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한때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범야권의 대선주자로까지 거명되던 인물이다.


정부의 역할과 복지정책의 개연성을 높이는 케인즈 경제학조차 '진보'로 분류되는 세상인지라 그랬을 거다.

그는 나름 '케인지안'으로 시장원리주의자들에 대항하는 합리적 혹은 (상대적인) 진보적 언사가 심심찮던 경제학자였다.


그는 이미 교육부장관보다 힘이 세다는 '서울대 총장' 자리에서 나름의 검증을 거쳤다고 여겨졌을지 모른다.

'딸깍발이'류의 신화야 바라지도 않지만, 제도권 정치인과는 다른 고고한 학자로서의 기개랄까, 순수함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상대적으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나름의 신념과 자존심을 꿋꿋이 견지하고 있는 사람일 거라 보여졌다.


그런 것들이 정운찬이 재야 인사나 시민운동 세력으로까지 분류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한나라당에 대항한) 야권,

(보수우익세력에 대항한) 민주세력의 히든 카드로 주목을 끌어온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랬던 그가 '서울대 총장', '케인지안 경제학자', 혹은 자신의 말대로 '서민의 삶을 살았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허울을 벗고 검증대에 올랐다. 검증대에 오르기까지 그가 보였던 치졸한 언사들과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말장난들은

논외로 하고, 또 어제까지 자신의 편이라고, 최소한 반대편에 서지는 않으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의 경악과 뻘쭘함 역시

눈감아주기로 한다. 문제는, 그의 삶이다. 그야말로 적당한 단어, '공인(公人)' 정운찬의 삶이다.


병역 기피, 탈세, 위장 전입, 논문 게재상의 문제들, 기업과의 유착, 공무원법 위반, 그 모든 탈법 혹은 불법 행위들을

관통하는 것은 부도덕, 그리고 허탈하게도 '능력'의 징표다. 한국에 거주하는 능력자들을 비능력자들로부터 식별해낼
 
수 있는 뚜렷하고도 분명한 지표들이 바로 병역 면제, 탈세 전과, 위장 전입 기록, 유착, 처벌받지 않았던 불법과 탈법의
 
기록들이다.


'능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코스를 필수 정규 과정처럼 밟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능력자'만이 그러한 코스를

밟을 자격이 되는 건지, 그 선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부도덕하고 반서민적이며 불도저스럽다는" MB의

"능력자"들에 대한 유력한 대항마로 여겨지던 정운찬 역시 오십보 백보로 "부도덕하고 반서민적이며

불도저스럽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똥오줌을 뒤집어쓰고 스스로의 말을 뒤집고 신념을 꺽으며,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돌진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그의 권력욕이라니. 그 와중에 드러나는 부도덕성과 반서민성은

차라리 코미디다.


생각한다. 이건 진보니 보수니,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들의 행태, 삶의 방식의 문제다. 이땅에서 나름

누구입네, 하고 거들먹댈 수 있는 사람들, 이름을 대면 알 만하다는 사람들(지쳐버린 '딴따라' 말고), 그들이 불리기를
 
원하는 호칭으로는 '사회지도층 인사들', 보다 날 것의 단어라면 (계급화되어가는) '지배계층' 쯤이 알맞을 '노블리스'

계층의 문제다.


진보/보수를 싸잡아 비난하자거나 그런 이념적 지향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인' 정운찬은 진보도 보수도
 
표방하지 못하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아마추어 정치인에 불과하다. 그가 총리직에 낚여서 허부적대다가 덜컥 노출시켜

버린 '있는 사람' 일반의 도덕과 품위와 교양과 상식의 부재함을 주목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만족과 합리화일지언정

'보헤미안(히피)'의 감수성을 가진 '부르조아'라는 '보보스(BOBOS)'족의 출현조차 이 나라에선 가능할 법하지가 않다.


그가 MB에 대항하지 않고 투항해 버린 것이 유감이었다. 이제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대체 이런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기준조차 충족시키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니, 기껏 그런 사람이 유력한 대항마로 거론되었었다니
 
더욱 암담하다. 진부하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갖지 못한 그들, 최소한 지금 위세부리는

'능력자'들 맞은 편에는 그들보다는 나은 도덕과 품위와 상식을 가진 '능력자'들이 포진하고 있기를 바랬는데.


기득권층, 사회지배층, 상위계층, 지배계급, 사회지도층, 뭐라 불리던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다. '비능력자'로서는,

거기에 관심을 끊어버리고 '니들끼리 놀아라' 해버리던가,....다른 어떤 길이 있을까. 일부 '비능력자'이면서 용케

제도권 정치 내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명박의 지지율이 40%를 넘는 세상이다. 이명박을 무난히
 
집권시킨 세상이다.


사실, '능력자'를 힐난하고 그들의 비상식, 부도덕을 지적하면서도 흘깃대며 그들의 '성취'를 부러워하고 '병역면제'니
 
'위장전입'이니 그들의 경력을 어쨌던 "능력"이라 지칭하는 내 안의 시기심, 질투, 전도된 가치관부터 문제일지 모른다.
 
기득권층은 제 혼자 성립되지도, 유지되지도 못한다. 그곳에 편입되기를 열망하고 해바라기하는 사람들이 떠받치고

있는 거다. 기득권층의 문제란 건, 잠재적 기득권층, 언젠가 기득권층이 될 거라 믿는 사람들의 문제기도 해서, 결국

우리 모두의 욕망과 그 해소의 문제라고 해도 억지는 아닐 거다.


"결국 니가 배아파서 그런 거잖아"란 그들의 비웃음에 뜨끔할 수 밖에 없다. 그럴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도덕적

순결주의나 '남의 티를 찾기 전에 자신 눈안의 들보를 찾아라' 따위 가르침을 따르고 싶진 않다. 난 어쨌든 "비능력자",
 
"능력자"들보고 니들 좀 똑바로 해라 십장생 개나리들아. 라고 이야기할 거다. 다행히 나이먹는 것과는 달라서,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럽게 '기득권'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니까. 갈수록 이 사회에서 '계층'은 '계급'이 되고 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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