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로 여행을 갈 때마다 버킷리스트에 넣는 것 중 최우선 순위를 늘 다투는 건 '두리안 먹기!'


그러다보니 현지에 도착해서 현지인들에게 어디가면 두리안을 먹을 수 있는지, 어디가 특히 맛있는 집인지 등등을


캐물어보고는 아무리 먼 곳이라 해도 기필코 찾아가는 거다. 


싱가폴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감히 과일지왕 왕중지왕 최고존엄 두리안님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런


과일을 좋아하냐는 투의 깜짝 놀란 표정을 잠시 보이고는, 겔랑로드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모호한 힌트를 준다.


하지만 그 정도 힌트면 충분. 이미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도 북적대고 수상쩍은 냄새로 가득한 시장통 한복판의


한줄기 두리안 향기를 따라 기어코 두리안 가게를 찾아냈던 나다. 다짜고짜 겔랑로드로. 나머지는 코에게 맡기고.


빙고! 심 스트리트(Sims St.)와 겔랑로드(Lor 13 Geylang to Lor 18 Geylang)에 이르는 공간을 찾아냈다.


짙은 두리안 향내가 지천에 퍼지고 온통 두리안을 산처럼 쌓아둔 채 쉼없이 껍데기를 벗기고 있으니, 이는


싱가폴의 두리안 성지라고 부름에 부족함이 없으렸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찾아낸 두리안 성지에서도 그랬듯 여기도 소품은 단출하다. 두리안님을 올려둘 테이블,


미처 영접하지 못하고 손끝에서 끝나버린 두리안님의 과육을 닦아낼 휴지(크리넥스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그리고 


두껍고 뾰족하기가 하늘의 왕국을 지탱하는 자의 면류관과 같은 두리안님의 갑옷을 특별관리해두려는 커다란 


바께쓰(라고 쓰고 쓰레기통이라 읽음). 



말레이시아에서는 두리안님의 과육이 손의 피부세포로 흡수되는 것조차 막고 한줌남김없이 입으로 영접하기 위해서


(혹은 두리안의 향이 손에 배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 생각하는 것이 온당하겠지만) 비닐장갑까지도 준비해


두었던 것 같은데 싱가폴에선 없었던 것 같다. 두리안님을 대하는 양국 국민의 차이랄까. 싱가포리안들에게 +1점.



나중에, 동남아의 어느 두리안 농장같은데 취직해서 두리안님의 탄생부터 성장, 질풍노도의 시기를 직접 보고 이렇게


성숙하는 모습까지 친견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다. 홍콩에선가 채 익지도 않아 껍질이 잘 까지지도 않던 두리안을


먹어본 적도 있는데, 그건 거의 생밤을 먹는 느낌이었고, 이제 그보다 덜 익은 두리안님들을 각 단계에서 맛보고 싶은


약간은 음흉한 생각이 드는 시점.



두리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거다. 두리안의 맛을 좋아하지만 향까지 좋아할 수는 없는 사람이


있고, 두리안의 맛과 향을 모두 좋아라 하는 사람이 있는 거고. 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아무래도 대다수를 점하니


두리안을 파는 과일가게는 대체로 한곳에 모여 있게 되는 거 같다. 약간 후각의 게토 같은 분위기.


덕분에 뱃속에 들어간 두리안은 커다란 열매 하나에 불과했지만, 코로는 수백수천개의 두리안이 진하게 풍기는 


향으로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나로선 전혀 불만 가질 것 없는 두리안님들의 집성촌 되시겠다. 


비록 숙소에서 오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하긴 했지만, 이정도는 뭐 사실 매일이라도 움직이겠다.


기타 싱가폴 차이나타운의 두리안 전문샵에서 사온 두리안으로 만든 음식들. 


그 가게에서는 두리안 케잌과 두리안 커피, 두리안 밀크티와 두리안 과자, 두리안 말린 스낵과 두리안 잼, 두리안


아이스크림 등등을 팔고 있었는데 위엣것들은 바로 두리안 커피와 두리안 밀크티.


그리고 두리안 과육을 걷어내서 천하장사 소세지 모양으로 포장해놓은 두리안 케잌. 빵 사이에 두리안이 들어간 


(보통 상상할 수 있는 모양의) 두리안 케잌도 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두리안 향과 맛이 연해서 땡탈락. 반면 이녀석은


그냥 두리안 과육을 그대로 응축시켜놓은 셈이라 한입 먹어보고 덥썩 질러버렸다. 잘 익은 진한 두리안.


집에 오자마자 치즈 플레이트에 올려서 송송송 썰어서 맥주랑 마시니깐...다시금 두리안 성지가 이곳에 임하셨더라는.





