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인 78호에 실린 "사교육 공포에 맞서기"란 특집기사를 읽으면서, 최근 신해철의 학원 광고 출연을

두고 다소 혼란스럽던 머리가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신해철이 평소 보였던 전향적이고 진보적인 성향들에

익숙해졌던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대형 입시학원의 광고판이 되어 노홍철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이해하지 못했고,

신해철은 다시 이러저러한 소음과 함께 장문의 '소명서'를 제출했지만 이는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해철이 과연 평소 말과 어긋난 행동을 한 것인지 아닌지 그 사안 자체에 대해서는 진중권이 말했던 것처럼

"임금님 머리꼭대기에서 희롱하며 노는 광대"가 갖춰야 하는 선명하고 자극적인 언사에 대한 너그러움으로

넘어가면 될 일이 아닐까 싶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남았다.


입시학원을 광고하는 게 나쁜 건가. 도덕적인 견지에서라도,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사교육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냥 교육제도에 신물이 난 한국사람들이니만치,

'공교육의 썩은 등걸 위로 마구 돋아난 독버섯'같이 사교육 자체를 덮어놓고 부정하는 거 아닐까. 혹은 부정하는 척

실제로는 대책없이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사교육이 싫어요"라고 옹알이하듯.


어쩌면 우리는, 공교육이 교육 문제의 알파이자 오메가며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대원칙과

당위적인 선언 앞에서 이것저것 하는 시늉만 깔짝대면서 사교육에 대해서는 손놓고 머리도 놓고 멍하니 있었는지

모른다. 공교육만 살아나면, 공교육만 제대로 되면, 최소한 이번 정책만 제대로 펼쳐지면, 자연스레 모든 게 술술

풀려나갈 것처럼.


사교육은 신해철이 말한 대로 자동차나 핸드폰처럼 필요하면 쓰고 아니면 마는 개인의 중립적인 '선택사양'인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교육 천국 불신 지옥'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정신없이 앞만 보며 아이를 내몰고 스스로

숨통을 조여가는 학부모들이 바로 우리의 부모,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모습 아닌가. 누구 하나 강요한 적은 없지만,

또 누구 하나 자유로울 수도 없는 게 사교육을 향한 '다단계 돈지르기' 도박인 게다. 결국 밑천이 많은 사람만이

이기게 되는 비정한 도박.


이미 대부분의 자녀들은 첫번째 싸움에서부터 지고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라지만, 어쨌든 모든 부모는 그의

자녀들이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바라고 기대하면서 가용한 모든 자산을 판돈으로 걸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신해철을 비판했던 건, 그의 이미지를 과대평가했던 것도 있지만 사교육 자체를

자신들의 삶을 질곡하는 어떤 것, 그러므로 없어져야 할 것, 최소한 불건전한 것으로 암묵적이나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교육은 가능한 최소한으로 줄어드는 게

자연스럽고 또 바람직한 귀결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여전히 답은 오리무중이다. 사교육이 나쁘다, 라고 말해봐야 당장 아이가 부쩍 자라고 옆집 아줌마가

옆구리를 찌르며 믿지못할 교육정책의 널뛰기가 눈앞을 어지럽히는 당사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신들이 이 땅의 교육시스템과 전혀 무관하게 한평생 살아갈 자신이 있거나 자신과 자신의 아이, 혹은 연관된

사람들이 그로 인해 적잖은 피해를 입는다 해도 초연할 자신이 있는 것처럼 구름 위에서 노니는 '메타적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질척하고 더러운 매트릭스 위의 말들처럼 꼬질해지고 천박해진 채 아이를

들춰업고 땅을 밟으며 걸어야 하는 범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사 중에서도 특히 '상처투성이 우리가 희망입니다'라는 꼭지는 여러모로 인상깊었다.

사교세, '사교육 없는 세상'이 아니라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라는 명칭의 시민 단체의 이야기다. 그 기사는

참 드물게도 직접 사교육을 시켜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입장에 서서 사교육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가 조금 모자라는 부분만 채워주면 될 것 같은 욕심이 시시때때로 발동하는 부모로서, 그렇지만 이렇게

자신의 어린시절과 똑같이 아이를 옥죄는 게 답답한 부모로서, 선험적이거나 구조적인 이야기에서부터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당장 자신의 아이와 자신의 삶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있다니 다행이다. 거대담론과 이념적 정향, 당위적 지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생활의

불편함을 못 견디고 거리로 나섰던 촛불들처럼 그렇게 사교육의 목에 방울을 달아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니, 널리 알려져서 우선은 '사교육 걱정'이라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