했던, 그야말로 격동하는 현대사의 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1949 6 26일 김구선생이 2층 집무실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는 당시 김구선생이 집무를 보던 공간은 물론, 당시 김구선생이 입고 있어서 총탄이 꿰뚫고 지나간 자국과 선혈이 낭자한 옷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다소 충격을 받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대문역 옆 정동사거리에 위치한 경교장은 1930년대 금광으로 돈을 번 갑부가 지은 건물로, 1930년대의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기도 합니다. 8.15 광복 이후 그가 김구 선생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최근 원형대로 복원하여 2013년부터 전시관으로 개관해 일반인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꼭 한번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여전히 역사의 상처를 깊게 간직하고 있는 오랜 사적지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대도시 서울의 풍경 속에서도 용케도 사라지거나 잊혀지지 않고 곳곳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는 이런 역사적인 공간들, 우리에게 역사를 잊지 말라고,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도 없다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한국에서 즐기는 해외여행 1, 외국 분위기 물씬한 정원(윤성의)-

 


* 2016. 8. 16(화)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로그의 글 (엘레강스한 주인의 손길이 구석구석, 한려수도의 꽃 외도..)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안녕하세요. 라디오 전국일주 청취자 여러분. 한창 휴가철인 이맘때면 새로운 풍경과 경험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로 공항이 연일 북새통이라는 기사를 많이 보실 텐데요, 저는 이번 한주동안 청취자 여러분께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이국적인 풍경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한 주 저와 함께 국내 곳곳에 숨어있는 외국 분위기 물씬한 여행지들을 돌아보시면서, 진부하다거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곳에 숨어있었던 낯섦 한조각, 설레임 한조각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오늘 먼저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곳은 외도 보타니아 해상공원입니다. 외도는 깨끗하고 푸른 남해 바다와 경관이 수려하기로 이름난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는 해상공원입니다. 동양의 하와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할 만큼 온난한 기후에 물이 풍부해 여러 이국적인 아열대 식물들이 가득한 작은 자연 공간에, 지중해의 어느 해안도시처럼 유럽 스타일로 공들여 꾸며진 건물과 조경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전부터 섬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한쪽 끝에 서면 다른 쪽 끝이 보이는 그런 조그마한 섬. 외도는 그 정도로 작지는 않아도, 불쑥 올라선 섬의 중앙부에선 섬의 가장자리가 닿을 듯 가깝게 보일만한 크기인지라 정원으로 꾸며진 섬 전체가 한눈에 보입니다. 그 너머 섬들이 가득한 남해바다가 희끄무레한 바다안개를 덮은 채 버티고 있었구요.

그렇다 보니 대략 한시간의 산책로는 그대로 섬의 외곽을 따라 한바퀴 도는 길입니다. 판판한 평지에 조성된 정원이 아니라 제법 오르내림이 있는 조그마한 언덕 같은 섬에 조성되어 있으니, 산책로를 걷는 재미도 더 큰 거 같았습니다. 더러는 잘 다듬어진 높은 야자수들로 울타리쳐진 길을 오르기도 하고, 아니면 야트막한 정원수들이 양쪽에 열지어 있는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며 전체 섬을 내려보기도 하구요.

프랑스 식으로 네모반듯하게 잘 다듬어진 비너스 가든과 벤베누토 정원은 외도의 한복판, 그야말로 외도 정원의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중간중간에 놓인 이국적인 느낌의 벤치나 조각상들 역시 바닷바람에 씻기고 적당히 헐어보여서 오히려 더 맘에 들었습니다. 괜히 유럽이나 그리스식의 분위기를 흉내내느라 억지로 힘줬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제 외도 보타니아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이르렀달까요.

한바퀴 설렁설렁 돌아보고 선착장에 내려서기 직전, 외도의 마지막 포스트인 '외도 갤러리'에선 특히나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쪽 풍경이 참 좋았습니다. 천장이 높아 바람이 숭숭 자유로이 드나드는 커다란 정자 같은 곳에 삼삼오오 앉아서는 바닷바람도 맞고, 멀찍이 바다에 시선을 던져둔 채 가만히 앉아있는 것. 바다랑 섬들이랑 사이좋게 어깨겯고선 남해의 풍경 덕분에 마음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외도는 국내 유일의 해상농원으로, 놀랍게도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섬이라고 합니다. 부부가 1969년부터 수십년간 지극정성으로 가꿔온 섬, 곳곳에서 묻어나는 그분들의 개인적인 취향과 안목을 살펴보는 재미도 각별하지만 그분들의 자연에 대한 애정과 오랜 세월 쏟아오신 노력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으면서 이런 독특하고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흔히 우리가 빠지기 쉬운 개발이냐 보존이냐, 라는 양극단 이외의 길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니까요.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3, 지리산 둘레길(윤성의)-



* 2016. 7. 13(수)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지리산 둘레길 2코스(운봉-인월, 9.9km))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지리산 둘레길입니다. 길은 지리산 둘레의 전북, 전남, 경남을 아우르며 120여개 마을을 잇는 285km 장거리 도보길로 현재 22코스까지 조성되어 있습니다.

