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들이 자꾸만 빗겨나간다.

내가 정말 하고 싶던 말, 내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 그런 말들이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바로 그순간 변질되고 있다.

무슨 말을 해도 이건 아닌데, 하는 그런 느낌. 내가 말하려던 건 이게 아닌데, 내가 전달하고 싶던 건 이런 게 아닌데.

마치 그런 식이다. 노래방에서 내가 부르는 노래는 거개가 사랑 타령인데, 난 그 노래를 부르지만 사랑이나 이별같은

문제로 감정이입한 건 아닌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노래 가사를 듣고 생각한다, 무슨 일있나.


아...아니다. 또다시 빗겨나간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혹은 맞기도 하다. 아슬아슬하게, 그렇지만

번번이, 늘 그랬듯 빗겨맞는다. 아주 잠깐 표적에 명중했을지 몰라도, 주륵, 흘러내린다.


#2. 구체적인 팩트들..그까이꺼 어차피 빗겨나갈 테지만.

5월 10일에는 자격증 시험이 있다.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는데 오로지 1배속에 스크립트도 따로 없다. 중간중간 문제를

풀지 않으면 강의 이수로 인식되지 않아 영 성가시고 번거롭다. 10월에도 또 다른 시험을 보겠다고 이런저런 교재들은

사다 놨는데, 우선 5월초의 자격증 시험때문에 전부 스톱 중이다. 당장 열흘 남은 시험때문에 밀린 책들과 빌려놓고

못 보고 있는 디비디들, 그렇다고 공부도 안하면서 스트레스만 받고 있다. 그때문인지, 아니면-가치평가는 하지 맙시다,

지금은 팩트를 주워섬기는 중이라구-어쨌든, 요새는 시사IN도 별로 꼼꼼히 안 보고 있다. 조만간 2차 독자위원회가

있을 텐데, 시사이슈들에 무관심해지고 있다.(물론 독자위원회가 시사이슈를 갖고 난상토론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회사일로 말하자면, 5월 6일에는 아랍대사들 모셔놓고 오찬행사가 있고, 25-29일쯤엔 알제리 경협 T/F 합동회의 출장이

있을지 모른다. 6월 9-10일에는 최근의 핫 트렌드라는 'Green Technology, IT, 한-뉴FTA'문제를 다루는 한-뉴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해야 하고, 7-13일은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 오만까지 거치는 민관합동 무역사절단 파견 예정.

뭐...WEF 동아시아섹션 포럼도 6월중에 있다지만 그에 대한 내 역할은 소소하니 모르겠고, 5월 말에 카타르 왕세자가

온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도 미정이니 일단은 모르겠다. 나 혼자 하는 일도 아니고, 유능한 팀원분들이 잘 하시겠지만,

가히 행사의 쓰나미가 불어닥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팩트. 더블헤드 행사들.

그러고 보면 돼지독감 때문에 기업들 대응현황 조사하느라 뺑이친 것도 팩트다.


매일 1시간반씩 걸리며-아침에 지하철 칸과 칸사이 자바라에 앉아 X을 누시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던-

악몽같은 출퇴근길은 오늘로 끝. 퇴근길에 또다시 장렬히 기절하는 바람에 갈아타야할 곳에서 세정거장이나 지나치고

말았지만, 이제 회사에서 전철 두정거장 거리도 안 되는 곳으로 이사할 예정이니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준다. 요새,

매일 늦게 들어오고 피곤했잖아. 어제는 노래방에서 'insomnia'도 불렀다구.(고해는 부르지 않았다. 여자들이 남자가

고해 부르는 걸 무지 싫어하는 걸 알고 있다. 대신, 넥스트의 Here, I stand for you를 불렀다.) 이전에 한번은, 술에

개쩔어서는 삼성에서 왼쪽으로 신촌, 신촌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배, 방배에서 다시 왼쪽으로 눈부릅뜨고 정신차려서

영등포구청에서 무사히 2호선을 탈출하는데 성공, 5호선으로 갈아타고 안심하며 종점까지 달렸던 적이 있다. 

두시간이 훌쩍 넘었던 멀고도 험했던 퇴근길.


건조한 팩트로만 말하자면, 걸을 때 늘 가로로 굵게 잡혔던 양복바지의 주름들이 눈에 띄게 엷어졌다. 작년 그럭저럭

방어에 성공했던 체형이 다소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다. 운동을 하려 했지만 워낙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치우고,

그저 이사한 후에 회사 걸어서 출퇴근하리라는 야무진 계획에 모든 걸 걸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날씨. 더웠다가

추웠다가. 추웠다가 더웠다가. 어릴적 전래동화에서였던가, 화로 위에 올라진 생선이 화끈화끈 더웠다가, 하얀 소금을

눈처럼 솔솔 뿌려주며 부쳐주는 부챗바람에 추웠다가 했다던가. 요새 딱 그 생선꼴이다. 날씨의 기복에 기분도 춤을 춘다.

어제-그니까 목요일-점심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3. 어차피 빗겨나갈 꺼 마구 난사하는 '진단'들.
 
일하기 싫은 병에 걸렸다. 어쩌면 더 나쁘게도, 시간이 남으면 맘이 흔들리는 합병증까지 발발한 거다. 아니면 얇게

바삭한 파이의 그 무수한 층층이들처럼, 그렇게 섬세하고도 미묘한 감정이 다친 게다. 말했듯, 어차피 정곡을 찌르는

말이란 불가능하니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는 거다. 그러고 보면 외로움에 지쳐 사람을 찾기도 전에 사랑을 말했던가.

그러고 보면 유난히도 외로움에 쥐약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동시에 혼자서도 음식점 잘 가고 혼자서도 잘 노는 내가

떠오른다. 또 빗겨나간다.)


그렇게 남는 시간도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여지없이 잔뜩 봄바람꽃바람에 흔들렸던 게 4월이다. 방금까지의

현재를 과거라 이름붙혀 정육점 아주머니 삼겹살 끊어내듯 옆구리를 싹둑 버혀내고는, 쓰레기통에 구겨넣고 뚜껑을 닫아

청테이프로 둘둘 감았다. 비닐로 딴딴하게 랩핑까지 하고, 발로 뻥 걷어차서 멀찌감치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내가 찾기

전까지는 거기에 가만있어. 움직이지마. 그게 4월이다.


INSOMNIA. 잠들기가 어렵다. 요새 운동을 안 해서 덜 피곤해서 그렇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공부한답시고 프린트물 몇장 보다가 에라, 하는 마음으로 숙면을 취해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며, 집에서 술마시는 행위를

이제 그만두기로 했기 때문이고, 또한 그저 습관이 되어버리기도 했으며, 살짝 배가 고파지면서 눈이 더욱 말똥거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듣고 있는 노래를 차마 중간에 싹둑 끊어버릴 수 없어 한없이 OFF의 시간이 지연되고 있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수면'이란 데 들어가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뿌리깊은 편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근데 그나마 덜 빗나간 진단은 그거 아닐까 싶다. 잠이나 쳐자라는.

자야겠다. '적벽대전2'에서 공명이 화살 1만촉을 조조로부터 빌려오던 씬에서 나왔던 무수한 화살비. 그것들이 전부

목표에 명중하는데 실패했는데, 가볍게 화살 하나가 공명의 옷깃을 스치우는 정도의 센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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