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의 차이나타운 초입, 싱가폴의 상징인 멀라이온상이 원색으로 치장된 채 우뚝 서 있다. 


어느 나라나 차이나타운은 비슷한 풍경에 상품들이면서도 꼭 한번은 찾아보게 되는 매력이 있는 듯. 안 가면 아쉬운.


특히나 싱가폴의 차이나타운에는 무려 4-5층 건물 높이에 육박하는 대형 사찰이 있다. 부처의 치아 일부를 


4층에 모시고 있어 용아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절 앞으로 싸구려 잡화들이 늘어섰다.


네발달린 의자들 발치에서 네발달린 고양이 한마리가 털을 고르는 중.


차이나타운의 먹잣골이랄까, 과거 중국인 노동자의 모습이 굽어보는 그곳에는 온통 양쪽으로 식당들이 즐비하다.


어느 한 골목을 꺽으니 머리를 이쁘게 염색하신 분이 열심히 전각작업중.


그리고 용아사 입장~


향연기를 흠뻑 맡은 용의 눈빛이 개개 풀려버렸다. 


생각보다 신식의 새것같은 느낌인 사찰, 중국이 으레 그렇듯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실내. 




그렇지만 정작 제대로 금칠이 된 건 부처님의 치아 일부를 모시고 있는 4층. 엘레베이터를 타고 자유롭게 올라가면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 나타난다. 금을 사오백 킬로그램이나 아낌없이 써서 만들었다는 좌대가 멀찍이 있고


유리로 칸막이가 쳐져있어 그 한가운데 모셔져 있다는 치아는 보이지도 않는다.


소원을 빌면서 불을 밝혀둔 유리잔 속 초들. 


4층에서 혹시 더 올라가면 뭐가 나올까 해서 올라가니 옥상 정원이 나타난다. 강화도 전등사에 가면 볼 수 있는,


경전이 새겨진 동그란 통 같은 거. 손잡이를 잡고 이걸 한바퀴 돌리면 경전을 일독하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나.



절 바깥으로 풍경이 이쁘게 보이는 옥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잘 꾸며둔 정원이어서 한번 올라갈 만도.


 

춘천 인근에 있는 오봉산, 야트막하니 산책삼아 걷기도 좋고 개울을 따라 빽빽한 나무그늘도 좋았던 곳이다.

 

오봉산 청평사의 독특한 발코니 형태의 창도 사진찍기에 꽤나 좋은 포인트였던 것 같고, 짧은 가을에 덜 익은 단풍도 꽤 이뻤던 곳.

 

 

 

 

 

 

 

 

 

 

 

 

 

 

 

 

 

 

 

 

 

 

 

 

 

 

 

 

 

 

 

 

 

 

 

 

 

 

 

봉은사에서 잡도리하는 기독교인들의 동영상이 빠르게 전파되더니 급기야 대구 동화사와 미얀마의

사찰에서까지 이뤄졌던 그들의 '땅밟기' 이벤트 동영상도 발굴되어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사실 그런 동영상은

몰상식하고 추잡한 행동을 한 기독교인들 본인들이 직접 찍어서 꽤나 오래전 유투브에 자랑스레 올려놓은

것들이라, 지금의 상황은 가히 기독교식 '땅밟기' 예배 퍼포먼스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처음에 봉은사 땅밟기 영상이 돈다는 이야기를 트위터로 접했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한국 기독교가 그만큼

극성스럽고 광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고 있으니 그런 짓을 한다는 게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던 거다.

이미 아랍국가에 가서 봉사활동을 빙자해 선교를 하다가 '영광스런 순교'를 당하고, 뉴욕의 한복판에서도

영어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는 그들 아닌가. 서울의 야경을 살풍경한 공동묘지처럼

만들어버린 그들의 시뻘건 십자가라거나 전철이나 공공장소를 막론하고 시끄럽게 협박해대는 것 역시 공기처럼

익숙해져 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봉은사 땅밟기' 영상이 나오고, '동화사 땅밟기' 영상이 나오고, 그리고 '미얀마 땅밟기'

영상까지 연달아 나오고 있지만 기독교계에서는 누구 하나 제대로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다. 한기총이니 뭐니

나름의 조직도 있는데다가, 세계에서 몇번째로 크다며 으시대는 거대한 교회들이 몇개씩이나 있음에도 그들은

아무 말도 없다. '수장'들도 그렇지만 그 밑의 일반 평신도, 일반 기독교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동영상이나

관련 기사에 다는 댓글들의 패턴은 일정하다. 땡중이니 사탄이니 저주와 악담이 여전한 가운데, "일부

기독교인의 행동일 뿐"이랜다.


