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처럼 [2009.08.07 제772호]
[레드 기획] 누구나 한 번씩은 거쳐가는 소설 <상실의 시대> 한국 출간 20년,
일상의 곳곳에 스며든 ‘하루키와 나’

(중략)

 
» 다음 카페 ‘무라카미 하루키 되기’의 회원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하루키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박주희, 김도윤, 윤성의, 유승진, 윤종석씨.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 “그게 무슨 말이야. 봄날의 곰이라니?”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똘망똘망한 새끼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상실의 시대>,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제목이 된 문장)

2003년 개설된 다음의 ‘무라카미 하루키 되기’ 카페 회원 수는 4천 명이 넘는다. 대부분이 20대다. 20년이 지난 뒤 17살에게도 하루키는 단숨에 읽힌다.

카페지기 김도윤(27)씨는 언어영역 이외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를 피해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야 했는데, 책방의 친한 누나가 “야 이거 읽어봐”라고 건네주는 것을 들고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앉아서 그냥 끝내버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것도 처음이었지만 그렇게 긴 소설을 독파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 뒤로도 질릴 때마다 꺼내본다. <상실의 시대>다.

같은 카페의 박주희(28)씨는 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했다. 너무 좋아 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나 읽은 소설인 <상실의 시대>는 ‘와타나베 바람 피우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대학교 4학년 무척 괴롭던 시절에 간 일본에서, 중고서점에 들렀다.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세 줄이 인생에 해답을 던져준 듯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되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간이라는 것은 때로 그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는 <상실의 시대>를 와타나베의 시각으로 다시 읽고는 모든 하루키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감각적인 문장도 좋지만 그것만이 하루키의 매력은 아니다. 윤종석(34)씨는 하루키 때문에 바람의 노래를 들으려고 한다(<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작품이 있음). “책을 읽으면서 내 일기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루키에게 정말 감사한다. 살다가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 다시 들춰본다.” 윤성의(28)씨도 “나뿐만이 아니구나. 애써 감추고 있던 생각을 얘기해줘서 위로를 받는다. 니체의 초인이나 오쇼 라즈니시처럼 극한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하루키는 PPL, 원 소스 멀티 유스

하루키는 맥주 TV광고보다 자극적이다. 하루키는 PPL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맥주가 마시고 싶어지고 재즈가 듣고 싶어진다. 하루키는 원 소스 멀티 유스다. 책에서 책과 음악과 스타일이 가지를 뻗어나온다. 윤종석씨는 하루키의 소개로 레이먼드 챈들러를 읽고 헤어날 수 없이 빠졌고, 박주희씨는 글렘 굴드를 듣고, 먼 북소리를 좇아 그리스를 간다. 김도윤씨는 1년간 여행 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다가 맞아죽을 뻔했다.

‘하루키처럼’은 이어진다. 그들이 진짜로 하루키에게 배우는 것은 ‘마이너리티’다. 유승진(27)씨는 “하루키에게는 거대담론과 거대권력에 대항하는 마이너리티의 정치학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오해되듯 탈정치화한 게 아니란 말이다. “80년대의 거대담론에서 인간 실존은 죽어 있었다. 김승옥 같은 예외가 있었지만 희귀했다. 그 단절 기간 동안 목말라 있었는데 하루키가 채워준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윤성의(28)씨도 비슷하다. “한국 문학이 극복하지 못한 지점에 하루키가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가적인 태도야말로 ‘스타일’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사장은 “소설에서 주는 아름다움과 자기 관리가 동시에 다가왔다. 하루키가 20대가 보는 패션지에 쓴 칼럼을 묶어낸 게 있다(<무라카미 라디오>). 그걸 읽고 하루키는 그런 데 써도 하루키의 몸을 버리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마라톤을 하고 담배를 끊었다. 소설가의 자세가 느껴진다.”

칼럼니스트 임경선씨는 2005년 “그저 그래야 될 것 같았고 또 너무나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를 펴냈다. 그에게 하루키는 불가사의한 존재다. 변덕이 심한데 하루키에 대해서만은, 일본에서 빨간 책·초록색 책을 읽은 1987년 이후로 여전히 깊이 매료돼 있다. 그의 책상 앞에는 하루키의 사진이 붙어 있다. 하루키는 데레크 하트필드에게 문장에 대해서 배웠지만, 임경선씨는 하루키에게서 글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임경선씨가 글을 고칠 때 언제나 옆에 하루키가 나타난다. “아이씨, 대충 보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 때 하루키를 생각한다. 문장에 대한 집착, 잘 쓴 문장에 대한 집착을 유지하려고 한다. 얼음을 깎듯이 단어를 많이 없애려고 하루키처럼 노력한다.”

진실한 작가적 태도야말로 그의 ‘스타일’

하루키는 임경선씨에게 작가로서도 롤모델이지만 인간적으로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보는 유명인 중에서 성실함을 미덕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없어져간다. 진정성이 있으면서 성실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임씨는 하루키가 ‘가치 전파자’라고 말한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개인주의, 다원주의,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또 은연중에 글이나 사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파하는 것 같다. 강요가 아니라. 또한 그는 집단주의의 광기나 부조리함, 권위주의을 맹렬히 거부한다. 그만큼 ‘편견’이 없고 ‘상대성’을 인정하는 개인주의자다.”


*                                                                 *                                                                 *

#1. "하루키는 뭐랄까, 말하자면..왜 그거 뭐죠? 드라마 속에 광고가 숨겨진 거?" 그렇게 내가 물었고, 기자님이 PPL

이란 답을 알려줬다. 그렇게 하루키는 PPL(제품 간접 광고(Product Placement))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멋지고 단순한
 
표현이라 생각하긴 하지만, 사실 PPL이란 비유는 어폐가 있다. 다만 그의 작품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음악, 음료, 음식,
 
작가의 이미지들이 워낙 강렬하다는 거다.


#2.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저 사진을 올리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찍으면서도 우리들끼리 아 이렇게 촌스러울 수가,

라고 탄식했던 포즈였었는데. 맘에 아주아주 들지 않는 사진이다.


#3. 뭐랄까, 그날 이야기했던 부분들이 기사 전체에 녹아있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말로 인용되거나 적절히 쪼개지긴

했지만, 예컨대 임경선의 이야기도 그날의 인터뷰에서 몇차례 반복되어 강조되었던 부분이었다. 생각보다 하루키에

대한 평가는 정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여전히 인터뷰비는 없었다. 원래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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