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1년차때는 군복을 다시 입는 것부터, 총을 쥐는 것도, 경례를 하는 것도 모든 것이 혐오스러웠다.

전역(轉役) 1년차의 예비군훈련.


그런데 이제 6년차, 예비군 훈련이 떳떳하게 볕쬐러 나오는 '휴가'라고 느껴지게 되었다.

물론 전투복은 전투하라고 입는 게 아니라 전투력 남김없이 떨어뜨리라고 입는 거고, 전투화는 끈을 바싹

조여매는 게 아니라 개혓바닥처럼 사방으로 아가리를 벌린 채 질질 끌고 다니는 거란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차갑고 불쾌한 총의 폭발음 역시 조금은 더 참을 수 있게 되었고, 다섯 발 중 세 발은 표적에 맞혔으며,

이제 그 '표적'이 언제라도 '사람', 혹은 북괴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바로 연결시키지는 않게 되었다.


그래서, 예비군 6년차, 마지막 훈련을 받으며 이런저런 훈련장 스케치.

되는대로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쇳덩어리 목총을 쑤셔넣고는 하이바를 올려둔 예비군들. 신병 훈련소에서는

특별지급되었던 치토스의 '따조'까지 승인되지 않은 놀이기구라며 뺏어가고 치토스 봉지조차 네모나게 각잡아

접어서는 버렸단 말이다.

준비성 철저한 어느 '전우'. 등산갈 때 부모님이 갖고 다니시는 휴대용 방석을 갖고 왔다. 4월이 한참 지났어도

쌀쌀한 날씨인데다가 항상 군대는 '춥고, 졸립고, 귀찮은' 몸뚱이가 문제인 거다. 어찌나 부럽던지.

다른 사람들이 사격 훈련을 마저 마치기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방황하는 예비군들. 후드티를 껴입고 갔다가

입구에선 교관들의 우악스런 손에 벗겨지던 구겨넣어지던 둘 중의 하나를 골라야 했지만 훈련 중엔 계속 쓰고

다녔다. 나처럼 후드티를 껴입고 온 다른 분께서는 유유자적 독서삼매경.

그래도 연막탄도 쉼없이 피워올리고, 총알도 다섯발씩 주고. 차라리 예비군들의 기초체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하루 날잡아 등산을 시키던가, 구보던 웨이트트레이닝이던 하루치 일과를 주는 게 어떨까. 돈 아깝게

모형 건물짓고 연막탄 피우고 그러지 말고. 정말, 예비군 훈련을 그렇게 좀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바꾸면 모두가 좋아할 거 같다.

이런 '북괴'를 상대하려 해도 역시나, 되도 않는 정신교육이나 빌빌거리는 전투기술훈련 따위보다 배나오지

않은 날렵한 체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참 웃기게 생긴 북한군인 아저씨, 그리고 밑에 이리저리 구르는

모형 수류탄들. 그 뒤로 등에 피로를 업은 예비군들.

뭐, 이런 훈련 안내문도 나눠주기 시작하고 이제 예비군도 조금은 서비스 정신을 갖게 된 걸까.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건 이미 숱하게 유출되고 유통된 '모두다 깊디깊은 숙면 중인 안보교육시간'이라거나

'개도 안먹는 예비군 짬밥의 실체'라거나 따위여서 군의 사기를 떨어뜨릴까봐 두려운 게다.


나는...음, 예비군 훈련에 대한 자극적이지 않은 스케치에다가 건설적인 대안까지 제시했으니 괜찮을 거다.

괜찮겠지 모.

상병때부터 일년넘게 내 왼쪽 뇌 옆에는 초록빛 체게바라가 있었다. CHE_GUEVARA.

사실은 빨간색이나 흰색으로 하고 싶었는데, 오바로크쳐주던 분이 그럼 잡혀간다며.

난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며, 어차피 엎으나 뒤치나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며.


그러고 보면 그람시나 알튀세르, 최장집을 읽었던 것도 군대에서였다.

얼룩무늬에 쩔고 '다'나 '까' 따위 말투와 마초들에 치여서 삶이 푸석해져버렸다던 오래전 이야기.

그렇지만 지금은 예비군 훈련을 몇 년 더 했음 좋겠을 뿐이고.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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