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했다. 시화호 갈대습지. 만지면 청량하게 바스락거릴 듯한 갈빛 갈대가 눈 바로 앞에서부터
저 너머 산부리들로 끊어지는 곳까지 가득 차 있었다.
살짝 얼어붙었다. 거친 선으로 굵게 그려진 크로키처럼 쭉쭉 뻗어나간 살얼음의 잔뼈들을 타고
햇살이 와작와작 부서지는 듯.
되었던 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농업용지와 공업용지를 확보한다며 바다를 막고 땅을
메우는 간척사업 명분이었다지만, 결국 사업 전에 감안했던 득실계산과 실제 드러난 득실은
꽤나 큰 차이를 보이고 만 거니까. 그래도 이렇게 갈대습지를 조성하고 오염을 정화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결국 자연 생태계를 회복시키고 새들까지 불러오는 결과를 낳았다. 다행히도.
벤치와 쉼터에 잠시 앉기만 해도 사방에서 푸드덕거리는 소리, 꽥꽥거리는 소리, 어디선가
물을 움키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갈대만 가득한 줄 알았더니, 그 곳을 빌어 살아가는 것들이
정말 많구나 싶도록. 새들 뿐 아니라 고라니나 멧토끼, 족제비까지 종종 발견된다니 신기하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곳곳에 길이 숨겨져 있었다. 아예 무슨 공원처럼 널찍하게 잘 조성된
흙길도 있었고, 어느새 살얼음이 전부 풀려버린 채 찰박거리는 습지 위로 만들어진 나무길도
있었고.
시간이 걸릴 듯. 중간중간에 쉬고 멈춰서 구경하고 할 테니 세네시간은 족히 소요될 테니 반나절
데이트 코스로도 제격이겠다.
쉬어가라고 만들어둔 것이라 한다. 갈대숲만 이렇게 울창해도 새들이 올 텐데 이런 식으로
서비스까지 확실하니, 많은 새들이 이 곳을 찾아들어 한해에만 약 15만 마리가 날아드는 게
놀랄 일은 아니다. 새를 가장 많이 관찰할 수 있는 시기는 겨울철새들이 찾아오는 12월에서
2월 사이. 망원경과 조류도감, 인내심을 갖고 오면 온갖 잡새 구경이 가능하다고.
드문드문 갈대숲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을도 좋지만 눈을 흠뻑 이고 있는
겨울이라거나, 봄볕이 나른하게 내리쬐는 봄에도 좋을 거 같다. 여름에도 좋을 거 같긴 한데,
아무래도 습지니까 모기나 날벌레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조심스럽고.
쉬다 가야지, 그리고 조류도감은 아니어도 망원경 정도는 챙겨줘야겠다, 따위 다짐들을 새기면서.
바람이 일면 갈대 끝에 엉켜있는 그 털뭉치가 민들레홀씨처럼 탁 깨어져서는 퍼져나가는 거
아닐까, 위태한 맘으로 지켜보았지만 의외로 단단히 붙어서는 바람보다 앞서 바람결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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