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가기 전에 이제 좀 히라가나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외워둔 히라가나에 따르면, 저기

앞에 가는 버스 앞에 붙은 스티커에 써진 말은 '감바로우'. 뭔가 최근 지진과 원전 폭발 사태로 위기에

처한 일본 동북지방에 힘내라고 하는 거 같긴 한데, 짧디짧은 일본어 실력으로도 힘내라는 말은 왠지

'감바떼' 아니었던가 싶었다.


알고 보니 '감바떼'는 힘내라~! 라는 명령형, '감바로우'는 힘내자~! 라는 권유형의 말이라고 한다.

어느 한 특정 지역에 제한된 문제도 아니고 지금 이시간에도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솔솔

고준위의 방사능 물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을 테니, 누가 누구한테 힘내라 라고 위로하고 명령할

처지는 아닌 게 맞는 거다. 다같이 힘내자, 라고 이야기해야 할 만큼 중대한 상황.

코케시 인형을 전시하고 있던 전시관에서도 일본을 돕자는 팜플렛이 마치 적십자 표시처럼 비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일본 본주의 동북쪽 끄트머리의 상점들과 호텔에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건

후쿠시마 원전의 가동 중단으로 인한 전력 부족 사태. 7월 중순의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에어콘은

비실비실하고, 조명 역시 어슴푸레하니 하나 건너씩 꺼져있던 모습이 단적인 예다.

상점 입구나 호텔 로비에 어김없이 붙어있던 절전대책 관련 공지들. 이제 아오모리를 다녀온지도

두달이 가까워오지만 여전히 별다른 상황의 변화는 없지 않을까. 그다지 상황이 통제되지도 못하고

있는 데다가 사실 점점 더 사태가 전례없는 수준으로 치닫는 건 아닌지, 지금 인류는 전례없는 종말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으면서도 그새를 못참고 눈돌린 채 다른 자극과 가십을 찾아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오모리로 떠나서 자동로밍된 폰에 제일 먼저 떴던 외교통상부의 안내 문자. '여행제한 지역'이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딘지, 아오모리는 괜찮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문구라서, 결국 의존할 것은 본인의 판단과 현지 여행가이드나 현지인들의 개인적인 판단.


그리고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더이상 일본 원전사태는 '강건너 불'이 아니라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 같은 거 아닐까 싶다. '감바떼구다사이', 힘내세요~라는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격려가

아니라, '감바로우~!', 힘내자~라는 스스로에 대한 북돋움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높이는,

그런 구호가 필요한 거 같다. 당장 아무일 없다는 듯 '원전 르네상스' 사기를 치는 정부도 그렇고.




사람들 피난길로 방사능도 함께 달렸다 (시사IN, 2011.09.05)
일본 후쿠시마 현에서 원전 반대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는 정부가 아무런 지원도,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며 규탄했다. 사고 당시 주민들이 피난하던 길로 방사능이 집중 확산됐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206호] 2011년 08월 19일 (금) 22:38:47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아무런 경고도, 어떤 알림판도 없었다. 도쿄에서 후쿠시마까지 신칸센으로 1시간30분. 기차는 조용히 도착했고 인구 30만의 후쿠시마 시는 평온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여행이었다. 피폭을 막는다고 ‘반핵아시아포럼’에서 나누어준 마스크를 쓴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하나둘씩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후쿠시마에서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7월31일 ‘원자력발전소가 없는 후쿠시마를 요구하는 후쿠시마 현민집회’가 열린 후쿠시마는 겉으로는 너무도 조용한 지방의 작은 도시였을 뿐이다.

일본 정부는 원전 30㎞ 이내만을 피난지역으로 고시했다가 4월13일부터 방사선량이 연간 20밀리시버트(m㏜)가 넘는 지역을 계획적 피난지역으로 추가 고시했다. 이타테무라, 미나미소마 시(市) 등이 그곳이다. 연간 방사선량이 20밀리시버트가 넘는 지역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머지 지역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는 연간 1밀리시버트 이상의 지역 전체를 대피지역으로 정했다(강제 이주 기준은 5m㏜).


