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으로 그의 소설에는 스윙 리듬같은 늘어짐이랄까,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요즘 세상에선 다소 밋밋한 정도의

재기발랄함과 도발적인 호흡이 느껴진다. 뭔가 당시에는 관습이나 장르 따위 모종의 경계를 희롱하였을 게 틀림없는

그의 참신한 시도나 발상으로 말미암아 그의 글들은 재즈 시대라 불리던 당시엔 매우 흥미롭고 자극적인

소설이었을지 모르지만, 이미 상상력과 표현력이 극한까지 치닫는 요즘에는 다소 퀘퀘한 맛이 외려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살짝 고리타분한 묘사라거나 글투는 요즈음의 소설과는 전혀 달라서 신선한 느낌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매력적인 오프닝. 주치의는 두 손을 비비다가 버럭 짜증을 내고, 간호사는 복도에서 달아나려던 거센 욕구를 가까스로

억누르지만 새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며, 쨍그랑 덩! 쨍그랑! 대야는 요란스럽게도 일층 바닥까지 굴러떨어진다.

"댁이 내 아버진가?" 경어법이 존재하는 한국어의 맛을 절묘하게 살려낸 한마디 아닐까. 칠십세 노인에서부터 시작한

삶이 거꾸로 흘러 갓난애기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상상력이 반짝거린다.


"그녀는 자기 틀 안에 지나치게 안착해 버렸다. 너무 평온하고 너무 만족하고 너무 흥분을 모르고 취향도 너무

점잖았다." 어린이가 되어가는 어른이 보기엔,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가며 파란 물감같던 눈빛을 잃고 싸구려 도자기

같은 색을 띄게 되기 마련이란다. 다들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그 도저한 흐름을 거스르는 자가 보고 느끼는 걸 통해

나이 먹음-인생-삶을 낯설게 보게 된다.


'젤리빈'

밤새도록 생각하여 마음속에 세워졌을 거대한 결심, 수치심과 패배감의 은사를 입은 그 단단한 결심이었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내뱉기 전에는 황금과도 같았을 다짐이, 입밖에 뱉어지고 조건과 마주하는 순간 똥으로 변한다. 그건

피츠제럴드의 말마따나 일종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거의 화학적인 변화'. 갈지자로 분탕질치는 누군가의 행위 저간에는

그토록 심오한 심적 갈등과 고뇌, 영겁과도 같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던 게다.


'낙타 엉덩이'

그토록 매력적이고 앙칼지지만 맘여린 아가씨라면, 낙타 앞몸뚱이가 아닌 엉덩이 부위를 담당해서라도 들이대 보겠다.

특히 와닿았던 표현. "코르크가 (아마도 : 그보다 더 딱딱하게 메말라버린) 내 심장을 본다면 치욕에 못 이겨 저절로

떨어져 나갈 테니." 아..이런 표현을 자연스레 구사하던 사람들이 살던 시대란. 무도회와 고풍스런 자동차. 실크햇과

평등하지 않은 인간. 살아보지도 못한 시대에 대한 향수.


'도자기와 분홍'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일종의 꽁트랄까.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며 무대 위 연극을 설명해주는 연사가 있고, 무대 위엔

복숭아빛 처자들이 있다. 정확히는 '연분홍색을 띤 흰색'의 오랜 옷을 입고 있는 도자기 욕조 속 줄리. 왠지 방정환선생이

쓴 '만년샤쓰'던가, 그런 소설의 김창남이 떠올랐지만, 김창남은 여유로움보다는 오기와 자존감이 강조된 캐릭터.

그에 비해 줄리의 재치있는 입담과 센스넘치는 받아침을 보건대, 그녀는 호기롭고 당찬 신여성.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그저 안타까울 뿐. 왜 그녀는 멍청하게도 가난을 예견하며 설레하는 건지. 가난을 모르던 그녀들의 낭만이란, 이제야

비로소 밤하늘 별들을 보곤 다이아몬드와 직통으로 연결짓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키스미키스민, '키스민'이라는

센스넘치는 이름이라니 조금은 봐줄 수도 있지만,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를 두고 '다이아몬드엔 좀 질렸어'

따위로 말하다니.


