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이곳에 존재했음을 실감하는 데에는 East Side Gallery과 The Wall Museum을 무엇보다 추천하고 싶지만,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는 구역을 보려면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을 둘러보는 것도 추천함직 하다.


앙상하고 얄포름한 콘크리트 장벽의 골간이 되었던 철근만 뾰족하니 남아있는 그 곳에는 과거 이 장벽을 넘기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순간들이 주변 건물 벽화로 남아있기도 하다.


그리고 인근의 불타버린 성당 자리에 새롭게 꾸며진 자연친화적인 공간에서는 이 곳에서 흩뿌려진 피와 희생에 대해 묵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이렇게 미니멀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회상하거나 추억하는 듯 했다.



어느덧 30년 가까이 지난 과거의 역사, 뜯어낸 장벽을 둘러싼 울창한 초록빛 식물들의 생명력이 왕성하다.


메모리얼에 들어가면 실제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며 사람들의 이탈과 움직임을 막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내부까지 둘러보진 못했고 그저 바깥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만족.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작지 않은 강, 슈프레(Spree) 강변으로는 과거 독일 분단시기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독일이 동서로 나뉘고, 동독 내에 소재하던 수도 베를린 역시 동서로 나뉘었던 그 시절, 체제 경쟁이 심화하면서 동독은 서베를린의 구획을 온통 장벽으로 둘러싸버리기로 한 것. 그게 베를린 장벽의 초기 모습이었다. 물론 '클래시 오브 클랜'같은 게임을 보면 알 수 있듯 장벽이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내구성도 단단해지고 강화되는 것처럼, 이 장벽도 점점 최신의 기술적 진보를 더해 걷잡을 수 없이 삼엄해졌고.

20여 킬로미터에 이르던 그 장벽이 일부 구간, 약 2킬로미터 정도로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곳 East Side Gallery다. 말그대로 거리의 갤러리, 장벽을 미술관 전시품처럼 보전해 놓은 곳.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한번 따라가보기로 했는데, 상상보다 충격적이었다. 장벽 자체는 이렇게 얇고 허름했구나 싶어서.


보전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듯, 여기 보이는 그래피티들은 전부다 최근의 것들. 그러니까 '훼손'이랄 수 있겠다.


1961년 이래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1989년까지 장벽을 넘으려다 숨진 사람들의 공식적인 숫자는 163명이라고 한다. 그 숫자만큼 해당 년도에 표기해 둔 이 작품은, 그렇지만 공식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탈주 시도자와 은폐된 죽음들을 놓치고 있을 거다.


누군가 가져다둔 화환. 아마도 여전히 그 상흔을 생생히 갖고 있는 누군가겠지.


이렇게 장벽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어둔 것처럼 묘사해둔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작은 구멍 하나로부터 장벽이 무너지리라는 기대 혹은 다짐.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끝나는 지점에 '장벽 박물관(The Wall Museum)'이 있다는 표지가 곳곳의 아스팔트 바닥에.


그렇지만, 동방의 여전한 분단국가에서 온 이가 새삼 감회에 젖기엔 이미 독일 통일은 역사가 되고 말았다. 이제 통일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마구 그려댄 그래피티로 장벽은 훼손되고, 그 코앞 전봇대나 가로등에는 온통 난삽한 광고 뿐이다. 이미 27년전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이미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


장벽이 던졌던 문제의식, 혹은 장벽을 남기며 사람들이 남기고 싶었을 자유라느니 정의라느니, 그런 가치들은 이제 얼마나 싱싱하게 남아있을까. 아니면 이들은 이미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젖히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느라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부러운 일이다.


장벽 너머 보이는 슈프레강, 이 작은 강은 대체로 동독의 영역에 속한 채 군사 대치중이었기 때문에 강에 아이가 빠졌을 때 모두가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칫 상대편의 총격을 입을까 두려웠기 때문인데, 이후 인도적인 조치를 취할 때에는 협조하도록 원칙을 세웠다고.


자꾸 한반도의 상황과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5차 핵실험이 벌어지고, 남북한 양측의 '최고존엄'이 전쟁을 부추기는 언어를 주고 받는 상황이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 동독과 구소련 정치지도자 간의 유착관계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버전으로 치면, 글쎄, 두 명은 누구여야 하려나.


The Wall Museum 내부, 생각보다 전시물도 많고, 장벽이 생긴 이래 철거되기까지의 역사에 대한 시청각 자료가 엄청 많아서 둘러보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사진은 처음 장벽을 쌓아올릴 때 쓰였던 허름하고 기초적인 장비들.


그리고 최초의 기초적인 망루. 슈프레강 넘어 보이는 건 서베를린.


다리 중간도 이렇게 엉성하고 속이 빈 벽돌블럭으로 담을 쌓고.


그러다가 1989년, 외부 세력의 개입을 적절히 차단해 가면서, 또 적절히 활용해 가면서 서독과 동독은 결국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맞이한다. 박물관 내 영상 자료들을 따라가다보면 그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질 지경이다.


부럽기도 하고, 천운이었다 싶기도 하고, 또 한국과는 굉장히 상황이 달랐다 싶기도 하고. 일단 베를린이 엄청 어색하게 동독 한복판에 박혀 있었던 데다가 동독과 서독간에 전쟁 같은 대규모 유혈사태도 없었으니. 한국은, 그리고 북한은 독일과 같이 분단 체제를 역사로 되돌릴 수 있을까.




초현실 환타지 '풍산개'의 처음이자 끝은 바로 그 전율돋는 메타포 아니었을까. 오랜 세월 남북의 무력대치가

부추겨지고 점증하는 상황에 대한 그 잔인하도록 적확한 묘파라니. 자그마한 방에 갇힌 사람들의 손에

권총 한 자루가 쥐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소총, 수류탄에 이르는. 누군가 계속해서 살상무기를 공급하고

남과 북은 각자의 위계에 따라 '대가리'에 충성을 바치며 이빨을 드러내고, 그 와중에 전부 공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런 미친 상황에 끼어있음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여태 한반도의 분단상황이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화되어 왔다지만, 대부분 남측의 입장 혹은 휴머니즘 혹은 스펙타클에 치중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아니다. 이미 여러번 지적된 것처럼 남자 주인공(윤계상)이 아무런 말도 내뱉지않고

소속이 모호한 정체성을 견지하는 건, 전혀 남이나 북 어느 한편에 기울지 않은 채 그 분단상황을 그대로

보여줄 시각이 필요했기 때문인 거 같다. 영화는, 분단의 제약을 넘어 분단상황을 그려낸다.


그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여느 영화들처럼 인물이 중심이 되고 이야기가 흘러가는 그런 드라마가

아니라, '풍산개' 이 영화는 하나의 상황에 대한 스틸컷을 보는 것만 같다. 초현실 환타지라고 굳이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장르를 앞세운 이유도, 그 상황을 최대한 설득력있게 공감가도록 제시하기

위한 장치로 다른 모든 것들이 쓰여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규리나 다른 등장인물들의 어색하고 비현실적인

연기와 좀체 감정이입되지 않는 상황, 게다가 장대높이로 휴전선을 넘는다는 설정까지.


그래서, 한국 사람들,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 처한 분단상황이란 거대한 질곡을 시각화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평소에 워낙 무뎌져서 좀체 의식하지 못했던 그

불편하고 불안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실감나도록 환기하는 것. 그게 이 영화의 최대 미덕이 아닐까 싶다.

어느 한편에 쏠리지도 이념적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채, 신적인 관점에서 가감없이 그 광기의 표출을

바라보도록 해주는 참 드문 영화인 거 같다. (역시 김기덕 그리고 그의 후예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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