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강하지는 않아도 제 식솔에 대한 책임은 아는 사람, 아버지..라는 게 소설의 메시지인 듯 하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지나치게 호들갑스런 묘사도 아니었고, 어떻게든 눈물을 뽑아내겠다는 의욕이 과해보이는

스토리도 아니었다.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특정 상황을 묘사하는 몇몇 표현이 생생하고 신선한 게 눈에 띄긴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말투는

담백하고 건조하기까지 하다. 그건 아버지에 대한 이 소설을 '아버지'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가져가고 싶어서였을까.

대개 아버지의 이미지란 건 과묵하고, '소처럼 묵묵히' 일만 하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그런 거니까.


그래서일 거다. 난 이 소설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새삼 깨닫게 되지도 않았으며, 뭔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 라는 커다란 심적 동요가 오지도 않았다. 그저 조그마한 소득이라면, '아버지'들은

이렇게 생각하나 보군, 정도 감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랄까. 감정의 기복을 격하게 탄주하지 않고 덤덤하게 가는 건

좋은데, 그러다 보니까 감정이입도 별로 안 되고 밋밋하고 지루하다. 재미가 없다.


어허, 엄숙하고도 거룩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밋밋하고 지루하다고 해서야 되겠는고, 하고 누군가

꾸지람할지 몰라도, 솔직히 이 소설에서 화자 엄세웅의 병든 형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그나마 남아있던 한 줌의

설득력조차 사라질 뻔 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던 가족들 먹여살려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불도저처럼

살아가는 아버지, 주변의 평판은 내팽개친 채 편집적으로 소지품정리에 매달린다는 아버지, 죽고 난 후의 일을

추스리려 발신번호만 몇차례씩 남기면서도 살아있을 때의 일은 돌보지 않는 아버지.


굳이 난 그런 아버지에 반댈세, 라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그런 아버지도 있을 수 있을 테고, 당신의 삶이니까.

또 그게 아버지의 '사랑방식'이라면야 더 할 말 없다. 그치만 난 그들의 '책임'이란 게 단순히 식구들 밥 안 굶기는 걸로

끝난다고 생각지도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것, '지금 여기'서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아버지'들의 사랑 표현방식이나, 이 책이나, 똑같은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 같다. 표현을 안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려니 '밥먹여 살리는 것'으로 책임을 다한다는 착각에 빠지고 만다. 게다가 함께 한 스토리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감정이입이나 공감도 어렵다. 차라리 IMF 직후엔가 나왔던, 주절주절대는 신파조의 '아버지'가 나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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