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겨 본 적이 없었다. 역종을 바꾼다..는 의미. 마침표의 뉘앙스는 담겨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교관들의 홈경기였고, 내겐 일종의 어웨이경기였다. 더구나 복장과 말투와 스케줄..같은 것들을 장악당한

채, 스멀대며 돋아나는 이전의 원치않던 습관들과 기억들을 쓰게 바라봐야했다. 여전히 북괴란 단어를 쓰고

정신나간 김일병을 저주하며, 그리고 갈수록 전우애가 상실된 채 '빠져가는' 군대를 한탄하는 교관들이.

전쟁놀이, 병정놀이에 몰입한채 진지하게 계급과 조직을 신봉하는 그들은 너무 많은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이왕 온거 열심히 하다 나가자'라는 맹목적인 성실함의 호명, '누구 한명이 방만하면 나머지 동료들이

힘들어진다'라는 식의 연좌제적인 책임감 부여. 그러한 식의 꼬임은 언제나 말문을 막고 만다.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예비군훈련따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고, 원치 않는 공간에 처하진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굳이 꾸역꾸역 찾아가서 조국을 위해 총을 쥘

몸뚱이만을 요구하는 곳에서 짐승처럼 '부려질' 필요는 없었던 거다...
(
전역, 轉役)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둔탁하고도 거친 말들과 그 뒤에 버티고 선 사고방식들, 그 모든 걸 비주얼하게

보여주는 얼룩덜룩한 국방무늬가 가시처럼 날 쿡쿡 찔러댔고, 난 처음 입대할 때처럼, 처음 예비군 훈련 받을

때처럼, 그렇게 하나도 익숙해지지도 타협하지도 못한 채 그저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사람 죽이는 법을 까먹지 않게 하려고 우르르 불러모았댄다. 북괴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수류탄을 던지랜다.

책임이 있으니 의무도 있는 거랜다.(이게 무슨 말인지..자유가 있으니 책임도 있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자유 운운하기엔 넘 척박하고 열악한 상황이니 병정놀이오타쿠들, 교관들도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나름 변형한

거겠지.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라는 속편하고 살짝 효험도 있다는 체념 역시 무기력해지는 이상한

공간인 게다, 군대란.) 비상식으로 가득차서, 외려 상식을 들고 말하기엔 유치해 보이고 까칠해 보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
예비군훈련..4년차.)


그리고 5년차 예비군. 여전히 속은 편치 않지만,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냥 오늘 밤 늦게까지 딴 짓 좀 하고,

엠피쓰리에 노래 좀 넣고 충전하는 거 잊지 말고, 그럴 생각이다. 어차피 내일 가서 어떤 자세로던 어떤 시간에던

잠드는 건 문제도 아닐 테니..괜히 교관들의 이상한 이야기나 멍청한 짓거리들에 울컥하지 않는 한.


날씨가 다시 좀 추워지긴 했지만 뭐, 어차피 군복을 입으면 마음이 서늘해지고 컨디션도 지랄같아지니 상관없다.

아니다, 이명박이 최근에 예비군 훈련도 내실화하라고 했다던가. 무사히 돌아와야겠다. 작년 예비군 훈련 때에는

땅벌을 건드려서 팔다리가 퉁퉁 부은 예비군들을 한시간넘게 미적대며 잡아두다가 항의 끝에 겨우 엠뷸런스 타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던 일도 있었다. 물론 예비군 훈련시간으로 인정도 못 받았었고.


대체 뭘 어떻게 내실화하려나, 대체 뭘 어떻게 또 괴롭히려나. 개성공단도 말아먹고 남북관계도 말아먹고 또

무슨 말씀을 내려 반공정신을 고취하시려나. 듣고 싶지도 않은 X소리 안 들으려 귀막을 자유도 없는 곳.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