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뭘까라는, 오늘 시작된 인턴 수업 매 시간마다 내게 불편하게 내질러졌던 질문. 사실 그다지 진지하게

뭘까~하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어서, 일단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며 관망세를 취하다. 진리를 구성하고,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고, 머 그런 것들이 짚어졌다. 김학준 사장은 조선 시대의 사관과 언관에 비유를 하기도,

혹은 군사독재 시절 정의의 횃불로 비유를 하기도 하며, 권력에 대해 결연하게 맞장뜰 수 있는 자세를 강조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분명히 기자는 어떤 축복을 받은 직업이긴 할게다. 자신의 호기심을 도발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쾌감. 무엇 하나 전문지식을 쌓지는 않더라도, 그만큼 자유롭게 알고 싶은 것들을 공부해가며 자신의

발로 눈으로 직접 알고 싶은 사실을 캐낸다는 것. 그저 쏟아지다시피 제공되는 정보에 만족하는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입장일 거다.



하지만, 지금이 유교적 기치가 공고했던 조선 시대나, 악과 정의의 구분이 선명했던 군사독재 시대와 같을까.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되고 나선, 오히려 제멋대로 호명되는 '민주주의'의 허울. 역설적인 이념 과잉의 시대에서
 
'민주주의'라는 둔탁하고 애매한 수사로는 아무것도 말해지지 않는다. 확고한 지반은 이미 무너졌다.

도끼를 짊어지고 왕에게 상소를 하던 심정으로 오늘날 언론의 사명을 운위한다는 것은, 내게 다시 황장엽씨를

떠올리게 했다. 인간이 중심되는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그의 철학-함이 결국 기대고마는 '민주주의', 그것은

그러나 '미치광이'가 지배하는 북한을 의식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의사 민주주의, 곧 반공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채

제기된다. 그리고, 그 자신의 삶을 온통 묻어버린 그러한 사고방식은 자기가 옳다는, 옳을 수밖에 없다는

경직성으로 귀결된다. 맞장뜨자라는 도전적 사고. all or nothing의 극단성.

정치 권력에 대한, 시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각.



오늘날 기자에게 필요한 건, 진부하지만 똘레랑스 같은 거 아닐까. 물론 자신의 정견이나 의견이 없을 수야

없지만, 그조차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의 한부분을 구성하는 톱니같은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 구성되는 진실에

수만가지 버전이 있을 수 있고, 압축성이 생명이라는 짧막한 기사글에 담기는 진실이란 허약하기 짝이 없다는

자기 반성..주제 파악. 좀더 경험해보면, 어떻게 생각에 살이 붙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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