ⓒ보건의료단체자연합
7월31일 후쿠시마 집회에 참가한 가족이 ‘어린이들에게 안심·안전한 미래를’이라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측정한 방사선 측정치 7000여 개를 바탕으로 군마 대학 하야카와 유키오 교수가 작성한 방사선 등가선도(아래 그림·http://gunma.zamurai.jp)에서 보이듯 일본 국내의 방사선 확산은 후쿠시마 원전 서쪽으로 영문 V자 모양을 엎어둔 형태로 확산되었다. 일본 민주의료기관연합 피폭대책본부장인 고니시 교지 씨(의사)가 보건의료단체연합과 한 간담회(8월8일)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집중 방사능 확산 지역은 원전 피난민들의 피난길이었다고 한다. 역V자(Λ) 오른쪽은 116번 국도였고 왼쪽은 고속도로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달리는 길로 바람도 달렸고 방사능도 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방사능은 후쿠시마 시도 오염시켰다. 필자가 후쿠시마 시를 방문했을 때에도 역 바로 앞에서 가이거 계측기에 0.79라는 수치가 찍혔다. 이는 연간 피폭 허용량의 6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후쿠시마 시 자치정부가 6월15일까지 조사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학교 교정의 방사선 수치가 특히 높다. 학교의 75%가 시간당 0.6마이크로시버트, 20%는 3.8마이크로시버트가 넘는 수치를 보인다. 각각 연간 피폭 허용량의 약 5배와 33배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에 따르면 방사능에는 안전한 수치가 없다. 계속되는 피폭은 암 발생률을 그에 비례해 증가시킨다. 더욱이 어린이는 어른보다 감수성이 훨씬 높다. 원전에서 80㎞ 이상 떨어진 후쿠시마 시에서도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다. 얼마 동안이나 그래야 할까? 후쿠시마의 방사선 오염은 주로 세슘에 의한 것인데, 세슘137의 반감기는 30년이다.

후쿠시마 시의 한 공원에서 열린 현민집회. 시에서 남쪽으로 40㎞가량 떨어진 고리야마에 산다는 마스모토 모리코라는 여성이 연단에 올라섰다. “저는 원전이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배웠습니다…. 정부는 아무런 정보도, 물자도 주지 않았습니다. 고리야마 시에서 가장 위험한 며칠 동안 저는 물과 휘발유를 사러 온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지금 45세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 중학교 2학년인 우리 둘째 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딸은 지금 도쿄 여동생 집에 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요? 어린이들을 지켜주세요.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대피지역 바깥 경계지역에서 거주했다는 교사 요시다 히로마사 씨도 연단에 섰다. “저는 공포 속에서 피난을 나왔습니다. 집에서 아무것도 못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받은 것이라고는 휘발유 10ℓ가 전부입니다. 정부는 경계지역에서 그냥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혀 복구가 안 됩니다. 냉장고를 주문해도 배달은 안 해준다고 합니다. 매스컴에서는 ‘힘내라 후쿠시마’라고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힘을 낼 수가 있단 말입니까?”


현민 20% 이미 후쿠시마 떠나

이것이 현실일까? SF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초현실적인 발언이 계속되는 집회 내내 비가 내린다. 사람들이 모두 우산을 받쳐든다. 저 비에는 방사능이 얼마나 들어 있을지, 방사능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고 냄새도 없다는 말을 드디어 실감한다.




수치로는 잡히지 않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고 후쿠시마 사람들이 전한다. 원전 재해 복구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병원에 실려갔고, 또 피난 과정에서 많은 이가 죽었다고 한다. 정부가 지정한 피난지역에서만 수십만명이 대피해야 했고 대피지역 바깥에서도 200만 후쿠시마 현민 중 약 20%가 이른바 ‘자발적 대피’, 즉 알아서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결국 지금 남은 사람들은 피난할 곳도 돈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재난의 피해자는 그 지역의 사회 약자들이다.

집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행진한다. “방사능 오염 없는 후쿠시마를 돌려달라” “어린이를 지키자”라는 구호를 외친다. 절실하지만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구호에 가슴이 먹먹하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리고 체르노빌에서 그랬듯이 앞으로 음식물 등에 의한 내부 피폭이 더 문제다.

다시 도쿄. 일본 사회는 수도에서 1시간30분 거리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었다.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앞으로 재건만 남았을 뿐이라고 일본 정부는 말한다. 일본 시민운동가들은 일본도 변화 중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정부 말을 믿지 않는다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재앙적인 사고가 터졌어도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일본 사회의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 일본에서 사회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본다. 잘못된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사회는 지극히 위험하다. 일본 자본주의의 세련된 외양 속에는 야만이 있다.

문득 한국을 생각한다. 수백만명이 사는 도시 바로 옆에 노후 원전을 두고 우리도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일본의 핵재앙 앞에서도 여전히 원전 르네상스를 고집하고 강진 9.0을 견디는 원전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대통령을 둔 한국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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