얼마 예능 프로그램에 그중 3코스가 소개되고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긴 했지만, 굳건하게 버틴 지리산 자락 아래 많은 마을길과 샛길들이 여전히 보석처럼 숨어있는 곳입니다. 저는 틈이 때마다 조금씩 아껴먹듯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요, 오늘은 1코스와 2코스를 중심으로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중간에 있는 행정마을에서 맞는 아침. 예보대로 종일 비가 모양인지 꽤나 꾸물꾸물한 날씨였습니다. 멀찍이 병풍처럼 자리잡은 지리산은 온통 희뿌연 연무에 휘감겼습니다. 마을의 포장도로를 금세 벗어나 밟기 시작한 흙길, 제법 빽빽한 소나무숲길 사이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온몸이 흠뻑 부슬비에 젖었습니다.

검고 부드러운 흙바닥에 두방울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해 피어오르는 냄새, 흙냄새가 어찌나 좋던지요. 어쩌면 함께 걷고 있는 친구들 덕분에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황금연휴를 맞아서 불쑥 잡은 지리산행에 흔쾌히 함께 군대 친구들, 어느덧 십수년의 세월을 함께 타박타박 쌓아오며 용케 잘도 뭉쳐 다녔던 같습니다.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마을길이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고즈넉했습니다. 그러다가 길이 민가로 접어들면 사람 사는 풍경이 소소하게 펼쳐집니다. 골목길에 버티고 나무도 싱싱하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의 발랄한 물소리와, 그쪽으로 기울인 나무들의 휘영청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선명하거나 고집스럽지 않게 한풀 꺾여 수그러든 낡은 파스텔톤의 슬레이트 지붕이나 시멘트 벽돌담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읍내 곳곳의 조금 낡았지만 정겨운 풍경들도 골목골목 들어가며 찾아보았습니다. 색이 바랜 오래된 간판과 자전거들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애초부터 둘레길 코스에 딱딱 맞춰서 주파해 나간다거나 정복한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가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천리행군이나 국토대장정도 아니구요. 그보다 중요한 , 어느 장소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일 겁니다. 눈을 크게 뜨고, 오감을 온통 활짝 열어둔 , 발바닥에 밟히는 흙과 나뭇가지들을 온전히 느끼는 , 바로 그게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2, 괴산 산막이옛길(윤성의)-


* 2016. 7. 12(화)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구불구불한 산막이옛길에 풀향기가 가득.)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충북 괴산에 위치한 산막이옛길입니다.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막이마을을 이어주던 10리길, 그러니까 4km 옛길을 이르는 말인데요.

산으로 깜깜하게 막혀있던 산막이마을 주민들이 채취한 산나물이나 약초들을 강건너 읍내 장에 내다팔거나 옆마을로 넘나들 이용하던 길이었지만, 점차 마을이 작아지면서 잊혀져 가던 길이라고 합니다.

옛길 초입부터 여행자를 구불구불 따라오는 괴강입니다. 1950년대 괴산수력발전소가 들어선 이후에는 괴산호라 불리는 곳이죠. 바람 때문인지 괴산호 수면에는 잔물결이 꼼꼼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걸으면 굽어진 강물, 강물 따라 또한 잔뜩 굽어진 산등성이, 이런 산등성이를 따라 새겨진 초록빛이 가득한 풍경이 활짝 펼쳐집니다.

길이 적당한 강약으로 오르내리는데다가, 적절한 보폭의 나무데크로 이어져 있어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도 좋습니다. 드문드문 나무에 묶인 그네에선 아이들이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아래쪽으로 발을 구르고 있습니다. 저러다 휘잉~ 하고 그대로 호수까지 날아갈 같은데 아이들은 겁이 나지도 않는지 마냥 즐거운 웃음소리를 던집니다.

아이들의 발랄함이 가시기도 전에 이어지는 출렁다리입니다. 이거 재미있겠다 싶어서 우다다 걷다가 일부러 흔들어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뒤에 따라오는 꼬맹이가 완전히 겁먹은 보고 미안해졌지만 이내 걸음 가지 못해 다시 출렁출렁해보고 싶은 마음. 어린 시절 느낌 그대로, 어른들한테도 꽤나 길고 재미있던 코스였습니다.

출렁다리에서 내려와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 쬐이는 단단한 흙길을 밟으니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산뜻한 초록색을 뽐내며 옛길을 터널처럼 감싼 나무들, 그리고 제법 울창해진 틈새를 비집고 기어이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과 이따금씩 뚝뚝 떨어지는 햇살 조각들. 어디선가 풍기는 나무냄새, 꽃냄새까지 더해지니 정말, 한없이 걸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약수터의 펑펑 흘러나오던 물맛도 무척이나 좋았고요. 예전에는 논이었지만 지금은 연꽃이 피는 연화담도 지나고, 60년대까지 호랑이가 살았다는 동굴도 놓칠 없는 포인트입니다. 무엇보다 지상 40m 높이에 설치된 고공전망대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있었지만, 아래 보이는 온통 초록빛 풍경과 아름다운 강물에 아이들도 겁먹지 않고 펄쩍펄쩍 뛰어 다니는 곳이었습니다.

