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잠이 안 오고 마냥 종잡을 수 없는 얄따꾸레한 생각들만 치밀어오르기로 걍 이부자리를 걷고

모처럼 책장을 디볐다. 손창섭..내가 그간 즐겨 읽던 작가이면서도 여태 이름에 주의하지 않았더랬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약간씩은 일그러지고, 그로테스크한 배경과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이질적인-

그야말로 어불성설격인-인물이 등장하곤 한다. '인간동물원'이라거나 '잉여인간', 아님 '비오는날'..


무엇보다 그의 자전적인 소설인 '신의 희작'에서 드러나는 냉소와 비정상성은 해방 전후를 기해 한국

문학계가 잡아낸 온갖 이물감과 혼란, 방황의 극치랄까, 이보다 더 극적으로, 혹은 '선정적으로' 드러낸

작가는 없는 거 같다. 그의 묘한 문체와 행간에서 배어나오는 짙은 냉소, 자포자기식의 쾌감. 그러한 말투로

읊어내는 비현실적 사건과 배경은 그 자체로 음울함을 잔뜩 독가스처럼 품고 있다.


푸닥거리하듯 그의 자멸적이고 자학적이랄만한 작품들을 쏟아내고 마지막으로는 '신의희작'에서 그 작품들에

대한 열쇠로 보여질만한 자기고백을 하면서 그는 대략 진정된 거 같다. 소위 문학을 통한 승화, 구원이랄 만한.

그담엔 더이상 쓸 게 없었을까..더이상 별다른 두드러진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68년인가 일본으로 아예

귀화해버렸다고 하더군. 하긴, 그가 '신의희작'에서 연기한 인물은 갈데까지 간셈, 막장중의 막장이었다.


그 탓일까, 내 생각엔 손창섭이 그다지 평가받지 못한 게 아닐까 싶은데 말이지. 이른바 한국인의 특성이라는
 
애이불비, 혹은 아무리 힘든 고난과 역경에도 한줄기 빛무리를 (무책임하게) 던져놓고 마는 식의 통속적이고
 
도식적인 구도가 아닌거다. 왠지 그래야할 듯한 도덕적인 압박감이나 (계몽이건 격려건) 무책임한 낙관으로

회귀하고 마는 잘 짜여진, 닫힌, 완결된, 기승전결의 작품이 아닌 거다. 이게 내 생각엔 손창섭과 김기덕, 그런 류의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공통점인거 같다는 생각이 불끈 드는데, 그저 현실의 어느 한 부분을 '따왔을 뿐'인거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걍 하나의 주제의식이나 의식적인 부르짖음을 위해 현실을 보기좋게 매무새지어 마지막에

마침표로 마치는 것이 아닌...뭐랄까, 그저 작품 앞뒤에 말줄임표로 그 연속성과 함축성을 열어놓는달까.

"..." 이런 식으로나 표현할 수 있을까.


해서, 그는 어설픈 냉소나 겉멋든 자포자기가 아니라, 갈데까지간 냉소와 그로테스크함을 보여준다. 이쯤이면 되겠지,
 
이쯤에서 반등해서 밝은곳으로 상승해야지, 하는 게 아니라 도무지 그 음울함과 비정상성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그저 맷돌에 갈리듯, 한없이 침잠할 뿐.



그러고 보니 하루끼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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