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야조프 투르크메니스탄 초대대통령, 금빛으로 번쩍이는 그의 동상은 아쉬하바드 곳곳에서 눈에 띄었지만

특히나, 여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쓰고 만들어진 곳 같다. 북한으로 치자면 '주체사상탑'과 그 앞의 거대한

금빛 김일성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곳에 비길 수 있을까. 적어도 삼사미터는 훌쩍 넘어보이는 커다란 동상은

설마 석유와 가스를 팔아 사온 금덩이로 빚어놓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돈 냄새가 물씬 나는 것 같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옛 전사들 복장을 하고 옛 무기를 꼬나쥐고 있는 이 근위병들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절 앞을

지키고 선 사천왕상처럼 부리부리한 눈과 다부진 포스를 뿜어내며 왼켠에 둘, 오른켠에 둘, 도합 네 명의

커다란 병사가 그들의 왕, 아니 그들의 대통령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은 그들의 대통령이 자원을 팔아 이뤄낸 '쇼윈도 건물'들이 열맞춰 서 있었고. 번쩍이는 하얀 대리석에

거대한 건축물들이 띄엄띄엄, 마치 무슨 테마파크처럼. 그리고 번쩍이는 금빛 동상에 거대한 호위 무사들을 갖춘

대통령이 마치 무슨 왕처럼.

자세히 보니 대통령 앞에 시립해 서있는 네 명의 호위 무사 말고도, 또다시 그의 최측근에서 대통령을 지키고 선

네마리 독수리가 있었다. 이걸 네마리라고 해야할지 조금 난감한 게, 머리가 무려 다섯인 독수리인데다가 발톱에

걸고 있는 뱀의 머리도 양쪽으로 두개가 있으니.

다섯개의 독수리 머리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다섯 개 지역을 상징하니 투르크메니스탄 그 자체이며, 각기 반대편을

보고 있는 뱀은 투르크메니스탄 양편의 외적을 경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가이드 압둘라가 그렇게

뭉뚱그려 말한 걸 두고 눈치없이 반문하고 말았다. 서쪽의 이란과 동쪽의 아프가니스탄을 경계하는 거군요.

이란은 중동 지역의 패권국가이니 늘 경계할 수 밖에 없을 테고, 아프간 같은 경우는 좀처럼 정돈되지 않는

내정불안의 문제가 자칫 투르크로 번질 우려가 있어서 아닐까 싶었는데, 대략 맞는 듯 하다. 압둘라가 당황했다.

뭐랄까, 광화문광장 같다. 사람이 쉴 만한 곳은 없고, 그저 거쳐가거나 방황하며 지나는 곳. 여긴 그래도 뻔뻔하게시리

'광장'이란 이름을 붙여서 사람을 미혹시키지는 않을 거 같았다. 공산주의의 잔재가 아직까지 자본주의적인

성향을 막아주는 건지도 모르겠고, (반)주변부적인 '촌스러운' 동네라 한결 인간적이고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떠나려는데, 그새 어느 아주머니가 텅빈 공간을 쓸고 있었다. 밤이고 낮이고, 정말 밤 두세시에도

나와서 차도를 쓸고 보도를 쓸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던 것도 투르크에서 얻은 인상적인 장면 하나.

국방부 였던가, 건물 앞에 몇 명의 군인이 총을 들고 선채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왠지 맘에 걸렸지만

건물 앞에 선 황금빛 니야조프 대통령의 동상이 그새 반가운 거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자마자 군인

한명이 잔뜩 쏘아보며 손사래를 친다. 국방부 건물이라 보안상의 이유로 그런 건지, 대통령 동상에 대한 불경이라

그런 건지.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하고 확인까지 하는 중동 나라들에 비하면 낫다고 생각하며 얼른 도망.

