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와인을 마실 때 꼭 코르크마개를 모으려 들었던 윤OO씨(29세, 서울). 덕분에 테이블

건너편 끄트머리에 놓인 코르크마개를 집으려다 물잔을 엎지르기도 하고 넥타이를 와인잔에

빠뜨리기도 하는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고 술회한다. "와인색으로 넥타이를 염색한 건 차라리

양반이었죠, 처음 마셔보는 와인의 마개를 잔뜩 눈독들이고 있다가 재빨리 집었는데, 마침 동석했던

상무님이 본인과 같은 취미를 가졌다며 은근슬쩍 내놓으라고 압박하실 때는 어휴. 옆구리 찔리기

전에나 드렸음 갈비들이 아프지나 않을걸."

그 뿐만 아니다. 럭셔리하고 우아한 와인 바에서 멋진 손목 스냅을 보여주는 웨이터들이 '그깟

코르크마개'를 탐하는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보일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고백이다. 사실,

코르크마개가 별건가. 코르크나무 껍데기가 발바닥 각질처럼 두텁게 자라나면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서 일정한 약품처리를 거쳐 와인병을 막아두는, 말그대로 '병뚜껑'인데 말이다.


햇살이 사방으로 번지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깨물면 이가 시리거나 깨지는 콜라병 뚜껑,

얄포름하고 오묘한 질감을 차마 훼손치 못해 플라스틱 밑창을 물어뜯게 만들던 요쿠르트 뚜껑과

전적으로 같은 부류에 속하는 거다. 뚜껑, 혹은 따꿍이라고도 불리는 그런 것들.

그렇지만 이 녀석들은 뭔가 달랐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무서울 게 없었어요." 윤씨가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넘어온 녀석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면 서로 포도덩굴도 잡아당기고 이탤릭체의

글자들도 분지르고 투닥투닥 싸우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덩굴을 꼬아 만든 해먹 위에서

향긋한 코르크 내음을 풍기며 뽀골뽀골 재미지게 놀더라는 그의 백일몽.


그들의 가장 큰 위기는 알제리에서 왔던 코르크가 프랑스 아이들과만 놀겠다며 편을 가르려

들었을 때, 그리고 중국에서 넘어온 정체불명의 과실주뚜껑이 자기도 와인코르크라며 지독한

냄새를 풍겼을 때였다고 추억하는 윤씨의 눈가에 화이트와인인 듯 눈물이 맺혔다.

마지막으로 보내기 전 열맞춰 늘어세운 녀석들. 모아봐야 잡동사니, 코르크마개에 집착하는

것도 일종의 병. 습관 하나를 버렸고, 그들이 꼬물대던 공간엔 다소 텁텁해진 코르크 냄새만

남아버렸다. 굳이 더하자면 또하나, 코르크의 매끈하고 보드라운 촉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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