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허벅지게 피어올랐고, 벚꽃이니 매실꽃은 팝콘처럼 터져올랐다.

나른한 봄빛이 일렁이는 도심 속 조그마한 공원, 미디엄레어로 익힌 스테이크 정도의 온기가 담긴 벤치에 앉아

유약한 연두빛이 돋아나는 세상을 본다. 그리고 내 귓가에 속삭이듯 노래하는 그녀의 이야기.


그녀의 목소리는 그렇다. 간질거리는 봄볕과 꿈결같은 공기의 흔들림. 아무래도 좋아, 라는 식으로 사람을

멍하게 만들어버린다. 적당한 비음이 섞인 채, 여리여리해서 금새라도 끊길 듯 하다가는 훌쩍 높은 파도를

뛰어넘는다. 노래방이 보우하사 천편일률한 바이브레이션과 과잉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단연

튀고야 만다. 흔들림없이 길게 뽑아내어지는 목소리, 그렇지만 잔잔함 속에서 사람 맘속에 숨겨진 버튼 하나를

쿡 누를 수 있는 강력한 힘과 호소력.


그녀의 이번 앨범 역시 말하자면, "참 뜬금없는 이야기들, 참 특이한 노래가사들이다." 대체 정신세계가 어디를

부유하고 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그녀는 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느 때처럼 All songs written by 이상은,

Produced by 이상은이니, 앨범을 두고 그녀를 말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녀의 앨범, 그녀의 조각, 그녀의

별부스러기니까. 그녀의 가사는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저기를 봐 시간의 불꽃놀이 텅빈 저 미래는 무중력의 무한한 하늘..."(Stardust)
"지구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느끼고 있네...아, 반짝이는 파랑 플랑크톤 저 하늘의 별들과 이어져 빛나..."(섬)
"나는 왜 멈추어 있어야만 하나...플라즈마 구름 태양풍의 파도 그 흐름 속 나는 작은 입자 인디언핑크색 나노 텐트의 LA 실크로드 위 스카이 카들의 순례..."(Cosmic nomad)


그녀는 미국과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사는 아티스트답게 노마드의 감성을 늘 유지한다. 유랑하는 음유시인,

그녀는 삶을 부정하지도 않지만 적나라하게 긍정하지도 않는다. 밝지도 않지만 어둡지도 않다. 춥지도 덥지도,

화려하지도 수수하지도 않다. 어딘가의 야성적인 초원이나 차들빼곡한 주차장에 주차된 차 본넷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며 읊조릴법한 가사들. 시간의 비밀, 우주의 비밀, 세상의 비밀, 그리고 삶의 비밀에 대한 수많은

은유와 경구들이 등장하는 그녀의 노래는 뭔가 주문과도 같다. 혹은 기도문이랄지도 모르겠다.


'속삭임'이란, 상대에 대한 압박이나 강요없이,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다.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그녀의 이야기엔 늘 사람을 빨려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목소리와 음악 자체도, 그에 얹힌 가사말도. 어디론가

빨려들어가서 전혀 새로운 시공간 속에 그녀와 함께 누워있다가 오는 느낌. 음악이 어느순간 멈출 때마다

난 몽롱한 눈빛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잠시 망연해 해야 했다.


봄날과도 같은 앨범. 그녀의 14번째, 우리는 별부스럭지에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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