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계'에서 나왔던 양조위의 쓸쓸한 엉덩이, '베티블루'에서 나왔던 그녀의 치명적인 목선.

말이 아니라, 눈빛이 아니라, 몸의 실루엣과 살풋한 움직임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뿜어낼 수 있다는 건 종종 대단한

능력으로 찬사받곤 한다. 그들에게는 연기가 무르익었다느니..등골이 오싹했다느니..등의 상찬이 주어진다.


딱 버티고 선 두 다리의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자신의 농장에 울타리를 두르는 심정으로 지면을 딛고 선 두 다리와

그것들이 버텨내는 지상의 몸뚱이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노골적이다.


손에 쥔 가방이나 신문뭉치는 종종 상대를 제압하는 효과적인 무기로 기능한다. 옆구리에 박히는 가방 모서리의

선뜻한 느낌은,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상대를 패퇴시키고 자신의 공간을 지키거나 혹은 넓히겠다는 집요한

경고로 읽히곤 한다. 가끔 신문뭉치를 쥔 손으로 머리를 매만지는 척하며 근접해온 상대의 목덜미나 안경, 혹은

얼굴을 가격한 후에는 뻘쭘한 민망함조차 사치라는 양, 모른 척 시치미로 일관하기도 한다.


그들의 어깨는 두 개의 뿔처럼 기능한다. 좌우로 휘저으며 사람들을 밀쳐낸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간을 베어

들어가는 능력을 갖췄달까. 그냥 어깨일 뿐인데, 어깨가 내 어깨나 가슴 어간을 무지근하게 압박해왔을 뿐인데

기분이 확 상한다. 때론 큰소리로 으르렁대며 협박하는 어깨를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정말 불끈 달아오르며

나 역시 어깨에 감정을 싣게 된다. 그에 또다시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대의 어깨.


마치 소싸움하듯 그렇게 어깨를 겨누고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 지하철이 덜컹, 하는 그 순간을 잘 잡아채면

아닌 척 꼬투리 안 잡히고도 한번쯤 세게 질러줄 수 있겠다 싶어서. 지하철 문이 여닫히는 순간의 혼란을 잘

이용하면 누가 했는지 모르게 한번쯤 세게 쥐어박아줄 수 있겠다 싶어서.


눈은 절대로 마주치지 말 것.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싸움으로 번질 게다 아마.



* 얼마전 아침엔..마치 바다에서 막 걸어나온 인어아가씨인 양, 긴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뚝뚝 쉴 새없이

떨어지는 아가씨 뒷통수에다 30분동안 코박고 서있어야 했다. 퇴근하고 싶은 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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