왜 '남탓'만 하는 기독교도들만 보일까. 이게 정말 '일부 기독교인'만의 문제인 걸까. 한국의 천박하고 극성스런

기독교의 여러 문제들이 어제 오늘 지적된 일도 아니거니와, 그 중에서도 다른 종교를 매도하고 저주하는 건

정말이지 오래고 오랜 문제인 거다. 왜 그들은 한결같이 건방지고 독선적인 건지, 그리고 왜 그런 부분들이 전혀

고쳐지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혐오스러워지는지 기독교인 전체가 진정으로 반성해야 할 문제 아니냐는 거다.

그들의 말대로 '일부 기독교인'들만이 열심을 내어 봉은사를 가고 동화사를 가고 심지어 미얀마까지 가서

땅밟기 예배 퍼포먼스를 벌인 건 맞다고 치더라도, 그러한 또라이짓에 대한 그들의 속내는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하나님은 참 기뻐하실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선 기뻐하지 말아야지, 라거나 저들은 비록

사회적으로 돌팔매를 맞을지언정 하늘에서 영생과 금은보화로 보상받겠지, 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문제는 둘 중 하나다. 지금 그들이 가진 종교 교리가 (애초엔 어땠던간에) 굉장히 폭력적이고 독선적이라는 것,

혹은 그들 기독교인들이 기득권 종교, 주류 종교로서 기독교의 후광을 업고 경거망동하고 있다는 것. 사실

두가지 모두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 교리가 원래 그렇게 지랄맞은 거라고 믿고

싶진 않다. 그들이 만들어낸 신이 원래 그렇게 욕심이 많고 질투심이 강한 밴댕이 속알딱지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교리 논쟁으로 넘어가봐야 이는 거의 '세계관'이나 '신념'간의 충돌일 터여서 그냥 속으로 생각하고

말겠다. 원래 종교가 그런 거니까. 그런 차원에선 기독교도들이 '땅밟기' 영상을 보면서 속으로 웃는대도

할 말 없다.


그렇지만 남은 하나가 문제다. 기독교인들이 이번 사건을 '일부'의 일로 치부하고 남탓만 하며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될 이유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주류이자 기득권 세력을 이루는 기독교 집단의 무책임함, 혹은 무신경함을

위장한 악마적인 비열함. 대통령을 해먹는 왕후장상의 씨앗이던 재래시장에서 나물을 파는 서민이건 기독교의

십자가 아래에서 그들은 어쨌던 종교적 차원에서는 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무지하게도 자신들의

쪽수를 믿고 함부로 나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서울을 그들의 신에게 봉헌한다느니 따위의 이야기가 위에서

나오는가 하면 우리 동네 사찰이 무너지라고 기도하고 하나님 믿어야 천국간다고 (아니면 지옥간다고) 협박을

일삼는 거다. 만약에 다른 종교가 그랬다면 어땠을까. 아니, 다른 종교가 그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다는 게

가당키나 했을까.


기독교인 한명 한명이 사과를 해야 할 일이다. 기독교인 한명 한명이 나의 신 만큼이나 당신의 신도 존중한다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은 타 종교와 타 종교인들을 비난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고 선언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당신이 기독교인의 딱지를 달고 그들의 쪽수에 더하기 일을 해줬기 때문에

그 '일부'의 덜 떨어진 기독교 광신도들이 쪽수를 믿고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타 종교,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업신여기는 거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이토록 유치찬란하고 뻔뻔하게 나올 수 있는 건 그들이

쪽수가 많아서, 라는 지독히 유치찬란하고 단순한 이유밖에는 없어 보인다. 차라리 그 이유라고 하는 게 다행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기독교의 교리가 근본적으로 다른 종교인들과 상생하기에 불가능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으니.



p.s. 사찰이 무너지도록 기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여는 사람들, 그런 행사에 동영상 축사를 보내는 정치인.

그들이 다함께 나눠 먹어야 할 비판과 욕설이 특정 정치인에게 집중되는 건 차라리 안쓰럽기도 한 것 같다.

