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잠재력과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결혼하기 전에 미리 좀 살아봐야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하듯, 직접 함께 일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의

능력이나 타입을 알기가 힘들다. 자신조차 스스로에게 내재된 능력과 취향을 닥치기 전에는 모르는 판국이니

타인을 비교, 평가한다는 건 애당초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타인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결한 활동이다. 어찌됐건 살아가면서 일정한 경쟁이 요구된다는 대전제

하에서, 우리 사회의 경쟁이 얼마나 과다하고 비인간적인지를 차치하고서, 경쟁 결과를 산출하기 위한 판단

기준이 필요해진다. 그건 이력서에 나와있는 학점, 토익성적, 자격증, 어학연수 등의 기록이나 때론 동산/부동산

보유 정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무엇보다 출신대학이 절대적이다. 그 치열했던 고등학교 교육을 뚫고선

공고하게 서열화된 대학에 차례로 채워나갔다는 것은, 분명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하나의 중요한 잣대로

기능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잣대로서 기능하는 학력이 어느 순간 권력화되고 구조화되어서, 여러모로 스스로의 영향력을

확대재생산하는 '절대반지'가 된지 오래라는 것이다. 대학의 위계에 따라, 사회적인 직업군에도 일반적인

경향성이 생겨난다. 여지껏 공고했던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정책적 반응으로 최근 이력서의 출신학교란을 빼는

등의 시도가 있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이른바 명문대 입학생의 출신성분이 갈수록 상층화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끼리 밀어주는 연고주의는 이러한 학벌의

영향력을 한층 강화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비단 출신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이른바 인기학과/비인기학과의

문제이기도 하여, 점차 높아가는 경쟁의 파고를 반영하고 있다는 메타적인 측면을 도외시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학벌주의는, 혹은 서울대학교 프리미엄은, 비서울대 출신이나 서울대 출신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비서울대 출신은 불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불만과 출신 대학에 올인해야 한다는 '교훈'을 각인하게

된다. 이러한 교훈이야말로 공교육을 파탄내고 사교육 광풍, 멀게는 부동산문제까지 일으킨 장본인이 아닌가.

서울대 출신 역시, 자신이 학벌의 덕이 아닌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계속해서 증명해내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된다. 한국 내 대학위계의 최정점에 안착하기 위해 부차시되었던 자신의 적성, 희망 등은 여전히

접어두어야 하고, 일렬로 달리는 레이스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요새는 '서울대 폐지론', '학벌주의타파종합대책' 등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려는 '세력'도 준동하고 있고 말이다.

(서울대..라는 게 한국 교육체계 '피라밋'의 정점에 선 하나의 상징이라 비판받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서울대가

사라져도 제 2, 제 3의 '서울대'는 당연히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이는 애초 그러한 '피라밋'을 설정하고 당연시하는

교육 체계와 그 이면의 교육철학의 깊숙한 문제를 건드려야 할 문제다.)



그러한 '불순세력'의 준동에 너무 걱정은 마시라. 서울대라는 간판은 그렇게 녹록하진 않으며 거품이 빠진다 해도

여전히 최상급 레어 아이템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니까. 갈수록 부식되어 유명무실화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서울대'라는 위상이 역설적으로 대학의 상아탑적 기능, 혹은 취직공부에 목매지 않고 자신의 관심사를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바라건대 그러한 시간에 '학벌주의'에 대한 논란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한 논란이 비록 '엘리티시즘'에 대한

대중의 적개심이나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다소간 '묻지마'식 비판/비난으로 흐르는 면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학벌에 대한 비판 및 해체 시도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한 경쟁과 획일적인 위계를 드러내는 것과 맞물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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