작가가 의도한 게 이토록 가당치도 않은 거대한 부를 실감나도록 상상케 만들어 허기를 느끼고 가상이나마 채우도록 한

거였다면, 그리고 그게 성공했다면, 왜 마지막엔 모든 걸 한낱 꿈으로 만들어 버린 거냐. 되려 허기만 심해지고 말아서,

스스로의 낭만과 여유로움의 바닥을 들여다봤다. 


'메이데이'

누군가는 삶과 사랑에 지쳐 권총을 물고, 누군가는 건물에서 자유낙하해 머리가 깨져 죽고, 또 누군가는 무도회의

여왕처럼 대접받다간 사건에 휘말려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오고, 술에 취한 미스터 인앤아웃은 천국행 엘레베이터를

잡아 탄다. 그런 식의 스케치..좀 지루했다. 차라리 고든과 이디스의 어긋난 감정과 타이밍에 집중한 이야기를 했다면.

"'사랑은 덧없는 거죠.'...새로운 사랑의 말들, 새로 배운 부드러움은 다음번 연인을 위해 소중히 간직되었다." 이런 식의

마무리도 깔끔하지 않았을까.


'치프사이드의 타르퀴니우스'

한국 환타지문학의 거두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를 비롯한 작품들엔 꼭 이런 인물들이 나온다. 수다스럽고도 고풍스런

말투를 구사하며 다소간의 현학과 숨겨진 위트를 즐기는. 드래곤 라자의 후치같은 캐릭터. 이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제목의 소설은 그러한 캐릭터의 원형이 혹시 이로부터 비롯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기시감을 선사한다.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

난 이 소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 너무 밍숭맹숭한 스토리, 그리고 내가 놓친 게

있다면 넘 어려운 스토리..라고 치부하고 넘어간다.


'행복의 잔해'

작가가 좀 나이를 먹고 쓴 게 아닐까. 그 이전의 발랄한 분위기와 특이한 사건 위주로 흘러가며 만담하듯 읽히던

단편들과는 달리, 차분한 호흡에 담백한 스토리. 가당치도 않게 행복의 잔해 위에 선 두 남녀의 새로운 러브 스토리,

혹은 정사신의 여운이라도 남길 바랬던 스스로에게, 자극들로부터의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Mr. 이키'

유머러스하게 닫히는 1막짜리 연극 대본같은 소설. 근데..방충제가 등장한다는 거 말고는 포인트를 못 잡겠다. 뭐지.


'산골 소녀, 제미나'

짤막한 사랑이야기. 유일한 선생을 알콜중독으로 사망시킨 양조장 소녀가 국자로 위스키를 퍼먹다가 만난 외지인,

그리고 '인간 알코올램프' 그녀와 외지인은 전투중에 발가락 숫자를 세다가 함께 죽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인데,

웃기고 만 이야기.


'작가의 말'

"변화하는 유행의 권태로움이 나와 내 책들과 이 단편소설을 모두 한꺼번에 짓누를 때"...를 그는 기다렸던 거다.

그는 불후의 거장이 되겠다거나 인간의 변함없는 뭔가를 글 속에 간직하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당대의 욕구와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하고 선도하고 또 따르려는 욕심을 가졌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의 글들을 읽다 보면 당시 유행을 선도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식의 농담을 했는지, 어떤 유희를 즐겼는지 살아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당대를 넘어 불변하는 뭔가를 끝내 쥐어내고 시대를 버티어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시대에 오체투지하듯

몸을 던져 흐름에 완전 영합함으로써 시대를 넘어서는 작품도 있기 마련인가 보다. 살짝 풍기는 노인네의 구렁내같은

골동품의 냄새도 이정도면 오묘한 향수 축에 끼워줄 수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6점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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