차안에서만 바라본 금빛 돔의 건물, 저게 바로 대통령궁이라고 한다. 투르크의 초록색 국기와 금빛이 생각보다

꽤 잘 어울린다는 뜬금없는 생각과 함께, 생각보다 현대의 대통령궁(집무실 건물)과 과거의 왕궁 간의 갭이란 게

그리 크지 않은 건 아닐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싶었다. 미국의 백악관이나 프랑스의 사이요궁, 한국의 청와대나

뭐 기타 등등. 어차피 본질은 그 자리의 위세를 뻗치고 우러러보게 만드는 것이니 당연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 곳곳에서 마주치다 보니 결국 돌아올 즈음엔 왠지 굉장히 친숙하고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듯한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고 말았던  베르디무하메도프 현재 대통령의 커다란 사진들. 정말이지

북한의 그들이 하는 행태와 다를 게 없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그의 인자한 미소.

어느 사무실 건물의 계단 중간층에 걸려있는 같은 사진.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가 아마 저렇듯

자애롭고 인간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을 대량배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갔던 어느 식당, 연회장을 겸하고 있던 그 공간에서도 현 대통령은 인자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고 있었다. 심지어 그 위치는 결혼식으로 치자면 주례가 서는 뒷편, 모든 이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바로 그 위치. 펜을 쥐고 뭔가를 쓰는 듯한 포즈를 잡고 있는 그 사진, 활용도가 가히 백만 퍼센트다.

아쉬하바드의 밤거리라고 대통령의 모습이 지워질리 없다. 시내의 어느 거리에서 환한 불빛을 사방으로 튕겨내며

금빛 미소를 선보였던 초대 대통령의 동상. 이 나라 사람들은 아마도 초대 대통령과 현 대통령의 얼굴이라면

눈감고도 그릴지 모르겠다.

국제포럼이 열리던 행사장에도, 자칫 떨어지면 사람이 깔려죽을만한 사이즈의 사진, 바로 그 사진이 커다랗게

한 옆을 차지하고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연사로 나섰던 사람들 역시, 과민하게 받아들인 건지도 모르지만

예외없이 전/현직 대통령의 리더십과 결정을 칭찬하는 언사를 양념처럼 빼먹지 않았던 거 같다. (물론 그들이

전부 그에게 밥그릇이 달린 공무원이었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만찬장에서도, 이들이 연주를 계속하는 동안 뒤에서 눈을 살짝 올려뜬 채 혹시 삑사리가 나지는 않는지, 음식은

다들 맛있게 먹고 있는지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고 사방을 살피던 거다.

투르크메니스탄은,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어느정도 경찰에 의해 지탱되는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블럭이 지나기도 전 새로운 교통경찰과 마주할 만큼 곳곳에 지키고 선 경찰들은, 내키는 대로 아무 차량이나

멈춰 세워서 불심검문을 하는가 하면, 시도때도 없이 도로 전체를 막아선 채 지나지 못하게 통제하기도 한다.

새벽 세네시쯤, 예고도 없이 통제된 채 텅텅 비어버린 호텔 앞 도로. 그리고 사이렌도 없이 우르르 달려나가는

십여대의 새까만 세단들. 대통령이 탄 차가 저 도로 끝에 있는 별장으로 가는 거라 했다.

새벽에도, 저녁에도, 한낮에도, 대통령이 다니는 길은 늘 완전히 비워진 채 그들만을 위해 열리던 나라. 우리나라는

교통정체니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구간구간별로 끊어서 통제한지가 꽤 된 걸로 알고 있는데, 투르크도

그렇게 바뀔 때쯤에는 사방에 널려있는 대통령 사진도 철거되어 있으려나.



* 유비쿼터스 (Ubiquitous) :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라는 뜻의 라틴어.





출장이건 여행이건, 큼지막한 여행 가방을 꾸려 집을 며칠씩 나서는 순간의 마음은 흡사 그런 것이다. 살풀이?