 

홍콩섬 썽완의 이름난 관광 코스로는 웨스턴 마켓, 캣 스트리트를 지나 만모우 사원과 근처 할리웃로드의 골동품 샵이나

 

앤틱샵, 각종 갤러리샵들을 구경하는 정도가 있을 텐데. 그 중에서도 놓칠 수 없는 건 과일의 왕 두리안 향기를 풀풀

 

풍기는 '허니문 디저트' 샵에서 '두리안 팬케잌' 혹은 '두리안 푸딩' 혹은 기타 열대과일 디저트들 맛보기!

 

웨스턴 마켓, 은 그렇게 크지 않은 오랜 붉은 벽돌 건물로 근 백년을 버티고 있는 상가 건물인 셈이다. 2층엔 옷감만 취급하는

 

샵들이 꽉 차 있고 3층엔 레스토랑이 있으니 크게 시간을 들일 공간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오랜 세월의 풍취가 남아있다.

 

 이런 옛 스테인드글라스의 느낌이 그런 것들 중 하나. 그리고 밟을 때마다 살짝 울림이 있는 듯 느껴지던 바닥재들도.

 

 여하튼, 웨스턴 마켓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허니문 디저트'!

 

메뉴판 가득 망고니 포멜로니 타피오카니 두리안이니 온갖 종류의 열대과일로 만들어진 디저트류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지만

 

관심사는 오로지 두리안, 두리안을 먹겠다는 목표 하나로 태국 여행을 갔던 적도 있으니 뭐.

 

짧지 않은 시간동안 두리안으로 만들어진 것 중에서 뭘 먹을까 고심하다가 고른 건 '두리안 팬케잌'.

 

포크로 살살살 절개한 단면을 따라 황금빛 두리안의 크리미한 속살이 생크림을 잔뜩 묻힌 채로 두둥.

 

싸여있을 때는 살짝 후각 세포를 노크하던 수준의 두리안 향기가 불끈, 온몸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냐항.

 

요리조리 열심히 두리안 팬케잌을 감상하고 감사하고 향기를 맡는 나를 보며 같이 갔던 직장 동료가 그랬다.

 

먹는 걸 이렇게 열심히 찍는 모습은 처음 본다나. 당연하지, 이건 두리안으로 만든, 가공하거나 말린 게 아니라

 

두리안 생물이 가득한, 두리안 향기와 과즙과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두리안 팬케잌이니깐!

 

그래서, 야곰야곰 먹으면서 점점 홀쭉해지는 녀석을 아쉬워하면서 동시에 두리안의 향기가 몸속 가득 포섭된 데에

 

더할 나위없이 만족하기도 하면서 완전 몰입해서 먹어버리고 말았다는.

 

뭐, 이건 별로 눈길도 안 갔지만 그래도 예의상 찍어준 사진 하나. 올챙이알 같은 타피오카가 잔뜩 들어간

 

열대과일 플러스 녹차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두리안이 최고.

 

그리고 다시 힘내서 캣스트리트로 걸어 올라가는 길. 웨스턴 마켓 옆길에는 트램 정류장도 바로 붙어 있고 MTR역도 있으며,

 

홍콩의 어디를 막론하도 돌아다니는 2층버스 덕분에 더욱 풍경이 이국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담넌싸두악 수상시장으로 향하는 길, 차안에는 불상들과 온갖 장식품들이 주렁주렁 하다.

태국 사람들은 차 안에 저런 식으로 운행안전을 기원하는 부적 같은 것들을 많이 달아두는 것 같다. 버스말고

택시나 뚝뚝(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탈 것..이랄까) 같은 것들을 겪을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다. 실제론

어떨까ㅡ교통사고가 한국에 비해 적기는 할 거 같다. 사람들의 여유라거나, 푸근한 웃음 같은 거 보면.

누렁 황토와 청록빛 이끼를 물에 풀어넣으면 저런 물빛이 나오지 않을까. 손바닥만하지만 어엿하게 지붕도 달린

조각배들이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수로를 따라 둥실둥실 떠내리는 와중에. 수로 양켠으로 무질서한듯 마구 난립한

바나나나무들, 온갖 활엽수들은 그렇지만 또 가지런한 모양의 하늘을 열어놓고 있었다.

중간중간 짙푸른 정글이 한뼘쯤 물러났다 싶은 곳에느 여지없이 들어서 있던 관광용품 파는 곳들. 단순히 현지인들

생필품을 위한 마켓이라기보다는, 이미 관광코스화되어 버린 이 곳에서 관광객들 대상의 장신구를 파는 곳이었다.

그치만 태국의 전통모자나 장신구들보다 눈이 가던 건, 배가 지나칠 때 잘박거리는 파도가 저 수상가옥들의 기둥을

넘실넘실 핥아대던 그림.