어디나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제일 얄미운 법이다.



타이페이 시내의 남서쪽, 화시제야시장이 바로 인접해 있는 시끄럽고 번잡한 거리에 범상찮은 누각을 과시하는

절이 하나 있다. 서울로 비기자면, 삼성동 봉은사..라기보다는 도심의 조계종이나 실상사쯤으로 비기는 게

맞을래나. 좀더 번잡하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콕 박혀 있는 그런 느낌.

타이페이 시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절, 룽산쓰(龍山寺), 용산사다. 근 삼백년 가까이 된 절인데 벌써 몇차례

천재지변이니 전란에 시달려 온 지라 지금의 건물은 2차 세계대전 후에 재건된 거라고 한다. 근데 이 때깔이나

분위기는 거의 이 도시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버티고 있었던 듯한 터줏대감의 포스.

밖에서는 좀 한적하고 외따로 툭 동떨어진 느낌의 사찰이었는데, 안에 들어가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이

바글바글, 단위면적당 인구밀도는 룽산쓰 주변에 비해 꽤나 높겠다.

밑에도 온통 공양물들로 가득하다. 큰 불이라도 난 양 사방에서 태우는 향에서 퍼진 연기는 가실 줄을 모르고,

사방에서 무규칙하게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람 사이에서 순간 길을 잃은 느낌마저 들었다.

사람들은 공양물을 바치고 향을 흔들며 손을 모았다. 조그마한 꼬맹이든, 머리하얀 할머니든, 자력으로 안 되는

일이 세상에는 많은 거다. 어떨 때는 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펄펄 피어오르는 향로 속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푹푹 찌는 지옥에 와 있는 느낌도 살풋.

본당에 안치된 영험하다는 관음보살 외에도 모시고 있는 신들이 많다. 가이드북에 따르자면, 보현보살, 마조,

관제, 삼신할머니 같은 신불들. 제각기의 목적에 맞는 신을 찾아 '성적 올려달라고', '사랑을 이뤄달라고', '돈벌게

해달라고', 그런 것 쯤일까. 문득 든 생각인데, 요새는 '오래 살게 해주세요'는 별로 신에게 빌 꺼리가 못 되는 거

같다. 보통 드라마보면 의사 소매춤 잡고 비는 거 같던데.

한 바퀴 사원을 돌아보니 온몸이 온통 땀투성이, 게다가 살짝 훈제된 햄처럼 향내랄까 탄내가 시즈닝되어버렸다.

아쉬웠던 점은, 뭐 워낙 도심 복판에 있는 절이라 그렇겠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쉴 만한 공간이 없다는 점. 사실

절이 쉬는 데야 아니라지만, 그래도 한국의 절들처럼 여유로운 부지를 가지고 숨통이 트이는 여지가 없어서.

절 자체의 생김도 그렇다. 단정한 빛깔의 기둥이 열짓고 있는 한국의 담백한 절들과는 영 딴판으로 기둥 하나씩

붙잡고 봉춤 중인 우리의 용님. 화려하고 이뿌지만 폭염 속에서 잠시 앉아 땀 식힐 곳이 넘 아쉬웠다는.

돌아나오는 길, 계속 뒤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게 되는 건 뭔가 계속 아쉬움이 남고 좀더 돌아보고 싶은

마음때문인 거다. 좀만 더 햇살이 직사하지 않는 시간대에만 왔어도 좀더 멋지게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좀만 더 기다려 해가 기울면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쩌면 정말 어딘가의 모습을

온전히 발견하고 캐내려면, 매 계절, 그리고 하루의 아침점심저녁쯤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줄 여유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게 아마 확실할 거다.

뭔가 복잡하고 정교해 보이는 저 처마의 생김생김은, 손을 뻗어 한번 살살 쓸어보고 싶게 만든다. 나무를 깍아

만들 걸까 아니면 뭔가 틀에 찍어낸 걸까.

룽산쓰에서 벗어나 조금 걷다가 길 건너편에서 마주친 스쿠터 한 대, 갈빛 옷을 저며입고 계신 스님 한분이

운전 중이셨다. 저 분은 룽산쓰의 봄여름가을겨울, 아침점심저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다 알고 있겠지.

살짝 부러워졌다. 사람들이 이토록 꽉꽉 미어지는 곳이 정작 숨기고 있는 표정을 알고 있을 스쿠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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