며칠 일상을 비우고 나면 나도, 내가 놓인 자리도 모두 명료하게 정리되겠지..하는. 잔뜩 분탕질쳐놓은 흙탕물이

차분히 가라앉아 맑아지길 바라는 심정으로. 새벽에 나서는데 주홍빛 해가 곱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는데 평소의 승용차보다 눈높이가 일미터쯤 높아진 공항리무진버스에서 바라본 풍경은 또 다르다.

그렇게 훌쩍 올라선 눈높이만큼 여행, 혹은 출장의 기분이 돋구어졌달까.

한강대교 중 가장 이뿌다는 평가를 받는 방화대교, 이사 전에 살던 집이 근방이었어서 워낙 자주 봤댔지만

이렇게 사진을 찍기는 처음이다. 여행자의 눈에야 비로소 발견된 유려한 생김의 다리.

열네시간여 비행끝에 파리, 그리고 두시간 반쯤 다시 비행한 후에야 도착한 알제리. 공항에 도착해서 삼엄한 탐색대를

거쳐서 올라탄 버스는 한참동안이나 출발할 수 없었다. 현지 경찰의 호위(convoy)가 있어야 출발할 수 있다나.

몇 차례의 테러나 외국인 상대의 불상사가 있었던 나라인지라 외국 대표단들이 단체로 움직일 때는 꼭 경찰 호위를

앞뒤로 붙이고야 출발한다고 했다.

앞에 경찰 오토바이 두대, 뒤에 경찰 오토바이 두대가 붙었다. 그리고 앞 차는 현지에서 이번 행사의 차량을 모두

담당했던 마이 후렌드 Farid의 멋진 차. 많은 나라를 다녀본 건 아니지만 경찰 호위가 붙은 적은 처음이었다. 아, 4월에

인도와 파키스탄에 갔더라면 역시 경찰 호위가 좀더 삼엄하게 붙었을 텐데, 역시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취소되었다.

알제리가 북아프리카에 위치했다는 점, 알제리의 수도인 알제, 그리고 우리가 묵을 쉐라톤 호텔이 지중해를 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 차창 밖으로 펼쳐진 남빛 지중해.

신기하게도 해가 뜰 때 서울에서 출발해서는 해가 질 때 알제에 들어섰다. 문득 혼란스러워지는 시간감각.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창밖이 아름다웠지만, 주알제리 한국대사관에 차려진 빈소에서 분향할 시간을

갖겠다는 이야기에 다시 울적해졌다. 노무현, 그가 알제리와 한국간의 경제협력 T/F라는 판을 벌였댔다.

황금빛으로 건물들이 쉽게, 곱게 물드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이런 베이지색. 집집마다 내걸린 알록달록한

빨래가 뚜렷하게 형체를 드러낼만큼 건물 외벽은 순순히 한발 물러선 느낌.

알제 도심에서 발견한 부테팔리카 대통령의 거대한 초상. 그가 한국에 인상깊었던 것이 '새마을운동'이라고 했었다.

오랜 건물들, 이런 식의 유서깊은 건물들 그 어느 틈새에 알베르 카뮈가 살며 이방인의 한장면을 구상했겠고,

축구선수 지단이 어렸을 적 공을 차고 놀았을 거다. 아, 카뮈는 알제리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했다. 독립전쟁시에

파리로 도망갔다던가. 그리고 친프랑스적인 행보를 계속 보였다고도.

서울로 치자면 외교 공관들이 모여있는 한남동쯤 된다는 알제 도심으로 들어섰다. 도심이라지만 길은 여전히 좁고

거리는 한적하며, 뭔가 어정쩡한 그림이다. 그렇지만 출퇴근시간에는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이 있다고 했다.

중간중간 게이트를 설치하고 차량을 통제하는 경찰. 알제 시내 그리고 알제 시내로 들어서는 모든 도시에 설치된

체크포인트들은, 테러의 위험이나 위협요소들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실은 시내의 교통 흐름을

의도적으로 통제하고 원활히 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한다.


뭔가..이 동네 꽤나 위험한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땡겼던 첫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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