이런 식으로 인력을 사용한 탈것들은, 그 수혜자들에게 모종의 미안함을 거의 예외없이 느끼게 하기 마련이지만

이 조각배는 좀 예외였다. 그냥 노를 젓지 않아도 알아서 설설설 물 위를 미끄러져 갔고, 뭔가 나무뿌리같은 게

모여있어서 유속이 좀 처진다 싶은 곳에서는 장대로 한번 쿡 바닥을 찔러 밀어주면 끝.

중간중간 '부레옥잠'같이 생긴 수상식물들도 수로 위에서 번성하고 있었고, 이리저리 배에 치이다 저렇게 흐물흐물

넝마처럼 되어 버린 채 물길 옆으로 쑤셔박혀 있기도 했다. 그리고 좀 뜬금없다 싶은 수상 패션쇼. 참 시원하겠다.

참 저렇게 이뿌게 쌓아올리는 건 대단한 솜씨인 게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까지 쌓아올렸을 텐데.

코코넛을 배에 가득 쌓아올린 채 손님들을 기다리는 시장통의 아주머니. 어디든 재래시장, 전통시장의 아주머니들,

할머니들은 참 푸근한 표정과 자글자글한 미소를 가지셨다. 코코넛의 윗통을 큰 칼로 버썩 썰어내곤 빨대를 꼽아

쪽쪽 마시는 미지근하고 들크무레한 그 액체..뭔가 도구가 있었다면 껍데기도 마저 깨서 안의 하얀 속살까지 싹

발라먹었을 텐데 아쉬웠다는.

바나나도 있고, 람부탄, 리치, 망고스틴, 파파야...온갖 열대과일들이 배위에 그득그득 실린 채 짙고도 강렬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물 위에서 배들이 움직이며 팔고 있다는 걸 빼고는 완전 우리네 시골장터 분위기다.

이리저리 뽈뽈뽈 떠다니는 배들은 서로 살짝살짝 부딪치는 일도 없진 않지만, 빽빽하게 정체가 일었다 싶은 곳에서

유연하게 잘 빠져나간다. 물 위에서 기름을 바른 듯 매끄럽게 스쳐가는 날렵한 배들. 

시장을 지나면 많이 넓혀진 수로를 따라 조금은 큰 덩치의 가옥들이 늘어선 게 보인다. 중간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식당도 보이긴 하지만, 대체로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가정집인 듯 하다. 집앞에 '주차'되어 있던 배를 타고 막

어디론가 향하는 아주머니의 노젓는 손길이 마치 태극권을 시전하는 고수의 그것같다.
 
이 '누르초로께한' 물은 그대로 이 사람들의 생활용수가 되나 보다. 한 곳에서는 막 잠에서 깬듯한 아저씨가 나와

어푸어푸 세수를 하기도 하고, 그 반대편에선 저렇게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또 잔망스러운 아이들은 우르르

물에 뛰어들어 지들끼리 노느라 바쁘다. 이 물로 밥을 해먹는 거 같기도 한데..괜찮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느 포인트엔가 가면 저렇게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마구 용솟음치며 먹이감을 지들끼리 겨루는 장면이

보인다. 어쩌면 의외로 이 물은 꽤나 깨끗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난 저 '육교'는 배를 타고 내가 지나는 이 곳이 말하자면 차도임을 상기시켜주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어느쪽이든 '뭍'으로 '상륙'해서 저 육교 위를 걸어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그냥 패스.

지나다 보면 여긴 제법 정리를 깔끔하게 해 놓는구나 싶은 구간도 있다. 그런 구간 옆에는 예외없이 뭔가 좀

그럴듯하게 지어진 큰 건물이 서있기 마련이었지만, 어쨌든 마구 헝클어진 듯한 정글의 그 느낌도 좋지만 이렇게

잘 가꾸어진 느낌의 '갓길'도 맘에 든다.

이 길을 이용하는 건 배들만이 아니었다. 불쑥불쑥 주위에서 출몰하는 알 수없는 괴생물체들. 저게 도마뱀인지

뱀인지 아님 수달인지, 네 발로 열심히 헤엄치는 것 같기도 하고 몸통을 요리조리 비틀며 S자로 헤엄치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빨라서 제대로 포착하는 걸 번번이 실패했지만 그나마 나은 사진 한장.

배를 출출하게 만드는 데에는 때론 펄펄 끓어오르는 김과 구수한 냄새면 충분하다. 태국식 쌀국수를 팔고 있던

시장 어귀의 노점. 몇척의 배들이 멈춰서서는 국수그릇을 넘겨받으며 맛나게 먹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한국에도 쌀국수 전문점들이 들어온 지 꽤나 오래지만 대부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맛이 변했다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맛봤던 쌀국수는, 뭐랄까..마치 우리네 천원짜리 잔칫국수같은? 그런 소박함과 정겨움이 묻어났던 것..

같은, 시간이 지나 윤색된 기억으론 그렇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