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에서 만든 UCC([Korean MBC] Message to the world, "fight against Control of Speech")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공정하지 않고 비난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는 비판도 있고,

해외에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해대다니 부끄럽다는 이야기도 있고,

결국 자신들 밥그릇 싸움인데 지들만 잘난 척 한다는 빈정거림도 있고,

이넘이나 저넘이나 똑같은데 나는 알 바 아니라는 '쿨한' 냉소도 있고,

(진부하게도) 김대중/노무현 때는 가만있다가 왜 지금은 이러냐는, 뭘 알고나 떠드냐는 고상한 뇌까림도 있다.


#1. 이 UCC는 trigger로서 제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

싸움에 신물나서 관심을 끊거나, 양비론을 취하며 고상한 척 하거나, 정말 사건의 진행을 못 따라와서 논점을

모르거나, 그런 사람들이 내국인이던 외국인이던 이번 동영상을 보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된 거라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이로써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하며 언론노조 편이 되어주면(동시에 이번 사태에 한정해서라도

한나라당과 MB의 반대편에 서주면) 좋겠지만 말이다. 이미 한국의 여론은 그쪽으로 기울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되고 있으니 악법이니, 날치기니, 민주주의의 후퇴니, 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설혹

이런 동영상을 보고 반대 입장에 서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한번쯤 생각해보고 찬/반의 입장을 정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훈련이 될 테니.

이미 이렇게 여기저기서 논쟁이 벌어지는 것만 봐도 대단한 성공을 거둔 거 아닌가.


#2. 이 UCC는 당연히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담고 있다.

동영상 하나로 이번 사태의 전말, 배경과 대치한 양 진영의 논리를 모두 담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너무 욕심이 많다.

이 동영상은 아나운서가 멘트를 한다는 형식을 띄고는 있지만 객관적 보도를 하는 '뉴스'가 아니라 말그대로

'선전전', 혹은 '홍보'를 위한 것이다. '균형'이나 '공정성'이란 개념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담준론은

차치하고라도, 이 동영상은 '반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는, 몇 안 되는 이야기할 공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미 거대 언론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고 있는 한나라당은 그에 더해 지하철공간 등에서 자신들의 입장(만)을

선전하고 있기도 하다. 한나라당이나 주류 입장에 선 사람들에게는 반대 입장도 소개하고 사건의 배경을 모두

설명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지 않나? 그들을 탓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여론을 형성하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두

진영이 각자의 목소리를 키우고 공감을 얻기 위해 싸우는 건 너무도 당연한 거 아닌가.


균형잡힌 자세를 유지하는 것,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가독성과 간결성을 생명으로 하는 이런 UCC에 대고

균형잡힌 시각을 요구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싶다. 그런 가혹한 기준을 조금 큰 차원에서 구현하려면, 언론에서

각 진영의 입장을 보도하는 칸과 글자수도 균형을 잡아야 할 테고, 언론 매체가 지향하는 논조와 입장도 잘

균형잡아 동수에 가깝게 배치되어야 할 테고, 여야 정치인 수도 동수에 가깝게 되어야 할 테고..전혀 우습지 않다.

이 UCC는 '균형'과 '조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당 정치인들의 폭거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다.


#3. 이 UCC의 내용은 부끄럽지도, 천박하지도 않다.

국내용인지 해외용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용이라고 생각한다. 6개국어를 사용해 한나라당과 MB에

대해 직접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좀 들어라 하는 식으로. 실제로 외국에 대해 어떻게 구체적인 조치를 해달라,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는 건 없다. 어떤 분은 중국어 파트에서 항의전화를 하라는 것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UCC 제작자들은 항의전화를 위한 전화번호 공개도 없고 아무런 '행동 지시'를 내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그리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허튼 짓 하지 마라."란 말이 중국어 파트의

핵심이 아닐까.


해외용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날치기를 시도한다', '악법', '대형극우신문 조중동', '독재정권의 부활', '언론법

개정으로 경제를 살린다는 말이 거짓말이다', 이런 표현들이 눈먼 비난인가? 물론 제각기의 가치관과 시각에 따라

판단할 부분이겠지만, 아무래도 이건 비난으로 점철되었다고 읽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언론악법 저지,

민주주의수호라는 이번 파업의 명분과 기치를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끄럽다고 해서 다 덮을 건가. 미국의 민주주의가 부러운 것은, 설사 잠시 부끄럽고 치욕적일지라도

자신들의 환부에 대해 공개적인 논의와 유연한 방향수정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논의 자체를 거부하지

말라고도 이야기하지만, 논의에 끌려들어가는 순간 그대로 졸속입법되고 졸속시행될 것이 뻔한 상황이다.

형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는 갖춰지지도 않았다. 형식상으로나마 보장된 통로도 모두 막힌 상황이다. 별다른

방법이 있다면 총파업을 두 차례나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을 거다.


#4. 이 UCC를 만든 사람은 노빠도, 명빠도 아니다.

밥그릇 싸움 맞다. MBC에, CBS에, YTN과 기타 언론 매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 피해가 올 거고, 그 피해를

막기 위해 나선 것 맞다. 그리고 그 이상이기도 하다. 편향된 언론, 언론이 정부에 먹히든 정부가 언론에 먹히든,

그 피해는 상식을 믿고 상식에 따라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그건 우리의 밥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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