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은 차라리 시와 같다, 라고 한 옮긴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마 작가는 자신의

단편소설에 놓인 단어, 문장, 문단들을 어느 하나 허투루 놓지 않은 채 자그맣지만 더없이 날카롭고

위험한 덫을 하나 엮어놓는다고 상상할지 모른다. 글을 읽던 사람들을 조금씩 홀리게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까지 유인한 뒤에, 작정한 순간 휙, 하고 독자의 다리를 잡아채는 쾌감을 좇는 거다.


독자가 단편소설을 읽으며 바라는 것 역시 바로 그 정반대의 쾌감, 뭔가 마조히즘적인 쾌감일지 모른다.

어디에 덫이 숨어있을지 더듬어보고 예측해 보는 쾌감, 아니면 그 덫이 얼마나 잘 위장되어 있고

예기치못한 방식으로 자신을 덮칠지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쾌감. 그 덫은 꼭 생각지 못한 반전일 필요는

없고, 분절되어 있는 의미와 단어들이 어느순간 단단히 연결되어 있거나 정렬해 있는 걸 뒤늦게

깨닫는 종류의 것이어도 좋겠다.


사실 그래서 단편은 대개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는지도 모른다. 호흡이 유장하지도 않고 스토리가 

거대하지도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외려 뼈대만 튼튼히 남아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사람들은 

단편소설의 몇 장 되지도 않는 페이지를 쉽게 넘기는 거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복잡하게 전개될 여지도

없고 중층적으로 꼬이기도 쉽지 않은 고작 몇 장의 이야기니까 말하자면 '맵'은 뻔한 상황, 작가들은

이야기를 Zipping하면서 좀더 함축하고 응집하려 들지만 독자는 대개 결말에 쉽게 와닿아 '덫'을

찾아내고 흔들어보인다. 겨우 이거야, 하고 실망하며.


그런 게 내가 늘 단편의 숲을 거닐며 혼자 해보는 상상. 사냥꾼이 만들어낸 조그마한 사냥터의 출구를

향해 조심스레 걸음을 내딛는 조그마한 메추리 같은 새가 되어, 이왕이면 멋진 덫에 더없이 멋지게

걸려넘어가 주겠어, 하는 다짐을 해보는 거다. 몇 개 등장하지 않는 소재와 대사, 단어들을 요리조리

뒤집어 보며 맛보고 확인하는 훌륭한 독자가 되어 차근차근, 이왕이면 멋지게 잡아채이겠다는 다짐이다.

그런 점에서, 쑤퉁이 지은 '다리 위 미친 여자'라는 단편집에 실린 열네 개의 사냥터 중 여섯 개는 정말

굉장히 좋았고, 두 개는 조금 약했으며, 나머지는 괜찮았다.


내가 좋았던 단편을 나열해 보자면, '다리 위 미친 여자', '좀도둑', '술자리', '신녀봉', '대기압력',

'집으로 가는 5월' 정도인 듯. 다들 제각기 생김과 쾌감이 다른, 그리고 중국의 현대사가 새겨둔 상흔을

깊게 간직한 덫을 숨기고 있던 소설들. 한국에선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중국에서만 가능한 소설을

맛보고 싶다면 한번 시도해보아도 좋을 듯.

다리 위 미친 여자 - 8점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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