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한테 소리도 질러보고, 슬쩍 꼬리나 귀를 잡아당겨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철저히 몸뚱이를
내팽개친 채 끄떡없이 눈을 감고 있던 이 녀석. 야윈 목덜미를 감싼 색색의 목걸이가 눈에 닿았다.
헤매이다 발견한 늠름한 개자식. 더럽고 위험해보이는 이곳에도 피터팬과 푸우는 살풋
이불보처럼 내려앉아서 개자식의 위용에 커튼을 더했다.
렌즈 움직이는 소리에 멀찍이 도망가고 객쩍은 참새만 남아서 부리질 중이었다. 그나마도
찰칵, 소리에 눈을 뜬 개자식은 더운 나라의 개답잖게 미친 듯이 짖어대며 밥값을 했다.
모두 어느 순간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앨런포의 '검은 고양이'를 떠올릴 만큼 악마처럼 새까맣던
녀석들의 잠을 방해했단 사실이 따끔따끔해지도록, 그렇게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대던 녀석들.
쌀국수 그릇을 걸친 채 한끼를 해결하던 식탁 대용 테이블에 퍼진 채 남국의 고양이다움이란
이런 것임을 늘어지게 과시하던 녀석.
통하는 비밀의 문을 발견했다. 절실한 손과 발 모양으로 그곳을 갈구하던 도마뱀 한 마리, 도망갈까
싶어 조심조심 사진을 찍고 나서 한숨돌리며 슬쩍 발로 밀었더니 슬슬 밀린다. 고인의 명복을.
그에 더해 맥주와 재즈 공연 따위로 버무려진 저녁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배가 꾸륵꾸륵꾸르륵.
어딘가 있을 무료 화장실을 찾아 애타게 방황하던 타이밍에도 고양이는 놓칠 수 없었다.
우린 이제 요절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 한 시간에 이백바트짜리 타이 마사지로 몸을 풀기에는
배배 꼬인 구석들이 워낙 많더란 말이다. 근데, 심문을 하려는 거냐 아님 측은해하려는 거냐.
읽으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었다. 따끈하게 달아오른 대리석 화단조각에서 내 게으른 등짝을
떨어뜨렸던 건, 어디선가 웽웽거리며 나타난 R/C 카, 그리고 그 자동차를 따라 짧은 발을 재게
놀리며 눈을 뗄 줄 모르고 내달리던 강아지 한 마리.
배낭여행객의 천국, 게으름뱅이들의 천국 카오산의 시세고, 이런 이쁜 고양이가 지키는 다른
동네에선 한시간에 이백육십여바트. 고양이값이라기엔, 저녀석은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다는.
황금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슬쩍 풍경과 섞여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울룩불룩한
탑의 무늬에 스며든 채 달게 자던 녀석이 부러워 굳이 탑모서리를 밟고 다가가선 카메라를
들이밀었더니, 심술궂은 눈을 번쩍 뜨고 만 녀석의 심통스러움이라니.
끼고 있었더랬다. 공원을 따라 걷는 길에, 불쑥 난 경련하듯 몸을 떨며 잠시 멈춰선 채 저
미지의 생물체가 뭔지 곰곰이 뜯어봐야 했다. 이 거대한 도시 한 가운데 수로를 유유히
헤엄치던 저 녀석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뒷편의 깨어진 콘크리트와 벽돌 자재들 사이로 일미터는 쉽게 넘을 거대 도마뱀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비둘기가 심상히 도마뱀의 상륙을 바라보듯, 정류장의 태국인들은 심상히 도마뱀들을
눈으로 좇고 있었던 거다. 거대 도마뱀을 품고 있는 도시, 방콕.
속담에 들어맞을 그 사원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오만한 수탉 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목을 뽑아쥐고
꼬꼬댁을 외치던 타이밍이었다.
그 앞을 장군처럼 꼿꼿한 걸음걸이로 비장한 히프를 내민 채 사열하는 수탉들의 위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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