산막이옛길의 끝은 산막이마을입니다. 끝에서 돌아오는 방법은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반 정도 걸려 꼼꼼하게 걸었던 길을 되짚어 걸어 수도 있고요, 출발지로 돌아오는 소형배를 타면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다른 풍경을 발견하면서 15 만에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혹은 본격적인 등산로를 따라 걸어 나오는 것도 방법이겠죠. 여러분은 어떤 길을 택하시겠어요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1, 강화도 나들길(윤성의)-

 

* 2016. 7. 11(월)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걷는 이의 눈높이에서 재발견한 강화, 강화나들길 제1코스.)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안녕하세요. 라디오 전국일주 청취자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산책 좋아하시나요? 저는 이번 한주동안 청취자 여러분께 전국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저와 함께 걸어보시면, 시속 3km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꼭꼭 밟으며 음미하는 풍경은, 단지 눈에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차분하게 스며든다는 것을 느낄 있을 겁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강화도 나들길입니다. 강화도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마니산 참성단, 진달래 밭으로 유명한 고려산, 갈매기와 새우과자가 떠오르는 석모도, 그리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선사시대 고인돌까지 하나씩 차근차근 이어나가 있는 곳입니다.

강화 나들길은 산책로와 옛길을 포함하는 20 코스로 이루어져 이런 지점들을 빠짐없이 아우르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중에서 1코스, 심도역사문화길이란 이름이 붙은, 강화도의 가장 번화한 시내에서부터 동쪽 해안가의 갑곶돈대까지 18킬로미터의 길을 걸어볼까요?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차를 내려 소박한 슬레이트 지붕이 이어진 골목길을 지나면 동문을 만날 있습니다. 동문은 몽고가 침입했을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옮겨와서 항전하며 쌓은 성문입니다. 야트막한 가옥들과 눈높이를 맞춘 소박한 성문을 골목 끝에 갖고 있는 동네에서 살면 꽤나 운치 있을 같아 이곳 주민들이 살짝 부럽기도 했습니다.

동문을 지나고 만나게 되는 600 묵었다는 회나무, 그늘 아래서 자동차들도 쉬어가는 그런 거대한 나무를 보면 왠지 옷깃을 여미게 된달까요. 생명력과 연륜 앞에서, 그리고 단단히 수백 동안 뿌리박은 위엄과 경이로움에 조금 압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걷다보니 어느새 고려궁지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한창 뜨거운 오후 2시쯤. 이곳 그늘에 앉아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며 땀도 식히고 바람도 쐬어 봅니다. 이곳은 고려 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왕조가 강화로 옮겨 왔을 , 고려 왕조의 왕궁이 있던 곳입니다.

1코스의 끄트머리쯤에서 만날 있는 연미정은 강화 10경의 하나로, 아래로 굽어보이는 물길 흐르는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풍경이나 정자가 품고 있는 시원한 바람이 예사롭지 않아 강화나들길 1코스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곳입니다. 정말 경관이 굉장히 아름답고 500 느티나무도 그루나 있어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품고 있는 곳이었지만, 이런 아름다움에 비하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안타까웠습니다.

꽤나 한적한 나들길을 따라 걷는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나고 드는 자유롭다는 뜻의 '나들길'. 강화도에 왔다면 어디서부터든, '강화나들길' 표지를 따라 강화의 풍경을 즐겨보시는 어떨까요. 모범답안처럼 코스를 따르지 않더라도 내키는 대로 형편 닿는 대로 걸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문득, 블로그 방명록에 이런 글이 남았다. 원체 요새 블로그 관리를 잘 안했던 터라 늦게 보긴 했지만 혹시나 하고 메일을 드렸더니...!

두둥..! KBS본관의 라디오 녹음실에 앉아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전에 다섯 편 분량의 원고를 쓰고 방송용으로 수정하고, 다시 읽기 자연스럽도록 손을 좀 보고 '안녕하세요'만 백번 연습하는 등 마냥 순식간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어디서 끊어 읽는 게 좋을지도 여러번 더듬거리며 찾아보고, 대체 얼마나 발랄하거나 차분해야 할지 고민만 깊고 정작 답은 찾지 못한 채 대패닉 상태에 빠져 방송국으로.

#kbs #radio #라디오 #녹음 내가 듣는 내 목소리는 왜 이렇게 낯설고 어설픈지. 그래도 일주일 분량을 녹음하는데 한시간 만에 세이프!

2016. 7. 11~15, KBS1라디오(FM97.3) '라디오 전국일주' 2부 첫머리-대강 3시 어간-에서 뵙겠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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